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명창들에 의해 불리는 느린 속도의 기교와 세련미를 지닌 아리랑
긴아리랑은 〈구조아리랑〉을 바탕으로 전문 음악인들이 장식음과 시김새를 첨가하고 느린 속도로 부르는 경기 지방 아리랑의 한 종류이다. 이 곡은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5음음계로, 선율은 대부분 순차 진행하며 음계의 최저음인 ‘솔(sol)’을 향하여 하행 진행하면서 곡을 끝맺고 있으므로 경기 지역 음악 어법 중 진경토리에 해당한다. 또한 한 장단이 3소박 12박으로 매우 느린 악곡인데, 경우에 따라 악절의 끝 박을 축소해서 부르는 경향이 있어 박자가 불규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비교적 넓은 음역대에 걸쳐 선율이 구성되어 있다.
<긴아리랑>이란 악곡명이 처음 보이는 문헌은 1914년 이상준이 발간한 조선속곡집이다. 이 문헌에서 <긴아리랑>의 악곡명은 <긴아르렁타령>, 부제 ‘정차장타령(停車場打令)’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부제는 아마 김계선의 대금반주에 조모란이 노래한 콜럼비아음반의 사설 “아리랑고개다 정거장을 짓코 님기차오길 고대고대한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긴아리랑>은 1930년에 이진봉과 김옥엽이 녹음해서 발매한 발매된 콜럼비아음반을 시작으로 1930년대 말까지 지속적으로 음반이 발매되었다. 이 곡이 처음 발매된 음반에는 잡가(雜歌)라 장르가 표기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표현은 1935년 발매된 음반까지에서도 보이며, 1932년에는 경기잡가라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즉 1932년부터 1935년까지는 잡가・속요・속곡・민요・경기잡가 등의 표현이 보인다. 그러나 1936년부터는 ‘서도잡가(西道雜歌)・경기잡가(京畿雜歌)’와 같이 경기외에 서도를 더한 두 지역이 모두 표기되어있으며, 1937년에는 ‘서도잡가’로만 장르명이 표기되기도 하였다. 이후 1939년에는 ‘대중민요(大衆民謠)’라는 장르명이 보이는데, 이는 아마 <태평가>의 전신인 <태평연>을 처음 녹음한 대중가수 선우일선이 불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듯 <긴아리랑>은 잡가・속요・대중민요 등 다양한 장르명으로 구분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당시 유성기음반에 녹음한 창자들은 김종조 등 서도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긴아리랑>이 처음 발매된 음반에 녹음한 이진봉과 김옥엽 역시 서도출신 명창이다. 긴아리랑은 박춘재(朴春載, 1881~1948)와 광무대에 출연하던 김송죽이 극장무대나 가설무대에서 많이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와 같은 근대식 공연 공간은 단성사(團成社)・혁신단(革新團)・광무대(光武臺)・우미관(優美館)・황금관(黃金)・조선연극관(朝鮮演劇館) 등이 있었는데, 이 장소들은 1915년 당시 운영되었던 극장들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점들을 미루어 보아 <긴아리랑>은 <구조아리랑>을 모태로 전문음악인들이 변화시켜 무대에서 공연종목으로 연주되던 악곡으로 <본조아리랑>이 생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긴아리랑은 〈구조아리랑〉을 바탕으로 전문 음악들이 세련되게 다듬어 감상용의 기능으로 변화시킨 곡이다. 〈구조아리랑〉이 경기 지방 음악어법인 진경토리로 구성되어 있는바, 긴아리랑 역시 경기 지방의 대표적인 음악어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음계는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다섯 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율은 대부분 순차 진행한다. 또한 악곡이 끝날 때에는 선율이 하행하면서 음계의 최저음인 ‘솔(Sol)’로 종지하는 진경토리 혹은 창부타령조라는 경기도 음악어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기민요는 대부분 굿거리나 세마치장단에 맞춰 연주하는데, 이 곡은 악곡명 앞에 ‘긴’ 자가 붙어 있듯이 매우 느리게 불린다. 정선 지역에서 느리게 부르는 〈아라리〉가 3소박 6박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이 보다 두 배 이상 느린 3소박 12박인데, 악절의 끝의 박을 축소해 부르는 경향이 있어 일정한 장단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후렴을 지닌 유절형식으로 각 절은 두 개의 악절로 이루어져 있다.
1930년에 발매된 콜럼비아음반의 이진봉과 김옥엽이 부른 <긴아리랑>의 후렴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구료 아리랑 어리얼쑤 어리얼러주오’, 또 다른 콜럼비아음반에 녹음된 김계선 대금 반주에 조모란이 부른 <긴아리랑>의 후렴은 ‘아리랑아리랑 아라리로구나 아리랑아리랑 아라리로구나’로 동일 콜럼비아음반에서도 후렴의 차이가 나타난다. 1932년 폴리돌음반에 녹음된 이영산홍과 이진봉의 <긴아리랑> 후렴은 ‘아리랑아리랑 아라리로고나 아리랑 어리얼수 아라리로구나’이다. 1935년에 발매된 빅타음반의 조모란과 김연옥이 부른 <긴아리랑>의 후렴은 ‘아르렁 아르렁 아라리로구나 아르렁 어리얼수 얼이얼러주마’, 1938년에 발매된 오케음반의 장학선이 부른 <긴아리랑>은 피리 반주에 맞추어 후렴 없이 각 절에 해당하는 부분만 녹음되어 있다. 또한 대중가수인 선우일선의 노래가 녹음된 1935년 발매 폴리돌음반의 <긴아리랑> 후렴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구려 아리랑 아리얼수 넘어간다’이다. 이와 같이 각 시기마다 조금씩 다른 후렴의 가사를 지니고 있는데, 현재의 후렴의 가사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구료 아리랑 아리얼쑤 아라리로구료’와 가장 유사한 것은 1932년 발매된 이영산홍과 이진봉이 녹음한 폴리돌음반의 <긴아리랑>이다. 현행에서 불리는 <긴아리랑>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구료 아리랑 아리얼쑤 아라리로구료 1. 만경창파(萬頃蒼波) 거기 둥둥 뜬 배 게 닻 주어라 말 물어 보자 2.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 짓고 정든 임 오시기만 고대 고대한다 3. 우연히 저 달이 구름 밖에 나더니 공연한 심회를 산란케 한다 4. 춘하추동 사시절에 임을 그리워 나 어이 살거나 5. 누구를 보고자 이 단장했나. 임 가신 나루에 눈물비 온다 6. 낙락장송을 더덥썩 잡고 외로운 마음을 하소나 할까 7. 산 적적 월 황혼(山寂寂月黃昏)에 이별한 임 그리워서 달랠 길 없네 8. 임 이별하던 날 내 어서 살았나 모질고 거센 세파 어이 살아갈까 9. 고운 얼굴에 눈물이 지니 이화도화춘대우(梨花桃花春帶雨)로다 10. 푸른 물결에 두둥실 뜬 백구(白鷗) 내 마음 아픈 걸 네 어이 알소냐(후략)
경기지역에서 불리는 긴아리랑은 강원도의 〈긴아라리〉인 〈정선아리랑〉을 경기도 음악어법으로 바꾸고 속도를 두 배 이상 느려서 형성되었다는 학설 이후에 경기도 〈구조아리랑〉의 후렴구의 긴아리랑의 후렴구를 비교하였을 때, 긴아리랑의 후렴구의 전반부는 〈구조아리랑〉의 후렴구와 유사점이 많지만, 후반부는 차이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선율이 매우 복잡하게 짜여 있는 점으로 보아 경기도의 〈구조아리랑〉이 먼저 생기고, 이 〈구조아리랑〉을 바탕으로 전문음악인들이 세련되게 다듬고 음악적 전문성을 첨가하여 새롭게 짜서 부른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긴아리랑의 후렴구나 각 절은 그 선율이 매우 복잡하여, 기존 〈구조아리랑〉의 후렴 선율에 장식음이나 시김새를 첨가하여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가창되는 통속민요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조아리랑〉을 바탕으로 긴아리랑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본조아리랑〉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상만 편술, 『조선속곡집』, 조선복음인쇄소, 1914.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홍인문화사, 1976. 김영운, 「〈아리랑〉 형성과정에 대한 음악적 연구」, 『한국문학과 예술』 7, 2011. 이보형, 「아리랑소리의 根源과 그 變遷에 관한 音樂的 硏究」, 『한국민요학』 5, 1997. 이용식, 「강원도 〈아라리〉의 음악적 특징과 원형적 특질」, 『한국민요학』 25, 2009.
이윤정(李侖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