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唱者)가 노래하면서 직접 가야금으로 연주하며 노래하는 형태의 음악
판소리 창법으로 노래하며 산조가야금을 이용해 가야금산조의 연주법으로 반주하는 것으로 병창(竝唱)으로 불리는 가야금병창, 거문고병창, 해금병창 중에 가장 활발히 연주되는 장르이다.
19세기 초 신재효가 정리한 〈변강쇠가〉의 사설에는 가야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후 초기 가야금산조의 명인들이 기악뿐 아니라 병창의 형태 구축과 전성기를 이끌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 전승 가야금병창의 초기 인물로 가야금산조의 틀을 만들었다 거론되는 김창조와 한숙구가 대표적이며 이 외에 오수관, 정남옥 등이 있다. 초창기 가야금산조 명인들로 알려진 김창조, 한숙구, 박팔괘, 정남희 등은 대부분 여러 악기를 모두 다루는 명인들로 판소리와 더불어 병창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후 1930년대에 이르러 가야금병창은 연주자 수가 증가하며 유성기음반과 방송국 출연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당시 활동한 연주자에는 심정순(沈正順, 1873~1937), 박팔괘(朴八卦, 1882~1940), 심상건(沈相健, 1889~1965), 강태홍(姜太弘, 1893~1957), 오태석(吳太石, 1895~1953), 한성기(韓成基, 1899~1950), 정남희(丁南希, 1905~1984), 김병호(金炳昊, 1910~1968), 김죽파(金竹坡, 1911~1989), 이소향(李素香, 1916~1985), 함동정월(咸洞廷月, 1917~1994) 등으로 가야금병창은 이들에 의해 전성기를 이루었다. 유성기음반이 제작되는 시기의 초반에는 충청권과 남도권의 소리가 함께 공존했으나(박팔괘, 심정순 등) 1930년대 전남 순천 낙안 태생의 오태석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남도권 가야금병창의 흐름을 구축하였다. 가야금병창은 근래에 이르러 그 중요성을 인정받으며 박귀희(朴貴姬, 1921~1993)가 1968년, 정달영이 1988년에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그중 정달영의 음악은 강정열(姜貞㤠, 1950~)에게 전승되었고 박귀희의 음악은 강정숙(姜貞淑, 1952~) 2001년 9월 6일 박귀희의 제자로 국가무형문화유산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인정 에게 전승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즉, 가야금병창은 발생 초기 충정권과 남도권에서 다양한 명인들에 의하여 연주되었으나 이후 남도권 출신의 명인들이 주도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박귀희와 정달영의 계보로 나뉘어 전승되고 있다. 김창조-오수관, 강태홍-오태석-박귀희-강정숙 한숙구-한수동, 서공철, 정남옥 -정달영-강정열
1) 충남 아산 출신, 20세기 초 가야금병창·판소리·기악 심방곡으로 서울 장안에서 이름을 떨침.
2) 충북 청원 출신, 충청제의 독자적인 산조 가락을 만들고, 1912년 5개의 가야금병창 음반을 남김.
3) 충남 서산군 해미 출신, 부친 심창래로부터 배움.
4) 전남 무안 출신, 김창조에게 사사 받았고 강태홍류 가야금산조와 1935~1938년에 걸쳐 가야금병창 음반을 녹음함.
5) 전남 순천 낙안 출신, 오수관의 아들, 1933년 조선 성악연구회 창립후 가야금병창으로 최고의 명성을 떨쳐 1929~1939년까지 꾸준히 가야금병창을 녹음함.
6) 전남 강진 출신, 김창조에게 사사, 1930년대 초반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함. 1922년 녹음, 1932~1933년 녹음이 있음.
7) 전남 영광 출신, 안기옥과 강태홍에게 사사, 가야금산조 명인이지만 1934년부터 1940년까지 가야금병창의 기록이 나타남, 정남희의 창작으로 보이는 단가와 신민요를 남김.
8) 전남 영암 출신, 호는 금암, 김창조에게 사사, 김병호류 가야금산조 완성.
9) 전남 영암 출신, 본명은 김난초(金蘭草), 예명 김운선(金雲仙),김창조의 손녀로 8세부터 가야금을 배웠고, 김창조의 수제자인 한성기에게 가야금을 사사함, 김죽파가야금산조를 완성하고, 1979년 5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인정.
10) 경북 경주 출신, 강태홍에게 사사, 오태석과 함께 여류 가야금병창 명인으로 가장 인기를 끔. 1931년부터 1937년대 가야금병창 음반활동이 나타남.
11) 전남 강진 출신, 본명 함금덕, 광주권번 출신으로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고, 1938년 10개의 가야금병창 음반을 녹음함.
12) 경북 대구 출신, 본명 오계화, 강태홍에게 가야금을, 오태석에게 가야금병창을 사사하여 1968년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인정됨. 오태석 이후 가야금병창의 대중화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함
13) 2001년 9월 6일 박귀희의 제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인정.
○ 형식과 구성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아니리와 창이 결합되는 구조를 반복하고 각 소리 대목을 연결할 때에도 아니리를 삽입한다. 대부분 아니리에서는 가야금반주 없이 소리만, 창을 하는 부분에서는 가야금반주를 함께하는 형식이다. 유성기음반에는 다양한 지역의 민요와 잡가를 가야금병창으로 녹음한 것이 상당수 있었으나 점차 레퍼토리가 판소리, 단가, 신민요로 축소되었으며 판소리 대목 중 진양조나 자진모리가 길게 지속되는 대목은 가야금병창으로 노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새타령〉의 경우, 판소리 전체 가사 중에 몇 부분을 조합하여 부르기도 하며, 민요에 있어서는 메기고 받는 형식을 기반으로 반복을 많이 하기도 한다. 가창에 있어서는 판소리보다 선율이 안정적이고 평이한 경향이 나타난다. 가야금반주는 대부분 소리의 선율을 따라하는 수성가락을 연주하지만 가야금 선율에 맞추어 노래를 바꾸기도 한다. 가야금반주의 가장 큰 기능은 소리의 흐름에서 중요한 음이나 선율을 강조, 장단의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첫 박에 강세, 옥타브 동시 연주 등), 소리가 쉬는 부분을 채우는 등 장단의 박을 짚어주는 장구의 역할이다. 다른 기능으로는 노래의 시작과 끝에 전주와 후주를, 사설과 사설 사이에 소리는 쉬고 가야금만 연주하는 간주를 담당하여 노래의 효과를 살리고 있다. ○ 음악적 특징 1) 장단 가야금병창의 장단은 판소리의 장단을 사용하지만 판소리가 다양한 장단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가야금병창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정도만 사용한다. 2) 악조 판소리의 악조 가운데 계면조와 우조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3) 음악적 특징 가야금병창은 기본적으로 서정적인 더늠 위주로 짜이기 때문에 서사적인 구조의 판소리처럼 우람하고 분방한 맛은 적다. 그러나 그에 반해 창과 가야금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맞물려 고도의 음악적 기교로 어우러지는 특징이 있다. 특히 ‘석화제’라는 창법을 쓰는데, 이는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음악적 표현을 말한다. 또한 가야금병창은 하나의 장르에 특정되지 않고 판소리, 민요 등을 다양하게 선택해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연주자들마다 새롭게 창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편성을 지니는 레퍼토리를 주로 연주하는 가야금병창은 다양한 컨텐츠를 모두 담아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또한 간단히 반주를 붙여 노래할 수 있는 점,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무리 없는 발성으로 여러 장르의 노래를 할 수 있는 점, 가야금과 함께 연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음감을 느낄 수 있는 점 등으로 보편적인 보급이 가장 용이한 장르이다.
김창조 계열에서 박귀희로 전수되는 악곡은 단가 중 〈청석령〉, 〈녹음방초〉, 〈대장부가〉, 〈죽장망혜〉, 〈명기명창〉, 〈백발가〉, 〈사발가〉, 〈공명가〉, 〈호남가〉, 《춘향가》에서는 〈천자뒷풀이〉, 〈사랑가〉, 〈조운모우〉, 〈군로사령〉, 〈갈까부다〉, 〈쑥대머리〉, 《흥보가》에서는 〈중타령〉, 〈감계룡〉, 〈유색황금눈〉, 〈구만리〉, 〈제비점고〉, 〈제비노정기〉, 《수궁가》에서는 〈토끼화상〉, 〈여봐라 주부야〉, 〈여보나리〉, 〈고고천변〉, 〈가자 어서가〉, 〈제기를 불고〉, 〈관대장자〉, 《적벽가》에서는 〈자룡 활 쏘는데(화룡도)〉, 《심청가》에서는 〈올라간다〉, 〈아뢰어라〉, 〈방아타령〉, 〈심봉사 눈뜨는 대목〉 등이 있다. 한숙구 계열에서 정달영으로 전수되는 악곡은 단가 중 〈호남가〉, 〈녹음방초〉, 〈죽장망혜〉, 〈백발가(공도라니)〉, 〈충효가〉, 〈수궁단가(객래문안 흥망사)〉, 〈백발가〉, 〈편시춘〉, 판소리 《춘향가》에서는 〈사랑가〉, 〈이도령 이별 탄식〉, 〈군로사령〉, 〈옥중가〉, 《수궁가》에서는 〈별주부 용왕님께 상소 올리는 대목〉, 〈토끼화상〉, 〈여봐라 주부야〉, 〈여보나리〉, 〈고고천변〉, 《심청가》에서는 〈망사대 탄식 대목〉, 〈심봉사 좋아라고〉, 〈못가것소〉, 〈황성 올라가는 대목〉, 〈예 소맹이 아뢰리다〉, 〈방아타령〉, 남도민요에서는 〈새타령〉, 〈남원산성〉, 〈성주풀이〉, 〈진도아리랑〉, 〈뽕따러가세〉, 〈동백꽃타령〉 등이 있다. 두 계열 모두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곡은 〈방아타령〉으로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방아타령〉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떨크덩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이방애가 뉘방애 강태공에 조작이로다 어유화 방아요 태고라 천황씨는 이목덕으로 왕허였으니 남기 아니 중헐씨고 어유화 방아요 유소씨 구목위소 이런 나무로 집지셨나 어유화 방아요 어유화 방아요 떨크덩떵 잘 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옥빈홍안의 비녈런가 가는허리에 잠이 질렀구나 어유화 방아요 머리 들어서 오르는 양은 창해노룡이 성을 낸 듯 머리 숙여 내린 양은 주문왕의 돈수런가 어유화 방아요 길고가는 허리를 보니 초왕 궁녀에 허릴런가 어유화 방아요 떨크덩덩 잘찧는다 어유화 방아요 오고대부 죽은후에 방아소리가 끊쳤더니 우리 성상 즉위허사 국태민안 허옵신데 하물며 맹인잔치는 고금에 없난지라 우리도 태평성대 방아타령을 허여보세 어허유화 방아요 떨크덩떵 잘 찧는다 허유화 방아요
판소리와 산조를 동시에 연주한 예인들이 탄생시킨 가야금병창은 전통음악 연주 형태의 다양성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 가야금병창은 기본적으로 서정적인 더늠 위주로 짜여진 노래에 정교하면서 치밀한 가야금 반주가 맞물려 고도의 음악적 기교로 어우러지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연주자마다 새롭게 창작하는 것이 가능하며, 교육적 측면에서도 간단히 반주를 붙여 노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
국가무형문화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는 1968년에 최초로 박귀희가, 1988년에는 정달영이 지정되었고, 두 보유자가 모두 타계 후 이들의 뒤를 이어 2001년에 강정숙과 강정열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가야금병창: 국가무형유산 가야금병창 및 산조(1968) 가야금병창: 경상북도 무형유산(1991) 가야금병창: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제18호(2005) 가야금병창: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2013) 가야금병창: 전라남도 무형유산(2017)
국립문화재연구소, 『가야금산조 및 병창2, 병창편』, 민속원, 2010. 문재숙, 『가야금을 통하여 본 한국음악사』, score, 2018. 정예진ㆍ배연형, 『가야금병창(춘향가ㆍ흥보가)』, 법영사, 2006.
서은영(徐銀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