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이 달린 틀 위에 북면을 위로 향하게 걸고 채로 쳐서 소리 내는 북으로, 당악기에 속하는 타악기
교방고는 『고려사』 「악지」에 당악기로 소개된 북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기녀들을 중심으로 하여 가무(歌舞)를 관장하던 교방에서 당악정재 반주에 사용된 악기이다.
조선시대 『악학궤범』 「당부악기도설」에 포함되어 당악기로 인식되었으나 1433년(세종 15) 문소전(文昭殿) 제례에 당상악(堂上樂)과 당하악(堂下樂)에 향악기들과 함께 편성되어 당악 양식의 향악곡인 〈유황곡〉을 연주한 것으로 미루어 당악뿐 아니라 향악에도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성종대에는 헌가(軒架)에 편성되어 〈종묘제례악〉을 연주하였고, 임금의 행차 때 수레의 앞뒤를 따르며 연주하는 전부고취(前部鼓吹)와 후부고취(後部鼓吹) 악대에도 편성되었다. 고취악대가 이동할 때는 운반을 담당하는 네 명이 배치되어 걸어가며 연주하였다.
교방고는 한 개의 북을 쓰는 〈무고(舞鼓)〉춤에도 사용되었는데 『악학궤범』 「향악정재의물도설」에 따르면 무고는 세 발로 된 받침대에 올려놓고, 울림통 둘레에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상징하는 청ㆍ홍ㆍ백ㆍ흑으로 각각 칠하여 교방고와 구별된다. 그런데 1848년(헌종 14) 『무자진작의례도병』 「통명전진찬도」에 교방고를 둘러싸고 〈무고〉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다른 형태의 교방고가 등장하였다. 이전까지는 1827년 『자경전진작정례의궤』에 나타난 것과 같이 북의 가죽 면이 위를 향한 형태였는데, 1828년 『무자진작의궤』 에서는 북의 가죽 면이 옆을 향하도록 틀에 매달고 연주하는 횡타형 교방고가 등장했다. 이후 편찬된 『의궤』의 「악기도」에는 이런 형태의 교방고만 보이기 시작하며, 이는 현행의 ‘좌고(座鼓)’에 해당한다. ‘좌고’라는 명칭은 1902년(고종 39) 『임인[4월]진연의궤』에 처음 사용이 되었는데, 이어 나온 『임인[11월]진연의궤』에는 다시 ‘교방고’라는 명칭을 써 혼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39년 이왕직아악부 발간 『이왕가악기』에서 ‘좌고’로 소개된 이래, 북면이 옆을 향한 횡타형 교방고는 좌고로 통용되었다. 옛 그림을 살펴보면 종타형의 교방고는 서서 치거나 앉아서 치는데, 횡타형 교방고는 항상 앉아서 연주하므로 좌고라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현재 종타형 교방고는 정재 〈무고〉의 무구(舞具)로 전승되나 연주용으로는 1800년대 전반까지만 사용되고 횡타형 교방고 즉, 좌고로 대체되었다.
○ 구조와 형태
교방고는 몸체와 북면을 두드리는 채로 구성된다. 몸체는 나무로 만든 원형의 울림통과 울림통 양쪽에 가죽을 댄 북면으로 구분된다. 울림통의 내부는 전체가 비어있고, 바깥쪽 둘레에는 반룡이 그려져 있다. 네 발의 받침대에 한쪽 북면을 위로 향하여 건다.
○ 연주방법과 기법
교방고를 연주하는 장면이 여러 사료에서 관찰되는데, 서서 연주하기도 하고 앉아서 연주하기도 하였으며, 북채 둘을 사용하기도 하고 하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1585년(선조 18) 〈선조조기영회도〉에서는 앉아서 북채 하나로 연주하는 모습이 확인되며, 1744년(영조 20) 『기사경회첩』의 〈본소사연도〉에서는 다른 악기들을 앉아서 연주하는 데 비해, 교방고만 서서 북채 두 개를 사용해 연주하였다. 오늘날 <무고> 정재의 무구로서 교방고를 연주할 때는 춤을 추면서 북채 둘을 들고 북면을 친다.
○ 연주악곡 〈보허자〉ㆍ 〈여민락〉ㆍ 〈유황곡〉ㆍ 〈정동방곡〉등의 악곡 및 〈연화대〉ㆍ 〈육화대〉ㆍ 〈포구락〉ㆍ 〈헌선도〉등 정재에 사용되었다.
교방고는 중국에서 전래된 당악기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주로 정재 〈학무〉ㆍ〈연화대무〉ㆍ〈처용무〉 등의 반주음악에 당악기로 편성되었고, 정재 〈무고〉에서는 무구로 활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 제례와 예연에 향악기와 함께 편성되기도 하였다. 네 발의 받침대에 악기의 북면을 하늘로 향하여 걸어 북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 연주하였다. 고취악에서 행진할 때는 받침대에 긴 막대를 끼워 네 명이 악기를 들고 움직이며 연주하였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횡타형 교방고가 오늘날의 좌고다. 오늘날 종타형 교방고는 〈무고〉에 동원되는 무구로만 사용되고, 궁중음악에서나 삼현육각 편성의 춤 반주에서는 좌고가 사용된다.
조선 전기 악기도설 기록에 교방고의 북통 둘레에는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땅에 서린 용[蟠龍]의 그림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해당 부분 그림에는 이와 달리 모란이 그려져 있다. 참고로 조선 후기 연향의궤에 나타난 교방고의 그림에는 북통에 모란이 그려져 있고, 오늘날 복원된 교방고의 북통에는 용 그림을 그린다.
김성혜, 「조선 초기 향악용 악기의 종류 고찰(1)」, 『한국음악사학보』 45, 2010. 김종수, 「교방고와 좌고에 대한 소고」, 『한국음악연구』 48, 2010.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