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배기참놀이
경상남도 밀양에서 백중 무렵에 농민들이 김매기를 마치고 놀았던 놀이
백중(百中)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百種)ㆍ중원(中元)ㆍ망혼일(亡魂日)ㆍ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불교의 명절이었던 백중의례가 ‘백중놀이’로 정착하게 된 배경은 조선 후기에 이앙법(移秧法)이 일반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논농사에서 가장 고된 김매기는 세 번 이상 하는데, 대개 음력 7월 보름을 전후하여 끝이 났고 이를 기념하고 즐기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불교제의인 백중과 겹쳐지면서 점차 농경축제로 변모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밀양도호부조(密陽都護府條) 영남루기(嶺南樓記)에는 “긴 강을 굽어 끼고 넓은 들은 평평히 얼싸 안고 있으며, 농사는 부지런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오래전부터 밀양에서는 농업이 성하고 백중놀이의 전통도 화려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밀양 지역에는 일꾼들이 즐기는 날이라고 하여 이날을 ‘머슴날’이라고도 불렀는데,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놀았다. 놀이에서는 ‘불당골’이라 불린 부북면 퇴로리 일대에 본거지를 두고 살았던 사당패와 조선 말기의 토호나 대지주 행세를 하면서 살았던 아전(衙前) 출신들의 모임인 보본계원(報本契員)의 영향이 컸다.
밀양백중놀이는 1970년 초 밀양아랑제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1972년부터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처음 참가할 때는 ‘병신굿놀이’의 명칭으로 행해졌으며, 〈인사굿〉ㆍ〈신풀이굿〉ㆍ〈병신굿〉ㆍ〈모듬굿〉 등을 연행했다. 이후 ‘꼼배기참놀이’와 ‘병신굿놀이’가 합쳐져서 ‘백중놀이’가 됐다. 1980년에는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여하면서 놀이의 명칭을 ‘백중놀이’로 바꿨으며, 연행 내용도 오늘날의 전승되는 백중놀이와 유사한 형태로 변화했다. 밀양백중놀이는 이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며, 이어 1980년 11월 17일 국가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로 지정됐다.
백중놀이는 주로 논농사가 발달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그 명칭과 놀이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호미씻이[洗鋤宴]’라고 부르는데 ‘논매기가 끝나고 호미를 씻어 둔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밖에도 〈호미걸이〉(경기북부), 〈써레씻이〉(강원도), 〈길꼬냉이〉ㆍ〈대동굿〉ㆍ〈장원례〉ㆍ〈술멕이〉(전라도), 〈머슴날〉(전라도, 경상도), 백중놀이ㆍ〈풋굿[草宴]ㆍ〈꼼배기〉ㆍ〈꼼비기〉ㆍ〈깨임말타기〉(경상도) 등으로 불린다.
밀양백중놀이는 앞놀이ㆍ본놀이ㆍ뒤풀이 등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앞놀이는 풍물소리로 흥을 돋우고 나발을 길게 세 번 불어 시작을 알리면, 농신대(農神竿)를 앞세우고 농악대와 놀이꾼 순으로 등장하여 〈허튼춤〉을 춘다. 다음은 놀이판을 정화시키는 〈잡귀막이굿〉으로 농신대를 중심에 두고 감아 들어가면 들당산가락을 울리어 삼배(三拜)를 올려 잡귀를 막고 신이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어서 모심기와 논매기소리를 부르면서 모를 심고 김매기를 하는 모정자놀이를 한다. 이 놀이가 끝나면 씨름과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놀이인 들돌들기로 좌상(座上), 무상(務上), 숫총각을 뽑고, 놀이꾼들은 〈덧배기춤〉을 춘다.
다시 나발을 길게 불어 신호를 하면 농신대 앞에 제관과 축관이 서고 다음에 좌상, 무상, 숫총각이 선다. 북을 세 번 울리며 강신을 알리면서 삼배하고 모두 엎드리면 제관이 제를 올린다. 제를 마치고 음복을 하는 동안, 구경꾼과 놀이꾼은 복주머니에 쌀, 돈 등과 함께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어 농신대의 용끈에 매달고 복을 빈다. 이어서 술과 안주를 먹으며 〈어사영〉, 〈모심기노래〉 등 밀양의 민요를 부르며 어울려 논다.
본놀이인 놀이마당은 작두말타기와 〈양반춤〉ㆍ〈병신춤〉ㆍ〈범부춤〉 등의 춤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두말타기는 네 명의 놀이꾼이 어깨에 멘 작두말이나 소에 힘자랑에서 뽑힌 좌상과 무상을 태우고 정자관처럼 삿갓을 머리에 뒤집어씌우고 도롱이를 도포처럼 입혀 놀이판을 돌면서 양반 행차를 흉내 낸다. 점차 신명이 오르면 2~3명이 덧배기장단에 맞춰 〈양반춤〉을 추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머슴들이 우스꽝스러운 〈병신춤〉을 추면서 양반을 놀이판에서 쫓아낸다.
〈병신춤〉은 곱추ㆍ난쟁이ㆍ꼬부랑할미ㆍ떨떨이ㆍ문둥이ㆍ배불뚝이ㆍ봉사ㆍ절름발이ㆍ중풍쟁이ㆍ히줄래기 등 여러 배역이 등장하여 양반들의 병신흉내를 낸다. 이때 놀이판에서 쫓겨났던 양반들이 의관을 벗어던지고 뛰어들어 〈범부춤〉을 춘다. 특히 〈범부춤〉은 ‘장구꽂이’라고도 하는데, 장구재비와 마주하여 맞춤[對舞]을 추고 뛰어다니는 활달한 춤이다.
뒷풀이는 〈오북춤〉과 화동마당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놀이꾼과 구경꾼이 어우러져 춤을 추며 노는 대동의 장이다. 〈오북춤〉은 다섯 명의 북잽이들이 북을 치며 원무를 추거나 원밖으로 들락거리면서 멋들어지게 노는 마당이다. 곱덧배기장단에 맞추어 능청거리는 〈허튼춤〉을 추다가, 배기장단에 맞추어 원으로 〈북배김〉을 한다. 마지막 화동마당에서는 놀이꾼들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져서 한바탕 춤을 추며 끝맺는다.
밀양 백중놀이는 일반 백중놀이와는 달리 이 지역 한량들의 친목 조직이라고 전하는 보본계(報本契)의 들놀이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병신놀이(병신춤)’을 중점으로 연행된다. ‘꼼배기참’이란 밀양 지방의 사투리로 밀을 통째로 갈아 팥을 박아 찐 떡과 밀에다 콩을 섞어 볶은 것, 그 밖에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머슴들에게 점심ㆍ저녁으로 주는 음식을 말한다. 농신대는 저릅대(삼대) 360개를 크게 네 부분으로 묶고 위에서부터 새끼줄 열두 개를 늘어뜨린 모양이다. 농신대의 네 묶음은 사계절을, 새끼줄 열두 개는 일 년 열두 달을, 삼대(저릅대) 360개는 일 년 360일을 상징한다. 또한, 사방과 중앙에 오색 천으로 오방신장을 표현한다. 경남의 밀양백중놀이외에도 충남의 《연산백중놀이》, 충북의 《괴산백중놀이》, 서울의 《송파백중놀이》, 전주의 《칠월백중놀이》 등 지역명칭을 붙인 백중놀이들이 있다.
밀양백중놀이: 국가무형문화재(1980)
국립문화재연구소, 『밀양백중놀이』,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정병호ㆍ박진주, 「밀양백중놀이」,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38, 문화재관리국, 1980. 배도식, 「밀양백중놀이 연구」, 『한국민속학』 19, 1986. 추현태, 「밀양백중놀이」,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2015.
이효녕(李皢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