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좌창(京畿坐唱)
서울ㆍ경기 지방의 전문 소리꾼들이 앉아서 부르는 민속 성악
잡가란 정가(正歌)로 분류되는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時調)와 상대되는 민속 성악이라는 의미로, 그 담당층은 평민 가객이나 기층(基層)의 전문 소리꾼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잡가는 8잡가와 잡잡가로 구분되는 긴잡가와 휘모리잡가를 포함한다. 앉아서 부르는 실내악 형태의 노래이기 때문에 경기좌창(京畿坐唱)이라고도 한다.
경기잡가는 대개 19세기 중엽에 사계축(四契軸) 소리꾼들 사이에서 처음 불렸다. 사계축은 지금의 서울 만리동ㆍ청파동 일대를 가리키는 지역으로 이곳의 상공인들 중에서 유명한 소리꾼이 많이 나왔고, 이 지역에 산재했던 공청(公廳)이 소리꾼들의 공연장이며 동시에 연습장 겸 전수장이 되었다. 사계축 외에도 사대문안과 우대(인왕산 부근의 동네)와 아래대(동대문과 광희문 지역을 이르던 말), 그리고 왕십리와 뚝섬 등에도 전문 소리꾼들이 있었다고 한다.
○ 역사적 변천 과정 및 연행 시기 및 장소 가곡ㆍ가사ㆍ시조의 고급 문화 장르에도 익숙하면서 이러한 역량을 통해 12잡가(좌창의 긴잡가)와 휘모리잡가를 생성ㆍ발전ㆍ파생시킨 것은 추교신(秋敎信)ㆍ조기준(曺基俊)ㆍ박춘경(朴春景)으로 대표되는 사계축 소리꾼들이다. 그 이후 조기준에서 최경식(崔景植, 1876~1949)ㆍ최정식(崔貞植, 1886~1951)으로 이어지고, 박춘경에서 박춘재(朴春載, 1883~1950)로 전승되는데, 그리고 이들과 함께 어울린 삼패기생들이 부른 잡가를 통틀어 좌창계열 잡가라 한다. 이들은 또 협률사나 원각사의 공연이나 권번의 예기(藝妓) 교육을 통하여 경기잡가를 전파하였다. 상업적이고 유흥적인 도시 대중적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경기잡가의 유행을 견인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잡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잡가 연주자들은 이창배(李昌培, 1916~1983)가 1957년에 설립한 청구고전성악학원(靑丘古典聲樂學院)을 통하여 잡가를 비롯한 경ㆍ서도소리를 공부하였다. 경기잡가는 서울ㆍ경기 지방 전문 음악인인 경기 명창들의 주된 연주 곡목으로, 그 중 12잡가(긴잡가)는 1975년에 ‘경기민요’라는 종목명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묵계월(墨桂月, 1921~2014)ㆍ이은주(李銀珠, 1922~2020)ㆍ안비취(安翡翠, 1926~1997)가 첫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고, 이어서 1997년 이춘희(李春羲, 1947~)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 형식과 구성 경기잡가는 8잡가와 잡잡가(雜雜歌)로 구분되는데, 8잡가란 〈유산가(遊山歌)〉ㆍ〈적벽가(赤壁歌)〉ㆍ〈제비가〉ㆍ〈집장가(執杖歌)〉ㆍ〈소춘향가(小春香歌)〉ㆍ〈선유가(船遊歌)〉ㆍ〈형장가(刑杖歌)〉ㆍ〈평양가(平壤歌)〉 등이고, 잡잡가는 〈달거리〉ㆍ〈십장가(十杖歌)〉ㆍ〈방물가(房物歌)〉ㆍ〈출인가(出引歌)〉 등이다.
휘모리잡가는 주로 삼패기생(三牌妓生)과 소리꾼 사이에서 널리 불린 소리로, 예전에는 소리꾼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긴잡가를 부르고, 다음에 선소리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휘모리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전창(傳唱)되는 곡으로는 〈곰보타령〉ㆍ〈생매잡아〉ㆍ〈만학천봉〉ㆍ〈육칠월흐린날〉ㆍ〈한잔부어라〉ㆍ〈병정타령〉ㆍ〈순검타령〉ㆍ〈기생타령〉ㆍ〈바위타령〉ㆍ〈비단타령〉ㆍ〈맹꽁이타령〉 등이 있다. ○ 음악적 특징 잡가는 운율에 있어서 전통 시가에서 주로 나타나는 4음보를 벗어나는 파괴적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잡가가 창 위주이고 일상생활을 노래하기 때문에 4음보의 규칙적인 율조를 지키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음악적 특징은 12가사의 그것과 비슷하다. 즉, 장단이 가사처럼 도드리장단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며, 예외로 〈집장가〉만이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다. 음계는 경토리와 수심가토리로 된 것이 대부분이고, 경토리와 수심가토리가 섞여있는 경우도 있다. 12잡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잡가는 선율악기의 반주를 수반하지 않고 장구로만 반주를 한다. 형식은 약간 불투명한 유절 형식, 즉 마루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사설은 가사가 지식층들이 즐겨 인용하는 한문시를 많이 혼용하고 있는 데 반하여, 잡가는 서민들의 직설적인 표현이 많다. 창법은 가사가 가늘고 부드러운 속청을 많이 쓰는 정악적(正樂的)인 표현법을 쓰는데 반하여, 잡가는 소위 ‘잡가목’이라 하여 굵고 힘차고 폭이 넓은 요성(搖聲)을 많이 쓴다. 한편, 휘모리잡가는 그 사설이 대개 사설시조와 같이 장형시조의 변형이며, 통절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래는 대체로 자진(볶는)타령장단에 얹어 부르며, 선율은 경토리 선율에 시조목이 섞여 있으며, 노래의 종지는 시조처럼 4도 아래로 툭 떨어져 종지하기 때문에 시조의 변형으로 보기도 한다.
잡가는 조선 후기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해 불려지고, 가곡ㆍ가사ㆍ시조 등의 정형에서 벗어나서 널리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노래를 이른다. 그러므로 잡가는 기층 예술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경기잡가 중 12잡가(긴잡가)는 1975년에 ‘경기민요’라는 종목명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민요: 국가무형문화재(1975)
이창배,『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6. 김영운, 「경기 십이잡가의 음악 형식」, 『한국민요학』 10, 2002. 김영운, 「경기 십이잡가의 음조직 연구」, 『한국음악연구』 32, 2002. 김학성, 「잡가의 생성기반과 사설엮음의 원리」, 『세종학연구』 12ㆍ13, 1998. 신현남, 「산타령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신현남(申鉉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