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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사 | 국립국악원

교육·행사

[공모] 음악극 공무도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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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다섯시의 클래식 공연 하나만 관람하기엔 아까웠던 휴일. 아무거나 하나 더 보자는 심정으로 국립국악원 예악당의 음악극 <공무도하>를 예매했다. 이런 공연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윤택씨가 연출을 했단다. 라이브로 음악만 들어도 돈이 아깝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간단한 내용조차도 검색하지 않고 공연장으로 향했는데.... 아뿔싸!!!! 킬링 타임용 공연으로 선택했다가 오히려 내가 죽었다. 너무 좋아서 좋아 죽겠더라는. ㅎ

 

국립국악원에서의 공연은 두 번째. 하지만 처음 관람했던 공연은 야외 공연이었기 때문에 예악당 공연장은 처음 들어가 봤다. 보통 극과 음악이 공존하는 작품의 경우 서양은 오케스트라가 무대의 아래에 자리를 차지한다. 국악관현악단의 경우는 무대의 후면, 측면, 서양의 오케스트라 피트석처럼 무대 아래 등지에 다양하게 쓰이는데 어느 경우에도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예악당 공연의 경우 국악관현악단이 객석의 눈높이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연주 모습도 잘 보이고 소리도 잘 들려서 금상첨화!! 중간중간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어깨춤을 추고 고개를 흔들게 된다. 한마디로 흥이 절로 난다. 연주자들 간의 간격도 답답하지 않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어 좋더라.

 

공무도하는 뭐지?

'공무도하'의 모티브는 최초의 고대시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4언 4구체의 서정시로 알려진 '공무도하가'다.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이 그 물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찌 할꼬."가 이 노래의 전부다. 굉장히 짧다. 하지만 음악극 '공무도하'는 이 짧은 내용으로 100분의 이야기와 우리 가락을 모두 담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무대의 하수 쪽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극이 시작되면 '갑남'과 '을녀'가 등장해서 이 '공무도하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나라에는 전해져오는 고대극이 없다고 한탄하는 '갑남'에게 '을녀'는 '공무도화가'가 사실은 연극이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에에? 이렇게 짧은 시가가 어떻게 연극이 될 수 있느냐는 반문에 '을녀' 안숙선씨는 소리로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라고 노래하며 '이놈아, 이것이 짧으냐?"라고 되묻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퐁당퐁당 묻고 답하는 '갑남'과 '을녀'의 이야기가 만담처럼 아주 재미지게 서두를 장식한다.

 

공무도하가는 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노인(백수광부)이 갑자기 백발을 풀어헤친 채 강물 속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늙은 광부의 아내가 안타깝게 남편을 말리다가 남편을 따라 물속에 몸을 던진다는 짧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음악극은 백수광부가 왜 강을 건너려 했는지에 의문을 가지며 시작한다. 왜? 강 건너에는 무엇이 있길래? 이 도입 부분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게? 아무리 공부하고 외우고 시험을 쳐도 가슴으로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그 일이 갑자기 세계 7대 불가사의보다 더 미스테리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 이야기

새로 이사 간 아파트의 동·호수를 잃어버린 샐러리맨이 등장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깨알 같은 설정과 군무는 어느 뮤지컬 작품 못지않았다. 앞선 '갑남'과 '을녀'의 만담-곱게 차려입은 한복-정적인 무대와 상반되는 뮤지컬같은 무대-다양한 현대의상-동적인 무대를 다룬 첫 장면이라 나도 모르게 '오~~~~'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나처럼 전통 공연은 고루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관객이었다면 아마도 무척이나 놀랐을 것이다.

 

무대는 실커텐을 이용하여 모두 똑같이 생긴 아파트를 영상으로 표현했다. 하늘거리는 실커튼의 입체적인 영상에 나까지 어질어질 정말 내가 사는 집도 잊어버리겠더라는. 경비원은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하지만 아내의 번호는 단축번호 1번인데 핸드폰의 배터리가 없다. ㅋㅋㅋ 이 장면 완전 공감. 나는 내 번호도 핸드폰에 저장하는 사람이라...자주 내 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럴 때는 폰을 열어서 '나'를 검색함.

 

어쨌든 초저녁부터 아파트의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샐러리맨은 별이 총총 내려앉은 저녁이 다 될 때까지 집을 찾지 못한다. 어느새 아파트단지는 저 멀리 꿈처럼 하늘에 둥둥 떠 있다.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픈 지친 샐러리맨을 위해 멀리서 꿈결처럼 구루마가 다가온다. 그 구루마의 정체는...정체는...바로 백만 샐러리맨의 친구, 포장마차!!! 뙇!!!!!

 

구루마를 끌고 오는 여인은 매우 청명하며 중국풍의 소리 같기도 하고, 풍경의 소리 같기도 한 노래를 부르며 다가와서는 구루마에서 의자도 내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단지 뚜껑을 열어 국의 상태도 체크하고, 파도 송송 썰어 넣는다. 뭐랄까...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구루마의 여인은 누구였을까? 정말 포장마차 아낙이었을까? 소주를 시켜 마시던 샐러리맨은 구루마의 여인으로부터 자신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샐러리맨이 2,000년 전 자신의 전생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가슴 뜨끈하다. 고구려의 옛 영토 위를 날아가듯 영상으로 알타이 지방의 산하가 등장하고 아무르강이 흐른다. 지금은 비록 종합소득세 1만 7000원으로 간단히 정리되는 샐러리맨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전생에서 그는 꿈꾸는 황금 비늘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꿈을 꾸어야 인간이다. 아파트의 미로처럼 똑같고 복잡한 현대의 미로 속에서 본질조차 잊고 사는 (아내=1번) 샐러리맨의 모습이 너무나 친숙해서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분명 나의 전생도 황금비늘이었을 텐데...

 

샐러리맨의 전생 속에서 그를 기다리는 아내 여옥의 작은 초가집과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낯설고 괴상한 구음처럼 느껴지다가도 가락이 유연하고 낭창한 느낌,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명쾌하다. 프로그램에 어떤 장면에서 어떤 민요, 캐스팅 등의 자세한 안내가 나와있으면 좋을텐데 그런 것이 없어서 서운했다. 좀 더 공부를 하고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부분.

 

 



 

 

여옥의 남편은 왜 집을 나갔을까? 아마 그도 강을 건너는 남자였는가 보다. 오늘의 자신, 지금의 자신과 이별해서 다시 꿈을 꾸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 꿈은 뭐였을까? 지금의 샐러리맨이 2,000년 전 꿈꾸는 황금비늘이었다면, 2,000년 전의 황금비늘은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황금 물고기가 되고 싶었을까? 그래서 현재의 어떤 모습이 못 견디게 싫었던 것일까?

 

달아 높이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쟤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듸올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어느이나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부정상실. 아비없는. Fatherless. 꿈을 꾸는 자의 식솔들은 늘 가난하다. 그 집안은 늘 공허하다. 그것이 꿈의 댓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꿈을 꾸어야 살 수 있는 존재.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옥의 노래가 달빛처럼 쓸쓸하면서도 위안이 되었다. 그 노래가 결국 2,000년을 헤맨 남자를 돌아오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은 또 수 천년을 지나 봉두난발의 백수광부가 등장한다. 시공간을 초월했어도 그의 꿈은 완성되지 않았다. 어쩌면 꿈이란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꿈일 것이다. 이루어지면 그건 현실이 될 테니까. 그런 꿈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쫓아다니는 백수광부. '갑남'과 이야기를 나누는 나레이터 '을녀'는 이 백발의 미친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며 몽유병자라고 말한다. 밤마다 저리 놀러 다닌다고. 몽유병의 몽유라는 뜻이 꿈속에서 놀다, 꿈속에서 떠돌다는 뜻이 있으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자 역시 몽유병자가 맞을 것이다.

 

이 음악극에서 추는 몽유병자들의 춤이 굉장히 신났다. 아놔...나도 그냥 정신줄 놓고 함께 춤추고 싶어지더라는...ㅋㅋ 마치 소림사 스님들이 무술을 하는 듯한 내공실린 춤이었다. 무대 바닥을 살펴보면 발로 내리찍은 곳마다 발 도장이 푹 패어있을 것만 같은 묵직함이 있었다. 게다가 광인의 눈빛으로 무대 정면으로 나와 손가락으로 객석을 가리키며 응시하면서 춤이 끝났는데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이런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사는 네가 더 미친놈 아니야?'라는 일갈로 들렸다.

 

나의 종합소득세는 얼마였더라... 심지어 나는 심플하게 요약되는 인생에서 그 간단한 숫자조차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 그러니 샐러리맨 아저씨야, 용기를 내. 추욱 쳐진 어깨 좀 펴봐. 아파트 동·호수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있었으니 전생도 만나는 거 아니겠어?

 

 





강을 건너는 님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백수광부가 왜 물을 건너려고 했나에 대한 해석을 '을녀'는 정신적인 것에서 찾았다. 혼이 나를 떠나 강을 건너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 이사 간 아파트의 동·호수를 잃어버린 샐러리맨이 2000년 전 자신의 전생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다분히 몽환적이고 판타지스럽다. 하지만 2막에서 '갑남'은 다른 해석을 내어 놓는다. '강을 건넌다'라는 행위를 정말 말 그대로 '강을 건넌 남자'에서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갑남'에게는 소설가인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북한 여성과 사랑에 빠져 두만강을 건너 연변으로 갔었더라는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와는 상반되게 현실적이고 그럴싸한, 있음 직한 이야기다.

 

극 중 김작가는 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하기 위해 연길을 찾았다가 한 식당에서 북한 여자 순나를 만난다. 손님을 상대로 노래를 파는 순나. 그녀가 들려주는 소리는 매혹적이었다. 할머니에게 배웠다는 소리, 할머니는 증조할머니에게, 증조할머니는 고조할머니에게 배웠다는 맑고 청아한 소리에 듣고 있는 나도 정말 혼이 빠질 것만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다시 들어보고 싶어 검색을 하려 해도 순나가 들려준 소리의 정체도 (서도소리? 시창?) 소리의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자막에 가사가 나온 것으로 미루어 누군가의 작품에 소리를 입힌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 극 중반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남쪽의 소리는 탁해서 현실적이고 친근하며 북쪽의 소리는 맑고 고와서 천상의 소리 같다는 해석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런 내용. 어쨌든 하늘에 닿기 위해 추었던 발레의 동작처럼 순나의 소리는 선녀가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김작가가 순나에게 순식간에 반한 것,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선녀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 북한에 왔지만 순나가 바로 그 선녀라는 뜬금포의 고백이 확 와 닿았다.

 

옥황상제의 곁에서 부른 것 같은 몽환적인 소리 이후에 순나는 서울에서 온 손님들이 유독 좋아한다는 노래를 들려준다. (이 소리와 춤도 기억이 안 난다. 젠장... 프로그램에 자세히 설명 좀 해주지) 난봉가? 뭐 이런 소리로 기분 좋게 취한 사내들이 평소의 무거운 모습을 털어내고 양복을 머리 위에 쓰고 한바탕 신 나게 노는 그런 노래와 춤이었다. 노래방에 가면 넥타이를 머리에 둘러 메로, 휴지로 머플러를 만들며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놀고 있는 샐러리맨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북한에서도 비슷하게 노는구나... 싶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장면이었다.

 

이 첫 만남 이후로 김작가는 시나리오 각색을 핑계로 자주 순나의 집을 찾는다. 하지만 순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북한 국적의 여자로 보따리장수인 남편을 찾아 몰래 아들과 함께 국경을 넘은 밀입국자였다. 생활을 위해 노래도 팔고 가끔 몸도 판다는 선녀 아닌 순나의 현실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아들만은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순나. 아이는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지요....라고 말하는 순나의 말에 번뜩 이 말이 이 작품 전체의 화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작가는 연변에 머물며 순나와 결혼하고 아이도 자신의 호적에 올린다.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결단이다. 보는 내내 생각했다. 이 러브스토리의 결말은 사기일까? 아니면 동화처럼 끝나는 해피엔드일까? 하고. 하지만 이 작품 '공무도하'의 백미는 다시 시작되는 '강 건너기'다. 순나가 보따리장수인 남편을 찾아 국경을 넘었듯,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순나를 찾아 김작가는 북으로 향한다. 아이와 함께 강을 건너면서 부르는 김작가의 '도하가'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가자 아이야 봄 소풍을 가듯

가자 발목아

긴장하지 말거라 내 아킬레스건아

강 하나 사이 지척인데

강 하나 사이 두고 만나지 못할 사이라면

나는 차라리 민들레 풀씨 되어 가리라....

 

함께 있어야 가족인 거다.

 

 



 

 

김작가가 국경을 넘으니 남과 북은 소란스러워진다. 김작가가 왜 국경을 넘었는지 취조하는 과정이 코믹하고 재미있으면서 인간적이다. 또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반영한 것이라 흥미롭게 관람했다. 어쩌면 영화 JSA의 창극 버전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김작가의 이야기는 반대로 관객들에게 많은 반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의 소원은 역시 통일이라는 메세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에 대한 지지, 역시 '국립'이라는 단어가 붙는 단체의 공연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까지 2막은 '투 머치'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나는 북한 장교들이 대놓고 말하는 '역사의식 부족'에 부끄러웠고, 사실 남한 사람들은 통일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말에는 뜨끔했으며, 아무리 '투 머치'강조해도 결코 '투 머치'해지지 않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벌판에는 한때 영광과 오욕을 함께 누렸던

광개토대왕 대발해의 잔해들이 널려있고

지금은 갈 곳을 잃은 옛 영웅호걸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공중에서 들리다가 사라진다

나와 함께 길 떠났던 순례자들은 어느새 세상 속에 집을 세우고

저마다 가정을 꾸렸더라

 

오히려 내가 가장 마음이 쓰였던 장면은 순나가 왜 말없이 사라졌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 부분이 직접적으로 극에 드러나서 깜짝 놀랐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마음은 사기였을까? 사랑이었을까?를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열어두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연출자가 나름의 결론을 내버린 듯한 장면은 해당 장면에 등장하는 소리와 춤을 보여주기 위한 억지 구성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극 중의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건>이라는 곡이 분명 전에 들어본 곡이라는 점이 관람 내내 신경쓰였다. 몇 마디는 듣자마자 바로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윤택씨가 작사하고 류형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이 직접 작곡한 창작곡이라는데 난 도대체 이 곡을 어디서 들었지? 서곡 때부터 어라라랏? 하고 바로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명 들어본 곡이라 자신한다.

 

국악 관현악이 매우 아름다웠지만 소리꾼들의 마이크 볼륨이 커서 소리만 나오면 반주가 묻히는 듯한 음향도 불만이었던 요인.

 

이런저런 신경 쓰였던 요인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이 참으로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물론 공무도하가의 짧은 내용에서 아이디어를 취해 서사를 만들어 냈다는 점, 그 서사에 역사의식의 주제를 불어넣고 알타이-황금비늘- 종합소득세 1만 7000원-우리의 소원은 통일에 이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소통하는 공연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정가, 서도민요 등 다양한 양식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들어볼 수 있는 기회라 좋았다. 부끄럽지만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소리들이 많았다. 종합선물세트 같다며 진저리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나는 처음 받아본 선물세트라 마냥 신기하고 좋기만 하더라.

"와!!! 여기 좋은 게 다 있네!"

 

 

어쩌면 강을 건너고 있는 것는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돌아올 수 없는 마이너의 깊고 어두운 외로운 세계로. 평소에는 관람평이 비슷하다면서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이웃님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아소, 님하, 저 강을 건너지 마오."

ㅎㅎㅎㅎㅎㅎ


하지만 나는 강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강을 건너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강을 건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의 나와 이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백수광부는 그래서 강을 건넌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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