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경(廣寒樓景), 광한루(廣寒樓) 구경
《춘향가》 중 몽룡이 광한루에 올라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는 대목
몽룡은 방자로부터 남원의 여러 명소를 소개받고 그중에서 광한루가 제일 좋을 듯하여 나귀를 타고서 구경을 나선다. 광한루에 올라서서 사면 경치를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시구(詩句)가 절로 읊어지고, 오작교를 바라보니 견우직녀처럼 인연을 찾고 싶다는 속마음이 솔직하게 표현된다.
적성가는 19세기 후반에 왕성하게 활동한, 이른바 후기 8명창에 속하는 장자백(張子伯, ?~1907)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편제를 대표하는 명창으로, 《춘향가》에 능하였다.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 650~676)의 『임고대(臨高臺)』의 구절을 차용하여 남원의 광한루와 그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에 취한 몽룡의 심리를 그려낸다.
1) 장재백(張在伯, 張在白)으로 표기되기도 함.
○ 역사적 변천 과정 “적성의 아침 날”이라고 시작하는 노랫말로 인해 적성가라고 이름 붙었다. 조선 철종ㆍ고종 때 지어진 장자백의 더늠이 정형화되어 오늘날 대다수의 창본에서 온전히 이어지고 있다. 당나라 왕발의 시 『임고대(臨高臺)』에서 차용한 구절은 “적성영조일(赤城映朝日) 녹수요춘풍(綠樹搖春風)2”, “요헌기구하최외(瑤軒綺構何崔巍)3”, “자각단루분조요(紫閣丹樓紛照耀)4” 등이 있다.
2) “적성산에 아침 햇빛이 비치고 푸른 나무에 봄바람이 둘렀어라”의 뜻.
3) “아름다운 추녀와 기둥은 어찌 저리 높은가”의 뜻.
4) “자주빛과 붉은빛의 누각이 각각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구나”의 뜻.
○ 연행 시기 및 장소 적성(赤城)은 중국의 허베이성 인근의 지역명이다. 《춘향가》의 주요 배경지가 남원이라 전라북도 인근의 적성산(赤城山)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적성가는 중국의 시를 차용하여 광한루(廣寒樓)를 적성에 빗대어 윤색시킨 것이다. 남원 광한루는 몽룡과 춘향의 서사가 시작되는 장소이자, 초입부터 광한루 근방의 빼어난 경관을 설명하는 대목이 전반부의 상당량을 차지한다.
○ 용도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한시(漢詩)의 구절을 삽입하는 형태는 판소리에서 자주 쓰이는 구성이다. 왕발의 시 『임고대(臨高臺)』를 활용한 것은 적성가뿐만 아니라, 《춘향가》의 〈기산영수(箕山潁水)〉 대목에서도 “동원도리 편시춘(東園桃李 片時春)”이라는 글귀가 사용된다. 주로 아름다운 풍경을 설명하고 그 광경에 도취한 인물의 심리를 빗대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음악적 특징 적성가는 진양조장단으로 노래한다. 대마디대장단을 위주로, 특히 제1~4박에서만 소리하고 제5~6박에는 사설이 붙지 않는 형태가 반복 사용되어 정연하고 꿋꿋한 느낌을 준다. 또한 네 장단 혹은 여덟 장단을 기준으로 기-경-결-해 구조가 규칙적으로 짜여있다. 흔히 이 대목의 소리를 가곡성우조라고 하는데, 주로 진양조장단과 함께 사용되어 한가로운 장면을 묘사하는 데 구성되어 있다. 우조의 장중하고 씩씩한 소리와 함께 가곡에서 쓰이는 맑고 유연한 소리가 함께 쓰이는 것이 특징이다. 힘찬 통성으로 내지르다가도 가성을 사용하여 여린 속소리를 내는 창법이 대비된다. 지르는 목, 폭깍질 목(막는 목), 떨구는 목 등을 사용하여 우조의 씩씩하고 장중함이 느껴진다. 더불어 가곡의 느린 요성처럼 고음역대에서 음을 추켜들고 가면서 흔드는 형태의 상행 요성, 감는 목, 뒤집는(엎는) 목 등을 사용하여 가곡풍의 매끈하고 화평한 멋스러움이 동시에 드러난다. ○ 형식과 구성 악곡의 전반부는 광한루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장면이고, 후반부는 오작교를 바라보며 연분을 바라는 몽룡의 심리가 표현된다. 노랫말의 형식은 『임고대(臨高臺)』의 시구를 비롯해 3ㆍ4조나 4ㆍ4조의 운율에 맞추어진 짜임이 대구를 이루고 있어 정형시의 느낌을 준다. “적성의 / 아침 날에 // 늦은 안개 / 띠어있고 // 녹수의 / 저문 봄은 // 화류 동풍 / 둘렀난디 //”
장자백 창본을 비롯한 대다수의 창본이 거의 동일한 노랫말을 사용한다
반면, 정정렬 창본은 광한루에 도착한 후에 방자가 몽룡에게 사면 경치를 아뢰는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드름부터 차이가 크다. “동편을 가르치며(가리키며) 저 건너 보이는 산은 지리산 내맥인디 신선 내려 노든디요.(후략)”
아래는 “적성의”로 시작하는 창본의 노랫말이다. (아니리) 도련님이 광한루 위에 올라서서 사면 경치를 바라보실 적에 (진양조) “적성(赤城)의 아침 날에 늦은 안개 띠어있고 녹수(綠樹)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花柳東風) 둘렀난디 요헌기구하최외(瑤軒綺構何崔巍)난5 임고대를 일러있고 자각단루분조요(紫閣丹樓紛照耀)난 광한루를 이름이로구나 광한루도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오작교가 분명허면 견우직녀 없을쏘냐 견우성은 내가 되려니와 직녀성은 뉘라서 될꼬 오늘 이곳 화림 중에 삼생연분 만나볼까”
5) =는(보조사)
김경아, 『성우향이 전하는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학림사, 1987.
적성가는 판소리와 가곡의 멋이 골고루 포함된 소리이다. 우조의 꿋꿋함과 장중함이 느껴지고 고음역대의 맑은 소리를 질러내어 청량함을 느끼게 하고, 다양한 시김새를 사용한 일자다음(一字多音)의 유연한 흐름이 가곡의 우아함과 화평함을 느끼게 한다. 한 곡 안에서 판소리 창법과 가곡의 창법을 자유롭게 구사해야 하고 다양한 기교가 총망라하여 사용되기 때문에 많은 공력이 필요한 소리이다. 소리꾼들 사이에서도 어렵다고 손꼽히는 대목이며, 《춘향가》의 대표적 눈대목이다. 더불어 『임고대』의 시구를 적절하게 차용하여 유유자적한 풍경을 점잖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양반 애호층들의 흥취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2003)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사 출판부, 1940.
노민아(盧珉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