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을 중심으로 내륙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에 연행해 온 여성들의 집단 가무(歌舞) 놀이
놋다리밟기는 노래와 놀이, 춤이 혼합된 여성들의 집단 가무(歌舞) 놀이이다.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내륙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에 연행해 왔으며, 여러 놀이 중 다른 지역의 〈기와밟기〉와 유사한 〈다리밟기〉가 놀이의 중심이다. 노래는 놀이에 따라 느리게 부르기도 하고, 자진모리장단의 빠르기로 경쾌하게 부르기도 한다. 2음~4음 구성의 단조로운 가락을 묻고 답하는 교환창 방식으로 반복하여 부른다.
놋다리밟기의 유래는 보통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재위 기간 1352~1374)의 몽진(蒙塵)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1361년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족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들어오던 중 소야천의 나루에 다다랐을 때 개천의 물이 불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마을의 부녀자들이 나와 개울에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다리처럼 만들어 왕후와 공주가 발을 적시지 않고 개천을 건너가게 한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정월 보름 날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 놋다리밟기를 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공민왕의 안동 피난 시절 불편하게 지내는 노국공주를 위로하기 위해 놀이를 하였다는 설도 전한다. 하지만 보름날 달밤에 춤을 추며 노는 가무형 놀이는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두루 연행되었다. 따라서 놋다리밟기는 공민왕 이전부터 연행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공민왕의 몽진 사건과 연결하여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전승력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ㅇ 역사 변천 과정 놋다리밟기는 1910년경부터 쇠퇴하여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전승이 중단되었다. 해방 이후 놋다리밟기의 조사와 발굴이 시작되어, 제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58)와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65)에 《안동놋다리》로 참가하고, 제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63)와 제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64)엔 《안동놋다리밟기》로 참가하였다. 1974년 제15회 대회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고 1975년 제16회 대회에서는 《안동옹굴놋다리》로 참가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 안동놋다리밟기 보존회가 설립되고 같은 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안동에서 열리는 안동민속축제에서 매년 놋다리밟기가 시연되고 있는데, 1996년 26회까지는 안동여자고등학교와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번갈아 시연해오다 27회부터 안동놋다리밟기보존회 회원들이 시연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노국공주 선발대회가 개최되었는데, 매년 동부와 서부의 공주를 선발하여 일 년 동안 보존회에서 진행하는 무형문화재 공개행사와 상설 공연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ㅇ 연행 시기 및 장소 놋다리밟기는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내륙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에 규모가 큰 집의 마당에서 연행되었다. 근래에는 시기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행사와 축제에서 연행되고 있다. ㅇ 형식과 구성 놀이 참여자들이 손을 잡고 앉으면 선두가 잡은 손을 타 넘으며 원형으로 돌며 〈어화유리 둥둥대미〉를 부른다. 나선형의 원무로 진행하는 〈어화유리 둥둥대미〉를 시작으로 〈실감기〉, 〈청어장사〉, 놋다리밟기, 〈꼬깨싸움〉등이 이어진다. 이 중, 놋다리밟기는 원 안을 향하여 둥근 모양으로 다리 만들어 밟는 〈옹굴놋다리〉를 하고 이어 길게 줄 모양으로 만들어 밟는〈줄놋다리〉를 한다. ㅇ 음악적 특징 놋다리밟기의 노래는 대부분 3소박 4박자(4/♩.)로 놀이의 특성에 따라 빠르기에 차이가 난다. 놀이를 시작하며 부르는〈어화유리둥둥대미〉는 굿거리장단 빠르기로 부르고 주요 놀이인〈옹굴놋다리〉와 〈줄놋다리〉를 하며 부르는 놋다리밟기는 느린 속도로 부른다. 〈실감기〉와 〈청어장사〉는 자진모리장단 빠르기로 부른다. 선율은 2음~4음의 단조로운 가락을 읊조리듯 반복하는데 동부민요의 메나리토리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가사는 4ㆍ4조의 율격인 경상북도 여성 민요의 가사를 많이 활용한다. 가창 방식은 묻고 답하는 교환창 방식이다.
○ 놋다리밟기 어느 윤에(사이에) 놋다리로(놋다리냐) 청계산에 놋다리로 공민왕의 놋다릴세 이 터전이 뉘 터이로 나라임에 옥터일세 이 기와가 뉘 기와로 나라임에 옥기왈세 기 어데서 손이 왔노 경상도로 손이 왔네 무슨 꼬개(고개) 싸아왔노(싸웠느냐) 예계(고개 이름) 꼬개 싸아왔네 멫대 칸을 밟아왔노 쉰대 칸을 밟아왔네 무슨 옷을 입고 왔노 철갑 옷을 입고 왔네 무슨 바질 입고 왔노 자죽 바질 입고 왔네 ○ 어화유리 둥둥대미 어화유리 둥둥데미대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달봤나 난도봤다 어화유리 둥둥대미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 달 봤나 난도 봤다 저 별 봤나 난도 봤다 저 길 봤나 난도 봤다 어화유리 둥둥대미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 달 봤나 난도 봤다 저 별 봤나 난도 봤다 저 길 봤나 난도 봤다 어화유리 둥둥대미 둥둥대미 어화유리 저 달 봤나 난도 봤다 저 별 봤나 난도 봤다 저 길 봤나 난도 봤다 ○ 실감기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선창) 집실(명주실)로 감아라 (후창) 당대실로 풀어라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경상북도편』, 문화방송, 1995, 392~395쪽.
○ 청어장사(청애장사) (선창) 청어사소 청어사소 (후창) 청어값이 몇냥이냐 (선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후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선창) 청어사소 청어사소 (후창) 청어값이 몇냥이냐 (선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후창) 돈도닷냥 은도닷냥 (반복)
다른 지역의 집단 민속 가무 놀이인 《강강술래》와 《월월이청청》은 원무(圓舞)를 중심으로 하지만, 놋다리밟기는 〈기와밟기(지애밟기)〉, 〈다리밟기(답교놀이)〉와 유사한 밟기 놀이가 중심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기록을 보면 성의 안과 밖에서 놀았던 밟기 놀이가 공간을 이동하며 이루어졌고 놀이 중 다른 팀과 다리에서 만나면 꼬깨싸움으로 승패를 겨루기도 하며 역동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놋다리밟기는 고려 공민왕의 몽진이라는 안동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지어 안동 지역민의 애향심과 자부심을 높이는 민속놀이로 의미가 있다.
안동 놋다리밟기: 경상북도 무형문화재(1984)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경상북도편』, 문화방송, 1995. 임재해, 「강강술래와 놋다리밟기의 지역적 전승양상과 문화적 상황」, 『민속연구』 2, 1992. 한양명, 「안동놋다리밟기의 유형론 재고」, 『실천민속학연구』 34, 2019.
조경숙(趙慶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