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喇叭), 나팔(喇叭), 각(角), 소각(小角), 중각(中角), 대각(大角), 동대각(銅大角), 목대각(木大角), 영각(令角), 농각(農角), 땡각
나팔꽃 모양으로 끝이 벌어진 긴 관에 입김을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
나발은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분포하는 뿔나팔을 기원으로 하는데, 서역으로부터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어원은 ‘외치다’란 뜻의 산스크리트어 ‘रव(rava)’이며, 중국에서 ‘喇叭(laba)’로 음차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로 ‘나팔(喇叭)’이라 쓰고 읽을 때는 센소리를 피해 나발이라 불렀다.
한편, 한반도에서도 고대부터 각(角)이라는 악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각은 지휘·통신에 사용한 단음 관악기로 지역과 용도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르고, 재료 역시 뿔[角]ㆍ나무[木]ㆍ은(銀)ㆍ동(銅)으로 다양했다. 크기에 따라 대각ㆍ중각ㆍ소각, 재료에 따라 동대각ㆍ목대각과 같이 구분하여 사용한 기록이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구부러진 모양의 각을 연주하는 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 역사서 『북사』 「열전」 ‘백제’에 백제의 악기는 고각ㆍ공후ㆍ쟁우ㆍ호적이 있다고 하였다. 『한원』 「번이부」 ‘백제’에는 고각을 사용하여 가무를 연주한다고 하였다. 『악학궤범』에 <정대업지무> 의물로 수록된 대각은 은(銀)을 두드려 만든 것으로 현행 나발과 모양과 구조가 비슷하다.
1480년(성종 11)에 중국 명나라 사신이 나팔수를 데리고 와서 시범 연주를 보이니 성종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전하여 익히고자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각이 아닌 나발은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또한 1598년 이전 중국 명나라에서 이순신에게 팔사품(八賜品) 중 곡나팔이 현재까지 통영에 남아있다.
〈수군조련도〉에는 뱃머리에서 구부러진 형태의 곡나팔을 위로 쳐들면서 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 유입된 나발은 군영 악기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만기요람』에 군기의 종류로 나발, 목대각, 동대각 등이 나란히 제시된 것으로 보아, 나발은 각과 함께 쓰이다가 동(銅)대각의 기능을 흡수ㆍ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선전기 병조(兵曹) 소속의 ‘내취각인’(內吹角人)은 조선후기 ‘내취’(內吹) 악대의 ‘나발수’(喇叭手)로 계승되었다. 행악 악기로서 취고수ㆍ내취에 편성된 나발은 18세기 김홍도(金弘道, 1745~?)의 그림으로 전하는 〈평양감사향연도〉나 1795년(정조 19) 정조의 수원 화성(華城) 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불교음악이 나발ㆍ호적ㆍ징과 같은 군영 취타악기를 수용하면서 나발은 〈영산재〉와 같은 불교의식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부터 활발하게 제작되어 유포된 불교회화 〈감로탱화〉에 나발연주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농악에서도 판의 시작과 중지 등 중요한 계기를 알리는 신호의 역할을 나발이 담당하여 오늘날 농악이나 농청놀이의 악대에 편성되기도 한다. 특히 농악에 쓰이는 나발은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이용하여 만들며, 명칭도 다양하여 지방에 따라 ‘영각’, ‘농각’, ‘땡각’, ‘고동’, ‘목고동’ 등으로 불린다. 서구식 군대와 군악대가 도입된 이후에는 군영에서 나발을 사용할 일이 없게 되었고, 현재 나발은 궁중 음악인 〈대취타(大吹打)〉와 규모가 큰 불교의식, 그리고 일부 농악에서 사용된다.
○ 구조와 형태
나발은 크게 나팔, 관, 취구의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긴 대롱의 관은 두 도막 또는 세 도막으로 나뉘므로 관을 밀어 넣어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취구 쪽은 가늘고, 끝부분으로 가면서 차차 굵어지며 맨 끝은 나팔꽃처럼 퍼지는 형태이다. 관에는 손가락으로 막고 여는 구멍〔指孔〕이 없다.
○음역과 조율법
선율악기가 아니므로 단음의 배음만 소리내며, 취구에 댄 입술로 음의 강약과 고저를 조절한다.
○구음과 표기법
〈대취타〉에서 짝을 이루는 나발과 나각의 구음은 각각 ‘도’와 ‘두’이다. 강세를 표현할 때는 경음인 ‘또’와 ‘뚜’를 쓴다.
○연주방법과 기법
오른팔을 수평으로 뻗어 나발의 관 중간 아랫부분을 입 높이로 받치고, 수평을 유지한다. 취구에 입술을 대고 입김을 힘껏 불어 소리를 낸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주먹을 쥐어 내리거나, 허리에 얹는다. 선율을 연주하지 않고 기음(氣音)만으로 효과를 내므로, 호흡의 지속력과 안정성 외에 별다른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다.
○연주악곡
〈대취타〉ㆍ〈별가락〉ㆍ〈국거리(굿거리)〉 등에 편성되어 나각과 교대로 연주한다.
○제작 및 관리 방법
금속으로 115센티미터 정도의 긴 원추형 관을 두도막 또는 세도막으로 구분하여 만들고, 불지 않을 때에는 관을 넓은 편으로 밀어 넣어 짧게 접어둘 수 있다.
나발은 단음 관악기이므로 선율을 연주하지는 않으나, 낮고 멀리가는 소리를 낸다. 나각과 함께 전통방식의 신호용 악기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자로 ‘螺鉢’이라 쓰고 ‘나발’이라고 읽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큰 소라로 만든 관악기인 나각(螺角)의 다른 이름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취고수ㆍ세악수ㆍ내취』, 태학사, 2007. 이숙희, 「불교 취타악의 형성 배경」, 『한국음악연구』 37, 2005. 이숙희, 「농악 악기편성 성립의 배경과 시기에 관한 연구」, 『한국음악연구』 54, 2013. 장경희, 「보물 제440호 통영 충렬사 팔사품(八賜品) 연구」, 『역사민속학』 46, 2014. 정재국 편저, 『대취타』, 은하출판사, 1996.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