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타령, 토끼타령, 토별가, 별토가, 토끼전, 별주부전
별주부가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를 속여 용궁으로 데려가지만, 토끼가 간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여 살아 돌아온다는 내용을 노래한 판소리
수궁가는 별주부를 따라 수궁에 가서 죽을 위기를 겪은 토끼가 거짓말을 하고 살아 돌아오는 내용을 노래한 판소리이다. 수궁가는 ‘소적벽가’로 일컬을 정도로 판소리 중 사설과 음악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다. 애초에는 ‘토끼타령’으로 불리웠던 것이 ‘토별가’, ‘토끼전’, ‘별주부전’ 등 다양한 제목으로 만들어지면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주인공 토끼는 약자를 상징하고 용왕과 별주부는 강자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데, 토끼의 생환은 결국 강자에 대한 약자의 승리이자 국가적 이념을 거부하는 개인의 승리를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별주부의 충심이 강조되고 용왕이 쾌차하게 되는 이본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들 이본에서는 국가에 대한 개인의 충성이 오히려 부각되기도 하였다. 수궁가는 토끼에게는 허욕에 대한 경계를, 별주부에게는 맹목적인 충성의 허망함을 보여주면서 두 동물에 대해 긍정적 시선과 비판적 시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수궁가에는 송흥록과 염계달 등 많은 명창들의 더늠이 남아있으며, 현대에는 박봉술제, 정광수제, 박초월제, 정응민제, 김연수제 등이 전승되고 있다.
수궁가는 『삼국사기』 열전 ‘김춘추’에 실린 ‘구토지설(龜兎之說)’을 근원 설화로 보고 있다. ‘구토지설’은 고구려에 구원병을 청하러 간 김춘추에게 고구려의 신하 선도해가 들려준 이야기로,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거북이와 토끼로 설정되어 있다. 선도해의 이야기를 듣고 김춘추는 고구려왕에게 거짓말을 하고 살아서 신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구토지설’의 유래는 인도의 본생 설화로 원숭이와 악어의 이야기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불전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구전되다가 판소리 수궁가의 근원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용궁 설화’나 ‘쟁장(爭長) 설화’ ‘교토탈화(狡兎脫禍) 설화’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명칭
수궁가는 다른 판소리에 비해 매우 다양한 명칭이 쓰였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나오는 것으로 ‘토타령(兎打詠)’인데, 정현석의 『교방가요(敎坊歌謠)』에도 ‘토타령(兎打令)’이라 쓰인 것을 보아 애초에는 ‘토타령’ 혹은 ‘토끼타령’으로 불렀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신재효는 여섯 마당을 정리하면서 ‘토별가(兎鼈歌)’라 이름하였고, 창본의 영향을 받은 ‘별토가’라는 명칭을 같이 쓰이다가 이선유의 『오가전집』에 이르러 ‘수궁가’라는 명칭이 비로소 등장한다. 소설본에는 ‘토생전’이라는 이름이 쓰이다 ‘토끼전’ㆍ‘별주부전’으로 쓰이기도 하였고, 한문본 이본의 경우 ‘토공사’ㆍ‘토공전’ㆍ‘별토전’ 등의 이름이 보이며, 이 외에 ‘토별산수록’ㆍ‘수궁록’ㆍ‘수궁전’ㆍ‘토처사전’ㆍ‘수궁용왕전’ㆍ‘별주전’ 등 다양하게 명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명칭은 결국 애초 토끼타령에서 토별가-수궁가-토생전-토끼전-별주부전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데, 판소리에서 소설화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로 보아 우리가 현재 판소리에서 수궁가라고 부르는 명칭은 토끼나 별주부가 아닌 공간을 중시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립적인 명칭이라 할 수 있다.
○ 내용과 주제 수궁가 혹은 《토끼전》은 토끼가 살아 돌아오는 내용을 다양하게 다루면서 변화되어 왔는데 그 이본을 대략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충을 앞세운 봉건적 유교의 지배논리를 강조하는 경우, 둘째는 충과 유교적 관념에 대한 야유와 비판, 서민적이고 풍자적인 해학이 중심이 되는 경우, 셋째는 별주부의 충과 토끼의 승리상이 함께 드러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계열로서 『경판본』 계열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계열은 『가람본 별토가』 계열로 『조동일본 별쥬전』, 『일사본』 등이 포함된다. 세 번째의 계열은 『완판본』 계열인데 이 계열은 신재효의 사설 ‘토별가’의 내용을 거의 따르고 있다. 수궁가에서 용왕은 어느 이본이나 과한 잔치 후 병을 얻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지배자인 용왕의 향락과 무능을 암시하는 것이다. 용왕을 모시는 신하들도 희화화된다. 용왕의 신하들은 ‘세상에 나가면 밥 반찬거리와 술 안주거리’로 묘사되며, ‘비린내가 진동’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곧 신하들은 국가의 문제에 대해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서로 말싸움이나 벌이는 무능한 관리로 묘사되면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군주의 위중한 병에도 불구하고 ‘물고기 머리에 귀신 얼굴을 한 신하들이 얼굴만 서로 쳐다볼 뿐’ 묵묵부답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때 등장한 별주부는 왕배탕이 될 것이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강변한다. 별주부는 자신이 충신의 후예로 태어났음을 주장하면서 구변과 재주가 있으니 일개 토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별주부는 충이라는 명분을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드러내려 하며, 이념 앞에서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맹목성을 지닌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별주부의 가문 자랑과 달리 가족들은 별주부가 세상에 나가는 것을 만류한다. 삼대독자인 아들의 죽음을 걱정하는 어머니와 독수공방을 걱정하는 아내의 모습은 별주부와 달리 개인의 상황을 국가의 상황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별주부는 그의 ‘장한 충성’으로 말미암아 토끼를 유인하여 오지만 토끼의 거짓말에 속은 용왕으로부터 이용가치가 없어진 인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용왕에게 ‘토끼의 배를 가르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면서 충직한 신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별주부와 달리 토끼는 기존의 질서를 자신 있게 무너뜨리고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는 전환기의 인물상을 나타내고 있다. 토끼는 생존을 위협하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전전긍긍하며 간신히 살아가는 인물을 상징한다. 그래서 항상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구변(말솜씨)’이다. 토끼의 말솜씨와 지략은 곧 생존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토끼는 별주부를 따라 수궁에 가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수궁에 당도하자마자 결박이 되어 용왕 앞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강자를 위해 약자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용왕의 논리 앞에서 토끼는 혼자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토끼의 생명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죄책감을 드러내는 동조 세력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다. 여기서 선택된 토끼의 생환 방식은 ‘거짓말’을 통해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다. 토끼는 용왕의 요구에 대하여 ‘병든 용왕 살리자고 성한 토끼 나 죽으랴?’하고 별주부에게 성토한다. 이러한 토끼의 결단과 의지는 향유층들의 암묵적인 합의 속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곧 수궁가의 향유층들은 거짓말로 살아난 토끼를 긍정하고 옹호하면서 점차 사설을 확장하고 다듬었던 것이다. 수궁가의 결말이 모두 토끼가 살아나오는 데 집중되어 있고, 또다른 위기 상황을 지속적으로 극복하는 토끼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수궁가의 주인공은 토끼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수궁가는 토끼로 상징되는 서민의 논리와 신념을 주제로 삼으면서,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거듭되는 위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수궁가 후반의 그물 삽화와 독수리 삽화의 등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끊임없이 닥치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이어 나가는 토끼의 행동, 그것은 자신만이 결국 자신을 구하고, 책임지고, 살려낼 수 있다는 개인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호랑이를 물리친 별주부의 재치와 상좌다툼 속에서 벌이는 여러 논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세계에 대하여 개인의 지혜로움과 능력이 더욱 중요한 가치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수궁가를 즐긴 향유층의 인식이기도 하다. 곧 국가를 중시하는 봉건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고, 개인적 삶의 중요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수궁가는 탈중세적이고 근대적이며, 진취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유파와 전승 수궁가는 『조선창극사』 송흥록의 일화에서 나타나듯이 울게 하고 웃게 하기 어려운 ‘바싹 마른 소리’로 표현된다. 그것은 한자의 사용이 많고 장단이 까다로우며 음악적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소리라는 것을 뜻한다. 수궁가는 동편제 명창 송흥록과 중고제 명창 염계달이 활약하던 시기부터 더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창극사』에 송흥록은 ‘토끼 배 따는 대목’을 불렀다고 하며, 염계달은 ‘토끼가 별주부에게 욕하는 대목’을 경드름으로 만들어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신만엽의 ‘토끼가 배를 가르라고 발악하는 대목’, 송우룡의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꾀부리는 대목’, 김거복의 ‘용왕이 병이 나서 탄식하는 대목’, 김수영의 ‘자라가 토끼를 유인하여 가는데 여우가 방해하는 대목’, 백경순의 ‘토끼가 위기를 벗어나 육지로 돌아오는 대목’, 김찬업의 ‘육지에 가는 자라에게 토끼화상을 그려주는 대목’, 신학준의 ‘용왕이 토끼에게 간을 내놓으라고 호령하는 대목’, 유성준의 ‘육지에 온 자라가 토끼를 처음 만나 문답하는 대목’이 더늠으로 전한다. 송흥록이 전승한 동편제 수궁가는 송흥록-송우룡-송만갑-박봉래-박봉술-송순섭으로 전승되었다. 또 다른 동편제 계열은 송흥록-송우룡-유성준으로 전승된 것인데, 유성준에게 학습한 정광수, 임방울, 김연수, 박동진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바디를 다시 이루어 현대에 전승했다. 정광수와 임방울로부터 배운 박초월 역시 박초월제 수궁가를 새로 짰고 조통달/남해성/김수연 명창에게로 전승하였다. 박유전으로부터 비롯된 강산제 수궁가는 정재근-정응민-정권진-정회석/윤진철 등에게로 전승되었다.
수궁가는 우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재미있는 사설과 탄탄한 음악적 구성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온 판소리이다. 수궁가는 국가를 상징하는 용왕, 이념을 실천하는 별주부, 개인적 삶을 중시하는 토끼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약자의 삶을 주목하고 있다. 토끼가 살아 돌아온다는 점에서 수궁가는 근대적 자각을 이룬 서민의 의식을 반영한 근대 지향적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음악적인 면에서 수궁가는 이른 시기부터 다양한 더늠이 생성되면서 점차 음악적 완성도를 이루었고, 많은 명창들에게 전승되면서 여러 유파가 생겨났다. 수궁가는 사설의 구조나 짜임새가 매우 치밀하고 음악적 구성력이 탁월하여 판소리의 예술성과 재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유산(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3)
구사회 외, 『송만재의 관우희 연구』, 보고사, 2013. 김동건, 『토끼전 연구』, 민속원, 2003. 인권화, 『토끼전ㆍ수궁가 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정노식 저ㆍ정병헌 교주, 『조선창극사』, 태학사, 1997. 최동현ㆍ김기형, 『수궁가 연구』, 민속원, 2001. 최혜진, 『판소리계 소설의 미학』, 역락, 2000.
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