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장원례소리, 장원질소리
한 해의 논매기를 마치고 농민들이 농사장원례 행진을 하면서 하는 소리
풍장소리는 농민들이 마지막 논매기를 마치고 농사가 가장 잘된 집의 상일꾼을 농사장원으로 뽑아 풍장(풍물)을 치고 그 주인집으로 행진해 들어가면서 하는 소리다. 이들이 집으로 들어 닥치면 주인은 풍성한 음식을 대접한다. 이런 관행은 주로 전라남도 서남해안 지역에 퍼져 있다.
‘풍장’이란 ‘풍물’의 다른 말로서, ‘풍장소리’는 풍장(풍물)을 치면서 하는 소리라는 뜻이다. 농민들이 농사가 가장 잘된 집의 상일꾼을 ‘농사장원’으로 뽑아 그 주인집으로 들어가 한바탕 먹고 노는 농사장원례라는 관행이 역사적으로 언제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행렬의 모습이나 연주하는 음악을 살펴보면 전통사회에서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말을 타고 금의환향하는 모습을 모방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관행은 대규모 농민 집단을 전제로 하므로, 역사적으로 농민들이 대규모 조직을 갖추는 농촌 사회의 발전 단계와 궤를 같이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소농이나 머슴들로 구성된 일꾼들이 부잣집에서 음식을 대접받는 관행은 빈부 간의 위화감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기제로 볼 수 있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풍장소리의 다른 이름인 ‘장원례소리’에서 장원례란 원래 글방에서 글이나 글씨로 장원한 사람이 음식을 한턱내던 의례를 말한다. 하지만 농민들의 장원례는 단순한 글방 장원이 아니라 한양에 과거 보러 갔다가 장원급제한 선비가 금의환향하는 행렬을 모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농민들은 마지막 논매기를 마치고 나면 농사가 가장 잘된 집의 상일꾼(상머슴)을 농사장원으로 뽑아 삿갓을 뒤집어쓰거나 얼굴에 검댕을 묻히는 등 눈에 띄게 치장을 하고, 소나 괭이말, 작두말 또는 걸채 등에 높이 태우고 여럿이 풍물을 치고 노래하며 그 주인집으로 행진해 들어간다. ‘농사장원’이라는 표현도 그렇거니와, 농민들이 연출하는 행렬의 모습이 장원급제한 선비의 금의환향 행렬과 비슷한 것이다.
농사장원례 풍습은 주로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에서 발견되며, 전라북도 일부 지역에서도 비슷한 관행이 보고되어 있다. 경상북도에도 이와 비슷한 관행이 있었으나 ‘농사장원’을 뽑는 의례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악곡의 유형과 지역적 분포
풍장소리로 연행되는 악곡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농사장원례가 가장 왕성했던 전남 서부 평야지역에는 〈애롱대롱〉류의 악곡이 많고, 전남 서남 해안지역에서는 〈질꼬내기〉류, 전남 동부 산간지역에는 〈산아지타령〉·〈매화타령〉·〈양산도〉 등이 있다. 전북지역에서는 장원례소리로 〈섬마타령〉·〈뚜름박소리〉·〈방개타령〉·〈질꼬내기〉 등을 불렀고,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마을로 행진해 들어가면서 〈칭칭이소리〉·〈캥마쿵쿵노세〉·〈방아소리〉 등을 불렀다. 이 가운데 전남 서부 평야지대에서 널리 연행된 〈애롱대롱〉류의 악곡은 ‘아롱자롱’·‘가롱저롱’·‘각가롱저롱’ 등 다양한 후렴구의 변형이 있는데, 이들 후렴구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선비들의 장원급제 행렬에서 연주하던 삼현육각의 악기 소리를 구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칭칭이’와 ‘캥마쿵쿵’, 그리고 ‘뚜름박’ 등의 후렴구들도 풍물이나 뒤웅박 치는 소리를 구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질꼬내기〉 또는 〈질꼬냉이〉는 행차음악인 〈길군악〉이 와전된 것으로 본다.
○ 형식과 구성
풍장소리는 대부분 앞소리꾼이 메기고 다른 사람들이 일정한 후렴을 받는 선후창 방식으로 부른다. 들판에서 마을까지 행진하면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별다른 구성은 없다.
노랫말의 내용은 농사장원례를 행하는 날의 흥겨운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장원례소리를 한 곡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애롱대롱
(후렴) 애롱 대롱 지화자 좋네
애롱대롱 지화자 좋네
풍년새 운다네 풍년새 울어
금년년도에 풍년새 울어
여보소 선일꾼은 (중략)
소도 타고 말도 타고
여보소 대문을 열어라 (중략)
흥이로구나 흥이 났네
우리 농군을 흥이 났어
(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동당리 / 앞소리: 최학봉, 1919년생)
@ 에헤이 여루와 어루화 섬마섬마가 내사헤이
어루와 섬마섬마가 내사헤헤이 헤헤이
노자 좋다 젊어서 놀아 늙고 병들면 나 못노느니 에헤야하
간 디 족족 정들여 놓고 밤질 걷기가 시시낙녹허다 에헤야하
오늘 해도 다 되여가고 골목골목에 연기가 난다 에헤야하
산도 좋고 물도 좋다 우리네 들판에 풍년이 온다 에헤야하
옥사장아 문열어 다라 불쌍한 춘향이 옥안에 갇혀 있다 에헤야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앞소리: 황덕주, 1931년생)
한 해의 논매기가 마무리되는 시기는 대략 칠월칠석(음력 7월 7일)에서 백중(음력 7월 보름) 쯤이다. 이때가 되면 전국적으로 농사일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인 논매기를 마친 일꾼(머슴)들에게 주인이 잔치를 베푸는데, 이를 흔히 ‘호미씻이’라 하고 ‘풋굿’이라고도 한다. 농사장원례 관행은 이런 일반적인 호미씻이 풍습에 일꾼들이 누군가를 농사장원을 뽑아 보란 듯이 행진하는 나름의 의례가 덧붙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풍장소리는 일련의 농요 사이에 연행되기 때문에 농업노동요의 하나로 분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을 마치고 흥겹게 행진하면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성격상 노동요보다는 유희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논매기를 마치는 날에 일꾼들이 부잣집으로 행진해 들어가 음식을 제공받아 여흥을 줄기는 관행은 부유한 사람이 경제적 약자인 일꾼들에게 향응을 베풀어 위화감을 완화함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하는 사회적 기제로 볼 수 있으며, 풍장소리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남도들노래: 국가무형문화재(1973) 예천통명농요: 국가무형문화재(1985) 남도노동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1977)
‘풍장소리’라는 용어는 ‘풍물을 치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기 때문에, 같은 명칭이 다른 기능의 민요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런 사례로, 전라남도 영광에서는 일기 불순 등의 사정으로 마을 전체의 논매기 일정이 늦어질 경우 대규모 일꾼 집단을 동원해 한꺼번에 논매기를 하는데,(이를 ‘상두지심 맨다’고 한다) 이때 많은 인원을 통제하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풍물패가 논에 들어가 풍물 연주를 하는 가운데 여럿이서 부르는 노래를 ‘풍장소리’라 한다.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경상북도편』, 문화방송, 1995.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전라남도편』, 문화방송, 1993. 문화방송, 『한국민요대전-전라북도편』, 문화방송, 1995. 이소라, 『한국의 농요』, 현암사, 1985~1992. 지춘상, 『전남의 농요』, 전라남도, 1987. 최상일,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도서출판 돌베개, 2002.
최상일(崔相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