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빗내농악, 김천빗내농악, 빗내농악
경상북도 김천시(金泉市) 개령면(開寧面) 광천동(廣川洞)에 전승되어 온 농악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천금릉빗내농악’은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 빗내마을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상북도 내륙지역 농악의 성격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김천금릉빗내농악은 양손으로 치는 대(大)북놀음이 웅장하고, 《판굿》(《영풍굿》, 《영산다드래기》)에서 드러나는 《군사진(軍事陣)굿》이 두드러진다.
빗내농악은 옛 감문국의 “나랏제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빗신제”가 혼합한 동제(洞祭)에서 유래하였다. 빗내농악은 선산군의 《무을농악》과 그 뿌리를 같이하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시작은 선산의 《무을농악》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빗내농악이 더 번성하였고, 원래의 《무을농악》은 잠시 쇠퇴하였다. 따라서, 민속학자들은 《무을농악》을 금릉(김천) 일대에서 전승된 빗내농악의 조상격으로 평가한다.
○ 역사 변천 과정 빗내(廣川)마을은 삼한시대 감문국에 속했으며, 넓은 개령들을 앞에 두고 뒤에는 감문산성의 성터가 있으며 군사를 동원할 때 나팔로 신호했다는 취적봉이 있는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장으로, 개령면 광천리의 다른 이름이다. 김천금릉빗내농악(이하 빗내농악)의 시작은 대체로 200여년전 《절(정재진의 수다사)굿》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재진이라고 하는 인물의 전승계보는 대체로 불분명하나 그 이후의 대략 100여년 간은 계보가 비교적 분명하게 전승됨이 확인된다. 김헌선의 『금릉빗내농악: 진굿의 전통과 혁신』(2016)에 따르면, 빗내농악의 전승계보는 다음과 같다.
<상쇠의 계보>>
빗내농악은 김천시 남면 부상리 출신이라고 전해지는 정재진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이군선, 윤상만(윤성문, 1879~1942), 우윤조(호적 우동준, 1890~1961), 이남훈(이남문, 1902~1952) 등을 가르쳤는데, 이들이 차례로 상쇠를 맡아 오다가 그 뒤 이남훈에게 배운 김홍엽(1922~1988)이 상쇠를 맡았다. 이러한 사실을 들어서 김홍엽을 6대 상쇠라 할 수 있으며 손영만까지 합치게 되면 빗내농악의 상쇠는 8대까지 전승되고 있다. 1988년에 김홍엽이 사망하고 한기식(1931~2010)이 상쇠 역할을 이어받았다가, 1993년 손영만에 이르게 되었다. 빗내농악은 선산군의 《무을농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김헌선(2016)이 “무을의 가락이 금릉빗내에 와서 포자가 떨어지고 이를 창조적으로 혁신한 것이 바로 빗내농악이 되었다.”고 언급한 바와 같이 빗내농악의 전통은 이른바 《무을농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선산의 《무을농악》이 빗내농악에 이식되고 이 농악이 번성하면서 원래의 농악인 《무을농악》은 쇠퇴하였다. 즉 농악의 전통이 이식되면서 이 전통에서 빗내농악이 결정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군선, 윤상만은 무을면 수다사의 승려인 정재진에게 농악을 배워 김천 빗내농악 상쇠를 역임했다. 이군선은 선산 무을면 오가리 출신으로 《무을농악》의 상쇠였다. 수다사의 정재진 승려에게 농악을 전수받아, 무이리의 최일영(?~1950)과 빗내의 윤상만, 우윤조, 이남훈, 윤필선, 박희순 등의 제자를 길러냈다. 당시에는 전국의 많은 쇠꾼들이 무을을 찾아 쇠가락을 배워 가 다른 이름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전하며, 무을을 찾아간 사람들 중에 빗내농악의 기틀을 세운 사람들이 포함된다. 윤상만은 개령면 빗내마을(광천리) 출신으로, 이군선에게 찾아가서 농악을 배운 인물 중 하나이다. 윤상만 상쇠는 우윤조, 이남훈 보다 조금 앞서서 농악을 배웠고, 그 후배인 우윤조, 이남훈이 농악을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우윤조는 개령면 빗내마을(광천리) 사람으로 이군선, 윤상만에게 농악을 배워 김천 빗내농악 상쇠를 했다. 1915년 경부터 본격적인 농악활동을 시작했으며 작고하기 전인 1955년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진행하면서 빗내농악의 기틀을 형성하였고, 그 제자로 김홍엽을 가르쳤다. 또한 이남훈은 본디 개령면 빗내마을(광천리) 출신이었으나, 무을에서 농악을 학습하여 다시 빗내마을에 돌아와 정착하였다. 빗내마을에 돌아와서 앞서 배운 우윤조와 함께 빗내농악의 현재적 모습을 전승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무을을 시작으로 이군선이 갈라져서 윤상만, 우윤조로 이어져 오면서 형성된 농악은 이제 빗내마을에서 빗내농악으로 정착하였다. 이는 이남훈의 활동시기인 1920~1950년까지 약 30년간 우윤조와 함께 이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빗내농악이라 부를 수 있는 농악이 형성되었다. 시작은 무을의 수다사였으나 그 끝은 빗내마을이었고, 정재진-이군선-윤상만-우윤조로 이어진 전통이 이남훈에 이르러서 빗내의 것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전승된 쇠가락은 이후 김홍엽, 한기식, 손영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남훈 이후 빗내농악의 전승 과정에서 빗내농악은 더욱 발전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재창조와 전승이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빗내농악의 찬란한 세월을 이끈 결정적인 주인공은 다름 아닌 6대 상쇠인 김홍엽이라 할 수 있다. 김홍엽은 본디 금릉출신으로 빗내에 정착하여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살았다. 평소에는 방앗간을 운영하다가 때가 되면 빗내마을은 물론 인근 아포, 새안골, 시술, 황새울 등지의 잽이들을 모아서 패를 만들어 활동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의 흔적은 1962년 제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경상북도 대표로 참석하여 종합 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성과는 김홍엽 상쇠가 빗내농악을 올곧게 전승하고 활발하게 전승되던 농악을 한데 모아서 만들어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김홍엽에 의해서 복원되고 활성화된 빗내농악은 농악단을 결성해서 그 위세를 펼치다가, 1984년 제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충주)에서도 역시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이 대회에서 빗내농악은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본격적으로 선보였고, 마침내 문공부장관상에 입상하였다. 이를 통해 빗내농악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결국 그 기량과 예술적 면모가 1984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받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김홍엽은 초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홍엽은 본디 우윤조에게 쇳가락을 배웠다가 빗내마을의 이남훈에게 본격적으로 빗내의 쇳가락을 전수받음으로써 진정한 빗내농악의 모습을 정착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88년 갑작스럽게 김홍엽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 그 자리를 지킨 것은 당시 끝쇠로 활동 중이던 한기식이었다. 한기식은 금릉 빗내마을 출신으로 김홍엽에게 농악을 배워서 함께 활동하였고, 금릉 빗내농악단이 구성되면서 초대 총무로도 활동하는 등 현재의 빗내농악 보존회 발전을 위해 힘을 쓴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990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1992년 제3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구미)에 상쇠로 참가하여 개인상을 수상하는 등 빗내농악의 중요한 전승자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오늘날 김천금릉빗내농악의 전통을 올곧게 이어받아 지금의 빗내농악을 이끌고 있는 이는 8대 상쇠 손영만(1964~)이다. 손영만은 김천 황금동이 고향이며 유년시절부터 농악을 좋아하다가, 김천농고에 진학하여 1980년부터 농악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농악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김천농고로 농악을 가르쳐 주러 온 김홍엽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빗내농악의 전통을 계승하게 된 것이다. 1984년 제25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한 빗내농악 팀의 끝쇠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빗내농악의 일원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1988년 김홍엽의 별세 이후 빗내농악의 상쇠를 이어받은 한기식의 뒤를 이어 1993년부터 본격적인 상쇠로 활동하고 있다. 빗내농악의 상쇠 전승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빗내농악 상쇠 전승계보
역할 | 성명 | 생몰연대 | 활동시기 | 출신지역 |
1대 상쇠 | 정재진 | - | - | 무을면 삼송리(수다사) 승려 |
2대 상쇠 | 이군선 | - | 1868~ | 무을면 오가리 출신 |
3대 상쇠 | 윤상만(윤성문) | 1879~1942 | - | 개령면 광천(빗내)리 출신 |
4대 상쇠 | 우윤조(우동준) | 1890~1961 | 1915~1955 | 개령면 광천(빗내)리 출신 |
5대 상쇠 | 이남훈(이남문) | 1902~1952 | 1920~1950 | 개령면 광천(빗내)리 출신 |
6대 상쇠 | 김홍엽 (1984년 예능보유자 지정) | 1922~1988 | 1940~1988 | 개령면 광천 출신 |
7대 상쇠 | 한기식 (1990년 예능보유자 지정) | 1931~2010 | 1962~2004 | 개령면 광천 출신 |
8대 상쇠 | 손영만 (2012년 예능보유자 지정) | 1964~ | 1980~현재 | 김천시 황금동 |
○ 연행 시기 및 장소 김천금릉빗내농악은 철저하게 《마을굿》의 전통 속에서 우러난 농악이다. 빗내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굿》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이 고장에서 《마을굿》을 흔히 ‘《빗신굿》’이라고 하는데, 《빗신굿》의 전통이 완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사실 역시 알려진 사실이다. 《빗신굿》은 《마을굿》의 계통인 별신굿과 견줄 수 있으나, 그것과 다른 내지의 《빗신굿》, 물굿이 아닌 내륙지역 《마을굿》의 전통으로부터 비롯된 농악이다. 빗신은 마을의 수호신이고 이 마을의 수호신을 위하는 재차가 농악의 근간이 되는 점은 다른 고장에서도 확인된다. 가령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전통적인 《마을굿》 가운데 경산 자인의 한 〈장군놀이〉나 경상남도 《영산》의 《문호장굿》은 《마을굿》과 《농악대굿》이 결합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빗내농악은 지리적 위치가 독자적이고, 경계면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청북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내륙, 경상남도 등지까지 이어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중심부의 중심 지역에 이른바 빗내농악의 주요한 위치가 정해질 수가 있다. 교통의 요충지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위치에 김천의 역참이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절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빗내농악이 우리나라 한복판의 농악임을 주안점으로 하여 농악의 전승지역 분포도에 관련한 문화지리적인 위치를 살펴보면, 서쪽으로는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의 금산, 진안, 임실 등 호남좌도농악과 연접하고 있다. 동시에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익산, 정읍, 영광 등 호남우도농악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쪽으로는 전라남도의 광양, 진도 등을 비롯하여 전남 남해안 농악과 연맥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경상남도의 진주 삼천포, 함안 등이 연결되어 있어서 영남농악이 자리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부산 아미농악, 대구 비산농악, 경상북도의 청도 차산농악 등 동부 영남농악이 자리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평택, 안성 등 경기농악과 원주 매지, 강릉 등 영동농악이 자리하고 있어 그 중심 지역에 빗내농악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빗내농악은 지리적으로 봐서 한국 농악의 중심지에 자리하여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 기본구성 및 복색 빗내농악의 기본구성은 쇠 네 명, 징 네 명, 북 여덟 명, 장구 여덟 명, 소고 열여섯 명, 영기 두 명, 농기 한 명, 잡색 세 명으로 편성 인원은 46명 정도이다. 빗내농악에서 장구보다 북 치배가 앞에 서는 것은 경북농악의 일반적인 특징과 같지만, 빗내농악만의 특징이라면 다른 지역에 비해 큰 북을 장구처럼 메고 양손에 채를 쥐고 북을 치는 ‘양북’의 형태로 연주를 한다는 점이다. 치배 외에 잡색으로 대포수, 양반, 각시가 편성되는데, 이들은 이름에 맞는 복장과 분장을 하고 농악이 연행될 때 연행의 흐름을 조율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빗내농악의 기본 복색은 흰색 저고리와 흰색 바지에다 검은색 조끼를 입으며 홍ㆍ황ㆍ녹 (紅ㆍ黃ㆍ錄) 3색띠와 머리에는 전립과 흰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고깔을 쓴다. 특히, 상쇠는 등판에 장군을 상징하는 지름 10cm 정도의 원형 청동거울(홍박씨, 함박씨)을 달고, 앞이마에 꽃을 달며, 채에 5색천을 달아 지휘자임을 상징한다. 치배들의 기본 복장은 같지만 머리에 쓰는 쓰개는 치배마다 다르다. 기수는 흰 머릿수건을 쓰고 붉은 실이 달린 전립을 쓴다. 상쇠를 비롯한 쇠 치배와 징 치배들은 흰 머릿수건을 쓰고 부들이 달린 상모를 쓰고 흰 꽃천을 이마에 단다. 북 치배들은 흰 머릿수건을 쓰고 다섯 개의 흰 종이꽃이 달린 커다란 고깔을 쓴다. 장구 치배와 소고잽이들은 흰 머릿수건을 쓰고 긴 피지가 달린 채상모를 쓰고 이마에 흰 꽃천을 단다. 치배들은 모두 짚신 모양의 가죽신(미투리)을 신는다. ○ 절차 및 주요 내용 금릉빗내농악의 《판굿》 구성은 모두 12마당이며, ⒈《문굿》, ⒉《골매기굿》, ⒊《마당굿》, ⒋《영풍굿》, ⒌〈판안다드래기〉(소리굿), ⒍《기러기굿》/《소쩍굿》, ⒎《허허굿》, ⒏《쌍둥이굿》/《오방진굿》, ⒐《판굿》, ⒑《영산다드래기》, ⒒《진굿》, ⒓《상사굿》 순으로 진행된다. ⒈ ‘《문굿》’은 농악꾼들이 마을이나 집안에 들어갈 때 연주하는 장단으로 마을의 경계면을 넘어서는 상징적인 행위로 영기를 세우고 막았던 문을 열면서 이를 통해 경계면을 넘어 들어가는 구실을 한다. 《문굿》은 상쇠의 사설과 함께 이를 다드래기 장단으로 연주한다.1 ⒉ ‘《골매기굿》’은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하여 가가호호 이동하며 《지신밟기》를 할 때 길을 돌아다니면서 치던 장단이다. 골매기2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로 액운을 막는다는 말이면서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뜻한다. 길을 가면서 연주하기 때문에 ‘《길굿》’, 또는 ‘《질굿》’이라고도 한다. ⒊ ‘《마당굿》’(《정저굿》, 《반죽굿》, 《엎어빼기굿》, 《품앗이굿》)은 마당에서 행하는 일련의 놀이 훈련과정이다. 마당에서 여러 가지 변화무쌍한 장단에 따라 농악대원들이 훈련을 하는데 《반죽굿》, 《엎어빼기굿》, 《품앗이굿》 등 다양한 군사훈련의 과정을 포함하다 보니 《마당굿》 과정에 진풀이가 여럿 포함된 경향이 있다. ⒋ ‘《영풍굿》’은 장단을 치면서 돌고 돈다는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영풍굿》은 본래 〈연풍대〉의 연행절차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영풍굿》은 제식훈련과 같은 군사적 면모를 가지고 있어서 빗내농악이 《군사굿》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⒌ ‘〈판안다드래기〉’는 일명 ‘〈소리굿〉’이라고 한다. 이는 쇠잽이들이 특정한 소리굿에 맞춰 여러 가지 장단을 이어가면서 다른 치배들이 일정한 장단 모듬을 받아 동작으로 맞춰 연행한다. 이때 쇠장단과 상쇠 소리의 운율이 일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는 특징적인 구호를 하고 소고잽이들이 일정한 놀이를 하는데 그 동작의 일치가 선명하고 장단이 교묘하게 맞물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⒍ 6마당은 ‘《기러기굿》’과 ‘《소쩍굿》’의 두 가지 과정이 하나로 연결되어 구성되는데, ‘《기러기굿》’은 모든 치배들이 장단에 맞춰 복색을 펼쳐 들고 기러기처럼 옆으로 풀쩍풀쩍 뛰면서 팔을 벌려 덩실덩실 춤을 추는 과정이며, ‘《소쩍굿》’은 《기러기굿》 이후에 상쇠와 부쇠들이 중앙으로 들어가 번갈아 연주하고 한 바퀴씩 돌며 쇠놀음을 하는 과정이다. ⒎ ‘《허허굿》’은 상쇠가 장단을 치다가 ‘허허 허’라고 소리를 하면 모든 치배들이 ‘허허 허’하고 대답을 한다. 이는 군사 점호와 같이 자기 장비에 이상이 없음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연주와 소리가 장단에 맞추어 쇠잽이들과 다른 잽이들이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연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⒏ 8마당 또한 6마당과 마찬가지로 ‘《쌍둥이굿》’과 ‘《오방진굿》’의 두 가지 과정이 하나로 연결되어 구성 되었으며, ‘《쌍둥이굿》’은 모든 치배들이 큰원을 그리며 돌다가 상쇠의 신호에 따라 두 명씩 짝을 지어 작은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과정이다. 또, ‘《오방진굿》’은 모든 치배들이 동, 서, 남, 북, 중앙의 5방위에서 다섯 개의 작은 원을 만들어 도는데, 쇠와 징은 안쪽에서 원을 만들고 북, 장구, 소고 등이 바깥에서 원을 만든다. 원을 만들 때 모든 치배들은 상쇠의 신호 장단에 맞춰 〈연풍대〉와 〈앉을상〉, 〈반자반〉 등의 동작들을 일사분란하게 연행한다. ⒐ ‘《판굿》’ 역시 많은 과정이 연결되어 구성된 마당으로, 치배들이 양쪽으로 갈라선 대형을 만들면 그 가운데에서 소고, 북, 장구 등이 놀이를 펼친다. 악기 치배별 놀이가 끝나고 상쇠가 ‘《채굿》’ 장단을 치면 소고잽이들이 한 줄로 서서 농사풀이 형태의 놀이를 하고, 이어서 ‘《잿북》’ 장단으로 쇠장단이 바뀌면 소고잽이들은 중앙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들어와 빠른 장단에 맞춰 발을 차고 돌아앉기와 같은 놀음과 수박(손뼉)치기를 한다. ‘《판굿》’은 소고잽이들이 주된 연행을 하는 과정이 세 번이나 반복되면서 소고놀이가 특별히 발달된 마당이다. ⒑ ‘《영산다드래기》’는 빗내농악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 장면을 형상화한 《진굿》 놀이 과정이다. 악기 치배와 소고 치배가 두 패로 나뉘어 함성을 지르며 밀고 당기는 듯한 격렬한 전투훈련을 표현한다. 이는 전투과정에서 서로 다투고 양보하지 않는 싸움굿의 양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⒒ 11마당의 ‘《진굿》’ 역시 3마당의 ‘《마당굿》’, 9마당의 ‘《판굿》’과 같이 여러 개의 진풀이를 하나의 마당안에 포함하고 있어 다른 마당에 비해 비중이 크고 무거운 과정이다. ‘《진굿》’은 빗내농악이 가진 군사굿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며 상쇠와 부쇠가 두 팀으로 나뉘어 진을 형성하고 다양한 전술훈련과 격전을 벌여 적을 포위하고 섬멸하는 과정을 형상화하였다. 연행순서는 ‘가세진’, ‘〈홑진〉’, ‘〈팔자진〉’, ‘〈접진(겹진)〉’ 다음에 멍석말이의 형태로 상쇠가 ‘〈대진풀이〉’를 하면 모든 잽이들이 전쟁이 끝난 것을 기뻐하며 한데 어우러져서 흥을 돋우며 춤을 추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대진풀이〉’는 깃발을 중심으로 달팽이진을 감아 상쇠가 술령수3를 외치면 치배들이 ‘예~’하고 대답을 한다. ⒓ ‘《상사굿》’은 ‘《진굿》’ 마당이 끝나면 각자 흥겨운 마음으로 각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춤매구’ 또는 ‘덧배기’4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상쇠가 각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소리 ‘얼룰루 상사디야’를 선창하면 모든 치배들이 뒷소리를 후창하며 행진한다. ‘《상사굿》’은 메나리토리의 굿거리장단에 맞춰 부르며, ‘자진상사풀이’로 전환했다가 느린 정저굿 장단을 치고 마무리하는데, 요즘은 시간 관계상 ‘자진상사풀이’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인사굿을 치고 행진가락을 치며 퇴장한다.
1) 과거 《마을굿》의 형태로 연행될 때는 《골매기굿》을 치고 《문굿》을 치는 순서로 연행되었는데, 요즘은 공연장에서 《판굿》의 형태로 연행되는 형편에 맞추어 《문굿》을 먼저 치고 2차로 《골매기굿》을 치는 경향이 있다. 2) 《마을굿》이나 동제(洞祭)를 지낼 때 풍년ㆍ풍어나 제액(除厄)을 기원하는 마을의 수호신. 어원적으로는 ‘골(谷)’과 ‘액운을 막다’,‘마을을 수호하다’라는 뜻을 지닌 ‘막다’가 전성된 명사인 ‘막이’가 결합된 형태이다. ‘맥이’는 ‘막이’의 한글 모음의 ‘l(이)’모음이 역행동화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골매기’,‘골맥이 서낭’,‘골맥이 할배’라고도 하는 골맥이는 주로 경상도의 마을에서 보편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골맥이는 《마을굿》에서도 신앙의 대상이 되지만 동해안 지방에서는 각 마을의 신으로서 동제의 대상신이 되고 있다. 3) 순령수의 와음(訛音), 순령수(巡令手): 대장의 전령과 호위를 맡고, 순시기・영기(令旗) 따위를 받들던 군사. 농악에서는 전체 치배를 호명할 때 부른다. 4) 주로 경상도에서 많이 쓰인다. 빗내농악에서는 살풀이나 굿거리장단처럼 3소박 4박자 계통의 장단을 덧배기로 칭하며, 고산, 욱수, 차산, 비산 등의 지역에서는 자진모리형 장단을 덧배기로 부르기도 한다.
5) 처음 등장하는 장단명은 ‘진하게’ 표시하여 구분하였다. ‘진하게’가 없는 장단명은 앞에서 등장한 장단명이다. 6) 마소는 말과 소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얼씨구’, ‘어허!’, ‘어허허허~’, ‘이히히히~’, ‘이효~’와 같이 마소 모는 소리를 흉내 내며 신명을 내뿜는 소리.
○ 음악적 특징 빗내농악의 가락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한 가락이 굳세게 들리고 힘이 있게 들리는 것은 이례적 현상이다. 빗내농악의 전통이 단순하지 않고 가락의 소박함이 지니는 원초적 야성을 구현하는데 특정한 가락과 장단의 운용에 있어서 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빗내농악에서 모든 굿은 일정하게 진풀이와 관련된다. 특정한 굿놀이에서도 모두 굿놀이가 진풀이를 지향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놀이로서 일정한 의의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게다가 빗내농악은 개인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특정한 집단 구성원의 놀이를 지향하고 있는 점에서도 이러한 굿놀이의 진풀이적 성격은 극에 도달한다고 할 수가 있다. 굿놀이 일반이 모두 특정한 모둠의 검열굿과 같은 성격이 있으므로 이점에 있어서 다른 농악대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빗내농악은 가락이 소박하다. 혼소박, 복합박, 단순박 등의 가락이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복합박으로 된 가락이 가장 활발하고도 다양하게 운용된다. 그렇지만 복합박을 운용하는데 상쇠의 쇳가락과 북잽이, 소고잽이 등이 치밀하게 맞물리면서 가장 차원 높은 가락의 변주와 겹채를 소박하게 밀고 가는 특성이 있다. 쇳가락의 단순한 점과 빠른 점, 그리고 변주를 어울리게 하는 동작과의 상관성은 다른 지역의 농악에서 거의 찾기 어려운 면모이다. 빗내농악의 장단은 기본적으로 빠른 장단을 구사하게 되는데, 빠르기를 기준하고 혼소박을 구분하여 빗내농악에 사용된 장단의 박자구조를 분류해 보면 혼합박자형, 굿거리형, 자진모리형, 휘모리형으로 유형을 나눌 수 있다. (1) 혼합박자의 장단형 빗내농악의 혼합박자 장단형으로는 2마당의 《골매기굿》 장단이 있다. 《골매기굿》은 길을 걸으면서 연주하는 장단으로 ‘《질굿》’이라고도 하는데, 장단이 조금 느리고 길어서 발걸음을 정확히 맞추기보다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진행한다. 빗내농악의 《골매기굿》 장단은 10/8박자 엇모리형의 혼소박장단 1단위의 4배 길이로 반복구가 구성되어 있다. 그 구조를 분석해 보면 {(3+2)+(3+2)}×4의 골격을 가지면서, 기본구조는 ①의 리듬을 두 개 쌓아 (3+2)×2의 구조이다. 여기에 앞부분 (3+2)의 구조를 ②나 ③과 같이 리듬에 변화를 주어 변주형을 만드는데, 네 번째 마지막 반복구는 ④와 같이 첫 박자를 비워 엇박자형으로 앞의 반복구와는 확실히 다른 리듬형으로써 반복구의 마지막임을 표시해 준다.
(2) 굿거리의 장단형 빗내농악의 굿거리 장단형은 4마당의 《영풍굿》과 7마당의 《허허굿》, 11마당 《진굿》의 가세진, 12마당 ‘얼룰루 상사듸야’의 소리로 연행되는 《상사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풍굿》은 ‘돌고 돈다’는 뜻으로, 원진을 돌다가 상쇠의 신호에 따라 역원진으로 도는 진풀이 과정이며, 3소박 2박(3+3)이 빠르지 않게 연주되는 장단이다. 11마당 《진굿》의 가세진은 영풍굿 장단을 연주하면서 진풀이만 다르다. 이는 굿거리장단 반 장단(6/8)에 해당하는 길이로, 두 번을 반복하면 굿거리 한 장단(12/8)에 해당한다. 《영풍굿》의 연행에 있어 역원진을 돌 때는 상쇠가 첫 박을 비워 엇박자형으로 신호 장단을 주고, 다음 장단으로 넘기는 신호 장단은 첫머리를 겹타법으로 강하게 신호하여 넘긴다. 《허허굿》은 상쇠와 잽이들이 ‘허허 허~’하는 구호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허허굿》은 3소박 4박의 12/8박자 1단위 기본구조가 5~7개 쌓여서 한 반복구를 이룬다. 즉, 굿거리 장단형 5~7개까지가 한 단락을 이루는 셈이다. 빗내 《허허굿》은 굿거리 한 장단 길이를 두 번 반복하고, 굿거리 반장단 길이로 2번 반복한다. 이후 달아가는 장단을 몇 장단 길이로 반복하느냐에 따라 전체 장단 길이가 굿거리 5장단의 길이가 되기도 하고 7장단의 길이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상쇠의 기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사할 수 있다. 특히, 빗내 허허굿의 변주 리듬은 3소박 중 ⑤와 같이 겹타법을 구사하고 있으면서, 이 겹타법을 1, 2, 3박 중 어느 곳에 붙이느냐에 따라 변주장단은 무한대로 구사할 수 있다. 《상사굿》은 놀이가 끝나고 각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덧배기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상사소리를 하는 과정이다. 덧배기장단은 굿거리형의 덧배기와, 자진모리형의 자진덧배기 두 가지 소리가 있는데 때에 따라 가감한다. 여기서는 굿거리형 덧배기로 3소박 4박 빠른굿거리 느낌의 장단형으로 연주된다. 덧배기는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춤 장단이며, 지역에 따라 굿거리형을 지칭하기도 하고 자진모리형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빗내농악에서는 주로 굿거리형을 지칭한다. 이것을 상황에 따라 속도를 빠르게 몰아 자진모리 장단형으로 연주할 때도 있는데, 이때는 ‘자진덧배기’라고 구분하여 칭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빗내농악의 상사굿 장단은 ‘덧배기’라고 하며, 덧배기는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장단으로 상쇠의 기량에 따라 자유변주가 매우 다채로운 장단이다. 덧배기의 시작 장단은 본 장단처럼 12소박을 잘게 채워서 연주하지 않고 첫 3소박은 대박으로 내어주어 점점 자질게 분박하여 연주한다. 《상사굿》은 덧배기 장단을 치다가 푸는 장단을 치고 나면 상쇠의 《상사굿》 소리가 시작된다. 이처럼 빗내농악의 굿거리 장단형 박자구조 중 3소박 4박(12/8박)을 온전히 채운 형태의 장단형은 상사굿이 있고, 그 외는 굿거리형을 3소박 2박(6/8박) 단위로 분할하여 굿거리 반 장단으로 구성하는 형태이다.
(3) 자진모리의 장단형 빗내농악에서 자진모리 장단형은 전체 연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빗내농악의 3, 6, 8, 9, 10, 11마당에 자진모리 장단형이 출현하며 이는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를 정리하면 3마당 《마당굿》의 《정저굿》, 《반죽굿》, 《엎어빼기굿》, 《품앗이굿》, 6마당의 《기러기굿》과 《소쩍굿》, 8마당의 《쌍둥이굿》과 《오방진굿》, 9마당의 《판굿》, 《채굿》, 《젯북》, 10마당의 《영산다드래기》, 11마당 《진굿》의 〈홑진〉, 〈팔자진〉, 〈접진(겹진)〉, 〈대진풀이〉 등이다. 특히, 3마당은 하나의 마당 안에 4개의 진풀이가 포함되어 있고, 6, 8마당은 진풀이가 두 개씩이고, 9마당의 《판굿》을 악기별 놀이(북, 장구, 소고)와 전체 《진굿》을 합치면 5개의 절차로, 11마당의 《진굿》과 같이 무려 5개씩의 진풀이가 한 마당안에 구성되어 있다. 3마당 《마당굿》은 정저굿 장단으로 시작하여 〈연풍대〉, 〈앉을상〉, 〈반자반〉을 연행한다. 정저굿 장단은 빗내농악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장단으로 자진모리형의 대부분은 정저굿 장단이거나 그것의 변형 장단이다. 따라서, 이들 연행에 쓰이는 장단은 모두 정저굿 장단의 변형 장단으로 볼 수 있다. 3마당 《마당굿》의 반죽굿 장단은 2소박과 3소박이 혼합되어 있는 장단으로, (2+2+2)구조의 헤미올라 리듬이 섞인 자진모리 장단형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꽹과리는 {(2+2+2)+(3+3)}소박의 구조로 연행하지만, 북과 장구는 (3+3+3+3)의 3소박 4박의 리듬으로 연주하여 절묘한 느낌을 준다. 김헌선(2016)은 ‘《반죽굿》은 《길굿》인 《골매기굿》을 반으로 줄여친다’고 하여 ‘《반《질굿》》’이라 부르던 것이 와전7된 것이라 하였다. 그 견해에 비추어 《반죽굿》이 《길굿》인 《골매기굿》에서 왔다는 전제하에 《골매기굿》과 《반죽굿》의 리듬형을 비교해 보자면 《골매기굿》의 5/8박 ⑥리듬과 《반죽굿》의 반절인 6/8박 ⑦리듬의 리듬형이 시가만 조금 다를 뿐 어느 정도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전문가 집단에서 장단의 연행은 간혹 소박 단위의 박이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는데, 위의 두 리듬형은 서로 혼동하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기에 간혹 섞이기도 한다. 따라서 《골매기굿》의 5/8박이 《반죽굿》의 6/8박으로 변형되었을 수도 있음이다. 3마당 《마당굿》의 《엎어빼기굿》 또한 정저굿 장단의 변형에 해당하는데, 엎어빼기 동작 2회와 〈앉을상〉 동작 2회가 반복됨에 따라 2장단+2장단이 연결되어 자진모리 4장단으로 동작에 맞춰 반복구가 짜여져 있다. 6마당 中 《기러기굿》은 모든 잽이들이 삼색띠를 양손으로 나누어 잡고 기러기모양으로 장단에 맞춰 옆걸음으로 뛴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기러기굿 장단은 3소박 4박, 12/8박자 1단위의 세배 길이로 반복구가 이루어져 있으며, 옆뛰기 동작의 빠르기에 맞춰 정저굿 장단에 비해 약간 느리게 연주된다. 반복구 안에 신호 장단이 포함되어 있어 옆걸음을 원진 방향으로 1회, 역원진 방향으로 1회씩 진행하고 마무리한다. 6마당 中 《소쩍굿》은 3소박 4박의 장단을 상쇠와 부쇠가 반 장단씩 나누어 연주하는데, 상쇠와 부쇠의 장단을 합해야 12/8박자 자진모리 한 장단이 완성된다. 8마당의 《쌍둥이굿》은 치배들이 큰 원을 그리며 돌다가 상쇠의 신호 장단에 두 명씩 짝을 지어 작은 원을 도는 순서이고, 《오방진굿》은 모든 치배들이 다섯 개의 작은 원을 동, 서, 남, 북, 중앙에 만드는 순서이다. 쌍둥이굿 장단은 정저굿 장단의 변주형인 짧은 《정저굿》 1을 반복하여 연주한다. 《쌍둥이굿》 이후엔 《정저굿》을 빠르게 연주하며 《오방진굿》으로 이어지는데 다섯 개의 원이 다 만들어지면 상쇠의 신호에 따라 모든 잽이들은 〈연풍대〉, 〈앉을상〉, 〈반자반〉을 한다. 이는 《정저굿》 과정과 같기 때문에 악보는 생략한다. 모든 진풀이 과정을 마치면 원진을 풀어 두 줄로 만드는데, 이때도 《정저굿》의 변주형인 짧은 《정저굿》 2를 반복 연주한다. 9마당의 《판굿》은 ‘판놀이’라고도 하며, 쇠・징・북・장구 치배들과 소고치배들이 양쪽으로 갈라서서 북놀이, 장구놀이, 소고놀이를 하는 순서이다. 각 치배들의 놀이는 《정저굿》과 다드래기 장단에 맞춰 진행되며, 놀이 순서는 바뀔 수도 있다. 각 치배들의 놀이가 다 끝나면 쇠치배들과 소고치배들이 장단과 동작을 맞추는 《채굿》과 소고치배 중 일부만 나와서 연행하는 《잿북》 순서가 이어진다. 특히, 《잿북》은 여유있는 장단에 추는 춤사위와 수박(손뼉)치기 과정이 들어 있어 특징적이다. 10마당의 《영산다드래기》는 치배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격렬한 전투장면을 형상화하는 순서이다. 장단은 모듬채와 2소박 4박 휘모리 장단형의 다드래기, 정저굿 장단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 연주하며 《진굿》을 풀어나간다. 정저굿 장단의 속도는 상황이 급박한 만큼 조금 빠르게 연주된다. 11마당 《진굿》의 절차는 가세진, 〈홑진〉, 〈팔자진〉, 〈접진(겹진)〉, 〈대진풀이〉로 이어지는, 빗내농악이 가진 군사굿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마당이다. 《진굿》 과정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법과 진풀이가 많고, 치배들의 일사분란하고 화려한 동작들이 일품이다. 진풀이 과정이 많고 복잡하지만 가세진에서 6/8박자 굿거리 장단형의 영풍굿 장단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과정들은 《판굿》과 《영산다드래기》의 진풀이들과 같이 대부분 정저굿 장단과 2소박 4박의 휘모리 장단형으로 연행된다. 요약하면, 빗내농악의 자진모리 장단형은 3소박 4박의 12/8박자 정저굿 장단이 주로 많이 활용되며, 《정저굿》은 연행과정의 분위기와 절차에 따라 빠르기를 다르게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변주형의 장단으로 연주되고 있다. 변주형은 주로 자진모리 장단형을 반으로 나눴을 때 앞부분에서 많이 변주되는 편이며, 나머지 뒷부분은 대부분 기본형인 ⑧의 리듬형을 공통적으로 사용하여 정저굿 장단의 통일감을 주고 있다.
(4) 휘모리의 장단형
빗내농악의 휘모리 장단형은 1마당의 《문굿》, 3마당 《마당굿》의 《품앗이굿》, 5마당의 〈판안다드래기〉와 각 과정별 장단을 마무리 짓고 다음 과정으로 넘길 때 주로 매듭의 역할로 사용된다. 휘모리 장단형은 한 과정의 마무리 역할일 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며, 이때 사용되는 다드래기 장단은 2소박 4박의 구조를 가진 전형적인 4/4박자 리듬형이다. 이와 구조가 조금 다른 장단형은 12마당의 《상사굿》 과정이 다 끝나고 퇴장을 할 때 근래에 새로 치기 시작했다는 행진가락에서 나타난다.
《문굿》과 〈판안다드래기〉처럼 상쇠의 사설이 있는 순서에서는 다드래기가 과정을 마무리 지어주는 기능이 아닌 사설을 위한 전주와 간주, 후주의 역할을 한다. 상쇠가 사설을 하고 난 다음에는 다드래기를 크고 강하게 치다가 《문굿》 사설을 하기 위해 숨을 고를 때는 다드래기를 잦고 약하게 치는 등 각 순서에서 주요한 기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문굿》은 〈다드래기 → 문굿 사설 → 다드래기〉의 순서가 2~3회 정도 반복된다.
도드래기는 다드래기와 같은 2소박 4박의 4/4박자 구조이지만 장단의 기능이 다르다. 다드래기는 보통 하나의 순서를 마무리하는 역할로서 쓰이지만, 도드래기는 연행 중간에 다음 연행을 준비하기 위한 신호로 사용되며, 짜여진 장단을 순서대로 한 번만 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데, 《마당굿》에서 품앗이로 넘어가기 전 도드래기 장단이 쓰인다.
품앗이는 다드래기 형태의 2소박 4박 4/4박자 장단인데 변주 장단을 짜임새 있게 상쇠와 부쇠가 똑같이 번갈아 친다고 해서 품앗이라고 한다.
12마당의 《상사굿》을 다 끝내고 퇴장하며 치는 행진가락은 휘모리 두 장단을 한 세트로 상쇠와 부쇠가 서로 주고받는다. 리듬구조는 {(2+2+2+2)×2}의 형태이다.
정리하자면, 빗내농악의 휘모리 장단형은 대부분 2소박 4박의 구조를 가졌으며, 다드래기와 같이 한 과정을 마무리하는 역할로 가장 많이 쓰이며, 도드래기, 품앗이와 같이 짜여진 순서대로 장단을 활용하여 연주하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휘모리 두 장단을 한 세트로 하여 반복구를 구성하는 행진가락 유형도 있다.
7) 와전(訛傳): 사실과 다르게 전함. 유전(謬傳).
국가무형문화재(2019)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빗내농악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중앙에 위치하는 중심부 농악으로 경상도 내륙지방의 전형적인 농악이며, 빗내농악의 구성방식을 본다면 군사훈련을 형상화한 진법과 진풀이가 다수 편성되어 군악(軍樂)적인 요소가 강하다. 큰북은 북채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치는데, 이처럼 왼손 또드락채 북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드락’하고 소리가 나기 때문에 주로 북통을 두드리는 왼손의 채를 ‘또드락채’라고 부른다. 의 사용은 절에서 법고를 칠 때 채를 두 개씩 쓰면서 테두리를 두드리는 연주법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전라남도 진도의 북춤과 대비하여 채를 두 개 쓰는 것은 공통적이나 북의 크기와 그 연행에 있어 방식과 기교가 차이가 있으며, 그것 자체로 빗내농악의 독특한 특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김헌선, 『금릉빗내농악: 진굿의 전통과 혁신』, 민속원, 2016. 정모희, 「대구‧경북농악의 음악적 연구」,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2. 문화재청(www.cha.go.kr/html). 빗내농악전수관(www.gc.go.kr/bitnae/html).
정모희(鄭牟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