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악정재의 하나로, 다섯 마리의 양을 타고 내려온 신선이 군왕의 장수를 송축하는 내용의 춤
고려로부터 전승된 당악정재 중 하나로 중국 송나라에서 전래 된 춤이다.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섯 명의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한줄기에 여섯 개의 이삭이 달린 육수거(六穗秬)를 전해주며 임금의 덕을 칭송하고 풍년 및 무병장수의 축복을 내려준 후 다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선을 상징하는 다섯 명의 무용수가 사우대형(四隅隊形; 북서·남서·북동·남동의 방향으로 서는 것)의 형상을 이루며 춤을 춘다.
오양선은 고려로부터 전승된 당악정재 중 하나로 중국 송나라에서 전래된 춤이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였던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의하면 “당나라 이군옥(李羣玉)의 「창포간(菖蒲澗)」 시에 ‘다섯 신선이 염소 타고 어느 시대에 이 시골 내려왔던고’라고 하였고, 그 설명에는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를 인용하여 ‘고고가 초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다섯 신선이 다섯 색깔의 염소를 타고 와서 곡식 이삭을 고을 사람들에게 주었으므로, 그 고을을 오양성(五羊城)이라 했다.’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829년(순조 29) 『(기축)진찬의궤』에도 오양선에 대하여 ‘이군옥의 시로 인하여 춤 이름으로 삼았다’라고 시원을 소개하고 있다.
오양선은 1980년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에 의해 조선 후기 『정재무도홀기』를 근거로 재현 되었다. 이후 이흥구(李興九, 1940~ )에 의하여 1995년과 1997년에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와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을 바탕으로 재현되어 현재까지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다.
〇 내용
오양선은 무용수를 인도하는 죽간자(竹竿子) 두 명과 춤의 중심 역할을 하는 왕모(王母) 한 명, 왕모의 좌우에서 대형을 이루며 춤을 추는 협무(挾舞) 네 명으로 구성된다.
또한 무용수 좌·우에 인인장·정절·용선·봉선·작선·미선 등 의물을 든 의장차비 여령 열여덟 명이 가지런히 서고, 뒤에는 개(蓋)를 든 여령 다섯 명이 서서 모두 스물세 명의 의물을 배열한다. 왕모를 중심으로 일렬대형(一列隊形), 사우대형을 이루며 춤추고, 대형이 변화하는 사이사이에 왕모와 협무가 노래를 부른다.
〇 구성
춤의 구성은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후기의 문헌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고려와 조선 전기 오양선의 도입부에서는 죽간자가 나아가 진구호(進口號)하고 좌우로 서면, 왕모가 나아가 치어(致語)를 한다. 전개부에서는 ①일렬대형의 춤 ②사우대형 ③일렬제행 의 춤으로 구성된다. 조선 후기에는 일렬제행(一列諸行; 모두 한 줄로 서는 것)의 전후대형(前後隊形; 앞뒤로 대형을 이루는 것)이 추가되었다. 종결부에서는 죽간자의 퇴구호(退口號)가 끝나면 왕모가 다시 나아가 치어를 부르고 협무와 함께 물러난다. 오양선의 핵심 구성은 사우대형으로 왕모는 오양선무를 춤추며 앞의 왼쪽 협무를 향하여 춤추고, 앞의 왼쪽 협무는 돌면서[回旋] 왕모와 마주 보며 춤춘다. 다음에 앞의 오른쪽 협무-뒤의 왼쪽 협무-뒤의 오른쪽 협무 순서로 대무(對舞)하며 같은 춤을 춘다.
〇 구조
오양선의 도입부와 종결부의 구성은 시대의 흐름에도 대체로 변함없이 전승되었다. 그러나 전개부의 춤은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고려 시대에는 전개부의 후반에 좌우의 의물을 든 열여덟 명의 무용수가 무대를 세 바퀴 돌고 무진·무퇴하여 위의(威儀: 호위하는 의물로 왕모나 협무를 호위하여 하늘(선계)로부터 내려왔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도구) 를 갖추면서 동시에 춤 구성의 일부분으로 참여하는데, 이런 구성은 조선 시대의 오양선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는 고려와 조선 전기의 일렬대형 구성의 인무(人舞; 일렬대형에서 왕모와 협무가 서로 마주보고 등지고 춤을 춤)가 생략되었고, 사방대형(四方隊形: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서는 것)에서 왕모와 협무가 각각 맞춤을 춘 뒤에 다양한 춤사위가 추가되었다. 또한 사방대형 다음에 일렬대형에서 좌‧우의 협무가 앞으로 나아가 서로 마주 보며 춤추고, 끝나면 왕모가 나아가 협무와 상대하며 춤추는 전후대형의 구성이 더하여져 변화를 보였다.
〇 주요 춤사위
조선 전기 『악학궤범』의 오양선에는 사수무·인무·팔수무·오양선무·파자무·주선·회선 등의 춤사위가 나온다. 조선 후기 『정재무도홀기』에는 사방대형에서 각각좌우선전이무·일불일전이무·수수이무·상배이무·각각번수상대이무 등 조선 전기에 없었던 동작이 추가되어 있다. 인무는 무용수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며 마주 보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며 추는 춤으로, 오양선에서는 왕모가 동쪽을 향하면 좌‧우협무는 서쪽을 향하고, 다시 반대로 왕모가 서쪽을 향하면 좌‧우협무는 동쪽을 향하여 추는 춤이다. 오양선무는 오양선에서만 나오는 특유의 동작인 듯한데 정확히 어떤 동작인지는 알 수 없다.
오랜 역사를 지닌 오양선의 창사는 커다란 변화 없이 현재까지 전승되었다. 죽간자는 춤을 추기 전에 진구호를 부르고, 춤이 마친 다음에 퇴구호를 부른다. 왕모는 치어를 부른다. 왕모와 협무는 미전사와 미후사를 부르고 또다시 임금의 장수를 축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죽간자의 퇴구호 이후 다시 선모가 나아가 ‘온 나라의 먼지가 깨끗이 가라앉으니 태평함을 느낀다.’라는 노래를 부른다. 다른 정재에서는 죽간자의 퇴구호 이후에는 춤을 마치는데, 오양선에서만 죽간자 퇴구호 이후에 무용수인 왕모가 다시 나아가 노래 부른다. 현재 공연에서 오양선 창사는 상황에 따라 한 소절만 부르거나 생략하기도 한다. [죽간자 구호] 雲生鵠嶺, 日轉鰲山. 운생곡령, 일전오산. 悅逢羊駕之眞仙, 並結鸞驂之上侶. 열봉양가지진선, 병결란참지상려. 雅奏値於儀鳳, 華資妙於翩鴻. 아주치어의봉, 화자묘어편홍. 冀借優容, 許以入隊. 기차우용, 허이입대. [죽간자 구호] 구름은 곡령(鵠嶺, 신선이 사는 산의 고개)에서 생겨나고 해는 오산(鰲山, 자라가 바치고 있는 三神山)으로 굴러가네. 양(羊)이 끄는 수레를 탄 진짜 신선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아울러 난새가 끄는 수레를 탄 하늘의 짝과 사귀게 되었도다. 청아한 음악은 봉황이 찾아와 춤을 추게 함 직하고, 무희의 화려한 자태는 너울너울 날아가는 기러기보다 묘하도다. 바라건대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춤추는 대열에 들어오기를 허락하소서. [선모 치어] 式歌且舞, 聊申頌禱之情. 식가차무, 요신송도지정. 俾熾而昌, 用贊延洪之祚. 비치이창, 용찬연홍지조. 妾等無任, 激切屛營之至. 첩등무임, 격절병영지지. [선모 치어] 노래하고 춤도 추며 부족하나마 기리고 비는 마음 펼칩니다. 불꽃이 타오르듯 번창토록 하시니, 이에 길이 이어질 큰 복을 돕고자 합니다. 첩들은 간절하고 황공한 이 마음을 걷잡을 수 없나이다. [병거외수 창사] 碧烟籠曉海波閑, 江上數峯寒. 벽연롱효해파한, 강상수봉한. 佩環聲裡異香飄落人間, 弭絳節五雲端 패환성리이향표락인간, 미강절오운단. [병거외수 창사] 푸른 연기 새벽바다에 자욱한데 물결 한가롭고 강가의 두어 봉우리 차갑구나. 패옥(佩玉) 소리 울리며 기이한 향기 인간 세상에 흩날리더니 강절(絳節, 上帝나 신선이 사용하는 의장용 붉은 깃발)이 오색구름 끝에 멈추었네. [병거내수 창사] 宛然共指嘉禾瑞, 微一笑破朱顔. 완연공지가화서, 미일소파주안. 九重嶢闕望中三祝高天, 萬萬載對南山. 구중요궐망중삼축고천, 만만재대남산. [병거내수 창사] 얌전히 가화(嘉禾, 기이한 벼, 태평시대의 징조)의 상서를 함께 가리키자 미소 띠시며 홍안(紅顔)을 펴시도다. 구중 높은 궁궐에서 멀리 높은 하늘 보며 세 가지[장수, 부(富), 다남(多男)]를 축원하노니, 만만년 남산을 마주하고 오래오래 사시기를. [병거외수 창사] 縹緲三山島, 十萬歲方分昏曉. 표묘삼산도, 십만세방분혼효. 春風開遍碧桃花, 爲東君一笑. 춘풍개편벽도화, 위동군일소. 祥颷暫引香塵到, 祝高齡後天難老. 상표잠인향진도, 고축요령후천난로. 瑞烟散碧雲歸, 弄暖一聲長嘯. 서연산벽운귀, 농난일성장소. [병거외수 창사] 아득할사, 저 삼신산(三神山, 신선이 사는 세 섬), 십만 년 지나서야 밤과 낮이 바뀌었네. 봄바람 천지사방 벽도화(碧挑花) 피웠더니, 동군(東君, 봄을 맡은 동쪽의 신)을 보고서 활짝 웃어 주는구나. 상서로운 회오리바람 잠시 향기로운 먼지[여자들이 걸으면 일어나는 향기, 곧 여자, 여기서는 무희] 끌어오는데 비옵나니, 오래 수를 누리시어 하늘보다 더 오래 사시기를! 상서로운 연기 흩어지고 푸른 구름 돌아갈 때 따스한 날씨 즐기며 길게 휘파람을 불어보네. [죽간자 구호] 歌淸儀鳳, 舞妙回鸞. 가청의봉, 무묘회란. 整環佩而言歸, 指蓬瀛以却步. 정환패이언귀, 지봉영이각보. 百和沈烟紅日晩, 一聲遼鶴白雲深. 백화침연홍일만, 일성요학백운심. 再拜階前, 相將好去. 재배계전, 상장호거. [죽간자 구호] 노래 맑으매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출 듯하고 춤을 추었더니 회란무(回鸞舞)[옛날의 춤 이름]보다 묘하도다. 패옥을 가다듬고 떠난다 고하고서 봉래(蓬萊))․영주(瀛洲)[모두 신선이 사는 곳]를 가리키며 뒷걸음으로 물러나네. 붉은 해가 저무는데 백화향(百和香)․침향(沈香) 피어나고 흰 구름 깊은 곳에 요동학(遼東鶴)[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신선술로 학(鶴)이 되되어 ‘요동학’이라 함] 울며 나니, 섬돌 앞에서 두 번 절하고 함께 어울려 떠나렵니다. [선모 치어] 寰海塵淸, 共感昇平之化. 환해진청, 공감승평지화. 瑤臺路隔, 遽回汗漫之遊. 요대로격, 거회한만지유. 未敢自專, 伏候進止. 미감자전, 복후진지 [선모 치어] 온 세상 먼지 말끔히 가라앉으니 태평 시절의 교화에 함께 감동하나이다. 요대(瑤臺, 선선이 사는 곳)는 길이 멀어 급히 ‘한만(汗漫)의 유람’[속세를 떠난 신선의 유람]을 그만두려 하나, 감히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엎드려 분부를 기다립니다. - 원문 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 번역: 강명관
오양선의 복식은 고려 시대에는 무용수는 검정색 삼(衫)을 입었다. 조선 전기 『악학궤범』 권2의 ’정전예연여기악공배립(正殿禮宴女妓樂工排立)‘에 기록된 여기의 복식은 단장(丹粧)하고 수화‧칠보잠‧금차를 머리에 꽂고, 백말군[흰색 바지]·보로[앞치마 모양의 치마]를 입고 홍대를 두르고 단혜아를 신었다. 무동은 부용관을 쓰고 흑색 선을 두른 백주중단을 입고 황‧녹‧자‧남‧도홍 오색의 단의를 입었다. 흑색 선을 두른 홍색 치마[裳]를 입고 두석녹정대를 띠고 화아흑단화를 신었다. 조선 후기 여기의 복식은 화관을 쓰고 초록단의·황초단삼을 입고 안에는 남치마를 입고 겉에는 홍치마를 입었다. 가슴에 홍단금루수대를 두르고 오색한삼을 들고 초록혜를 신었다.
1980년 재현 당시에는 이왕직아악부 정재 전승의 영향으로 청‧홍‧황‧흑‧백의 오방색 몽두리(蒙頭里)를 착용하였는데 현재는 오방색 의상은 입지 않고, 공연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조선 전·후기의 무동이나 여기 복식을 착용한다.
오양선은 긴 역사를 지닌 춤으로 양의 수레를 탄 진선(眞仙)이 상서로운 벼[가화(嘉禾)]를 전해주어 풍년과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당악정재로, 자주 공연된 작품은 아니지만, 국립국악원의 고증을 통해 재현된 후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춤이다.
김영희 외, 『한국춤통사』, 보고사, 2014. 가소단, 「중국 당송악무와 고려 당악무의 비교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2. 최경자, 「오양선 정재 재현의 실제와 변천양상」, 『국립국악원 논문집』, 34, 2016 송방송 외, 『국역순조기축진찬의궤:권1』, 민속원, 2007 이혜구 역주,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최경자(崔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