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鼙鼓), 인고(朄鼓), 삭비(朔鼙)
궁중의 조회와 연향 등에서 주로 전정헌가(殿庭軒架)에 편성해 연주한 아악기로, 호랑이 모양의 받침대에 봉황의 머리로 장식한 나무틀을 세우고 그 틀에 매달아 치는 북
고려 예종 11년(1116)에 송(宋)으로부터 대성아악(大晟雅樂)을 연주하는 아악기의 하나로 유입되어 아악 연주에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전정헌가(殿庭軒架)에 편성되어 조회(朝會)와 연향(宴享) 등에 사용되었다. 보통 전정헌가의 북쪽 중앙에 남향 또는 북향으로 설치하였는데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건고(建鼓)를 가운데 두고 왼쪽(서쪽)에 삭고, 오른쪽(동쪽)에 응고(應鼓)를 함께 편성하였다. 삭고는 호랑이 모양의 받침대에 봉황의 머리로 장식한 나무틀을 세우고 그 틀에 북을 매단 형태이다. 북면을 북채로 쳐서 연주한다. 현재는 실제 연주에 사용하지 않는다.
북송(北宋)의 진양(陳暘, 1068~1128)은 『악서(樂書)』에서 『주례(周禮)』「소사(小師)」를 인용하여 “소악사(小樂事)에 인고(朄鼓)를 친다.”라고 하였고, 『의례(儀禮)』 「대사(大射)」를 인용하여 “응비(應鼙)는 동계 서쪽에 있는 건고의 동쪽에 진설하고, 삭비(朔鼙)는 서계 서쪽에 있는 건고의 북쪽에 진설한다.”라고 하였다. 또 “응비와 삭비라는 두 북은 그 소리가 모두 시끌벅적하며, 건고 옆에 쓰일 때는 항상 그 왼쪽에 진설된다. 옛날에 음악을 연주할 때 먼저 서쪽의 삭비를 치면 동쪽의 응비가 응했으니, 삭비는 시작할 때 치고, 응비는 화답하여 마칠 때 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시경』의 〈유고(有瞽)〉라는 시를 인용하여 “‘응고(應鼓)ㆍ전고(田鼓)ㆍ현고(縣鼓)를 연주한다.’라고 했는데, 정현(鄭玄)은 세주(細註)에서 전고를 인고로 설명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삭비와 인고는 모두 작은 북인데, ‘연주를 인도한다.’는 의미에서 인이라 하고, ‘연주를 시작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삭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삭고는 연주를 인도한다는 뜻에서 삭비라고 불렀고, 연주를 시작하게 한다는 뜻에서 인고라고 불렀으며 전고라고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삭고는 고려 예종 11년(1116)에 송나라로부터 대성아악을 연주하는 아악기의 하나로 유입되었다. 이 때의 명칭은 비고(鼙鼓)였다. 『세종실록』(1454) 「오례」에 삭고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고 『악학궤범』에 아악기의 하나로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전정헌가에 편성하여 조회와 연향 등에 사용하였다.
보통은 전정헌가의 북쪽 중앙에 남향 또는 북향으로 설치하였는데,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건고를 가운데 두고 왼쪽(서쪽)에 삭고, 오른쪽(동쪽)에 응고를 함께 배치하였다. 건고ㆍ삭고ㆍ응고가 한 짝을 이루게 되는데 『세종실록』「오례」에서는 세 짝이 북쪽에 배치되었다. 일부 문헌에서는 건고ㆍ삭고ㆍ응고의 배치를 다르게 기록하기도 한다.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1827) 「외보계헌가도(外補階軒架圖)」에서는 건고ㆍ삭고ㆍ응고를 북쪽에 북향으로 설치하여 북쪽건고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동쪽)에 삭고, 왼쪽(서쪽)에 응고를 배치하였다.
한편 『대한예전(大韓禮典)』(1898년경) 「전정궁가도설(殿庭宮架圖說)」에서는 전정궁가의 북쪽에 북향으로 설치되었는데,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삭고와 응고가 모두 건고의 왼편(서쪽)에 편성되었다. 두 악기는 왼쪽(서쪽)에 삭고 오른쪽(동쪽)에 응고가 배치되었다. 건고ㆍ응고ㆍ삭고 순서로의 배치는 1921년 다나베 히사오[田辺尚雄]가 촬영한 <궁중연례전정헌가악(宮中讌禮殿庭軒架樂)> 사진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대한제국기 고종 신축년(1901)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진찬의궤(進饌儀軌)』, 임인년(1902) 『진연의궤』에서는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여전히 건고를 가운데 두고 왼쪽(서쪽)에 삭고, 오른쪽(동쪽)에 응고를 배치한 형태가 확인된다. 현재 악기는 전하나, 실제 연주에 사용되지는 않는다.
○ 구조와 형태 ㆍ가자(架子): 나무틀 ㆍ봉두(鳳頭): 나무틀 맨 윗부분의 가로지르는 나무 양 끝에는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봉황 모양을 새긴다. ㆍ화광(火光): 봉두 사이 중앙에 있는 불꽃모양의 조각 문양. 위 그림 속에는 화광 중앙에 흰 원형 칠이 되어 있으나, 세종실록 「오례」, 『국조오례서례』, 『춘관통고』, 『대한예전』 등 의례서의 삭고와 응고는 화광 안쪽 문양이 위 그림과 같은 원 모양이 아니다. 『악학궤범』 및 여러 의궤에서는 원 모양인데, 그 색깔은 의궤나 도병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에서도 그림마다 화광 내 색깔이 일치하지 않아서 <진표리도>, <진찬도>, <악기도>에서는 두 악기 모두 하얀색이고 <헌가도>에서만 동쪽 삭고의 화광이 붉은색, 서쪽 응고의 화광이 하얀색이다. <무신진찬도(戊申進饌圖)>(1848)에서는 삭고와 응고 모두 화광에 녹색 원을 그려 넣었다. 한편 화광에 채색된 원이 그려진 동일한 악기 사진에 대해『조선아악기사진첩 건(朝鮮雅樂器寫眞帖 乾)』(1927-1930년 추정)에서는 이를 응고로, 『조선아악기사진첩』(1935)에서는 삭고로 다르게 소개하였다. 그러나 『조선아악기사진첩』과 한 쌍을 이루는 조선아악기해설(朝鮮雅樂器解說)』(1935)에서는 삭고의 틀 중앙에 흰색의 해가 장식되어 있고, 응고의 틀 중앙에 붉은색의 달이 장식되어 있다고 기록하였고, 이에 따르면 『조선아악기사진첩 건』과 『조선아악기사진첩』에 동일한 사진으로 수록된 해당 악기는 삭고가 아니라 응고에 해당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동쪽에 배치하는 응고에 달을 그리며 그 색이 붉은색인 점, 서쪽에 배치하는 삭고에 해를 그리며 그 색이 흰색인 점은, 여러 도상자료에서 확인되는 해‧달의 색상 및 방위와 어긋난다. 삭고‧응고 화광 문양을 해와 달로 상정하고 그 색상을 이처럼 언급한 기록은 20세기 이전 문헌에 전혀 보이지 않고, 함화진의 『조선악기편』(1919)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ㆍ북통과 북면: 북통 한 개를 매달아 놓은 형태이다. 북통에는 용무늬, 양쪽 북면의 중앙에는 태극 문양을 그려 넣는다. ㆍ호랑이[四虎]: 네 마리의 호랑이가 사방으로 엎드려 있는 형상을 한 받침대. 나무호랑이 받침대의 중앙을 뚫어 나무틀의 발을 꽂아 세운다. ㆍ목퇴(木槌): 나무로 만든 채 화광(火光)과 봉두(鳳頭), 호랑이 형상의 받침대 등으로 장식된 가자에 북을 매단 형태다. 화광은 봉두 사이 중앙에 있는 불꽃모양의 조각 문양으로 장식한다. 호랑이 네 마리가 사방으로 엎드린 형상의 받침대 중앙을 뚫어 나무틀의 발을 꽂아 세운다. 북통의 크기는 응고보다 조금 크고, 북통에는 용무늬를, 양쪽 북면의 중앙에는 태극 문양을 그려 넣는 것은 응고와 같다. 나무로 만든 북채로 한쪽 북면을 친다. ○연주방법과 기법 삭고는 건고ㆍ응고와 함께 한 짝을 이루어 배치된다.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건고를 가운데 놓고 왼쪽(서쪽)에 삭고를, 오른쪽(동쪽)에 응고를 진설(陳設)했다가 음악이 시작되면 먼저 삭고를 먼저치고 응고를 치고 축을 두드린 후에 건고를 쳐서 마치 작은 북이 큰 북을 인도하는 것처럼 연주한다. ○제작 및 관리 방법 북을 제작하는 일반적인 순서에 따라, 북통의 재료가 되는 나무를 고르고, 북통을 만들고, 가죽을 다루어 북을 메우고, 색을 칠하고, 북 틀과 장식을 만든다.
삭고는 건고에 부속된 북이다. 건고는 왕실의 영화를 상징하는 가장 화려하고 볼품 있는 북이다. 삭고ㆍ응고는 궁중 의례인 조회나 연향에서 항상 건고와 함께 전정헌가에서 울렸으며, 이 세 종류 북이 한데 모여 있을 때 비로소 음악적인 의미를 완성할 수 있다. 삭고는 봉황ㆍ호랑이 등의 동물 형상과 용무늬ㆍ태극 등의 다양한 문양 장식에 종교적ㆍ주술적 의미를 담은 채 오랜 세월 동안 궁중 악기로서 제자리를 지켜왔으나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국립고궁박물관 편, 『왕실문화도감 궁중악무』, 국립고궁박물관, 2014. 국립국악원 편,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11. 서한석 역주ㆍ김종수 감수,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11집: 역주 기사진표리진찬의궤』, 국립국악원, 2018. 송혜진 글ㆍ강원구 사진, 『한국 악기』, 열화당, 2001. 송혜진ㆍ박원모 글, 현관욱 사진, 『악기장ㆍ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민속원, 2006. 이지선 해제ㆍ역주,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10집: 조선아악기사진첩 건乾, 조선아악기해설ㆍ사진첩, 이왕가악기』, 국립국악원, 2014. 이혜구 역주, 『한국음악학학술총서 제5집: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진양 지음, 조남권ㆍ김종수 옮김, 『역주 악서 4』, 소명출판, 2014. 함화진, 『조선악기편』, 1919(봉해룡 필사본은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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