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지역에서 발생한 판소리의 일종으로 서도소리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극음악
배뱅이굿은 서도지방에서 발생한 극음악으로 남도의 판소리와 형태 및 연행 양상이 유사하다. 배뱅이라는 처녀의 탄생과 성장을 담은 전반부와 죽음과 해원의 넋굿을 다룬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20세기 초 평안도 용강 태생의 김관준(金寬俊)에 의해 미신 타파 사상이 강조되어 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뱅이굿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작품의 내용을 통해 대략 세 가지의 요소가 결합되어 발생한 것으로 유추된다. 첫째, 가짜 무당이 굿판에 뛰어들어 거짓으로 망자의 혼이 온 것처럼 꾸며 재물을 뜯어내는 내용으로 이는 17세기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도 실려 있다. 배뱅이의 출생과 성장, 상좌중과 사랑 이야기는 서사무가 ‘당금애기’와 흡사하다. 배뱅이굿의 후반부는 기밀굿으로 이루어졌는데 서도의 굿음악 역시 배뱅이굿의 주요 성분이다. 배뱅이굿은 이 같은 내용이 결합된 재담소리에서 출발하여 19세기 말엽에 서도 전역으로 퍼졌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배뱅이굿은 20세기 초 김관준이 개작했다고 하는데, 남도 판소리의 영향도 나타나며 당시 시대 사조였던 미신 타파의 주제를 담고 있다. 김관준 문하의 김종조(金宗朝), 최순경(崔順慶), 김칠성(金七星), 이인수(金七星) 등이 배뱅이굿의 명창으로 유명했다. 분단 이후 남한에서 활동한 이은관(李殷官, 1917~2014), 양소운(楊蘇云) 등이 전승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연행시기 및 장소 전통사회에서 배뱅이굿은 연행 조건이나 상황, 창자의 전문성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전문음악인들은 반주자를 대동한 채 회갑연과 같은 특별한 자리에 초빙되어 공연했다. 배뱅이굿 외에도 다양한 공연 종목이 함께 선보이는 경우가 많았으며 배뱅이굿은 주로 후반부에 연행되었다. 방 안이나 대청, 마당 등이 주요 무대가 되었으며, 관객이 많을 경우 마당에 멍석을 깔고 차일(遮日)을 치고 공연했다. 평안도와 황해도에는 겨울밤 사랑방이나 명절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혼자서 무릎장단을 치며 배뱅이굿을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전문 예인들도 많았지만 일반인들 가운데에도 배뱅이굿을 부르는 이들이 종종 있었을 만큼 널리 사랑을 받았던 소리이다. ○ 음악적 특징 배뱅이굿은 서도지역 음악이 기본이 되어 형성되었다. 대사와 몸짓 같은 연극적 요소 외에 노래로 불리는 대목을 살펴보면 서도의 민요와 잡가, 무가 등이 삽입되거나 음악적으로 새롭게 구성된 소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극적 전개에 따른 소리의 창작은 가창자의 역량이나 음악적 선택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 배뱅이굿의 소리 대목은 음악적 성격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 서도지역에 널리 알려진 노래들을 극적 전개에 맞게 배치하여 부르는 경우다. 배뱅이굿의 초두에 불리는 〈산염불〉을 비롯하여 〈둥둥타령〉, 〈회심곡〉, 〈축원경〉, 〈나무타령〉, 〈난봉가〉, 〈수심가〉 등이 그 예다. 이러한 노래는 대부분 관서지역의 음악어법인 수심가토리로 되어 있다. 이밖에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 〈정선아리랑〉 등 다른 지역의 노래들이 삽입가요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기존 가요의 삽입은 연행자에 따라 달리 선택될 수 있는 만큼 극적 전개에 긴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둘째, 〈산염불〉이나 〈수심가〉, 〈난봉가〉 등 서도지역의 익숙한 노래에서 선율만을 차용하여 노래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상좌중이 배뱅이 집을 찾아가는 대목이나 상좌중과 배뱅이의 대화 장면, 무당굿 대목, 가짜 무당이 떠나가는 마지막 대목 등에서 기존의 잘 알려진 선율로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배뱅이굿의 극적 전개에는 이와 같은 서도지역 수심가조, 난봉가조, 산염불조의 선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기존의 노래나 선율이 아닌 새롭게 짜인 소리대목도 있다. 이 가운데에는 경서도의 음악 어법 외에 남도 음악의 영향도 살필 수 있는 대목도 있는데, 이는 남도 판소리에 비견되는 대목이다. 예컨대 양소운의 배뱅이굿에는 <산천 톺는 소리>를 비롯하여 <비손소리>, <출산 대목>, <예장 받는 대목> 등 새롭게 창작된 대목이 많다.
한편 이은관의 소리에는 상좌중이 채독 속에 든 채로 배뱅이와 말을 주고 받는 대목을 새롭게 짠 〈상좌중과 수작〉 대목이 있다. 이 대목은 비록 길이는 짧지만 메나리토리, 경토리, 수심가토리가 모두 나타난다. 하나의 인물이 동시에 두 가지 토리와 여러 장단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리 대목의 생성 방식이 독특한 대목이다.
○ 형식과 구성 배뱅이굿은 배뱅이가 성장하여 약혼을 앞두고 죽게 되는 전반부와, 죽은 배뱅이의 원혼을 풀어주는 기밀굿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다양한 노래와 음악으로 구성되며, 후반후는 굿판에서 불리는 무가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황해도의 통속민요인 〈산염불〉로 목을 푸는 한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1) 전반부 배뱅이굿은 퇴로 재상 세 사람이 자손을 보고자 명산대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러 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삼정승의 부인들은 산천기도 후 각각 꿈 하나씩을 얻는데, 이렇게 하여 태어난 딸들이 세월네, 네월네, 배뱅이였다. 가까운 동무로 지내던 세월네와 네월네가 먼저 시집을 간 뒤 배뱅이도 뒤늦게 약혼을 하였는데 이때 마침 시주하러 온 상좌중과 마주쳐 사랑에 빠지고 만다. 상좌중과 인연을 맺지 못한 배뱅이는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상 전반부에서 불리는 삽입가요는 삼정승 부인이 산천기도를 가는 〈나무타령〉, 태어난 딸들을 안고 어르는 〈둥둥타령〉, 상좌중의 〈회심곡〉, 죽은 배뱅이를 장사지내는 〈상여소리〉 등이다. 이 밖에도 이야기의 전개나 대화, 상황의 묘사 등은 서도소리나 경기소리, 혹은 다른 지역 음악의 선율을 차용하여 노래한다. (2) 후반부 죽은 배뱅이의 넋을 불러 위로하기 위해 벌이는 굿판에는 팔도의 유명한 무당들이 모여든다. 한 사람씩 들어서서 배뱅이의 넋을 불러보지만 아무 소식이 없던 차에 남몰래 배뱅이가 죽은 사정을 엿들은 평양의 건달이 배뱅이의 혼이 온 거처럼 가짜 굿을 하여 배뱅이 부모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어 내는 내용이다. 팔도의 무당이 벌이는 굿판에는 팔도의 민요가 등장하기도 하고 각 지역의 무가가 불리기도 한다. 기밀굿 장면에서는 무당의 공수와 넋두리가 죽은 배뱅이가 생전에 못 다한 말을 풀어내도록 한다. 가짜 무당이 떠나는 마지막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산염불〉로 마무리를 한다. 남도 판소리가 소리와 아니리, 발림을 주요 요소로 삼아 노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뱅이굿도 소리와 대사, 그리고 몸짓을 섞어 이야기를 전달한다. 배뱅이굿은 장고 반주에 맞추는데, 반주자 외에도 뒷소리를 받아주는 가창자들이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배뱅이굿에는 〈산염불〉을 비롯하여 민요와 무가 계통이 많이 불리기 때문에 받는소리를 풍성하게 함으로써 음악적 효과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창) 오마니! 오마니! 오마니 날 같은 계집은 길러서 무엇에다가 쓸랬든지 앞집의 세월네 오만과 뒷집의 네월네 오만과 … (중략) … 바굼지 안에 넣어 안방 뒤지돈이나 내다 주려므나, 으응 (아니리) 그때야 배뱅이 어머니가 사실 배뱅이가 분명하거든. … (중략) … 그때는 배뱅이 어마니가 나와설랑 입을 삐쭉삐쭉 비비며 나가우는데. (창) 아이고 응. 배뱅아! 요놈의 종자가 … (중략) … 큰머리하라고 사온 것 그것도 내다주려무나, 응. (아니리) 여러 사람이 보니 사실 배뱅이가 온 게 분명해. … (중략) … 난중에 모르는 걸 대라면 큰일 나겠거든. 그때는 단판에 치고 나옵니다. (창) 오마니! 오마니! 저는 부명에두 죽지 않구 부모의 불초한 여식으루 생겨서 … (중략) … 불 놓지 말구 박사 무당께로 다 유임을 시켜주려무나. (아니리) 노친은 뭣두 모르구 (창) 아이구 응응, 그까진 예장이 뭐이고 재산이 뭐이갔니. … (중략) … 모두실려 사원 파발거리로다 내실려다고.
- 〈배뱅이 어머니에게〉 최순경 창 -
배뱅이굿의 대사에는 서도의 재담이 많이 반영되어 있으며, 남도의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서도 지방의 토착어로 된 표현이 많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서도음악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었으나 배뱅이굿이 남한에서 전승하게 되면서 음악은 물론 언어적으로도 변모하게 되었다.
배뱅이굿은 서도지역을 배경으로 발생한 극음악으로서 남도의 판소리에 비견되는 서도의 판소리이다. 배뱅이굿은 굿판에서 연행되는 재담소리의 성격도 보이지만 김관준에 의해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갖추고 공연물로서 내용과 형식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발생적 측면에서 남도 판소리와 선후를 밝히기는 어려우나 현재의 배뱅이굿의 20세기 전후 남도 판소리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며 분단 이후 전승 환경의 변화와 시대적 변천을 거쳐 오늘의 모습에 이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84)
김인숙·김혜리, 『서도소리』,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김인숙, 『서도소리』, 국립무형유산원, 2018. 김상훈, 「배뱅이굿 연구」, 인하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김인숙, 「배뱅이굿 음악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김인숙(金仁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