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국악사전(보기) |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조선정악전습소

  • 작성일2014-11-16

【정의】정악의 보존과 보급을 위해 조직된 음악교육기관.

【유래 및 역사】1911년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의 후신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의 기로소(耆老所)로 썼던 곳에 있다가 재동의 일가정(一可亭)으로 옮겼고 1915년에 다시 수송동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2차대전 무렵인 1944년 경에는 잠시 활동을 중단하였고 6.25 발발 이전까지 존속하다가 8.15 광복 후 한국정악원(韓國正樂院)으로 재탄생하여 명맥을 이어 나갔다.

【내용】조선정악전습소는 국악의 전승이 어려운 시기에 음악의 맥을 잇도록 한 교육기관으로 15세 이상 학생을 자격 조건으로 하였으며 50명 정원으로 출발했다. 조선악과와 서양악과의 두개의 과를 두었는데 조선악과에서는 가곡과 거문고, 가야금, 양금, 단소, 생황 및 취악(吹樂), 서양악과에서는 음악이론을 가르치는 악리(樂理) 및 창가곡조, 풍금(風琴) 즉 오르간, 사현금(四絃琴) 즉 바이올린 등을 가르쳤다. 수업시간은 대개 주 5, 6회를 하도록 되어 있었고 수업료는 기악 전공이 매월 1월, 성악 전공은 매월 50전 등이었다.

조선정악전습소의 연구위원은 당대 음악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로 구성되었는데, 홍긍섭, 한만용(韓晩容), 함재운(咸在韻), 명완벽(明完璧), 하규일(河圭一), 김인식(金仁湜) 등이었다. 이들 연구위원 대부분은 교사로도 활동했다. 정악전습소 출신 음악가로 이상준 홍영후(홍난파) 등이 대표된다. 20세기 전반 음악교육이 어려워진 시기에 조선음악전습소는 한국음악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관이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필자】송지원

【참고문헌】장사훈, [여명의 동서음악], 보진재, 1974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