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로, 침향정에 핀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춤
침향춘은 1828년 순조의 비 순원왕후의 40세 축하 연향에서 초연된 향악정재이다. 봄날 침향정에 핀 모란[牡丹]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두 명의 무용수가 모란 화병을 가운데 두고 꽃을 어루만지다가 꽃을 들고 추는 춤이다.
침향춘은 1828년(순조 28) 6월 창덕궁 연경당에서 열린 진작(進爵)에서 처음 추어졌다.
당시 진작은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보령 40세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으므로, 꽃 중의 왕으로 여기는 모란꽃을 찬미하는 춤이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침향춘은 봄날 침향정(沈香亭)에 핀 모란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춤이다. 순조 『(무자)진작의궤』 침향춘 항목에, 당 현종이 침향정에 모란을 심고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이구년(李龜年)에게 명하여 금화전(金花箋)을 이백(李白; 李太白, 701~762)에게 하사하면서 「청평사(淸平詞)」를 지어 올리도록 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연경당 진작 당시 침향춘은 스물세 종목의 궁중무 중 열 번째로 추어졌다. 무동 2인이 모란이 꽂힌 꽃병에서 꽃 한 송이를 꺼내 즐겁게 춤추는 내용이며, 순조 『(무자)진작의궤』 부편의 「공령(工伶)」에 따르면 당시 춤을 춘 무동은 진대길과 김형식이다. 이후 1892년(고종 29) 고종 즉위 30년을 기념하는 진찬에서는 여성무용수인 의녀 난희(蘭喜)와 평양 기생 홍도(紅桃)가 침향춘을 추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아악부가 아닌 민간에서 기녀들에 의해 전승되었는데, 1915년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연예관 공연에서 다동기생조합이 침향춘을 추었다. 1982년 국립국악원 주최 전통무용발표회에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에 의해 재현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용은 봄날 침향정에 핀 모란(牡丹)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모란 화병에 꽂힌 꽃을 들고 춤추며 환희(歡喜)를 표현하는 것이다. 무동 2인 또는 기녀 2인이 춘다.
침향춘의 구성은 국립국악원 소장『(계사)정재무도홀기』에 전한다.
① 악사가 모란 화병을 든 2인을 인솔해서 전 내에 화병 2개를 갖다 놓는다. ② 무원 2인이 춤추며 들어와 선다. ③ 창사를 한다. ④ 각각 크게 원을 그리며 돌면서 춤춘다. ⑤ 마주보고 대무하거나 등을 지고 춤춘다. 자리를 바꾸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⑥ 화병 앞에서 꽃을 놀리다가 꽃을 뽑아들고 춤춘다. ⑦ 꽃을 들고서 마주 보고 또는 등지고 춤추고, 환하게 돌기도 한다. ⑧ 춤추며 뒤로 물러나면 악이 그친다. 춤사위 중에 ‘농화이무(弄花而舞) 취화이무(取花而舞)’는 무원이 화병 앞에서 꽃을 희롱하다가 꽃을 뽑아들고 춤추는 동작이다. ‘혹배혹면(或背或面)’는 두 명이 마주 보고 춤추거나 뒤돌아서 등지고 춤추는 동작이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홀기의 순서에 비해 약간 축소하여 추고 있다.
칠언(七言) 사행(四行)의 한시로, 모란에 당나라 미인 양귀비를 비유한 이야기를 담았다. 『(무자)진작의궤』부편(附編)「정재악장(呈才樂章)」에 수록되어 있다. 絳色羅常綠色襦(강색나상녹색유) 진붉은 치마에 녹색 저고리를 입은 沈香亭北理腰肢(침향형북리요지) 침향정 북쪽 마을 가는 허리 여인이여 含風笑日嬌無力(함풍소일교무력) 바람을 머금고 해를 보며 웃는 듯 아름다움이 恰似楊妃睡起時(흡사양비수기시) 금방 잠에서 깬 양귀비와 닮았구나
반주음악은 〈향당교주(鄕唐交奏)〉이며, 이 곡의 아명은 〈천보구여지곡(天保九如之曲)〉이다.
침향춘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고, 정재의 복잡한 구조나 형식에서 벗어나는 등 조선 후기 궁중무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춤이다. 모란꽃 화병이 두 개 놓일 뿐, 별다른 장치나 의물이 없다. 2인무의 단촐한 구성에 다른 궁중무에 비해 창사도 길지 않다. 다만 창작 배경으로 당나라 현종의 고사를 가져온 점에서 조선시대 궁중 문화에 중국의 문학과 예술이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순조 『(무자)진작의궤』, 1829. 이의강 역, 『국역순조무자진작의궤』, 보고사, 2006. 이흥구 손경순 역, 『국역정재무도홀기 조선궁중무용』, 열화당, 2000. 『(계사)정재무도홀기』, 1893. 『(임진)진찬의궤』, 1892. 조경아, 「조선후기 의궤를 통해 본 정재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