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당악정재의 하나로, 태종의 덕을 칭송한 「수명명사」를 노래하며 추는 춤
『태종실록』 권3에는 1402년(태종 2) 6월 9일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륜(河崙)이 수명명과 〈근천정(覲天庭)>의 악장 두 편을 지어 올리니 태종이 교서를 내려 칭찬하였다고 전한다. 1411년(태종 11) 태종은 정도전이 1393년(태조 2)에 태조 이성계에게 지어 바친 〈몽금척(夢金尺)>과 〈수보록(受寶籙)>은 도참설(圖讖說)에 따라 악장의 수장(首章; 첫 장)으로 삼을 수 없으니 하륜이 지은 〈근천정〉과 수명명을 악장의 수장으로 삼을 것을 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수명명 정재가 만들어졌다.
『세종실록』에는 수명명의 악장이 노래로 연주된 사례, 관현(管絃)의 기악곡으로 연주된 사례가 전해진다. 수명명 정재로 연행된 사례는 1432년(세종 14) 5월 회례연에서 동남(童男; 무동)들이 〈무고(舞鼓)〉와 더불어 〈근천정〉을 연행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수명명도 이때 함께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의 전승 상황은 사료(史料)가 발견되지 않아 알 수 없고, 20세기 초반에는 연행이 단절되었다.
수명명은 『악학궤범』을 토대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재현 안무로 복원되었다. 복원공연은 1982년 10월 13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국립국악원의 전통무용발표회에 올려졌다.
○내용 수명명은 명의 황제로부터 왕위를 인준 받은 내용과 함께 백성을 아끼는 군주로서 태종의 치세를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조
수명명의 구조는 당악정재의 형식을 따른다. 당악정재는 의장(儀裝)에 해당하는 의물(儀物)을 사용하고 있어 매우 웅장하며 화려하다. 수명명의 도입부에서는 죽간자(竹竿子)가 무용수를 이끌고 입장하고 진구호(進口號)를 노래 불러 정재의 개장(開場; 엶ㆍ시작)을 알린다. 전개부에서는 무용수들이 춤과 의례(儀禮)를 행한다. 무용수들은 정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치어(致語)나 사(詞)로 노래하고, 주제에 맞도록 춤을 추거나 의식(儀式)을 행한다. 종결부에서 다시 죽간자가 등장하여 퇴구호(退口號)와 절을 하고 수장(收場; 끝마침)을 알린다. 수명명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명확한 회귀의 순환 구조로 연행된다. 진행은 집박 악사의 박(拍)을 신호로 전환된다.
○진행절차
『악학궤범』 권4에는 수명명의 초입배열도(初入配列圖) 및 작대도(作隊圖)와 함께 술어(述語)를 기록하여 춤의 진행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
〈도입부〉
일렬종대(一列橫隊)로 늘어선 봉족자(奉簇子) 한 명과 봉죽간자(奉竹竿子) 두 명이 족도(足蹈) 하며 앞으로 나간다. 죽간자가 진구호를 하여 춤의 시작을 알리고 나면, 족자는 그 자리에 남고 죽간자는 좌우로 갈라선다.
〈전개부〉
선모(仙母)를 중심으로 두 대 좌우대형을 유지한 협무(挾舞) 여덟 명이 춤추며 들어와 서면 음악이 그친다. 음악이 바뀌면 선모는 가운데서 맴돌며[주선(周旋)] 춤을 추고, 양대(兩隊)로 늘어선 협무는 원으로 회선(回旋)하며 춤춘다. 이때 동쪽의 좌협무 네 명은 서쪽을 향하여 안쪽으로 원을 돌고, 서쪽의 우협무 네 명은 동쪽을 향해 바깥쪽으로 원을 돌아 춤을 추고 선다. 선모는 앞으로 나와 오른쪽 옷소매를 치켜들고 치어를 한다. 치어가 끝나면 다시 선모가 물러나 제자리로 되돌아가고, 선모와 좌우 협무 여덟 명이 악절에 따라 염수족도(斂手足蹈)를 하며 「수명명사」를 부른다. 창사를 마치면 춤이 진행된다. 선모는 북쪽을 향해 춤을 추고, 좌ㆍ우 협무는 두 대 좌우대형으로 마주하여 춤을 춘다. 좌ㆍ우 협무는 상대무(相對舞; 서로 마주보고 추는 춤)와 상배무(相背舞; 서로 등을 지고 추는 춤)로 짝을 이루어 춤추다가 무용수 전원이 북쪽을 향해 춤춘다. 춤이 고조에 다다르면 선모는 맴돌며 춤을 추고, 여덟 명의 협무도 춤추며 원을 그려 돌아[회선] 처음의 두 대 좌우대형으로 되돌아가서면 음악이 그친다.
〈종결부〉
죽간자 두 명이 족도하며 나와 족자의 양옆으로 되돌아간다. 죽간자가 퇴구호를 하고 전대에 일렬로 늘어선 족자 한 명과 죽간자 두 명이 물러간다. 선모와 좌ㆍ우의 협무는 나아갔다가 다시 물러나 춤을 마친다.
○춤사위
수명명은 선모 한 명과 좌우 협무 여덟 명이 변화를 주도한다. 선모를 중심으로 두 대 좌우대형을 구성한 좌협무와 우협무가 두 방향으로 원을 구성하는 회무 대형을 두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두 대 좌우대형으로 회귀한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춤사위는 족도(足刀)ㆍ절화무(折花舞)ㆍ주선(周旋)ㆍ회선(回旋)ㆍ사수무(四手舞)ㆍ염수족도(斂手足蹈)ㆍ광수무(廣袖舞)ㆍ첨염수(尖斂手)ㆍ상대무(相對舞)ㆍ상배무(相背舞)ㆍ첨수무(挾袖舞)ㆍ퇴수무(退手舞)이다.
수명명에서는 총 네 번 노래가 불린다. 죽간자가 춤을 추기 전에 진구호를 하고, 구호 뒤에 선모가 태종에 대한 치어를 노래한 후, 협무가 〈보호자령〉의 악절에 따라 염수족도 하면서 「수명명사」를 부른다. 「수명명사」의 처음과 끝은 태종에 대한 칭송이고, 중간은 태종의 실제 업적을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춤을 모두 마치면 죽간자가 퇴구호 한다.
원문 | 해설 | |
[죽간자 진구호] | 翼翼小心, 誕受維新之命. 익익소심, 탄수유신지명. 洋洋盈耳, 欣聞克諧之音. 양양영이, 흔문극해지음. 宗社重熙, 臣民胥悅. 종사중희, 신민서열. |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받자온 유신(維新)하라는 명이 넘실넘실 귀에 가득 하니, 기쁜 마음으로 조화로운 소리를 듣나이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대대로 찬란히 이어지리니 신민(臣民)들 함께 기뻐합니다. |
[치어] | 「선모치어」 太宗事大以禮, 天子錫明命, 從以印章冕服. 國之大夫士, 懽欣感激, 相與歌之也. 태종사대이례, 천자석명명, 종이인장면복, 국지인부사, 환흔감격, 상여가지야. | 「선모치어」 태종이 예를 갖추어 사대(事大)하자, 천자가 밝은 명을 내리고 이어 인장(印章)과 면복(冕服)을 하사하시어, 우리나라의 대부(大夫)와 사(士)가 기뻐하고 감격해 함께 노래하였습니다. |
[창사] | 「창 수명명 (受明命) 사(詞) 일성」 亹亹我王, 德明敬止. 미미아왕, 덕명경지. 孝友施政, 令望不已. 효우시정, 영망불이. 翼翼乃心, 事大惟一. 익익내심, 사대유일. 奉錫聲敎, 漸于出日. 봉석성교, 점우출일. 帝錫明命, 金印斯煌. 제석명명, 금인사황. 又何錫之, 袞衣九章. 우하석지, 곤의구장. 王拜受命, 天子聖明. 왕배수명, 천자성명. 臣民相慶, 宗祀與榮. 신민상경, 종사여영. 於樂我王, 荷天之休. 오락아왕, 하천지휴. 體仁保民, 壽考千秋. 체인보민, 수고천추. 於樂我王, 如日之昇. 오락아왕, 여일지승. 貽謨克正, 萬世其承. 이모극정, 만세기승. | 「창 수명명 (受明命) 사(詞) 일성」 부지런하신 우리 임금, 덕이 밝고도 경건하시어, 효우(孝友)로 다스리시니 아름다운 명성 그지없네. 삼가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사대(事大)하니, 크나큰 풍성(風聲)과 교화가 해 뜨는 동쪽까지 이르렀네. 황제께서 밝은 명 내리시매, 금빛 인장(印章) 찬란하네. 또 무엇을 내리셨나? 구장(九章)의 곤룡포로다. 임금께서 절하고 명을 받으시니, 천자의 영명하시고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신민이 서로 경축하니, 종묘사직도 더불어 영광이네. 아, 즐거울사 우리 임금, 하늘(=황제)의 아름다운 덕에 힘입고서 인(仁)을 체득하사 백성을 보호하시니, 천년토록 수를 누리시리. 아, 즐거울사 우리 임금, 떠오르는 저 해와 같으시다. 후손에게 물려주신 올바른 법 만세토록 계승할지어다. |
[죽간자 퇴구호] | 知我初服, 實是無疆之休. 지아초복, 실시무강지휴 畜君何尤, 迺爲相悅之樂. 축군하우, 내위상열지악. 禮儀卒度, 德音不忘. 예의졸도, 덕음불망. | 첫 정사를 어떻게 할지 알고 계시니, 실로 한없는 복이로다. 임금께 간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랴? 이것이 곧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는 음악이라, 예의가 모두 법도에 맞아 덕 있는 말을 잊지 않을 것이로다.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수명명의 반주 음악은 모두 당악곡을 사용하였다. 반주는 〈회팔선인자-진구호〉-〈회팔선인자〉-〈보허자령〉-〈최자령〉-치어-〈최자령〉-〈보허자령〉-「수명명사」- 〈금잔자만〉-〈보허자령〉-〈최자령〉-〈회팔선인자〉-퇴구호-〈회팔선인자〉의 순으로 연주된다. 창사는 기존 음악인 〈보허자령〉에 붙여 불렀다.
○복식
『악학궤범』에는 수명명의 무동관복(舞童冠服)과 여기복식(女妓服飾)이 도식(圖式)으로 전해진다.
무동은 회례연에서 머리에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발에는 화(靴)를 신는다. 겉에는 가슴과 등에 흉배를 단 의(衣: [포(袍)])를 입는다. 오방(五方)색인 황(黃)ㆍ녹(綠)ㆍ자(紫)ㆍ남(藍)ㆍ도홍(桃紅)의 비단으로 만들고 안감으로 붉은색 비단을 대어 만들었다. 옷감은 사(紗)나 라(羅)와 같은 비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포 안에 중단을 받쳐 입었다. 중단은 흰색 비단으로 만들고 도련의 가장자리를 검정 비단으로 두르나 무동은 오방색 비단으로 만든다. 중단의 허리에는 예복용 치마인 상(常)을 갖추어 입는다. 여기는 머리에 수화(首花)ㆍ잠(簪)ㆍ금채(金釵[금차])를 장식하고 복식은 백말군(白襪裙)을 입고, 남적고리(南赤古里)를 입는다. 그 위에 상(裳)[보로(甫老)])을 입고, 홍대를 매고 겉에는 단의를 입는다, 그리고 단의 위에 흑장삼(黑長衫)입고 발에는 단혜아(段鞋兒)를 신는다.
○의물
수명명의 의물(儀物)은 족자(簇子) 한 개ㆍ죽간자 두 개ㆍ인인장(引人仗) 두 개ㆍ정절 여덟 개ㆍ용선 두 개ㆍ봉선 두 개ㆍ작선(雀扇) 두 개ㆍ미선 두 개ㆍ 개 세 개가 사용된다.
수명명은 주로 노래로 불리거나 관현악곡으로 연주되었다. 수명명이 정재로 연행된 시기는 세종조(1418-1450) 초기로 추정된다. 수명명은 조선 초기 정치적 안정을 위해 태종이 왕위계승의 정당성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태종의 실덕을 명(明)과의 관계에서 찾고 이를 신료들에게 설득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수시로 변하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차츰 연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종수, 「전통음악의 원류와 그 전개 ; 조선 초기 악장 연행양상 –수보록, 몽금척, 근천정,수명명-」, 『온지논총』18, 2008. 류창규, 「태종대 하륜의 악장 창작과 그 정치적 의미」, 『한국사학보』35, 2009. 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손선숙, 「조선초기 궁중정재의 대무, 배무검토」, 『무용역사기록학』34, 2014. 송방송. 「 조선왕조 건국초기의 정재사 연구」, 『음악과 현실』23, 2002.
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