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선인들을, 선인 따라가는데
《심청가》 중 한 대목으로, 심청이 남경장사 선인들을 따라 강두로 배를 타러 가는 대목
《심청가》 중 심청 선인 따라가는 대목은 인당수에 가기 위하여 심청이가 선인들을 따라 강가로 배를 타러 가면서 동네 사람들과 작별하고 탄식하며 떠나는 장면이다. 심청이가 선인들에게 팔려 인당수로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별에 대한 서글픈 심정을 담고 있다. 이 대목은 중모리장단에 계면조로 구성되어 심청의 애환과 비통한 심정을 격조 높게 표현하고 있다.
이화중선이 1928년 유성기음반(victor KJ1178)에 〈추월만정〉과 심청이 선인 따라가는데를 취입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제강점기 때 많은 명창들이 유성기음반으로 소리를 남겼는데, 이때는 유성기음반 재생 시간에 맞게 보통 3분 정도의 토막소리로 규격화되기도 하였다. 이화중선이 부른 〈선인 따라가는데〉도 당시의 대표적인 토막소리로 기록에 남아있다. 또한 박록주(朴錄珠, 1905~1979)가 1930년(Columbia 40099-B)과 1976년에 이 대목을 취입한 음반도 남아있다. 오비취는 1933년에 녹음(Columbia 40443-B)한 바 있는데 이는 이화중선, 박록주와 사설, 곡조가 같다.
심청 선인 따라가는 대목은 선인들을 따라가는 심청의 모습, 이별을 고하는 심청, 죽으러 가는 심청의 심정, 강가에 당도한 심청의 모습을 형용한 사설 구성이다. 심청이 눈물을 흘리며 선인들을 따라가는 처량한 모습을 묘사하는 사설과 동네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서로 슬퍼하며 두견새에 비유하여 돌아올 수 없는 심청의 비참한 심정을 담고 있다. 이 대목은 중모리장단에 악조는 계면조로 부르는데 ‘도(do′)-시(si)’의 꺾는 음을 많이 사용해서 슬프고 애달프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니리) 심청이 일어서며 “물때가 늦어가니 어서 건너 가겄네다.”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선인들은 재촉하고 부친은 뛰고 우니, 심청이 하릴없이 동네 어른들께 부친을 의탁허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따라간다.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치마 자락을 거듬거듬 걷어안고 비같이 흐르난 눈물 옷깃에 모두 다 사무친다. 엎더지며 넘어지며 천방지축 따라갈 제, 건넛마을 바라보며 “이진사댁 작은 아가 작년 오월 단오야의 앵두 따고 노던 일을 니가 행여 잊었느냐. 금년 칠월 칠석야의 함께 걸교하잤드니 이제는 하릴없다. 상침질 수놓기를 뉠과 함께 허랴느냐. 너희는 양친이 구존허니 모시고 잘 있거라. 나는 오날 우리 부친 슬하를 떠나 죽으러 가는 길이로다.”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게 모도 울고 하느님이 아옵신지 백일은 어디 가고 음운이 자욱허여 청산도 찡그난 듯 초목도 눈물진 듯 휘늘어져 곱던 꽃이 이울고저 빛을 잃고 춘조는 다정허여 백반제송 허는 중에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허였간디 환우성 지어 울고, 뜻밖의 두견이난 귀촉도 귀촉도 불여귀라. 가지 위에 앉어 울겄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가 어이 돌아오리. 한곳을 당도허니, 광풍이 일어나며 해당화 한 송이가 떨어져 심청 얼굴에 부딪치니 꽃을 들고 하는 말이 “약도춘풍불해의면 하인취송낙화래라, 송 무제 수양공주 매화장은 있건마는 죽으러 가는 몸이 언제 다시 돌아오리. 죽고 싶어 죽으랴마는 수원수구 어이허리.” 걷는 줄을 모르고 울며불며 길을 걸어 강변을 당도허니, 선두에다 도판을 놓고 심청을 인도허는구나.
《심청가》 중 심청이 선인 따라가는 대목은 심청이 남경장사 선인들을 따라 인당수로 출발하며 탄식하는 대목으로 중모리장단에 계면조로 부르는데 ‘도(do′)-시(si)’의 꺾는 음을 많이 사용해서 슬프고 애달프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유산(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3)
국립문화재연구소, 『심청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김혜정, 『정권진 창 심청가』, 민속원, 2015. 유영대, 『심청전 연구』, 문학아카데미사, 1990. 남경옥, 「박동실제 심청가 중 중모리 대목 변조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정수인(鄭琇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