협수(夾袖), 동달이, 동다리주의, 동다리저고리, 겹동다리긴의대, 섭수, 겹수
동다리는 소매통이 좁은 군복(軍服)의 총칭으로 직령 깃에 양옆과 뒤가 트인 구성이다. 소매에 다른 색상을 덧대어 만든 소매가 좁은 포로 조선시대 구군복 용도뿐만 아니라 어린이용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조선 후기의 동다리는 독립적으로 착용되지 못하고 전복(戰服)을 그 위에 덧입어 구군복(具軍服)으로서 알려져 왔다. 이러한 동다리는 구군복뿐만 아니라 어린이 두루마기와 같은 용도로 착용되었다. 임오년(1882) 가례관계 발기에 동다리에 대한 기록이 여러 건 보이는데 10세 미만의 어린이복식에는 여러 종류의 동다리가 다양했던 것으로 본다. 형태는 곧은 깃인 직령이며, 삼각무가 붙어있다. 소매의 색은 길의 색과 달리 홍색(紅色)으로 달려있고 뒷길이 트여있어 활동에 편리한 구성이다.
전통복인 동다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숙종 때《숭정전진연도》가 있다.
자료에는 동다리색으로 주황, 녹색, 남색, 자주, 흑색, 분홍색으로 다양하다. 소매부위도 배색이 다르고, 끝동 부분만 홍색인 것, 수구에서 팔꿈치까지 홍색인 것, 수구에서 진동까지 홍색인 세 종류가 있다. 동다리인 협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난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간편해진 형태이다. 『연행록(燕行錄)』에 보면 융복지주립첩리(戎服之朱笠貼裏) 군복지모립협수(軍服之氈笠挾袖) 는 융복과 군복이 이원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협수는 직령깃에 무가 있으며 뒤와 양옆이 트여있고 좁은 소매가 달려있다. 트임의 구성은 갑옷과 동일한 기능적인 옷이며 전복(戰服)과 함께 구군복으로 착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24년 6월 소렴의에는 군복을 순색으로 하고 소맷부리는 청색으로 한다는 기록이 있다.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의『빈궁혼궁도감의궤(빈궁혼궁도감의궤)』의 대렴의대 중에 동다리의 기록이 있다. 연두색화단수구대홍운문단(표)진홍황직(내)(蓮頭色花緞袖口大紅雲紋緞(表)真紅黃織(內)로 되어 있으며, 수구의 색을 연두색 길과 달리 대홍운문단이라 하였으며 이는 협수가 동다리형의 옷임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순종의 발기기록에는 동다리, 동다리군복, 겹동다리군복, 단동다리군복, 겹동다리긴의대 등 여러 종류의 동다리가 나타난다.
동다리의 형태는 직령교임(直領交袵)의 포로 무가 있고, 무 양옆과 뒷중심에 트임이 있어 활동하기 편리한 의복으로 소매가 다른 색으로 된 구성적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동다리는 길과 소매부분에 색상을 달리 만든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동다리는 크게 구군복으로 착용한 동다리와 어린이가 착용한 동다리, 굿을 할 때 무녀가 착용하는 동다리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무관용 협수는 전복과 구성되며, 협수는 좁은 소매가 달린 장수포(長袖袍)로서 전래되는 동다리와 형태가 동일하다. 실물인 섭수인 동다리 유물은 전해지고 있는 것이 많다. 그중에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김병기(金炳冀, 1818~1875)가 착용했던 무관용 동다리는 황색 길에 홍색 소매로 구성되어 있다. 직령 깃에 소매는 3겹으로 되어있고, 소매는 진동 부위에서 수구로 갈수록 좁아진다. 이후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의 동다리는 황색 길에 홍색 소매로 구성되어 있으나 소매는 진동 부위와 수구의 너비가 동일하다. 그리고 어깨바대와 겨드랑이 바대가 있어, 형태와 바느질방법이 달리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이용 동다리는 왕실 기록에 한정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뒷길과 양옆이 트여있고, 소매가 좁은 착수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무관용 동다리는 독립적으로 착용되지 못하며 맞깃으로 무수의(無袖衣)인 전복을 그 위에 덧입고 넓은 대 위에 전대(戰帶)를 매었다. 머리에는 전립(戰笠)을 써서 일습을 이루는 구군복으로 알려져 왔다. 동다리는 전복 밑에 받쳐 입는 군복의 일종으로 두루마기 형태와 비슷하다. 동다리는 길의 색과 다르게 소매에 다른 색을 배색한다고 하여 동달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음을 따서 동다리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동다리를 협수라고도 하는데, 협수는 소매통이 좁은 군복 포의 총칭으로 여러 종류 중에서 특히 동다리가 소매가 좁아 비롯된 명칭이다. 어린이용 동다리는 조선시대 말기 궁중발기에서 기록이 있으며 유물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에도 어린아이 첫돌이 되면 전복 밑에 받쳐 입거나, 표의로 복건과 함께 착용한다. 문헌상에는 동다리의 명칭을 협수, 겹수포 표기하는데 무당들은 섭수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무당내력에 그려져 있는 동다리는 전통복인 무관이 상복으로 착용했던 구군복 형태이다. 무복으로 착용하는 무복 동다리는 뒷길의 중심선에 트임이 있는 것과 무를 부착했음에도 옆길에 트임이 있는 종류도 있다. 서울굿 김유감의 무복동다리의 경우는 깃이 직령으로 되어있으며, 여밈은 교임이다.
길의 색은 연두색이고 소매는 홍색으로 되어있다. 굿거리에서 착용하는 동다리는 굿을 주도하는 무당에 따라 색상이나 형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연행록』 『조선왕조실록』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김은정, 『한국의 무복』, 민속원, 2004. 김영숙,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예술사전』, 평사리, 2016.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중요 민속 자료_복식, 자수편』, 2006.
김은정(金垠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