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춘향타령
춘향과 이도령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노래한 판소리
춘향가는 다양한 근원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판소리로 오랜 세월 동안 문학적 음악적 발전을 거듭해 왔다. 현존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며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춘향가는 남원을 배경으로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 사랑, 이별, 고난, 재회를 다루고 있으며, 사회적 비판의식과 서민 정신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춘향가는 18세기 중엽 이래로 많은 명창들이 각 대목을 더늠으로 남기면서 전승되어 왔다. 현대에는 김세종제, 정정렬제, 김연수제, 김소희제 춘향가의 전승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춘향가는 근원설화에서 판소리로 이행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판소리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오랜 세월 동안 적층된 사설과 더늠을 바탕으로 예술화 되었다. 춘향가의 근원설화는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 ‘염정(艶情)설화’, ‘신물교환설화’, ‘꿈해몽설화’ 등이 언급되는데, 어느 하나의 설화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춘향가에 영향을 주면서 이야기가 확장되었을 것으로 본다. 판소리 춘향가의 형성에 대해서는 무가기원설, 양진사 창작설, 문장체소설 선행설 등이 있다. 무가기원설은 ‘박색춘향 설화’를 모티브로 한 춘향굿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이고, 양진사 창작설은 남원의 선비 양주익이 썼다는 〈춘몽연(春夢緣)〉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문장체소설 선행설은 소설이 판소리에 앞서 있었다는 설이다. 이러한 춘향가의 유래에 대해서는 어느 것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으나, 만화(晩華)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이 호남을 여행한 후 지었다는 200구의 한시 춘향가가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남아있음을 보아, 이미 18세기 중엽에는 춘향가가 인기리에 불리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줄거리와 이본 춘향가는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李夢龍)과 퇴기 월매의 딸 춘향(春香)의 사랑과 이별, 고난, 재회를 다룬 판소리이다. 춘향가에서 파생된 이본은 현재 200여 종 가깝게 보고되고 있으며, 계속 새로운 이본도 발굴되고 있다. 춘향과 이몽룡을 중심에 두고 있는 작품을 ‘춘향가(전)’로 볼 때 경판본, 완판본, 필사본, 활자본 등이 전하며, 이 중 〈남원고사본〉, 〈별춘향전〉,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다루어진다, 근대에 이르러 이해조가 박기홍의 춘향가를 다듬어 기록한 소설 〈옥중화〉는 활자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춘향가의 등장인물과 주제 춘향가는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양반과 기생의 신분 문제가 중요한 갈등의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면서 벌어지는 사회의식과 시대 변화상이 매우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다. 이본별로 등장인물에 대한 시각이 미세하게 차이는 있으나 대개 다음과 같은 성격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 춘향은 퇴기의 딸로 신분상 기생 천인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이도령과 사랑한 이후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함으로써 신분사회의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게 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정절을 지키고자 함이지만 그 속뜻은 양반이나 서민 모두 같은 인권, 즉 주체적으로 한 사람을 사랑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 차별이 부당하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춘향의 항거는 변사또를 넘어 당대 신분사회에 대한 불합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춘향이 결국 어사가 된 이도령을 만나고, 정렬부인에 이른다는 결말은 봉건사회의 해체를 암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대로 올수록 춘향의 신분은 보수적 입장에서 조정되는데, 신재효는 그의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을 성천총의 서녀로 묘사하고, 후대의 창본 등에서는 성참판의 서녀로 격상되기도 하였다. 이몽룡은 남원부사의 아들로 단오날 광한루에 구경나갔다가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춘향집을 찾아가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부친의 승직으로 다시 서울로 가면서 춘향과 이별한다. 과거에 급제한 후 어사가 되어서 남원에 내려온 이몽룡은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춘향과 다시 만나 백년해로하며, 이 사실을 임금께 고해 춘향은 정렬부인이 된다. 춘향이 정렬부인이 된다는 결말은 이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몽룡과 다시 만나 서울로 올라가 해로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몽룡은 처음에는 미숙하고 철없는 도령이었지만, 점차 성숙하고 신뢰감 있는 양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랑을 완성하는 주동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춘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사가 되어 남원에 갔을 뿐만 아니라 서민의 입장에서 부정부패를 일삼는 탐관오리들을 처벌하는 위정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몽룡은 봉건사회 양반들이 변화되어야 할 인물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깨어있는 근대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변사또는 춘향가에서 가장 부정적인 인물이다. 부정, 탐학, 호색하는 인물로 남원에 부임하자마자 기생점고를 하며 춘향을 찾았고,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에게 폭력을 써서 죽이고자 하였다. 변사또는 전형적인 봉건시대의 탐관오리를 상징하고 있으며, 기생 신분의 춘향을 억압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자 하는 인물이다. 월매는 춘향의 어머니로 늦은 나이에 춘향을 낳아 고이 길렀다. 자신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양반 집안의 아이와 다름없이 기르고 공부를 시켜 좋은 짝을 만나도록 도왔다. 그러나 춘향이 감옥에 갇히자 변사또의 수청을 들라고 회유하기도 하고, 어사가 되어 찾아온 이몽룡을 못 알아보고 구박하기도 하는 등 매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도령의 하인 방자와 춘향의 하인 향단이는 보조적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중 방자는 이도령을 보좌하면서도 양반의 위선이나 허세 등을 골계적으로 풍자하는 역할을 맡았다. 방자는 춘향이에게 빠져 있는 이도령을 놀리거나, 춘향에게 현실적인 이익을 제시하는 등 두 주인공의 만남을 위해 노력하는 중개자 역할을 하면서도, 상전을 조롱하거나 계산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비판적 사회 인식과 현실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춘향가는 이러한 생동하는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양반들의 고상한 언어와 서민들의 살아있는 우리말을 절묘하게 배치함으로써 조선 후기 문화와 세계관 등을 엿볼 수 있게 한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춘향가의 더늠과 명창 현재 전해지는 춘향가의 더늠으로는 19세기 전반기의 명창들이 남겨놓은 고수관의 〈자진사랑가〉, 염계달의 〈남원골 한량〉ㆍ〈돈타령〉ㆍ〈백구타령〉, 송흥록의 〈귀곡성〉, 송광록의 〈만첩청산〉이 있다. 19세기 후반에는 이석순의 〈춘향방 사벽도〉, 김세종의 〈천자뒤풀이〉, 이날치의 〈동풍가〉, 김창록의 〈춘향방 팔도담배가〉, 장재백의 〈적성가〉 등이 만들어졌다. 근대에는 송만갑의 〈농부가〉, 한경석의 〈천지삼겨〉, 정정렬의 〈신연맞이〉, 임방울의 〈쑥대머리〉, 조상선의 〈창극조 사랑가〉 등이 만들어지고 유행하였다. 이러한 더늠들이 축적되면서 춘향가는 음악적으로 더욱 풍성하고 세련된 작품으로 발전하였다.
현재 춘향가의 유파로는 김세종제(보성소리), 정정렬제, 김연수제(동초제), 김소희제(만정제) 등이 활발히 전승되고 있으며 이 외에 전승이 단절되거나 미약하게 이어지는 춘향가로는 장재백제, 이선유제, 정광수제, 박동진제, 강도근제, 박봉술제가 있다. 춘향가의 전승은 19세기에는 동편제 계열의 춘향가가 전승을 주도하면서 주요 소리 대목들을 정립해 나갔으며 이 중 송흥록 계열의 더늠은 이선유, 박봉술에게 영향을 미쳤다. 김세종 계열의 춘향가는 장재백과 김찬업 등에 영향을 미쳐 보성소리로 이어졌다. 20세기 전반기에는 서편제 계열 특히 정정렬제 춘향가가 크게 유행하며 현대에서의 전승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 춘향가인 동초제와 만정제의 근간이 되었으며, 정광수, 박동진, 강도근 명창도 정정렬제 춘향가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후반에는 무형문화유산 지정이 된 김세종제, 정정렬제, 동초제, 만정제를 중심으로 춘향가 전승이 활발히 이어졌다. 1세대 국가무형문화유산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김여란, 김소희, 김연수 명창이 지정되었으며, 2세대에 성우향 명창이 활약했다. 현재 춘향가 보유자로 신영희, 안숙선 명창이 지정되어 있다.
춘향가는 판소리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문학적 음악적 완성도와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역대 명창들이 이룩한 더늠이 풍부하게 남아있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있음은 물론 방대한 이본이 남아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춘향가는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를 잘 반영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상과 이에 대한 향유층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랑이야기 속에 등장인물의 근대적인 자각과 신분사회에 대한 비판 등이 다루어져 작품성이 뛰어나고, 현대에도 끊임없이 재창작되고 있어, 우리 민족의 고전이자 원형 콘텐츠 역할을 하고 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유산(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3)
설성경, 『춘향전의 형성과 계통』, 정음사, 1986. 정노식 저ㆍ정병헌 교주, 『조선창극사』, 태학사, 1997. 정병헌, 『판소리와 한국문화』, 역락, 2002. 최혜진, 『판소리 유파의 전승 연구』, 민속원, 2012. 김석배, 「춘향전 이본의 생성과 변모양상 연구」,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송미경, 「춘향가 소리 대목 및 더늠의 전승 양상과 판소리사적 의미」,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