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 박타령, 흥부가
욕심많은 형 놀보가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보를 따라하다 패망한 이야기를 노래한 판소리
흥보가는 놀보와 흥보 형제를 통해 권선징악을 다룬 판소리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 흥보가 제비다리를 고쳐주어 부자가 되자 이를 시기하고 따라한 형 놀보는 패망하고 만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흥보가는 놀보의 패망을 통해 조선 후기 악덕 지주나 부호들에 대한 부의 분배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악인 놀보에 대한 공동체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하나로 일찍이 권삼득에 의해 〈놀보 제비 후리러가는 대목〉이 더늠으로 만들어졌다. 이로 보아 흥보가는 적어도 18세기부터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대 흥보가의 전승은 동편제인 박봉술제, 강도근제, 박록주제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외에 김연수제(동초제)나 김소희제(만정제), 박동진제 등이 전승되고 있다.
흥보가의 근원설화로 몽골의 ‘박타는 처녀’나 신라의 ‘방이설화’ 등 착한 사람의 행위를 악한 사람이 따라하다 죽거나 벌을 받는다는 내용의 설화들이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설화의 이야기가 바로 ‘흥보 이야기’로 대응되는 것은 아니어서 실제 ‘흥보 이야기’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흥보가에는 평범하거나 약자인 주인공이 착하게 살다 보상을 받고 행복한 결말을 맺는 민담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어, 오래 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 흥보가는 18세기 말 비가비 광대인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이 〈놀보 제비 후리러가는 대목〉을 더늠(명창이 잘 불렀거나 새로 만든 특정 대목)으로 남겨놓은 것을 보아 적어도 18세기부터 판소리로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 흥보가가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843년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이며 이유원(李裕元)의 〈관극팔령(觀劇八令)〉(1872)에도 내용이 보인다.
○ 내용과 주제 흥보가는 착한 동생 흥보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어서 큰 부자가 되자 심술 많은 형인 놀보가 이를 따라하다가, 박속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권선징악형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보가는 흥보, 놀보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판소리로도 불리었고 소설로도 인기가 높았다. 심술이 많은 형 놀보와 착한 아우 흥보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상과 노동과 부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판소리라 할 수 있다. 이 형제의 이야기는 조선 후기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신흥 계급으로 떠오른 자본가와 자본주의에 관한 조선 후기의 변화상을 담고 있어서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흥보가는 놀보의 모습을 통해 조선 후기 이래 서민경제가 발달하고 개인의 소유 확대, 물질주의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돈에 대한 비인간성이 점차 확대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후기 화폐는 서민경제까지 깊숙이 침투하였는데, 영조시대에는 화폐의 주조를 막으면서 오히려 물가의 폭등이나 국가 재정을 혼란시켰다. 이에 따라 놀보같은 신흥부자들은 고리대금을 하면서 부를 축적한 것이다. 이처럼 부를 축적한 사람들 중 그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천박한 논리로 사람들을 부리거나 돈에 기대어 윤리와 도덕, 사회를 무시하는 행태가 늘어났다. 흥보가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결국 놀보는 돈을 잃으면서 모든 것을 잃는다. 그리고 그 돈은 놀이패들, 팔도 무당 등 사회적 약자들의 반란에 의해 회수되었다. 흥보가에서 놀부가 패망한 것은 이러한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인물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돈에 대한 각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흥보가는 후대로 갈수록 놀보가 망해가는 대목이 매우 간략히 축소되거나, 망한 놀보를 흥보가 구하러 와서, 함께 우애 좋게 사는 모습으로 결말 대목이 변화된다. 현재 전승되는 대부분의 흥보가에서 놀보의 개과천선과 형제 갈등의 해소가 주제로 부각되는 이유는 놀보와 흥보가 가지고 있는 계층적 성격이 완화되고, 그것이 형제의 문제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놀보의 악덕 지주로서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 판소리의 주 수요층인 부호들에게 불편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흥보가는 불건전한 인물인 놀보에 대한 징벌을 통해 건전한 공동체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부의 재분배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후대로 올수록 놀보 혼내주기보다는 흥보가 어떻게 부자가 되는가에 서사가 집중되며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주제도 형제간의 우애를 회복하는 것으로 점차 변화되었다. ○ 유파와 전승 흥보가는 각 대목마다 생동감 있는 더늠을 발달시키면서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완창에는 2~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주요한 눈대목으로 〈흥보 매 맞는 대목〉, 〈제비노정기〉, 〈흥보 박 타는 대목〉, 〈놀보 흥보집 찾아가는 대목〉, 〈놀보 제비 후리러가는 대목〉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제비노정기〉는 강남에 갔던 제비가 다시 만리 조선을 나오면서 여러 지역을 거쳐 흥보집에 당도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대목으로 예술성이 뛰어나며 명창 김창환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흥보가 박 타는 대목〉은 박 속에서 쌀과 돈, 비단, 집과 세간살이 등이 나오는 대목으로 가난한 흥보의 대반전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지는 대목이다. 현재에도 소리꾼들은 이 대목을 가장 즐겨 부른다. 흥보가에는 재미있고 해학적인 대목도 많은데, 〈놀보심술타령〉을 시작으로 해서 〈흥보가 자식들과 밥 먹는 대목〉, 〈놀보가 화초장 가지고 가는 대목〉 등이 그것이다. 1940년에 발행된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흥보가를 잘한 명창을 소개하였는데, 서편제 문석준은 〈흥보 박 타는 대목〉을 잘하였고, 중고제 한송학 역시 흥보가를 잘하였다고 한다. 중고제의 시조로 불리는 염계달, 서편제 정창업과 중고제 정흥순, 동편제 김도선, 동편제 최상준, 서편제 김창환, 호걸제(중고제)의 김봉학, 동편제의 전도성, 동편제의 김봉문, 여성명창 강소춘, 김초향 등이 흥보가를 잘한 명창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최상준은 〈놀보 포악〉을, 김봉문은 〈흥보 박 타는 대목〉을, 김창환은 〈흥보 제비노정기〉를 더늠으로 남겨놓았다. 이 외에 동편제 장판개는 〈놀보 제비노정기〉를 남겼다. 동편제 계열의 흥보가는 송흥록을 중심으로 하여 송광록-송우룡-송만갑-김정문/박만조/박봉래 등에게 이어졌다. 이중 김정문 명창으로부터 강도근-이난초, 박록주-박송희-정순임 계열이 분파되었으며, 박만조/박봉래로부터 이어받은 박봉술 명창은 송순섭, 김일구 계열로 분파되었다. 서편제 계열의 흥보가는 정창업-김창환-박지홍/오수암/김봉학에게로 전승되었다. 이중 박지홍의 소리는 박동진에게 이어졌고, 오수암의 소리는 박초월에 영향을 끼쳤다. 김봉학의 소리는 정광수에게 이어졌으나 전승이 단절되었다. 여러 유파의 소리를 다시 짠 김연수제 흥보가는 오정숙-이일주에게로, 김소희제 흥보가는 신영희/안숙선 등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에 이어지는 흥보가 중 후반부의 〈놀보 박 타는 대목〉은 박봉술제 외에는 매우 소략하게 짜여져 있거나 없다. 특히 김정문제를 이어받은 강도근, 박록주의 소리는 〈놀보 제비 후리러가는 대목〉에서 끝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강도근이나 박록주의 소리를 전승한 소리는 놀보의 패망 부분이 없어, 상대적으로 소리 시간이 짧다. 하지만 박록주제를 이은 박송희 명창은 박봉술 소리의 후반부를 차용해 놀보 박 타는 대목을 넣어 서사적 완결을 지향하였다. 이 후반부에는 놀보의 제비노정기는 물론 유랑예인들의 출현으로 난장판이 되고 결국 망해가는 놀보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매우 흥미롭고 골계적이다. 박송희 명창의 후기 소리는 박봉술제와 비슷한데, 결말 대목에서 흥보가 찾아와 놀보를 구하고, 놀보가 개과천선하여 우애있게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보성소리의 경우 흥보가는 전승되지 않았다. 그것은 보성소리가 추구하는 양반 지향적인 미의식에 흥보가가 적합하지 않아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흥보가는 ‘박 타는 대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민 군상의 모습과 당시 유랑연예인의 모습을 다소 거칠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흥보가는 현대에 더욱 재미있는 작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무형문화유산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정순임, 이난초 명창이 있다.
흥보가는 형제간의 우애와 부의 문제를 재조명한 판소리로 동편제 판소리에서 주로 전승이 되어 온 작품이다. 일찍이 권삼득이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을 더늠으로 남겨 놓았다는 점에서 이른 시기부터 정착된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다른 판소리에 비해 많은 더늠을 남기지 못했고, 20세기에는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이후 전승이 단절된 유파도 있었다. 하지만 흥보가는 꾸준히 인기를 누리며 현재도 변화 발전해오고 있으며,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판소리 작품이다. 흥보가는 조선 후기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선악의 갈등, 윤리의 문제 등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흥보가는 다른 판소리에 비해 쉬운 우리말 사설과 골계적 재담, 놀이패의 노래 등이 많이 수용되어 있다. 판소리의 전승은 향유층, 시대적 상황, 전승자의 의지에 따라서 약화되기도 하고 탈락되기도 하며, 복원되기도 한다. 20세기 전반기 흥보가가 전승 약화의 길을 걸은 반면,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활발히 전승되고 후반부 복원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현 시기의 청중은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는 판소리를 선호한다. 가난하지만 착한 흥보의 성공과 승리에 환호하며, 즐겁게 망하는 놀보의 행보에 쾌감을 느낀다. 일부 유파에서 놀보 박 사설은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새롭게 다듬어지고 예술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유산(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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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