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견모(砑絹帽)
무자년 『진작의궤』의 무산향에 관한 주석을 보면 “당나라의 여남왕(汝南王) 진(璡)은 항상 아견모(砑絹帽)를 쓰고 곡을 탔다. 머리위에서 절로 붉은 근화가 떨어졌는데, 모자위에 그대로 둔 채 이 한 곡을 연주하였다. 〈고금도서집성〉에 소동파(蘇東坡)는 이도(李陶) 아들의 시인 ‘뉘와 함께 아광모를 쓰고, 무산향 한 곡을 탈거나’구절을 기록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아광모는 순조대 효명세자가 창작한 창작 정재무에서부터 사용된 무동의 관모로 창작 당시에 아견모에 관한 고사와 아광모에 관한 시를 함께 인용하고 있어 아견모와 아광모는 같은 형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견모는 그 명칭으로 인하여 광택이 있는 비단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형태가 해지고 있지 않아 알 수가 없으나 무자년의 『진작의궤』에 의하면 사모와 비슷한 형태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광모는 무동이 착용하는 관으로 사모와 비슷한 형상이다. 사모는 뒤가 높고 앞이 낮은 두 단의 모정부(帽頂部)로 구성되며, 뒷면에는 각(角)을 달려 있다. 아광모는 이러한 일반적인 사모에 비해 뒤쪽의 모정부가 좀 더 높으며 전면에 비단으로 만든 선이 대어져 있다. 보상무ㆍ향령무ㆍ영지무ㆍ박접무ㆍ심향춘ㆍ춘광호ㆍ춘앵전ㆍ무산향ㆍ첩승무ㆍ무고ㆍ향발무ㆍ아박무ㆍ포구락ㆍ장생보연지무ㆍ사선무ㆍ최화무ㆍ가인전목단 등의 정재에 착용하였다.
사모는 시복과 상복에 착용되었던 관모로 혼례에서는 일반 서민에게도 착용이 허용된 비교적 보편적인 남성관모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는 공복에도 사모를 착용케 하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무동에게도 착용케 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광모는 무동의 공복에 해당하는 무용복에 착용하는 관모로 사모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진작의궤』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0. 송방송, 『의궤 속의 우리 춤과 음악을 찾아서』, 보고사, 2008. 송방송, 『한국음악용어론』, 보고사, 2012. 유송옥, 『한국복식사』, 수학사, 1998. 인남순ㆍ김종수, 『여령정재홀기』, 민속원, 2001.
박민재(朴民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