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자(加文刺), 가문내(加文乃), 답호(褡護), 전복(戰服), 호의(號衣), 쾌자(快子)
고려시대에 전해진 답호를 차용한 우리말로 덧입는 겉옷으로 활동에 편리함
더그레는 조선시대에 왕이나 왕세자의 곤룡포(衮龍袍)나 단령(團領), 원령(圓領) 등의 안쪽에 받쳐 입던 옷이다.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서 답호, 전복, 호의, 쾌자 등의 개념과 다양한 명칭이 뒤섞여 더그레의 의미가 넓어졌다. 이에 포나 웃옷 위에 덧입는 겉옷을 통틀어 더그레라는 명칭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각 영문(營門)의 군사, 마상재(馬上才)꾼, 의금부의 나장(羅將), 사간원의 갈도(喝道), 화원(畫員) 등이 입던 양 옆이 완전히 터진 세 자락의 웃옷으로 소속에 따라 옷 빛깔이 달랐으며, 호의(號衣)라고도 부른다. 소매가 달리고 맞깃으로 되었으며 가슴에 띠를 둘렀으며 군인이 입는 덧옷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더그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 한어(漢語) 학습서인 『노걸대(老乞大)』(1346)에 대탑호(大搭胡)로 표기하고 언해본에서 ‘더그레’로 번역되었다. 더그레는 원(元)나라의 복식으로, 몽골어로는 더걸러이[degelei] 라고 한다. 또한 이기문은 ‘더그레’를 몽골어 ‘더걸러이’와 그 음상(音相)과 뜻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몽골어 차용어(借用語)로 보고 있다. ‘degelei’는 ‘소매가 없는 가죽의 큰 웃옷’이나 ‘털이 있는 짧은 외투’ 등의 뜻을 가진다. 즉 ‘degelei’는 다른 옷 위에 겹쳐 입거나, 방한용 외투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박통사(朴通事)』에는 답호(搭護), 답홀(褡忽)이라고 표기하였고 언해본에서 더그레로 번역되었다. 남송(南宋) 정사초(鄭思肖, 1241~1318)의 시(詩)에 ‘종립(騣笠), 전화(毡靴)’와 함께 ‘답호의(搭护衣)’ 라는 기록이 있으며, 그 주(註)에 “답호(搭护)는 원의 복식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가문자(加文刺, 더그레의 차자표기)는 중세 몽골어 ‘degelei’를 받아들여 차용한 것으로, 가문내(加文乃)라고도 썼다.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답호로 추측한다. 조선시대 외국어 역학서에서 명칭을 살펴보면 제견괘(齊肩褂)는 1790년의 『몽어류해보편(蒙語類解補編)』에 갓동옷으로 언해되어 있다. 1690년의 『역어유해(譯語類解)』 에는 답호 밑에 ‘더그레’라 주를 달고 있으며, 이를 『몽어류해(譯語類解)』에서 보면 답호(搭護)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은정은 제견괘, 등지게, 갓동옷, 더그레, 답호가 유사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1937)에는 호의의 속칭으로 일명 더그레라 하며, 군인 관예들의 소속을 표시하는 표의라고 하였다. 더그레란 덧입는 옷의 총칭으로 답호ㆍ전복ㆍ호의ㆍ쾌자가 포함되는데 1786년에 쾌자의 기록이 시작된다. 조선시대 초기의 더그레 길이는 포보다 짧았으나 1760년 이후 군졸의 더그레만 포보다 짧고 포의 길이와 같아졌다. 방령(方領)더그레는 17세기 초반 이후 방령상의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보이며, 18세기 중반까지 나타난다. 옷길이가 100㎝ 이상이고 소매가 반소매이거나 없으며, 섶과 무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방령더그레는 앞길이와 뒷길이가 같은 전후동일형으로 바대가 없고, 여밈은 대금형 혹은 대금 합임형으로 겉옷 위에 덧입는 옷이다. 짧은 소매가 달린 방령더그레는 신경유(한자이름, 1581〜1633), 김덕원(한자이름, 생몰년도), 이직(한자이름, 1677∼1746), 이진숭(李鎭嵩, 1702~1756)의 유물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방령더그레는 〈이진숭묘〉에서 출토된 보공품(補空品)으로 겹옷이며, 소매가 없고 무가 있다. 길이가 79cm이고 뒤가 트인 형태이며 주(紬)로 만들어졌다. 마주보는 대금(對衿)형 방령깃에 동정과 매듭단추가 없다. 동정이 달렸던 부분을 제외하고 전체에 0.5cm 간격으로 누비를 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짧은 더그레는 앞에서 끈으로 여며 입으며, 소매가 달려있다.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된 일제강점기 시대의 더그레는 검은색의 면직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108.9cm이고 품은 56.7cm이며 소매가 달려있다.
호의는 포보다 짧으며 앞자락을 뒤로 돌려 묶어 입기도 하였으며, 군졸들이 입었던 호의는 소매가 없으며 옆트임이 허리까지 트여있다. 호의는 소속을 색채로 표시하는 상의로 그 소속에 따라 5방색으로 구분하였다. 동은 청, 서는 백, 남은 홍, 북은 흑, 중앙은 황색이었으며, 쾌자와 혼용되었다. 2002년 경남 진주 삼천포농악에서 영기수들이 전립을 쓰고 검정색 더그레를 입고 있다.
더그레는 고려 말 전해진 답호를 차용한 우리말이다. 시대에 따라 착용범위가 확장되었다. 군인들이나 하급 관리가 입던 겉옷을 가리키다가 답호를 가리키게 되었고 조선시대 말기에는 궁중에서 가문자라고 기록되었으며, 사대부나 일반인들에게는 더그레, 전복이나 호의 같은 겉옷을 두루 표현하는 의미가 되었다. 더그레는 옆트임이나 뒤트임이 있어서 활동에 편리한 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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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문(金容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