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식음악, 어산, 성범, 범음, 불교의례율조
불교 신행에 수반되는 경전ㆍ의례ㆍ기도ㆍ염불 등의 율조
중국에서 인도의 경전과 게송을 한어로 번역하여 낭송하니 범어 선율과 맞지 않아 조식(曹植, 192~232)이 중국식의 어산 범패를 창제하였다. 이후 의례에 수반되는 찬탄 게송과 법문과 설명에 사용된 사설조, 불보살 명호를 반복하는 염불 등을 통칭하여 ‘범패’라 하였다. 한국에서는 진감선사(眞鑑, 774~850)가 당나라에서 범패를 배워와 가르친 후 신라 전역에 확산되어 오늘에 이른다.
‘범’은 영적ㆍ신적, 명사(名辭) 말씀ㆍ경전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형용사 브라흐마(brāhma)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패’는 암송ㆍ낭독 및 찬송 노래를 뜻하는 파타(pāṭha)에서 유래되었다. 석가모니 입멸 후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합송하는 과정에 시체(詩體), 문답체 등의 9가지 율조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중국에서 한어 율조로 전환되었고, 진언과 다라니는 범어 본래의 음으로 연행되었다.
○ 범패의 전파와 지역적 특징 범패의 원음인 석가모니의 말씀은 스리랑카와 동남아에서는 속어 계통인 빠알리로, 동북아 지역은 성문어 계통인 시드함(悉曇) 산스크리트어로 전해졌다. 대승불교를 추구한 중국에서 대규모 집회를 위한 의례문과 함께 찬탄 게송, 사설조, 불호를 노래하는 음률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보면, 산동지역에 거주하던 신라인들이 승려와 주고받거나 함께 범패를 불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불교가 억제되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불교신행의 공공화가 불가능해지자 일반 민중에 의한 범패는 단절되었다. 범패는 의례 전담 승려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으며, 현재는 주로 문화유산 전승과 관련된 전문 승려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불교는 왕실 주도로 의례가 설행되었으므로 신라ㆍ고려ㆍ조선초기까지 범패의 율조는 궁중음악과 긴밀한 관계를 지녔다. 조선중기 이후 제반의 의례가 민간 주도로 행해지면서 현재 전승되는 범패에는 민요 토리의 영향이 나타난다. 범패 선율은 대체로 메나리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통일신라의 도성과 진감선사가 범패를 가르친 곳이 모두 메나리토리의 본고장인 경상도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현재는 서울 중심의 경제 범패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있고, 영남 범패만이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경제 범패의 선율은 서도소리와 경토리가 다소 섞여 있으며, 영제에 비해 음역이 다소 높고, 소리를 짓는 기교와 시김새가 화려하며, 아ㆍ에ㆍ이ㆍ오ㆍ우의 모음을 모두 구사한다. 전라북도 지방의 완제 범패는 경제와 대동소이하나, 〈봉청〉과 〈운심게〉 등에서 완제 특유의 특징이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메나리조 성격이 약하며 남도의 육자배기토리 영향을 보이기도 한다. 영남지방의 영제 범패는 저음으로 평탄한 선율이며, 모음은 ‘어’와 ‘허’의 두 가지 발성이 주를 이루고, 선율에서 메나리토리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작법구감에 표시된 평성ㆍ상성ㆍ거성ㆍ입성의 4성에 근거하여 가창하므로 음역은 주로 한 옥타브 내에서 진행된다. 시김새와 장식음이 단촐하여 신라범패 고제의 면모를 비교적 많이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 범패의 전승 현황 1960년대부터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며 불교학계 홍윤식교수와 국악학계 한만영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학자에 의해 범패 전승에 관한 현지조사와 채록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72년 부산 범어사의 용운스님(金龍雲, 1895~1973)이 부산시무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고, 1973년에는 서울 봉원사의 《영산재》를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운공(耘空 김명호, 1904~1982)・벽응(碧應 장태남, 1909~2000) 송암(松巖 박희덕, 1915~2000) 스님이 범패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범패 전승의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다. 세 사람의 어장 중 가장 연장자였던 운공스님이 입적한지 5년 후인 1987년에는 ‘영산재’라는 단체 종목으로 지정되어, 범패는 송암스님과 벽응스님, 〈장엄〉은 지광스님(志光 정순정, 1925~1996), 〈작법무〉는 일응스님(一應 이재호, 1920~2003)이 각 종목의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전통적으로 서울의 범패는 서교ㆍ동교의 양대 산맥이 있었으나 봉원사 《영산재》가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송암스님 중심으로 범패 전승이 이루어졌다. 앞서 각 종목의 보유자로 지정된 승려들이 입적하자 송암스님의 제자 구해스님(九海 김구해, 1943~), 동주스님(東洲 이조원, 1945~), 동희스님(東熙 한희자, 1945~) 중심으로 전승교육과 맥이 이어왔다.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유산 제50호 범패보유자로 지정된 구해스님을 중심으로 옥천범음대학을 통하여 전승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주스님은 서울시무형문화유산 제43호로 지정되어 가양동 홍원사에 범패 전승교육과 후학을 양성하고 있고, 동희스님은 국가무형문화유산 제126호 진관사 《국행수륙재》 어장으로써 비구니스님들을 중심으로 전승교육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교에는 안암골 개운사와 왕십리 안정사를 중심으로 범패가 전승되고 있다. 개운사에는 조계종어산작법학교가 설립되어 인묵스님(仁默 이삼길, 1957~)과 법안스님(法眼 박영만, 1960~) 문하에 조계종을 비롯하여 여타의 승려들이 의례ㆍ악ㆍ가ㆍ무를 수학하고 있다. 왕십리 청련사(안정사)는 도시화로 인해 경기도 양주로 이주하였으며, 어장 상진스님(常眞 최기훈, 1956~)을 중심으로 전승교육과 의례활동을 이어왔다. 이후 왕십리 청련사는 2022년 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로 경기도무형문화유산 제66호 전승사찰이 되었다. 경기지역에는 인천 《영산재》와 《수륙재》 보존회를 결성한 능화스님(能華 김종형, 1959~)이 인천시 무형문화유산 제10-가호로 지정되었고, 일초스님(一超 박치훈, 1960~)이 제10-나호로 지정되어 전승교육과 의례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산에는 용운스님이 1973년 입적함으로써 계맥이 일시 중단되었다가 후학들에 의해 1993년 부산지방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부산 《영산재》를 중심으로 한 승단과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승단의 활동이 산재되어 나타난다. 경남지역에는 불모산 문중에 통범소리 계열 승려들이 활동해오다 현재는 어장 석봉스님(石峯 김차식, 1954~)을 중심으로 창원 《아랫녘수륙재(국가무형문화유산 제127호)》가 연행된다. 이 외에도 김해 화장사에 있는 영남범음범패 보존회와, 통영 안정사 일대에 의례 및 범패와 관련된 많은 문헌과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호남은 전주 출신으로 서울 봉원사 《영산재》에서 〈작법무〉 보유자로 지정된 일응스님이 제자들을 규합하여 종래에 흩어져 있던 완제 범패의 전승 기반을 재정비하였다. 이에 호남의 범패는 전주를 중심으로 전북무형문화유산 제18호로, 전남은 광주시 무형문화유산 제23호로 지정되어 《영산재》 보존회를 통해 완제 범패가 전승되고 있다. 전승 명맥이 취약한 충청ㆍ경북ㆍ강원도 및 일부 지역은 서울에서 바깥채비 승려들이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시의 삼화사 《수륙재(국가무형문화유산 제125호)》, 충청북도 구인사 《생전예수재》, 충청남도 부여 《수륙재》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서울 은평구의 진관사 《수륙재(국가무형문화유산 제126호)》, 강남 봉은사 《생전예수재(서울시문화유산 제52호)》, 제반의 의례 준비와 설단은 사찰에서 주도적으로 행한다. 각 사찰에서 범패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 선율 유형과 리듬적 특징 범패의 어원과 본래적 개념에서 보면, 《영산재》ㆍ《수륙재》ㆍ《예수재》에서 행하는 의례문 율조, 경전 독송, 정근 때 하는 염불까지를 모두 범패라고 할 수 있다. ‘회심곡’류는 의례문과 무관한 노래이므로 범패에서 포함되는지와 관련해서는 학계와 승단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 연행되는 범패는 가사에 근거하여 한문 의례문의 한어범패, 진언ㆍ다라니를 부르는 범어범패, 풍송조의 향풍 범패로 정리할 수 있다. 향풍 범패는 한국 승려가 지은 경문찬초(經文纂抄) 혹은 축원ㆍ기원문의 가사로, 일자일음 형태의 향토적 선율을 지니고 있다. 가사는 한문으로 되어있어 당풍범패와 노랫말 측면에서는 구분되지 않지만, 음악적으로 민요풍 율조를 지니고 있어 한어범패와 구분된다. 범패 선율의 양상을 보면, 경전을 촘촘히 낭송하는 독송, 나무아미타불 혹은 석가모니불과 같이 불호를 연달아 외는 염불조, 유치성, 소성을 낭송하는 사설조(일명 안채비소리), 불보살을 찬탄하는 의문(儀文)의 모음을 일자다음으로 부르는 〈홑소리〉, 특정 게송이나 문장을 승려와 대중이 함께 부르는 〈짓소리〉로 분류할 수 있다. 행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의례를 주최하는 사찰의 승려가 의례문 사설조를 부르는 〈안채비소리〉, 전문 범패승을 초청하여 부르는 〈바깥채비소리(홑소리, 짓소리)〉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안채비소리〉도 바깥채비 승려들이 맡고 있어, 이러한 분류가 무색해지고 있다. 따라서 범패 용어의 개념 정립과 새로운 분류 작업이 필요하다. ○ 법구 타주와 역할 범패는 대부분 변칙적인 박자의 일자다음 선율로 되어있으므로 리듬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가사의 구절을 맺거나 의례 진행 및 〈작법무〉의 동작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는 법구는 매우 중요하다. 범패 반주에 있어 경기지역에는 징 하나만으로 반주를 하는데, 영남지역은 광쇠를 중심으로 북ㆍ목탁ㆍ징의 사물을 갖추어 연주한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영남의 북가락과 사물 리듬은 불교의례 뿐 아니라 전통무용의 발디딤 장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서울ㆍ경기지역도 천수경이나 반야심경, 범어범패에서는 4가지 법구에 법령까지 더하여 규칙적인 박자를 연주하기도 한다. ○ 의례 상황에 따른 견기이작(見機而作) 범패는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 의례를 설행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므로 의례 상황과 여건에 따라 견기이작(見機而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동일한 게송이나 의문을 활용하여 〈짓소리〉부터 〈평염불〉까지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 이는 고정된 악곡의 틀이 있는 기독교의 미사곡이나 찬송가와 다른 특징이다. 다만 의례의 내용에서 교의적 차등이 있고, 그에 준하는 관습적 설행이 축적되어 대목마다 〈짓소리〉 또는 〈홑소리〉로 고정하여 연행하는 전통에 의해 음악적인 유려함과 예술성을 지니게 되었다.
『오종범음집』 심상현, 『영산재』,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윤소희, 『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민속원, 2017. 윤소희, 『한중 불교의례와 범패』, 민속원, 2023. 이혜구ㆍ성경린ㆍ장사훈ㆍ한만영, 『무형문화재 조사 보고서 범패와 작법』, 문화재관리국, 1969. 한만영, 『한국 불교음악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0. 홍윤식, 「불전상으로 본 불교음악」, 『불교학보』 9, 1972.
윤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