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대에 창제된 당악정재의 하나로, 명(明)나라 황제 영락제(永樂帝)에게 나타난 상서로운 일들을 축하하는 내용의 춤
조선 전기인 1419년에 명(明)나라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잔치의 음악과 춤으로 창제되었다.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이 하성명의 악장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영락제 성종(成宗, 1360~1424, 재위 1402~1424)이 명나라 황제로 등극한 이래, 유ㆍ불ㆍ도교적 상서로운 징조들이 명 황제에게 거듭 나타난 것을 조선의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한다는 뜻을 가진 당악정재이다.
하성명은 조선 전기인 1419년(세종 1) 12월에 왕명에 의해 변계량이 지은 악장을 토대로 창제되었다.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에게 베푸는 잔치에서 주로 공연한 정재 종목 중 하나였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하성명은 1420년 4월 세종이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태평관(太平館)에서 사신 조양(趙亮)과 역절(易節)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때 하성명 정재를 연행하였다. 당시 “사신이 〈하성명가(賀聖明歌)〉의 족자를 보고 좋다고 칭찬하며, 써서 주기를 청하였다”고 하고, 이를 “임금이 승문원(承文院: 외교 문서 담당 관청)에 명하여 써 주게 하였다.”고 하였다. 한편, 『중종실록』에 따르면, 1537년(중종 32) 3월에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잔치 때, 〈수명명(受明命)〉ㆍ〈하황은(荷皇恩)〉과 함께 하성명을 여기(女妓)가 공연하도록 했다. 하성명은 조선 전기의 기록에서만 볼 수 있고, 조선 후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에는 1980년 6월 16일 국립국악원 주최 ‘전통무용발표회’(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재현 안무로 하성명이 처음 공연되었고, 다음해인 1981년 5월 18일~19일의 국립국악원 주최 ‘전통무용 발표회’에서도 공연되었다. 이후 1995년 국립국악원 정기발표회 중 ‘우리가락 우리 춤’에서 정재 종목의 다섯 번째 순서로 무대에 올랐고, 지금까지 국립국악원 무용단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하성명은 명(明)나라 영락제가 황제로 등극한 이래, 상서로운 징조들이 거듭 나타난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한다는 내용의 정재이다.
하성명은 족자(簇子)를 받든 무용수 한 명과 죽간자(竹竿子) 두 명, 무용수[舞妓] 열두 명, 그밖에 위의(威儀)를 받든 의물 스물두 명의 무용수로 정재 인원이 구성된다. 족자 한 명과 죽간자 두 명, 무용수 열두 명은 노래하고 춤추는 역할을 한다. 무용수들을 호위하듯, 의장 도구를 받든 의물 스물두 명은 춤을 추는 공간 좌측과 우측, 뒤쪽 가장자리에 배치되어 춤추는 무용수를 따르는 호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주로 위엄을 갖춘 공간의 위세(威勢)를 나타내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무용수 열두 명은 〈하성조사(賀聖朝詞)〉 3장(각 사언십육구)을 반주음악 〈하성조령(賀聖朝令)〉에 맞추어서 합창하고, 이후 대형을 변화시키며 회선을 한 후에는 다시 처음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대형 구성을 연출한다. 이러한 의물과 무용수의 구성 형식은 당악정재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의 무보에 따르면, 춤을 시작할 때의 초입배열(初入排列)은 앞쪽 줄에 무용수 네 명이 나란히 서고, 그 네 명 뒤에 두 명씩 줄을 이루어서 열두 명이 도열한 모습이다. 족자와 죽간자가 구호(口號: 춤의 내용을 보고하는 창 형식의 말)를 한 후에 무진(舞進: 춤추며 나감)한다. 무진할 때는 앞 선두에 있는 족자를 열두 명이 따른다. 열두 명이 북쪽을 향해 춤추고 나면, 좌우의 무용수가 앞쪽에서 서로 교차하여 큰 원을 만들어 회무(回舞: 원을 이루어 도는 춤)를 연행한다. 회무 후에는 여섯 명씩 좌우대로 나뉘어서 족자 뒤에 세로줄 대열이 된다. 〈하성명사〉 3장을 모두 노래한 후에 춤 대열을 이루어서[作隊] 본격적인 춤을 연행한다. 좌우의 무용수 네 명이 무진ㆍ배무(背舞: 서로 등을 보이고 추는 춤)ㆍ북향이무(北向而舞: 무대 앞쪽을 향하여 추는 춤)을 춤추고, 다음 줄의 네 명과 교차하며 춤을 춘다. 무용수 열두 명이 네 명씩 짝을 이루어 대형을 구성하며 춤추고, 다시 회무한 후에 처음 대열로 돌아가서 족자와 주간자의 퇴장 구호를 한 후, 무용수와 의물을 든 위의 스물두 명이 함께 뒤로 퇴장함으로써 춤을 마친다.
「하성명사」는 명나라 영락제가 태평성대를 이룩한 위업을 찬양ㆍ공경하는 내용의 창사이다. 하성명 정재의 창사는 족자와 죽간자 두 명의 진ㆍ퇴 구호와 족자 한 명의 치어(致語), 무용수 열두 명의 「하성명사」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ㅇ족자 한 명과 죽간자 두 명이 함께 부르는 진구호(進口號)
명나라 황제가 세상을 잘 다스려서 하늘도 감동하여 여러 복조를 내림에 경하드림.
ㅇ족자 한 명의 치어
영락제의 등극으로 세상이 태평하니, 하늘에서 내리는 상서가 많아서 이를 노래로써 축하드림.
ㅇ무기(舞妓) 열두 명의 〈하성명사〉 3장
제1장 : 황제의 덕에 하늘도 감동하여 감로를 내리고, 각가지 신령스런 일들이 나타나서 대소 신민들이 모두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함.
제2장 : 영락제의 덕화로 새와 짐승들마저 유순해지고 각가지 신령한 동물[영물(靈物)]들이 나타나므로 대소 신민들 모두 천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함.
제3장 : 영락제의 지성으로 공견여래와 불보살들이 축복하여 신령함이 나타나니, 대소 신민들 모두 머리 조아리며 만복을 기원함.
ㅇ족자와 죽간자 두 명 퇴구호(退口號)
노래와 춤으로써 성덕을 축하드리니 강녕하기를 기원함. 재배하고 퇴장함.
[죽간자 구호]
聖神御統, 叶氣旁流.
성신어통, 협기방류.
天地生祥, 諸福畢至.
천지생상, 제복필지.
不勝懽慶之極, 庸陳頌禱之辭.
불승환경지극, 용진송도지사.
[죽간자 구호]
거룩한 황제 제위(帝位)에 오르시자
조화로운 기운이 흘러넘치고
천지에 상서로운 일 생겨나니
모든 복이 남김없이 이릅니다.
한없는 기쁨과 축하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어
이에 송축하는 말씀을 올립니다.
[치어]
족자 치어
賀聖明歌瑞應也, 欽惟皇帝陛下,
하성명가서응야, 흠유황제폐하,
御極以來, 宇內寧謐,
어극이래, 우내영밀,
詳瑞荐臻, 吾東方之人,
상서천진, 오동방지인,
懽忻舞蹈, 作此詩,
환흔무도, 작차시,
歌詠瑞應, 以致頌禱之意焉.
가영서응, 이치송도지의언.
[치어]
족자 치어
하성명 은 상서로운 일이 나타난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옵건대,
황제 폐하께서 제위에 오르신 이래
천하가 안정되고 평온하여 상서로운 일이 몰려들었습니다.
우리동방의 사람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춤을 추며 이 시를 짓고,
상서로운 일을 노래 부르고 읊어 송축을 뜻을 다하고자 하나이다.
[창사]
창 하성명사(賀聖明詞)
惟帝之德, 昭格于天.
유제지덕, 소격우천.
天降甘露, 地出醴泉.
천강감로, 지출예천.
河淸龜見, 靈芝曄曄.
하청귀현, 영지엽엽.
金水瑞氷, 諸象布列.
금수서빙, 제상포열.
五彩慶雲, 紛紛郁郁.
오채경운, 분분욱욱.
浙江淝河, 感應昭宣.
절강비하, 감응소선.
禎祥之至, 前後聯綿.
정상지지, 전후연면.
大小稽首, 天子萬年.
대소계수, 천자만년.
惟帝至仁, 洽于民人.
유제지인, 흡우민인.
鳥獸咸若, 瑞應昭陳.
조수함약, 서응소진.
于嗟騶虞, 濯濯麒麟.
우차추우, 탁탁기린.
白鳥鮮明, 瑞祥柔馴.
백조선명, 서상유순.
獅子旣見, 福綠來臻.
사자기현, 복록래진.
玄兎白雉, 世不常有.
현토백치, 세불상유.
萬邦來賀, 罔敢或後.
만방래하, 망감혹후.
大小稽首, 天子萬壽.
대소계수, 천자만수.
惟帝至誠, 無所不格.
유제지성, 무소불격.
報恩五臺, 祥瑞雜遝.
보은오대, 상서잡답.
空見如來, 諸佛菩薩.
공견여래, 제불보살.
磷磷寶塔, 羅漢千百.
인린보탑, 나한천백.
龍鳳獅象, 左右周匝.
용봉사상, 좌우주잡.
天花祥雲, 墔璨燁煜.
천화상운, 최찬엽욱.
種種靈異, 不可備述.
종종영이, 불가비술.
大小稽首, 天子萬福.
대소계수, 천자만복.
[창사]
하성명사(賀聖明詞)
황제의 덕이 환하게 빛나
하늘에까지 이르니
하늘은 감로(甘露)를 내리고,
[단 이슬. 어진 정치를 하면 내린다고 함]
땅에서는 예천(醴泉)이 솟구치며,
[단샘물. 왕이 도들 닦으면 솟구친다고 함]
황하수 맑아져 거북이 나타나고
영지(靈芝)가 빛나도다.
금수하(金水河, 북경 근처 하천)에 상서로운 얼음 얼어
여러 모습이 펼쳐지고
다섯 빛깔 길한 구름 뭉게뭉게
자욱하게 피어나네.
절강(浙江)과 비하(淝河) 지방에
상서의 감응*이 더욱 밝게 나타나
대소인원이 머리를 조아리고
천자의 만수무강 비옵니다.
* 1404년 명나라에 나타난 신기한 현상으로, 산서성 일대 황하수가 수백 리에 걸쳐 맑아져
돌거북이 나타나고, 절강(浙江)은 조수가 완만해지고 비하(淝河)는 물이 뒤로 물러났다고 함
황제의 지극한 인덕(仁德)이 백성에게 두루 젖고
날짐승, 길짐승도 유순하여 상서의 감응 밝게 펼쳐지니
아, 저 추우(騶虞)*와 살지고 윤기 있는 기린이며,
*전설상의 상서로운 짐승
끼끗한 백조에 유순한 코끼리로다.
사자가 나타나자 복록이 몰려들고
검은 토끼, 흰 토끼는 세상에 늘 있는 것은 아닌지라
만방이 와서 축하하되, 남보다 늦을까 걱정이고,
대소 인민이 머리 조아려 천자께서 수를 누리시기 비옵니다.
황제의 지극한 정성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
보은사(報恩寺)와 오대산(五臺山)에 상서*가 여럿 이르니
공(空)을 깨친 여래(如來)와 여러 부처와 보살들과
맑고 빛나는 보탑(寶塔)과 천백의 나한(羅漢)이로다.
용과 봉황, 사자와 코끼리가 좌우로 에워싸고
하늘의 꽃, 상서로운 구름이 찬란하게 빛나니,
여러 신령스러운 일들은 갖추갖추-> 갖추어 말할 수 없는지라,
대소 인민이 머리 조아리며 천자의 만복을 비나이다.
* 명나라 영락 연간 불경을 인쇄해 대보은사(大報恩寺)에 갔더니, 탑에서 사리의 빛가 찬란하게
빛났다고 한 것을 말함
[죽간자 구호]
載歌載舞, 美盛德之無前.
재가재무, 미성덕지무전.
曰壽曰康, 荷天休之滋至.
왈수왈강, 하천휴지자지.
雅音將闋, 再拜以辭.
아음장결, 재배이사.
[죽간자 구호]
노래하고 춤을 추며
전에 없던 큰 덕을 찬미하니,
천수를 누리시고 강건하시어
하늘의 아름다운 복을 더욱 더 받으소서.
청아한 음악이 끝나려 하니,
거듭 절하고 하직하나이다.
- 원문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번역: 강명관
『악학궤범』에는 당악기로 구성된 연주단이 〈천년만세(千年萬歲) 인자(引子)〉ㆍ〈최자(嗺子) 령〉ㆍ〈헌천수(獻天壽) 만〉ㆍ〈천년만세 인자〉ㆍ〈하성조(賀聖朝) 령〉ㆍ〈천년만세 인자〉의 순차로 연주하였다. 현대의 국립국악원 정재발표회에서는 〈보허자(步虛子)〉와 〈타령〉으로 반주하였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의 하성명 복식은 조선 후기 여기 복식인 화관(花冠: 꽃이 달려있는 관)을 머리에 쓰고, 황초단삼(黃綃單衫: 황색으로 된 소매가 짧은 겉옷), 겉에는 홍초상(紅綃裳: 홍색 허리치마), 속에는 남색상(藍色裳: 남색치마)을 입는다.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 홍색에 금색 수가 있는 띠)를 가슴에 두르고, 오색한삼(五色汗衫: 다섯 가지 색의 한삼)을 착용한다. 초록혜(草綠鞋: 초록색 신)를 신는다. 의물은 족자 한 명, 죽간자 두 명, 인인장(引人仗) 두 명, 정절(㫌節) 여덟 명, 그리고 용선(龍扇)ㆍ봉선(鳳扇)ㆍ작선(雀扇)ㆍ미선(尾扇) 각 두 명씩이며, 개(蓋) 네 명으로 총 스물다섯 명이다.
하성명의 창작 배경은 조선전기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당시 중국과 조선은 책봉과 조공의 관계에 있었는데, 이는 속국이라는 개념보다는 상대 국가의 왕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였다.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종이 즉위한 시점에서 명나라 사신에게 명 황제를 존중하는 악장과 춤을 선보인 것은 대외적으로 세종의 입지를 굳히고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립국악원, 『궁중무용무보 제9집: 오양선, 하성명, 수보록, 헌천화』, 국립국악원, 1999. 국립국악원,『악학궤범: 호사문고 소장본』, 국립국악원, 2011. 김천흥 외, 『심소 김천흥 선생님의 우리춤 이야기』, 민속원, 2005. 이혜구 역주,『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5집: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김혜영(金惠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