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른 내력
《춘향가》 중 방자가 단옷날 그네를 뛰고 노는 춘향의 행실을 꾸짖는 대목
몽룡이 광한루를 구경하던 중에 춘향이 그네를 뛰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매료되어 방자를 시켜 춘향을 불러오게 한다. 춘향이가 심부름꾼인 방자를 탓하며 나무라자, 오히려 방자가 원인 제공자는 춘향이라고 하면서 당시 여성으로서 잘못된 춘향의 처사(處事)와 행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꾸짖는 대목이다.
네 그른 내력은 19세기 후반에 왕성하게 활동한, 이른바 후기 8명창에 속하는 염계달(廉季達, ?~?)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고제를 대표하는 명창으로, 추천목, 경드름 등 독자적인 소리를 판소리에 포함한 인물이다. 추천이란, 단오 때의 대표적인 여성들의 민속놀이인 그네를 뜻한다. 여염(閭閻)집 아이들과 함께 그네를 뛰고 있는 춘향에게 갖가지 이유를 대가면서 꼬여내는데, 그 안에는 조선시대 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유교적 여성상이 내포되어 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중고제 명창인 염계달은 경기ㆍ충청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경기민요와 정가풍의 서울 소리 음악어법을 차용하여 여타 판소리와는 다른 이색적인 소리를 더늠으로 한다. 중고제 《춘향가》 전승은 현재 맥이 끊겼으나, 그의 더늠인 추천목은 유파를 막론하고 다수 창본에 포함되어 독자성을 이어가고 있다.
○ 음악적 특징 네 그른 내력은 중중모리장단을 사용한다. 방자가 춘향을 꾸지람하는 대목으로 느린 장단보다는 빠른 속도의 장단이 조화롭고, 그네를 뛰는 춘향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 중중모리장단의 경쾌한 강세와의 짜임이 흥청거림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추천목은 그네가 앞뒤로 왔다 갔다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소리를 밀고 당기는 창법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그네 위에서 발을 구르듯이 굴리는 목으로 소리를 박차고 오르며, 그네를 밀어주듯이 미는 목으로 소리를 쭉쭉 뻗어주는 발성을 사용한다. 추천목은 반경드름이라고도 하는데 경기민요 풍의 경쾌한 창법을 포함하면서도 계면조의 ‘미(mi)-라(la)-시(si)-도(do′)’ 골격음과 꺾는 목, 떠는 목 등의 시김새가 함께 쓰여 다양한 빛깔의 성음을 느끼게 한다.
○ 형식과 구성 긴 분량의 아니리에서 방자와 춘향이 서로 치고받는 재담 소리가 해학적이다. 너스레를 떨면서 짓궂은 장난기가 가득한 방자와 뜻밖에 춘향의 거친 말투와 빈정거리는 태도가 새삼스럽다. 소리의 전반부는 방자가 춘향의 행실을 꾸지람하는 듯 하나 후반부에는 춘향의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넉살 좋게 말장난을 하는 방자에게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춘향이 앙칼진 모습으로 덤벼드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또한 춘향이 그네를 타는 모습이 아름다워 필연적으로 몽룡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춘향을 탓하는 방자의 재치가 돋보인다.
아래는 네 그른 내력의 노랫말이다. (아니리) 춘향이 깜짝 놀라 그네 아래 내려서며 “하마터면 낙상할 뻔하였구나.” “허허, 아 나 사서삼경 다 읽어도 이런 쫄쫄이 문자 처음 듣겄네. 인제 열대여섯살 먹은 처녀가 뭣이 어쩌? 낙태했다네!” 향단이 썩 나서며, “아니, 이녀석아. 언제 우리 아씨가 낙태라드냐? 낙상이라고 했제.” “그래, 그건 잠시 농담이고, 향단이 너도 밥 잘 먹고 잠 잘 잤더냐? 그러나저러나 큰일 났네. 오늘 일기 화창하여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 구경 나오셨다 자네들 노는 거동을 보고 빨리 불러오라 하시니 나와 같이 건너가세.” “아니, 엊그제 오신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부르신단 말이냐? 네가 도련님 턱 밑에 앉어서 춘향이니 난향이니 기생이니 비생이니 종조리새 열씨 까듯 새앙쥐 씨나락 까듯 똑 똑 꼬아 바치라더냐? 이 쥐구멍으로 쏙 빠질 녀석 같으니라고!” “허허, 춘향이 글공부만 허는 줄 알았더니 욕공부도 담뿍 허였네 그려. 아니, 자네 욕은 고삿2이 훤 허시 그려. 그러나 자네 처사(處事)가 그르제?” “아니 내 처사가 뭐가 그르단 말이냐?” “내 이를 터이니 들어 보아라.” (중중모리) “네 그른 내력을 네 들어 보아라. 니 그른 내력을 니 들어 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여봐라 추천을 헐 양이면은 너의 집 후원(後園)에 그네를 매고 남이 알까 모를까 헌데서 은근히 뛸 것이지. 또한 이곳을 논지(論旨)허면 광한루 머잖은 곳 녹음(綠陰)은 우거지고 방초(芳草)는 푸르러 앞내 버들은 청포장(靑袍帳) 두르고 뒷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둘러 한 가지는 찢어지고 또 한 가지는 늘어져 춘비춘흥(春飛春興)을 못 이기어 흔들흔들 너울너울 춤을 출 제 외씨 같은 두 발 맵시는 백운간(白雲間)에가 해뜩, 홍상(紅裳) 자락은 펄렁, 잇속은 햇득, 선웃음 방긋, 도련님이 너를 보시고 불렀지, 내가 무슨 말 허였단 말이냐? 잔말 말고 건너가세.”
2) 마을의 좁은 골목길
김경아, 『성우향이 전하는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학림사, 1987.
염계달의 더늠이라 알려진 경드름, 추천목 등의 소리는 기존의 판소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동ㆍ서편제가 주를 이루는 소리판에서 중고제의 담백함과 경드름의 경쾌함은 판소리의 음악어법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다채로운 표현법에 큰 획을 그었다. 《춘향가》의 네 그른 내력과 동일한 사설과 선율이 《수궁가》 중 〈수궁풍류〉 대목에 사용된다. 해당 대목은 토끼에게 속은 용왕이 술과 음식을 내어주며 잔치를 벌이자 흥에 겨운 토끼가 한바탕 춤을 추는 내용이다. 손을 들어 덩실덩실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모습이 추천목과 유사하게 묘사되는 부분이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2003)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사 출판부, 1940.
노민아(盧珉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