密陽아리랑, 밀양아리랑타령(卵卵타령)
경상도를 대표하는 아리랑으로,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민요
1920년대 중반에 기생들에 의한 음반화 및 라디오 방송으로 전국적으로 유행되어 통속 민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단순히 유희요로 전승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가들에 의해 〈광복군아리랑〉으로 노래되었고 한국전쟁 때에는 중공군에 의해 〈빨치산아리랑〉으로 개사되는 등 군가로도 불리어졌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민주화운동 때에는 〈신밀양아리랑〉, 〈통일아리랑〉 등으로 개사하여 노동가로 노래되었고, 밀양지역 내에서는 구전민요의 하나로 민속놀이의 한 과장에 삽입되어 노래되는 등 유행가, 유희요, 항일운동가, 군가, 운동가, 구전민요 등으로 기능을 달리하며 노래되어 왔다.
밀양아리랑의 유래는 아랑기원설, 박남포에 의한 작곡설 등이 있다. 아랑기원설은 밀양지역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순결을 지킨 아랑낭자의 전설로, 밀양아리랑 노래 가사에 아랑 전설의 내용이 나오지만, 밀양아리랑의 유래로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박남포((朴南浦, 1894~1936)에 의한 밀양아리랑 작곡설이다. 박남포는 일제강점기 대중음악 작곡자이자 가수였던 박시춘(朴是春, 1913~1996)의 부친이자 밀양 권번을 운영했던 재력가로, 박남포의 주축에 의해 밀양아리랑을 만들었다는 설이다. 박남포 주축에 의한 작곡설은 아직 입증되거나 규명된 바는 없지만, 그의 무덤에 세워진 비석의 기록이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비교적 유력한 설로 알려져 있다.
○ 역사적 변천 과정과 연행 시기 및 장소와 용도
1926년 기생에 의한 음반화 및 라디오 방송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행되었다. 그러나 1920년 후반까지는 기생들에 의해 노래되었으나, 항일운동을 하던 만주의 독립투사들에 의해 〈독립군아리랑〉, 〈광복군아리랑〉으로 개사하여 노래되었고, 한국전쟁 때에는 중공군들이 〈파르티잔아리랑(빨치산아리랑)〉으로 개사하여 노래하였다. 1980년에는 〈신밀양아리랑〉, 〈통일아리랑〉 등 민주화 운동가로 개사하여 불러지는 등 다른 민요와는 달리 역사적 변천에 따라 유희요, 항일운동가, 군가, 민주노동가 등 지속적으로 기능을 달리하며 노래되어 왔다. 현재 《경기민요》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나, 밀양지역에서는 밀양의 민속놀이의 한 과장에 삽입되어 밀양의 구전민요로 전승되고 있다.
○ 형식과 구성(악곡 구성, 가창 방식, 반주 악기편성 등)
여덟 마디의 메기는 소리와 여덟 마디의 후렴구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형식이다. 가창방식은 메기는 소리와 후렴으로 구성되지만, 반주 악기 편성은 《경기민요》와 구전민요의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경기민요》에서는 반드시 삼현육각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데 비해 밀양지역에서는 장구ㆍ북ㆍ지게목발 등의 최소한의 반주 또는 무반주로 한 명이 가사를 메기면 주변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이 다함께 후렴구를 부르는 구전민요의 형태가 있다. 《경기민요》의 경우에는 대부분 유희요의 내용으로 가사가 일정한 반면, 밀양의 구전민요 형태는 유희요 뿐 아니라 신세한탄, 시집살이, 전쟁의 아픔, 명승지나 지명, 반어와 풍자 등 가사의 내용이 훨씬 다채로우며, 특히 상황에 따라 가사를 자유롭게 만들어 부르는 즉흥성을 띤다.
○ 음악적 특징(장단, 음계 및 선법 등)
밀양아리랑은 3소박 3박자의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5음계로 구성된다. 질러내는 높은 음인 라(la)로 시작하여 라(la)로 종지하는 라선법이며, 반경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첫 소절인 ‘날 좀 보소’와 후렴구의 ‘아라리가 났네’의 ‘라(la)-솔(sol)-라(la)-솔(sol)-미(mi)’의 하행 선율에서는 메나리토리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어서, 반경토리 속에 메나리토리의 요소가 들어간 독특한 선율형태를 띠고 있다.
가사는 4ㆍ4조의 율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명이 독창으로 한 소절을 부르면 다함께 후렴구를 부르는 형태의 주고받는 형식이다. 노랫말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와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의 가사가 대표된다. 이 외에도 님과의 사랑이나 그리움, 애틋함, 아쉬움 등의 감정이 담긴 내용과 시집살이의 어려움, 밀양지역의 명소와 경치의 아름다움, 당시의 시대 상황의 풍자 등과 같은 내용이 별도의 순서 없이 자유롭게 노래된다. 각 소절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후렴구로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잘 넘어간다)’로 부르며, 밀양지역에서는 특징적으로 후렴구를 ‘아리당다궁 쓰리당다궁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어쩔시구 잘 넘어간다’로 부르기도 한다.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잘 넘어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옥양목 겹저고리 연분홍 치마/열두 번 죽어도 못 놓겠네 담 넘어 갈 때는 큰맘을 먹고/문고리 잡고서 발발 떤다 물명주 단속곳 널러야 좋고/홍당목 치마는 붉어야 좋다 앵기면 앵기고1 말면 말지/고개 만댕이 얹어놓고 만단 말인가 남의 집 서방님은 가마를 타는데/우리 집 저 문디는2 콩밭골만 탄다 시어머니 죽고 나니 방 널러 좋고/보리방아 물고라 놓으니 생각이 난다 돈 닷 돈 바래서 콩밭골로 갔더니/물명주 단속곳 개똥칠만 했네 어시랑살랑 칩거들랑3 내 품에 안기고/비개주침 낮거들랑 내 팔을 비어라4 삼각산 만댕이5 허리 안개6 돌고/나 어린 신랑 품에 잠 잔동 만 동 질가집7 담장은 높아야 좋고/주막집 술어마시8 고바야 좋다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중천에 뜬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밀양아 성내에 사장구 소리/동문 안 큰 애기 궁둥춤을 추네 밀양아 남천강 돛단배 떴고/큰 애기 술잔에 금붕어 떴다 총각들 사다주는 홍갑사 댕기/고운 때도 안 묻어서 날 받아 왔네 니 잘 났나 내 잘 났나 그 누가 잘 나/구리 백동 지전이라야 돈 잘 났지9 시오마시10 잔소리는 쓴 비상 같고/술 담배 묵어보니 꿀맛 같네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하구요/큰 애기 젖가슴은 울퉁불퉁 밀양아 영남루 경치가 좋아/팔도의 한량이 다 모여 드네
1) 안기려고 하면 안기고 2) 문둥이. 못난 사람을 뜻함 3) 춥거들랑 4) 내 팔에 (머리를) 베고 누워라 5) 꼭대기 6) 안겨서 7) 길가에 있는 집 8) 술 파는 아주머니 9) 네가 잘 난 것인가, 내가 잘 난 것인가, 도대체 누가 더 잘 난 것인가? 구리와 백동, 종이화패인 돈이 최고로 잘 났다는 의미임 10) 시어머니
진용선ㆍ서정매, 『잇다, 밀양아리랑 전승현황1』, 밀양시ㆍ밀양문화재단, 2021. 40쪽.
밀양아리랑은 1920년대에 기생들에 의해 음반화가 이루어지면서 통속민요의 유희요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파급력으로 만주에서는 독립투사들에 의한 〈독립군아리랑〉ㆍ〈광복군아리랑〉 및 한국전쟁 때 중공군들에 의해 〈파르티잔아리랑(빨치산아리랑)〉으로 개사하여 군가로 불렀으며, 1980년대에는 〈신밀양아리랑〉, 〈통일아리랑〉, 그리고 밀양지역 내에서는 지역인들에 의한 구전민요로 노래되는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기능을 달리하며 전승되어 온 특징을 지닌다.
아리랑 :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경남무형문화재(1983) 감내게줄당기기의 과장에 밀양아리랑이 삽입되어 전승되고 있다.
김동연ㆍ서정매ㆍ최은숙, 『밀양아리랑 전승현황 조사 사업 보고서』, 밀양시, 2020. 박희학ㆍ서정매ㆍ장현호, 『밀양아리랑가사집』, 밀양아리랑보존회ㆍ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 2015. 서정매ㆍ진용선, 『잇다, 밀양아리랑 전승현황1』, 밀양시ㆍ밀양문화재단, 2021. 서정매, 「밀양아리랑의 변용과 전승에 관한 연구」, 『한국민요학』 35, 2012.. 서정매, 「선율과 음정으로 살펴본 밀양아리랑」, 『한국민요학』 21, 2007.
서정매(徐貞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