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사또가 기생점고에 불참한 춘향을 잡으러 군로사령을 파견하는 대목
고대소설로 탄생한 「춘향전」이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에서 창본으로 발견되고 20세기 이후에는 창극으로, 오늘날에는 판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극의 형태로 활발히 공연되고 있다. 판소리 《춘향가》는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을 배경으로 이몽룡과 성춘향의 신분 초월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역사적 변천과정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은 권마성(勸馬聲) 소리를 응용하여 덜렁제를 만들었다 한다. 이 대목은 판소리 《흥보가》 중 권삼득의 더늠으로 부른 〈제비가〉를 수용해 만들었다 한다. 따라서 그의 생몰연대를 고려했을 때, 이 대목은 19세기 초반 이후에 《춘향가》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단, 이를 도입한 정확한 시기와 창자는 미상이다.
○ 음악적 특징
덜렁제, 또는 설렁제(드렁조, 권삼득제라고도 한다)는 소리의 첫 음부터 고음을 질러내며 그 음을 반복하는 구조가 특징이다. 특히 이 대목은 20세기 초반에 이동백을 비롯한 다양한 창자들에 의해 창극 형태로 불리고 있었으며, 여러 장의 SP음반으로도 남겨져 있다. 선율구조가 매우 특징적인 덜렁제는 주요 장면에 등장해 긴장감을 조성하며 극적 사건의 전환을 암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덜렁제의 특징은 시작하는 선율에 나타나는데, 중모리 두 장단이 하나의 대구를 이룬다. 이 대목 역시 첫 번째 구절에서는 높은 라′(la′) 음을 반복적으로 질러내다가 두 번째 구절의 후반부에서 한 옥타브 아래로 툭 떨어진다.
덜렁제의 공통적인 특징을 이 대목의 장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중모리장단에서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특히 첫째·넷째·일곱 번째·아홉 번째 장단에 강세가 주어지면서 거뜬거뜬한 장단 연주를 볼 수 있다.
강세 | << | < | < | << | ||||||||
북 | 덩 | 쿵 | 쿵 | 척 | ||||||||
박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첫 구절 가사(앞) | 구 | ㄴ | 로 | 사 | 령 | 이 | 나 | 가 | ㄴ | 다 | ||
첫 구절가사(뒤) | 사 | 령 | - | 군 | 로 | 가 | 나 | 가 | ㄴ | 다 |
(중중모리) 군로사령이 나간다. 사령군로가 나간다. 산수털 벙거지에 남일공단을 안을 올려 날랠 용짜를 떡 부치고 충충충충 거들거리고 나온다. 구정댓뜰 너른 마당에 덜렁거리며 나온다. 서로 이름 부르며 나오난디, 이 얘 김 번수야! 왜야? 이 얘 박 번수야! 무엇 할랴느냐? 걸리었다 걸리여! 게 뉘가 걸리여? 이애 춘향이가 걸렸다. 옳다 그 제기붓고 발기갈년이 양반 서방을 허였다고 우리를 보면 초리(草履:짚신)로 보고 당혜만 잘 잘 끌고 교만이 너무 많더니만 잘되고 잘 되었다. 사나운 강아지 범이 물어가고 물도 가득차면 넘치니라. 네나 나나 일분사정 두는 놈은 제 부모를 모르리라! 정녕코 나올제 세 수양버들 속에 청철육이 펄렁. 남문 밖 썩 내달어 영주각을 당도. 오작교 다리 우뚝 서, 아나 옛다 춘향아! 허고 부르난 소리 원근산천이 떵그렇게 들린다. 사또 분부가 지엄허니 지체말고 나오너라.
※ 가사는 김소희 창 《춘향가》(브리태니커)에서 인용.
신관 사또의 부임과 기생점고가 진행되는 동안 춘향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방안에서 몽룡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령들이 춘향을 잡으러 출동하며 사건의 국면이 전환되는 시점에 이 대목이 자리하고 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판소리 《춘향가》 내에서 이 대목은 극적 및 음악적 전개상 긴장감을 조성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음악사적으로는 권삼득의 더늠인 덜렁제가 《춘향가》에 수용되어 오늘날까지 연창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서정민, 「춘향가 중 군로사령 대목의 설렁제 변화양상」, 『한국음악사학보』 44, 2010. 이보형, 「판소리 권삼득 설렁제」, 『석주선교수 회갑기념 ‘민속악논충’』, 1971.
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