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노래한 대목
판소리 《춘향가》의 눈대목 중 하나로 이도령과 춘향이 사랑을 나누는 대목을 지칭한다. 사랑가는 진양조(소리꾼들은 세마치라 칭하기도 한다)로 되어 있는 〈느린사랑가〉에서 시작하여 중중모리로 짜여된 〈자진사랑가〉와 〈정자노래〉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판소리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인 유진한의 『만화집』에 사랑가와 비슷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 대목은 판소리 《춘향가》가 발생한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본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랑가가 전해진다. 오늘날 전승되는 자료 중 장자백(혹은 장재백)의 것이 가장 다채로운 창본으로 꼽히며, 노래 전승으로는 송광록 더늠의 〈긴사랑가〉와 고수관 더늠의 〈자진사랑가〉 등이 유명하다.
○ 역사적 변천과정 사랑가는 판소리 《춘향가》 발달 초기부터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전하고 있는 더늠으로는 고수관의 사랑가를 꼽는다. 훗날 송광록에 의해 〈긴사랑가〉(또는 느린사랑가)가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사랑가는 창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장단으로 불리고 있다. ○ 음악적 특징 〈긴사랑가〉는 우조 성음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중간중간 의성어 및 의태어 등에서는 음악적 표현보다도 언어적 표현이 극대화된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면, “이는 다 담쑥 빠져”에서 ‘담’과 ‘쑥’은 완전 8도 차이로 급속히 끌어올리면서 이가 빠진 정도를 극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으르르릉”은 하행과 상행을 반복하며 범의 흥분상태를 표현하였다. 또, (매우 짧은 순간이라 도섭이라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장단을 흘려놓고 말하듯이 지나가는 부분도 보인다. 예를 들면 “지애비 부, 사나이 남, 아들 자짜”와 같이 별다른 음고 없이 표현된 대사체도 수용되어 있다. 중중모리의 〈자진사랑가〉는 음악적으로 대조되는 형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치 A선율과 B선율이 메기고 받는 듯한 조합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A-B 선율대비는 다음의 사설에 해당하는 노래에서 볼 수 있다. 단, 그 대비되는 구절(마디)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표 1〉 《춘향가》 중 〈자진사랑가〉의 A-B식 대조선율 출현부
A | B |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 반간진수(半間眞水)로 먹으랴느냐 |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 외가지 단참외 먹으랴느냐 |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 아마도 내 사랑아 |
포도를 주랴 앵도를 주랴 | 아마도 내 사랑 |
저리 가거라 뒷태를 보자 |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
빵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 아마도 내 사랑아 |
비록 짧은 대목이지만 《춘향가》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은 대목의 하나이다. 따라서 음악적 특징뿐만 아니라 극의 흐름과 판소리의 미학적 장점을 최대한 표출시킬 수 있도록 짜여 있다. ○ 형식과 구성 사랑가는 이몽룡이 춘향을 어르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그 가사가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로 시작하여 “만첩청산”으로 불린다. “오호 둥둥 내사랑아”가 작은 장(章)을 구분하듯이 놓여 있고, 곧이어 사후에도 꼭 만나자는 내용을 담은 “사후기약”으로 이어지다가 글자 유희를 하며 진양조(세마치)의 〈긴사랑가〉를 마친다. 중중모리 대목의 〈자진사랑가〉는 더욱 짧은 호흡으로 이어져 있다. “업고 놀자”며 춘향을 어르고 수박, 강릉백청, 외가지, 단참외, 포도, 앵두, 혜화당, 개살구 등 온갖 맛있는 먹거리를 권하면서 중간중간 “아마도 내 사랑아”를 중심으로 앞뒤 구절을 나누고 있다.
(진양조)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 둥둥 내 사랑이지.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다 담쑥 빠져 먹들 못허고 으르릉 아앙 넘노난 듯 단산봉황(丹山鳳凰)이 죽실(竹實)을 몰고 오동(梧桐)속의 넘노난 듯 구곡청학(九曲靑鶴)이 난초를 물고 송백(松柏)간의 넘노난 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 간의 넘노난 듯 내 사랑 내 알뜰 내 간간이지야 오호 둥둥 니가 내 사랑이지야 목난무변 수여천(木欄無邊 水如天)의 창해같이 깊은 사랑 사무친 정 달 밝은 밤 무산천봉(巫山天峯) 완월(玩月) 사랑 생전 사랑이 이러허니 사후기약이 없을소냐 너는 죽어 꽃이 되되 벽도 홍삼 춘화가 되고 나도 죽어 범나비 되야 춘삼월 호시절의 네 꽃송이를 내가 담쑥 안고 너울너울 춤추거든 니가 나인 줄로 알려무나 화로(花老)하면 접불래(蝶不來)라 나비 새 꽃 찾어가니 꽃 되기도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 될 것이 있다 너는 죽어 종로 인경이 되고 나도 죽어 인경 마치(망치)가 되어 밤이면 이십팔수 낮이면 삼십삼천 그저 뎅~ 치거들랑 니가 나인줄 알려무나 인경 되기도 내사 싫소. 그러면 죽어 될 거 있다. 너는 죽어서 글자가 되되 따지 따곤 그 느름 안에서 계집녀가 글자가 되고, 나도 죽어 글자가 되되 하날 천, 하날 건, 날 일 별 냥, 지애비 부, 사나이 남, 아들 자짜 글자가 되어 계집녀 변에 똑같이 붙어서서 좋을 호(好)자로만 놀아 보자. (아니리) 도련님은 오늘같이 즐거운 날에 어찌 사후 말씀만 하시나이까? 그럼 업고도 놀고 정담도 하여 보자. (중중모리)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아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 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江陵白淸)을 다르르~ 부어 씰랑 발라 버리고 붉은 점 흡벅 떠 반간진수(半間眞水)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당동지(짜리몽땅) 지루지(길쭉한) 허니 외가지 단참외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아마도 내 사랑아 포도를 주랴 앵도를 주랴 귤병(橘餠) 사탕의 혜화당을 주랴 아마도 내 사랑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디 먹으랴느냐 저리 가거라 뒷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빵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마도 내 사랑아 (아니리) 얘, 춘향아 나도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날 좀 업어다고. 도련님은 나를 가벼워 업었지만 나는 무거워서 어찌 업어요? 아, 내가 널다려 무겁게 업어 달라는 말이냐? 내 양 팔을 네 어깨에다 얹고 징검징검 걸어 다니면 그 가운데 진진한 일이 많지야. 춘향도 아주 파겁이 되어 낭군짜로 놀겄다. (중중모리) 둥둥둥 내 낭군 오호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을 업고 노니 좋을 호자가 절로나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探花蜂蝶)이 좋을시고 소상동정(瀟湘洞庭) 칠백리 일생 보아도 좋을 호로구나 둥둥둥둥 오호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이 좋아라고, 얘, 춘향아 말 들어라. 너와 나와 유정허니 정자노래를 들어라 담담장강수(淡淡長江水) 유유원객정(悠悠遠客情) 하교불상송(河橋不相頌)허니 강수원함정(江樹遠含情) 송군남포(送君南浦) 불승정(不勝情) 무인불견(無人不見) 송아정(送我情) 하남태수(河南太守) 의구정(依舊情) 삼태육경(三台六卿)의 백관조정(百官朝庭) 소지원정(消紙寃情) 주어 인정 네 마음 일편단정(一片丹情) 내 마음 원형이정(元亨利貞) 양인심정(兩人心情)이 탁정(托情) 타가 만일 파정(罷情)이 되거드면 복통절정(腹痛絶情) 걱정이 되니 진정으로 완정(玩情:정을 나누다) 허잔 그 정(情)자 노래라.
※ 가사는 김소희 창 《춘향가》(브리태니커)에서 인용.
3인칭 시점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이 대목은 곧 두 사람에게 닥칠 시련 앞에 배치되어 있다. 느린 장단에서 시작해 매우 느린 시선의 이동을 보여주지만, 〈자진사랑가〉로 이어지면서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은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이 묘사되고 있다. 절정에 다다른 행복과 뒤이은 시련의 대비가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의태어의 동작이 옥타브 이상으로 도약하는 선율로 묘사되기도 하며, 장단 단위를 넘나드는 사설 붙임이 〈긴사랑가〉에 나타난다. 〈자진사랑가〉에서는 여러 특산물을 나열하면서 다양한 붙임새를 선보이고 있어 단순함을 피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 대목은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과 젊음에서 늙음으로 시간의 흐름이 변함에 따른 인생관, 또한 〈천자뒷풀이〉 이후 다시 등장하는 한자 조어(造語)의 유희 등 한국문화의 많은 부분을 문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대목은 《춘향가》 중 가장 유명한 대목으로 그 주선율과 가사가 재인용 및 패러디되어 기악ㆍ성악ㆍ무용 분야의 수많은 창작 파생 작품을 낳았다.
김소희, 『판소리 다섯 마당: 춘향가』, 한국브리태니커, 1982. 배연형, 「판소리 〈사랑가〉 더늠 군의 구성과 음악적 변화」, 『한국문학연구』 41,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1. 최동현, 「〈사랑가〉의 구성과 변화」, 『판소리연구』 39, 판소리학회, 2015.
김유석(金裕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