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이어진 당악정재의 하나로, 정월대보름날[上元] 군왕에게 술을 올리며 장수를 기원하는 춤
고려시대로부터 전승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이다. 정월대보름날 임금과 신하가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궁전에 모여 장수와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술을 올리며 잔치를 즐기는 내용의 춤이다.
수연장은 고려시대에 송나라로부터 유입되어 나라의 경사스러운 잔치에 추어졌던 정재로 1828년(순조 28) 『(무자)진작의궤』에 의하면 “송나라 악보에 「선려궁연수악」이 실려 있고 「장수악」이 있는데 경사스러운 날에 축수를 올릴 때 사용하였다. 고려조에서「수연장악」을 만들었는데, 네 대(隊)가 나란히 서서 돌아가면서 춤추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례(宴禮)에 사용하였다”라고 전한다. 수연장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20세기 초반 이왕직아악부로 이어져 전승되었다. 1977년 국립국악원 춘계정기발표회에서 이왕직아악부 2기생 출신인 김천흥(金千興, 1909~2007)에 의하여 재현되었고, 현재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〇 내용
무용수 구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춤의 내용도 변화를 가져왔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죽간자 두 명과 협무 열여섯 명이 춤추었고, 조선 전기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는 협무 여덟 명으로 변화하였으며 조선 후기 순조 『(무자)진작의궤』(1828)에는 죽간자 없이 무동 네 명으로 축소되었고, 순조 『(기축)진찬의궤』(1829) 부터는 죽간자 두 명과 협무 여덟 명의 구성으로 정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용수 네 명과 협무 여덟 명으로 구성된 형태가 조선 후기 순조『(무자)진작의궤』에 전한다.
〇 구성
고려시대, 조선 전기 및 후기의 문헌에 따라 춤의 내용과 구성이 변화하였다. 대체로 도입부에서는 죽간자가 나아가 구호(口號)하고 물러나면 무용수들이 춤추며 나아가 다 같이 노래 부른다. 전개부에는 ①고려시대에는 열여섯 명이 4대를 지어 각대가 회무(回舞)를 세 바퀴 돌아 4대(隊)로 줄지어 선다. 조선시대에는 여덟 명이 좌·우대로 나누어 마주 보며 회무를 세 바퀴 돌아 사방(四方)으로 대(隊)를 만들어 선다. ②고려시대에는 각 대의 선두가 나와 마주 보기도 하고 등을 돌려 춤추고,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땅을 짚는다. 끝나면 다음 대가 차례대로 돌아가며 같은 춤을 반복한다. 조선 전기에는 동서남북 사방대형에서 북대 두 명이 상대·상배하며 춤추고, 나머지 대도 돌아가며 차례대로 같은 춤을 반복한다. 조선 후기에는 사방대형에서 협무가 함께 동일한 춤을 추고 환대이무(換隊而舞: 북대는 남쪽에, 남대는 북쪽으로 위치를 바꾸고, 동대는 서쪽에, 서대는 동쪽으로 서로 위치를 바꾸며 춤추는 동작)하고 다음에 회선(回旋)하여 처음의 자리(初列:초열)에 선다. ③고려시대에는 각 대 네 명이 제자리에서 상대·상배하며 춤춘다. 조선시대는 처음의 대형에서 전대와 후대가 북향무·환대이무(북대는 남쪽에, 남대는 북쪽으로 서로 자리를 위치를 바꾸며 춤춘다)·배무(서로 등지고 춤추는 동작)하며 춤춘다. 종결부에서는 죽간자가 들어와 구호하고 물러나면 협무가 마무리 춤을 추고 물러난다.
〇 구조
수연장의 주요 부분은 전개부의 회무(回舞; 원을 그리며 돌면서 춤추는 동작)하고 난 다음으로, ①고려시대에는 열여섯 명이 4대로 서서 각대의 선두가 나와 상대·상배·앉은춤을 차례대로 돌아가며 추는 부분이고, ②조선 전기에는 여덟 명이 사방으로 대를 만들어 북쪽의 협무만 상대·상배의 춤을 추고 끝나면 다음 대가 돌아와 똑같은 춤을 반복한다. 다음에 고려시대에 없었던 초열(初列)에서 전대와 후대가 환대(換隊)하는 구성이 추가되었다. ③조선 후기에는 사방대형에서 조선 전기의 북대만 춤추는 반복적인 구성을 생략하고 전대(全隊)가 같은 춤은 동시에 추고, 동·서와 남·북 대가 환대하는 구성이 더하여 졌다.
고려시대의 수연장은 조선시대 보다 무용수 구성이 더 많지만 단조로운 구성으로 진행되는 것에 비해, 조선 전기에는 무원의 구성은 축소되었지만 사방작대(四方作隊)와 전·후대가 환대하는 구성이 추가되었다. 조선 후기에서는 조선 전기 사방작대 구성에서 북대(北隊)-동대(東隊)-남대(南隊)-서대(西隊)의 순서로 돌아가며 똑같은 춤을 반복하는데, 이러한 각 대의 반복되는 구성이 생략되고 전대(全隊)가 함께 춤을 추는 구성으로 변화하였다.
〇 주요 춤사위
조선 전기 『악학궤범』의 수연장에는 춤 진행마다 절화무(折花舞)·팔수무(八手舞)·사수무(四手舞)·금척무(金尺舞)·무·파자무(破子舞)·협수무(挾手舞)·퇴수무(退手舞) 등 구체적인 춤사위가 제시되어 있으나, 금척무(金尺舞)·무·파자무(破子舞)·협수무(挾手舞)·퇴수무(退手舞) 등은 어떤 동작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대무·북향무·배무·회무 등 방향전환을 알리는 춤사위도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정재무도홀기』에는 수수이무(垂手而舞)·거수상대이무(擧手相對而舞)·상배이무(相背而舞)·북향이무(北向而舞)·환대이무(換隊而舞)·팔수무(八手舞) 등의 방향전환을 알리는 동작과 춤사위가 제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수연장은 주로 회무로 대형의 변화를 주는데 좌대(左隊)는 서쪽을 향하여 안쪽으로 돌고, 우대(右隊)는 동쪽을 향하여 바깥쪽으로 돈다.
수연장의 창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후기까지 변함없이 전승되었다. 죽간자의 진구호와 퇴구호, 협무의 「동운영채색사(彤雲映彩色詞)」와 「청춘옥전사(靑春玉殿詞)」등 두 번의 창사가 나온다. 상서로운 기운의 궁전에서 이원(梨園) 악부가 음악을 연주한다는 내용으로 죽간자가 구호한다. 협무들은 온갖 꽃들과 신하들 가득 찬 잔치에 천년의 왕통과 만만년의 태평을 축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또 신선의 술인 유하주(流霞酒)가 금잔에 넘쳐흐르고 임금의 덕으로 태평성대를 이룰 것을 염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수연장의 창사는 직접적으로 군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보다는 좋은 기운이 넘치는 잔치의 분위기를 표현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연향의 성격에 따라 무동정재 때에는 죽간자 구호를 생략하기도 한다. 현재 공연에서는 상황에 따라 창사 전체를 부르지 않고 한 구절씩 부르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한다. [죽간자 구호] 流虹耀殿布禎祥, 瑞氣雲霞暎聖光. 유홍요전포정상, 서기운하영성광. 萬方歸順來拱手, 梨園樂部奏中腔 만방귀순내공수, 이원악부주중강. [죽간자 구호] 무지개처럼 흘러내린 별들 궁전 위에 반짝여 길조를 널리 알리고 서기 가득한 구름과 노을 거룩한 빛을 비추나이다. 만방에서 찾아와 두 손 모아 축하하고, 이원(梨園) 악부(樂部)가 중강(中腔)을 연주하나이다. [창사] 「미전사(尾前詞)」 彤雲暎彩色相縈(*), 御座中天簇簪纓. 동운영채색상영(*), 어좌중천족잠영. 萬花鋪錦滿高庭, 慶敞需宴歡聲. 만화포금만고정, 경창수연환성. (*)縈(악학궤범에는 ‘暎’) 「미전사(尾前詞)」 붉은 구름, 밝고도 고운 빛깔 서로 섞였는데, 하늘 복판 어좌를 마련하자 높은 벼슬아치가 몰려드네. 온갖 꽃 비단 펼친 듯 높은 뜨락에 가득한데 경사로 차린 큰 잔치상에 환호성 드높구나. 「미후사(尾後詞)」 天齡啓統樂功成, 同意賀元珪豊擎. 천령계통낙공성, 동의하원규풍경. 寶觴頻擧俠羣英, 萬萬載樂昇平 보상빈거협군영, 만만재낙승평. 「미후사(尾後詞)」 천 년 왕통을 여시어 공을 이루신 것 기뻐하며 한마음으로 새해를 하례하며 규풍(珪豊, 옥으로 만든 술잔받침)을 받들어 올리니, 호협(豪俠)한 뭇 호걸들은 술잔을 자주 들어 만만년 이 태평시절을 즐기리라. 「청춘사(靑春詞)」 靑春玉殿和風細, 奏簫韶絶繹. 청춘옥전화풍세, 주소소절역. 瑞遶行雲飄颻曳(*), 泛金樽流霞艶溢. 서요행운표요예(*), 범금준유하염일. 瑞日暉暉臨丹扆, 廣布聖德震遐邇. 서일휘휘임단의, 광포성덕진하이. 願聽歌聲舞綴, 萬萬年仰瞻宴啓. 원청가성무철, 만만년앙첨연계. (*) 飄颻曳(악학궤범에는 ‘飄飄曳’로 되어 있다) 「청춘사(靑春詞)」 푸르른 봄날 옥 궁전에 따스한 바람 솔솔 불고 통소 소리 끊길 듯 이어지네. 상서로운 고운 구름 바람결에 떠가고 유하주(流霞酒)는 금 술잔에 남실남실 하는구나. 상서로운 해는 반짝반짝 단의(丹扆, 왕이 치는 병풍)를 비추고, 널리 펴신 성덕(聖德)은 천지사방을 울리네. 노랫소리 춤사위를 듣고 보기 원하옵고 만만년 뒤에도 이런 잔치 열리면 우러러 보겠나이다. [죽간자 구호] 太平時節好風光, 玉殿深深日正長. 태평시절호풍광, 옥전심심일정장. 花雜壽香薰綺席, 天將美祿泛金觴. 화잡수향훈기석, 천장미록범금상. [죽간자 구호] 시절이 태평하니 풍광도 좋을시고 깊고 깊은 옥 궁전에 하루 해 정말 기네. 꽃은 만수향(萬壽香)[사람을 장수하게 하는 향] 섞은 듯 연회석에 향기롭고 하늘은 미록(美祿)[술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복록(福祿)]을 금 술잔에 찰랑찰랑 따르시네. - 원문 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 번역: 강명관
수연장의 복식은 고려시대에는 검은색 삼[皂衫]을 입었다. 조선시대에는 수연장에 대한 특별한 복식의 기록은 없고 1828년(순조 28)의 자경전 진작에서만 네 사람의 무동의 복식이 전하는데 두 명은 <향발무> 복식을 입고 한 명은 〈광수무〉 복식, 한 명은 〈아박무〉 복식으로 네 명이 서로 다르게 착용하었다. <향발무〉 복식은 남색단령(藍色團領)·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이고, 〈광수무〉 복식은 부용관(芙蓉冠)·녹단령(綠團領)·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을·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裳)·두석녹정대(豆錫綠鞓帶)·화화흑화자(畵花黑靴子)를 착용하였다. 〈아박무〉 복식은 흑단령(黑團領)·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이다. 현재는 조선 후기 여기의 기본 복식인 화관·초록단의·황초단삼에 안에는 남치마와 겉에는 홍치마를 입고, 홍단금루수대·오색한삼·초록혜를 착용한다.
수연장은 당악정재 임에도 위의(威儀=의물:무용수들을 호위하는 역할로 무용수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인물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도구)의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고려사』「악지」의 홀기에 “무대, 악관 및 여기의 의관과 행차는 앞(〈헌선도〉)의 의례와 같다”고 하여 의물의 배열이 〈헌선도〉의 경우처럼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와 수연장의 무용수 열여섯 명이 <진선(眞仙; 신선에 해당하는 인물의 역할)>이 아니라 단지 이원악부의 기녀이기 때문에 의물의 배열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수연장은 오랜 역사에 걸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정비되어 전해져 왔다. 조선후기 왕실의 주요 행사의 내용을 기록한 현존하는 열일곱 종의 의궤 중 열한 종의 의궤에 수록될 만큼 널리 추어진 역사성 깊은 정재이다.
김영희 외, 『한국춤통사』, 보고사, 2014. 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7. 이혜구 역주,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이의강 책임번역, 『국역 순조무자진작의궤』, 보고사, 2006.
최경자(崔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