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창작된 정재로, 임금의 덕(德)과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리는 내용의 춤
순조(純祖) 29년(1829)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부왕(父王)인 순조의 덕과 복록(福祿; 복되고 영화로운 삶)이 무강하기를 바라며 창작한 궁중무용이다. 이 춤은 죽간자와 구호를 도입하여 당악정재의 양식을 모방하고, 구호ㆍ치어 외 창사(唱詞)가 여섯 번이나 나와 비교적 노래가 많은 편이다.
조선 후기 1829년(순조(純祖) 29) 기축년(己丑年) 효명세자(孝明世子)가 부왕(父王)인 순조의 덕화가 융성함과 복록의 무강함을 기리기 위해 창제한 궁중무용이다.
연백복지무는 순조 『(기축)진찬의궤』(1829)에 처음 등장하는 정재이다. 고종 『(정해)진찬의궤』(1887)에 “기축년(己丑年, 1829)에 효명세자가 지었다. 선모는 치어(致語)를 전단(前段) 후단(後段)으로 나누어 창한다. 금번 개제(改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에는 무동정재로 추어졌다가 1868년(고종 5) 『(신축)진연의궤』, 1869년(고종 6) 『(임인)진연의궤』, 1892년(고종 29)『(임진)진찬의궤』 등 의궤의 기록을 통해 무동정재와 여령정재로 연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에는 1923년 3월 23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순종황제 오순탄신기념’ 연회에서 연백복지무가 추어졌고, 이후 1982년 4월 7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전통무용발표회’(국립국악원 주최) 및 1992년 4월 22~23일 양일간 열린 ‘전통, 창작무용 발표회’에서 공연되었다.
연백복지무는 죽간자(竹竿子)ㆍ구호(口號)ㆍ치어(致語)의 형식을 갖추어 당악정재의 양식을 취한다. 죽간자 두 명, 선모 한 명, 좌우 협무 네 명으로 총 일곱 명의 무용수로 구성되어 있다.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춤의 절차가 기록되어 있는데, ① 죽간자 구호 부르기 ② 선모 치어 부르기 ③ 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이 창사 전단・후단 부르기 ④ 선모는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 협무 네 명이 사방으로 나뉘어 상대・상배하며 춤추기 ⑤ 선모가 성수무강사(聖壽無彊詞) 부르기 ⑥ 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이 일렬로 춤추기 ⑦ 선모는 중앙에, 좌우 협무 네 명이 사방에 위치하여 선모가 북-동-남-서 순으로 팔수무로 상대하며 춤추기 ⑧ 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 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 부르기 ⑨ 오른쪽 죽간자가 선도(先導)로 북쪽 협무- 선모-왼쪽 죽간자-동쪽 협무-남쪽 협무-서쪽 협무가 왼쪽으로 돌면서 응천장지사(應天長之詞) 부르며 춤추기 ⑩ 다시 처음 대열로 춤추고 좌우 협무 네 명 파자사(波刺斯) 부르기 ⑪ 대(隊)를 만들며 춤추고, 팔수무(八手舞) 추며 오방(五方)으로 만들기 ⑫ 수신요합지절무(隨身腰合之節舞)-대수(擡袖)-번수(飜袖)-회선(回旋)하며 춤추기 ⑬ 죽간자 구호 부르기 ⑭ 선모 치어 부르기 구성으로 진행한다. 춤사위는 오방(五方), 회선(回旋), 수신요합지절무(隨身腰合之節舞), 대수(擡袖), 번수(飜袖), 팔수(八手) 등의 용어가 나오는데 그중 팔수무(八手舞)의 비중이 가장 크다.
현행 연백복지무3)는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되어 있는 구성과 유사하지만 구호・치어・창사 가 축소된 형태로 연행되고 있다.
연백복지무의 창사(唱詞)는 죽간자 구호, 선모 치어, 선모, 선모 및 협무의 창사로 구성된다. 선모, 선모 및 협무의 창사로 수악절(隨樂節) 창사ㆍ성수무강사(聖壽無彊詞)ㆍ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ㆍ응천장지사(應天長之詞)ㆍ파자사(波刺斯)가 있다. 창사의 내용은 임금의 덕화(德化)가 융성(隆盛)함과 복록(福祿)의 무강함을 기리는 내용이다.
구분 | 창사 | 해석 |
선모 치어 |
欽惟我聖上 흠유아성상
德化隆盛 덕화융성 福祿無彊 복록무강 享華封之三祝 향화봉지삼축 蹄天保之九如 제천보지구여 玆當慶會 자당경회 載敶祝嘏 재진축하 以百福長演之曲 이백복장연지곡 歌之而頌也 가지이송야 |
흠모하는 성상께서는
덕화가 융성하시고 복록이 많고 화 땅의 봉인이 요 임금을 위해 축복했던 다섯 가지 중 화봉인의 세 가지 축원을 누리시니 여(如)자를 아홉 번 사용하여 축복한 천보장의 구여(九如)와 같이 되셨나이다. 이런 경사스런 시대를 맞이하여 축복의 말씀을 올리고 온갖 복이 길이길이 펼쳐 나갈 것을 기원한 백복장연지곡(百福長演之曲)을 노래하여 송축하나이다. |
반주 음악은 〈보허자령(步虛子令)〉, 〈향당교주(鄕唐交奏)〉, 〈파자(破子)〉이다. 〈보허자령〉-〈향당교주〉-〈보허자령〉-〈향당교주〉-〈파자〉-〈향당교주〉-〈보허자령〉 순서로 연주한다.
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와 『여령홀기』에는 반주음악이 〈보허자령〉이고, 『(신축)진연홀기』(1868)에는 〈만년지곡(萬年之曲) 보허자령〉으로, 『무동홀기』에는 〈연백복지곡(演百福之曲) 보허자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반주음악의 이름은 동일하다.
현재 연백복지무의 반주음악은 〈보허자〉와 〈향당교주〉로, 〈파자〉를 연주하지 않는 것 외에는 음악적으로 큰 변화 없이 전승되고 있다.
연백복지무는 당악정재 양식을 모방하고 있어 죽간자가 등장한다. 순조 『(기축)진찬의궤』에 기록된 무동의 복식은 머리에 각건(角巾)을 쓰고, 상의는 홍포(紅布), 하의는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를 입고, 띠는 남야대(藍也帶)를 두르고, 신은 흑화(黑靴)를 신는다. 중무와 죽간자는 머리에는 복두(幞頭)를 쓰고 상의는 남포(藍袍), 하의는 백질흑선중단의를 입고, 띠는 홍야대(紅也帶)를 두르고, 신은 흑화를 신는다.
여령의 복식은 순조 『기축 진찬의궤』에는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고종 24년(1887) 『정해 진찬의궤』에 머리에는 화관(花冠)을 쓰고, 상의는 황초단삼(黃綃單衫)을 입고, 하의는 남색 치마[藍色裳]를 입고 홍초상(紅綃裳)을 덧입고, 띠는 홍단금루수대(緞金鏤繡帶), 오색 한삼(五色汗衫)을 들고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
이 춤은 순조 29년(1829) 효명세자가 당악정재의 형식을 빌어 창작한 것으로, 죽간자가 등장하고, 죽간자의 구호로 시작하여 선모의 치어로 끝맺는다. 또한, 죽간자 구호와 선모 치어를 포함해 창사가 여섯 번이나 있어 비교적 노래가 많은 정재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연백복지무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자료로 의궤(儀軌)는 순조 『(기축)진찬의궤』(1829)・고종 『(임진)진찬의궤』(1892)・고종 『(신축)진연의궤』(1901)・고종 『(임인)진연의궤』(1902)등과 「임인진연도병」에 연행한 기록이 있다. 춤의 절차를 기록한 홀기는 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광무 5년 『(신축)외진연홀기』(1901)・『(신축)진연홀기』・『(신축)무동흘기』・『(신축)여령홀기』 등이 전하고 있다.
송방송 외 3인, 『한국음악사료연구회 국역총서 8: 국역 순조기축진찬의궤 권3』, 민속원, 2007. 이흥구ㆍ손경순, 『한국 궁중 무용 총서 10: 박접무ㆍ연백복지무ㆍ장생보연지무ㆍ춘앵전』, 보고사, 2010.
배소정(裵紹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