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둥근 두 개의 놋쇠판 중앙에 끈을 꿰어 양손에 하나씩 잡고 서로 부딪혀 연주하는 타악기
자바라는 서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져 인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터키어로 심벌(chymbal)을 뜻하는 ‘Çalpara’의 한자 표기가 우리식 발음으로 옮겨 와서 자바라(啫哱囉)가 되었다. 지역이나 용도, 크기에 따라 쓰임새와 명칭이 다양하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고려시대 군대 행진에 북·호적 등과 함께 사용된 요발(鐃鈸), 조선 시대 향악정재에 사용된 동발(銅鈸)·향발(響鈸) 등으로 기록되었다. 민간과 불교음악에서 발(鈸/鉢), 바라(哱囉) 등의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군영 악대에서는 ‘자바라’로 불렸다. 자바라는 둥근 냄비 뚜껑처럼 생긴 얇은 놋쇠판을 중앙이 불룩 솟은 모양으로 만들고, 한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끈을 꿰고 양손에 하나씩 잡아 서로 부딪쳐서 소리를 낸다. 현재 <대취타> 연주에 편성되며, 농악, 불교의식 무용인 〈바라춤〉, 무속 음악 등에서 사용된다.
자바라는 서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인도, 중국을 거쳐 한국에 유입되어 토착화된 전통악기이다. 터키어 ‘Çalpara’의 한자 표기가 우리식 발음으로 옮겨 와서 자바라(啫哱囉)가 되었다. 자바라 계통의 악기는 지역과 용도, 크기와 형태에 따라 바라ㆍ발ㆍ요발ㆍ동발ㆍ향발ㆍ제금(提金)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자바라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문헌인 『서대사자재류기장』 「악기의복」 ‘기악’에 기재된 탈과 의복, 도구와 악기 이름 중에 대당악ㆍ당악ㆍ고려악의 악기로 분류된 ‘동발자(銅鈸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 전해진 백제의 기악 반주를 위해 자바라 계통의 악기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 유물 및 석탑의 주악상에서도 동발을 찾아볼 수 있다. 682년(신문왕 2)에 조성된 감은사 사리함은 현존하는 주악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자바라 계통의 동발을 두 손으로 치듯 들고 있는 모습이 부조되었다.
중국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범패(梵唄)에서 “요발은 작지만 소리는 구슬프고 소라 소리[螺聲] 는 아주 커서, 마치 호령하는 듯하였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를 보면 자바라는 ‘발’, ‘바라’라고 하여, 절에서 행했던 축원이나 재에서 범패나 춤을 반주하였고, 불교 무용인 작법(作法) 중 〈바라춤〉의 무구(舞具)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 음악의 영향으로 무속행위에서도 악기이자 신구(神具)로 사용되며 ‘바라’ㆍ‘바랑’ㆍ‘제금’ㆍ‘제파리’라고 불렸다.
조선 시대 궁중정재 〈향발무〉에서의 ‘향발’은 ‘동발[鈸]을 울린다[響]’는 뜻이고, 『악학궤범』에 향악정재 무구인 동발과 향발이 소개되어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자바라가 군악에 편성되는 양상을 보이며, ‘자바라’라고 명시하여 절이나 무속음악에서 사용하는 것과 구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1711년(숙종 37) 〈조선통신사행렬도 등성행렬〉과 1785년(정조 9) 〈안릉신영도〉 등에서도 조선 전기와 달리 자바라를 편성해 연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797년(정조 20)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는 훈련도감 소속 취고수 중 정수(鉦手)ㆍ고수(鼓手)ㆍ나발수(喇叭手)ㆍ호적수(號笛手)와 함께 자바라수를 확인할 수 있다. 1828년(순조 28) 『진찬의궤』에는 내취(內吹)의 〈선유락〉 반주에 징(鉦)ㆍ호적(號笛)ㆍ나발(喇叭)과 함께 자바라가 사용되었다. 자바라는 군영악대인 취고수와 내취에 편성되었고, 현재 <대취타> 연주에 사용하는 악기로 전승되었다.
○ 구조와 형태 두 개의 놋쇠 원반이 짝을 이루는데, 한가운데를 볼록하게 하고, 구멍을 뚫어 끈을 달아 손잡이를 만들고, 원반 안쪽이 서로 마주하게 하여 부딪혀 소리를 낸다. ○ 연주방법과 기법 〈대취타〉를 연주할 때는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자바라 한 쪽을 엎어 들고 바라를 제쳐 들었다가 내려치고 양팔을 벌렸다가 마주치면서 크게 울려 연주한다. 바라가 연주하는 리듬은 징의 연주 리듬과 동일하다. 굿에서는 대개 빠른 속도로 연주하기 때문에 손뼉을 치듯이 작게 치며 양쪽을 약간 엇갈리게 하여 비비듯이 연주를 한다. <대취타>나 굿에서는 바깥 면 손잡이에 흰 무명천을 길게 매어 두 쪽을 한 데 연결하거나, 목에 걸고 치기도 한다. ○ 연주악곡 현재 〈대취타(무령지곡)〉ㆍ〈황실대취타〉ㆍ〈별가락〉ㆍ〈국거리(굿거리)〉 등을 연주한다.
자바라는 크기와 용도가 다양하고, 그에 따른 명칭도 다양하다. 조선후기부터 군영 악기로 편입되어 ‘자바라’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군영의 취타악기 대부분이 신호나 통신용으로 사용된 데 비해, 자바라는 행진과 연향의 연주에만 사용된 특징이 있다. 오늘날 국악관현악에서는 서양 오케스트라의 심벌즈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자바라의 한 편만을 고정시켜 놓고 북채나 장구채로 치거나 양편을 마주치되 짧게 끊어 연주하는 등 금속성의 타악기 효과를 내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순형, 「감은사탑 내 사리기 주악, 무동상론」, 『고고미술』 178, 1988. 이숙희, 「조선 후기 취고수 제도의 형성과 전개」, 『국사관논총』 105, 2004. 이숙희, 「불교 취타악의 형성 배경」, 『한국 음악연구』 37, 2005. 황미연, 「신라 통일 시대 주악상에 관한 고찰」, 『낭만음악』 33, 1996.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