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무(昭武), 무무(武舞), 아무(雅舞), 일무(佾舞)
사직(社稷)이나 문묘(文廟) 등 국가 제례에서 전투나 무예 등 무사(武事)와 관련한 공적을 찬양하는 춤
고려부터 현재까지 사직, 문묘 등 국가 제사 때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에 추는 일무이다. 소무지무는 대열을 이룬 무용수가 무기(武器)를 잡고 공격과 방어를 표현하며 추는 무무(武舞)이다. 문무(文舞)인 <열문지무(烈文之舞)>와 짝을 이루며, 사언팔구(四言八句)로 된 악장과 아악(雅樂) 반주에 맞추어 추는 아무(雅舞)이다.
소무지무의 명칭은 무왕(武王)의 공적을 찬양한 『시경(詩經)』 「주송(周頌)」편 〈무(武)장〉에서 비롯되었다. 소무지무는 아악을 연주하는 사직대제(社稷大祭;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바치는 제사)와 풍운뇌우(風雲雷雨: 자연 공간 관련 수호신)・산천(山川: 국토 관련 수호신)・성황(城隍: 국가 및 성역 수호신)의 제사와 선농(先農; 농사를 처음 가르쳤다는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바치는 제사)・선잠(先蠶: 최초로 누에치는 법을 알려준 신에게 바치는 제사)・우사(雩祀: 비를 관장하는 신)・문선왕제(文宣王祭;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모시는 제사, 지금의 석전제)의 아헌례와 종헌례에 추는 일무이다. 아악은 고려 예종(睿宗) 11년(1116)에 송(宋)나라로부터 수입된 후 조선으로 계승되었고, 세종 초기에 정비되어 국가 제례에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대사(大祀)와 중사(中祀)에 모두 육일무(六佾舞)를 추었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대사인 원구제(圜丘祭)와 사직제(社稷祭)에는 팔일무(八佾舞)를, 중사인 다른 제사, 특히 석전제에는 육일무를 추었다.
1908년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조선의 안녕을 기원하던 원구 및 사직제 등의 제사는 모두 폐지되었다. 단, 종묘제례와 석전제는 20세기 초반에도 지속되었는데, 종묘제사는 팔일무에서 육일무로 강등된 반면, 석전제는 육일무로 추던 것을 1928년에 팔일무로 승격시켰다. 조선시대에는 아부(雅部)의 음악과 노래, 춤을 장악원에서 관리・전승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장악원의 뒤를 이은 이왕직아악부에서 일무를 계승했고, 해방 후에는 구왕궁아악부에서 담당했다. 이후 국립국악원에서 아악과 일무를 계승하고 있으며, 현재는 사단법인 일무보존회에서 일무를 전승하며 연행하고 있다
무무의 제목인 ‘소무(昭武)’란 무공(武功)을 밝힌다는 뜻이다. 전투나 무예에 관한 무사(武事)를 기리는 춤이며, 나라의 군사적 힘이 견고함을 드러내는 이념적이며 상징적인 춤이다. 무무인 소무지무는 문무인 <열문지무>와 짝을 이룬다. 제례의 기본 절차인 영신과 전폐, 초헌까지는 문무를 추고, 다음 아헌과 종헌에서는 무무를 추었다. 이후의 절차인 철변두와 송신에는 춤이 없다. 조선 전기 아악의 육일무(六佾舞)는 여덟 명씩 여섯 줄을 이루는 48인 대형이었다. 소무지무는 육일무 앞에 두 명의 정(旌)을 잡은 인도자가 있고, 일무대 좌측에 순(錞)ㆍ탁(鐲) ㆍ요(鐃)ㆍ탁(鐸)이 일렬로 서고, 우측에는 응(應)ㆍ아(雅)ㆍ상(相)ㆍ독(牘)이 일렬로 무용수와 함께 대오를 이루었다.
보통 아부 제사에서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과 마지막 셋째 잔을 올리는 종헌 소무지무에는 악장이 없다. 조선 전기에도 아헌과 종헌에서는 악장가사 없이 아악 반주에 소무지무를 추었다. 그러다 1690년(숙종 16) 공자와 선현을 위한 문선왕제에 각 의례마다 악장을 갖추도록 했다. 이로써 석전제는 영신, 전폐, 초헌, 아헌, 종헌, 철변두, 송신까지 일곱 개 의례에 모두 악장을 갖추게 되었다. 아헌・종헌의 소무지무 사언팔구 악장은 1편이며, 2회(아헌, 종헌)를 춤춘다. 석전대제 아헌과 종헌의 〈성안지악(成安之樂)〉 〈소무지무〉의 악장 백왕종사(百王宗師) 백왕의 최고 스승이요 생민물궤(生民物軌) 생민들의 법칙이 되시도다 첨지양양(瞻之洋洋) 그것을 바라보니 양양하게 신기녕지(神其寧止) 신께서 편히 머무시도다 작피금뢰(酌彼金罍) 금 술잔에 술을 따르니 유청차지(惟淸且旨) 맑고도 맛나도다 등헌유삼(登獻惟三) 세 잔의 술을 올렸으니 오희성례(於嘻成禮) 아 기쁘구나! 예를 이루었도다 - 번역출처: 김종수 역주, 『증보문헌비고‧악고』 상 (국립국악원, 1994) 및 이종숙 수정・보완
조선 시대 아부 제사는 천신(天神), 지기(地祇), 인향(人享)을 구분하여 제사가 각각 나누어진다. 아악과 아무를 사용하는 원구제, 사직제, 문묘제는 세종대에 아악을 정비하면서 대상에 따라 악조를 정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사언팔구로 된 악장에 맞춰 32음으로 구성된 선율을 일음일박(一音一拍)으로 연주한다. * 아헌ㆍ종헌 시 〈소무지무〉의 반주음악 표 삽입 전
소무지무의 조선 전기 무용수와 정잡이의 복식은 머리에 피변(皮弁)을 쓰고, 조주의(皂紬衣)와 백주중단(白紬中單), 백주군(白紬裙)을 착용하고 금동혁대(金銅革帶)를 띠었다. 흰색 베 버선[白布襪]에 오피리(烏皮履)를 신었다. 악기잡이 8인은 홍말액(紅抹額)으로 동여맨 무변(武弁)을 머리에 쓰고, 비란삼(緋鸞衫)과 백주중단, 백주고(白紬袴)를 착용했다. 팔에는 홍금비구(紅錦臂鞲)를 하고, 허리에는 금동혁대를 찼다. 백포말에 오리피를 신었다. 조선 후기 소무지무 무용수와 정잡이 서른여덟 사람의 복식은 조선 전기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대한제국기는 팔일무로 확대되었고, 무용수와 정잡이 예순여섯 명의 복식도 위와 같았다.
현재 석전대제 소무지무의 정잡이는 생략되고, 무용수는 머리에 흰 깃털이 달린 원통형 붉은 모자를 써 오다가, 최근 피변을 쓰는데, 또 복두(幞頭)를 쓰기도 한다. 홍주의(紅紬衣)를 착용하며, 남사대(藍帶)로 가슴 부위를 묶는다. 신발은 목화(木靴)를 신는다. 왼손에 간(干: 방패), 오른손에 척(戚: 도끼)을 잡고 팔일무를 춘다.
사직대제는 국가의 토지와 곡식 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국가와 민생의 태평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지되었던 제례 문화를 복원・재현하여 현재는 매년 9월 넷째 토요일에 거행하고 있다.
석전대제: 국가무형문화재(1986) 사직대제: 국가무형문화재(2000)
『대한예전(大韓禮典)』 『세종실록(世宗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김종수 역주, 『역주 증보문헌비고: 악고 상』 , 국립국악원, 1994. 송혜진, 『한국 아악사 연구』, 민속원, 2000. 지두환ㆍ송지원ㆍ최숙경ㆍ박원모, 『사직대제ㆍ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이종숙(李鍾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