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좌창(西道座唱)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의 전문 소리꾼들이 앉아서 부르는 민속 성악
넓은 의미에서의 서도잡가는 좌창ㆍ입창ㆍ민요 등을 아우르지만, 분단 이후 서울의 좌창이 12잡가로 레퍼토리화되고 있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서도의 좌창만을 떼어서 서도잡가라는 이름으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앉아서 부른다 하여 서도좌창(西道座唱)이라고도 한다.
19세기 중엽에 전문 가객이나 유랑 예인을 중심으로 여항의 시정 문화가 전문 소리패나 붙박이 예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 대중문화로의 전이가 일어났다. 이때, 잡가는 상층인들에 의해 창작이 되었으나 유흥의 거리에 내려와서 기생들의 입에 오르내리고부터 서민층까지 즐기게 된 소리이다. 서도잡가는 소리꾼으로 평양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학식이 높았던 허득선(許得善)이 긴 사설의 노래를 다듬고 그 사설에 가락을 얹어서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및 연행 시기 및 장소
서도잡가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소리꾼들에게 전승되어오는 전문가들의 노래를 가리킨다. 서도 소리꾼들은 평양에서 많이 났다. 고종 때 허득선과 그의 후배 김관준(金寬俊) 두 명창이 나왔고 이 두 사람에 의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허득선 이후로 문영수(文泳洙, 1867~1930)ㆍ이정화(李正華, 1865~1920)가 주축이 된 평양 날탕패가 서울에서 서도소리를 퍼뜨려 박춘재(朴春載, 1883~1950)ㆍ최정식(崔貞植, 1886~1951)ㆍ박인섭(朴仁燮, 1898~1951)ㆍ김태운(金泰運, 1897~1963)ㆍ유개동(柳開東, 1898~1975)ㆍ김경호(金慶鎬)ㆍ원경태(元慶兌) 등과 함께 원각사ㆍ광무대ㆍ단성사 등의 실내 극장에서 연행하였다. 이때부터 경기 명창들도 서도소리를 썩 잘하게 되었고, 상업적이고 유흥적인 도시 대중적 성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김칠성(金七星)도 평양 출신으로 허득선ㆍ김관준의 제자이다. 서도잡가와 《배뱅이굿》을 잘 불렀고 특히 서도입창이 장기였다.
김칠성 문하인 김정연(金正淵, 1913~1987)이 서도소리의 명창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타계하였고, 또한 평양에서도 많은 제자를 내었던 김밀화주(金密花珠)의 문하 장금화(張錦花)에게 배운 오복녀(吳福女, 1913~2001) 명창은 1999년에 작고하였다.
현재는 김정연에게서 김광숙(金光淑, 1952~)에게로, 오복녀에게서 이춘목(李春木, 1953~)으로 이어지고 있다.
○ 형식과 구성(악곡 구성, 가창 방식, 반주 악기편성 등)
서도잡가는 일반적으로 서도의 좌창만을 일컫는데, 〈공명가(孔明歌)〉ㆍ〈사설공명가〉ㆍ〈제전(祭奠)〉ㆍ〈초한가(楚漢歌)〉ㆍ〈배따라기〉ㆍ〈자진배따라기〉ㆍ〈영변가(寧邊歌)〉 등을 말한다.
○ 음악적 특징
서도잡가는 격조 높은 한문 가사를 지닌 노래를 전문 창자들이 잡가화시킨 것이라 서사적인 긴 사설을 가지고 있고 장단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노래 부르기가 매우 까다롭다. 그러므로 오랜 기간 정식으로 배우고 익혀야만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점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선율 악기의 반주를 수반하지 않고 장구로만 반주를 하는데, 경기의 긴잡가가 대부분 도드리장단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하여, 서도잡가는 일정한 장단이 없는 무장단(無長短)으로 되어 있다. 사설에 따라 장단이 들쭉날쭉하여 3소박 3ㆍ4, 5ㆍ6박 등이 엇갈려 나온다. 그러므로 노래를 전부 체득하고 있어야 반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공연을 하는 경우에는 보통 가창자가 직접 장구 반주를 하든가, 혹은 스승이나 동문수학한 소리꾼이 반주를 하기 마련이다.
가락의 진행은 공통적으로 〈엮음수심가〉처럼 간단한 가락에 사설을 촘촘히 엮어서 불러나가다가 제일 끝의 한 구절은 〈수심가〉와 같은 가락으로 여민다.
창법은 콧소리로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 큰소리로 길게 쭉 뽑다가 갑자기 속소리로 콧소리를 섞어 떠는 소리 등이 특징이다. 이러한 창법은 남도의 목을 눌러서 내는 창법이나 경기의 우아한 두성(頭聲) 창법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주요 구성음이 ‘레(re)-미(mi)-솔(sol)-라(la)-도(do′)’이며 ‘라(la)’에서 특유의 굵은 요성이 나타나는 수심가토리로 되어 있다.
잡가는 상업적이고 유흥적인 도시 대중적 성향 때문에 기존의 가곡·가사·시조와는 다른 기층 예술의 결정체로서 즐겨 불려졌다. 서도잡가는 서도민요ㆍ송서ㆍ시창과 《배뱅이굿》까지를 묶어서 ‘서도소리’라 하여 1969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서도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9)
이창배,『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6. 김영운, 「경기 십이잡가의 음악 형식」, 『한국민요학』 10, 2002. 김학성, 「잡가의 생성기반과 사설엮음의 원리」, 『세종학연구』 12ㆍ13, 1998. 신현남, 「산타령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이성초, 「서도 잡가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신현남(申鉉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