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긷거나 액체를 담아 운반하는 도구로, 민간에서 놀 때 쓰던 타악기
허벅은 일상 생활에 필수적인 도구였다. 이러한 도구를 필요한 대로 거두어 악기처럼 사용하기도 하였다. 허벅은 민간의 놀이판에서 가장 쉽게 구하여 악기처럼 쓰곤 하던 것이다.
제주도에서 허벅이 사용된 지는 그다지 오래지 않았다. 따라서 허벅을 악기처럼 쓴 지도 그리 오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벅을 악기 대용으로 쓰는 일이 유행하던 시기에 민간에서는 허벅만한 악기도 없었다. 허벅은 집집마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고, 놀이판에서 필요로 할 때는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제주도에서 허벅은 귀한 물건이었다. 물이 귀하여 물 긷기가 긴요한 일이었다. 허벅 유통이 원활해진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허벅 구하기가 쉬워진 뒤에나 악기처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벅을 본격적인 악기로 사용한 사례는 없다. 민간의 자족적인 놀이판에서 악기 대용으로 사용하였을 따름이다. 생활 도구로 허벅의 쓰임이 사라지자 허벅을 악기 대용으로 쓰는 일도 사라졌다. 따라서 허벅이 악기처럼 사용된 역사는 매우 짧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허벅을 사용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고 길지도 않다. 허벅을 악기로 쓰는 일은 1970년쯤에 일찍이 중단된 듯하다. 오늘날에는 민요 공연에 더러 사용되는 사례가 있고, 한때 성악가가 허벅을 활용하여 공연한 사례가 있을 따름이다. 허벅은 민간의 놀이판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혼례와 같은 잔칫날 마루나 마당에서 벌인 놀이판에서 노래와 춤으로 놀았는데, 이때 허벅이 악기처럼 사용되곤 하였다. 흥에 겨워 되는대로 가지고 노는 것이었으니 정형적인 연주 방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허벅은 몸통과 입구를 활용하여 연주한다. 몸통을 손바닥으로 치고 좁은 입구를 손으로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울림을 조절한다. 타악기와 관악기의 특징을 지닌 셈이다. 테왁과 마찬가지로 소리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반주 악기로 기능한다기보다는 무엇인가를 연주하는 행위 그자체로 신명을 돋군다는 의미가 강하다. 허벅은 본래 물 긷거나 액체류를 보관하고 운반하는 데 쓰였다. 물허벅으로 쓰인 사례가 많다. 물허벅은 물이 귀한 곳이었던 제주도에서는 생활 필수품이었다. 집집마다 갖추고 있는 물건이었다. 허벅은 제주도의 상징과 같이 되었지만 그 역사는 생각하는 만큼 오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옛날 문헌 기록에는 제주도에서는 물 긷고 옮기는 데 옹기를 쓰지 않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허벅은 입구가 좁아 겉을 치면 공명을 이용하여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민간에서 노래하고 즐길 때는 악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제주도의 민간에는 마땅한 악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심방들이 쓰는 악기를 빌리지 않는 한 악기를 따로 마련하여 이용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이때 사람들이 쉽사리 구할 수 있는 대체 악기가 바로 허벅이었다. 허벅은 어느 집에나 하나쯤은 반드시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만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허벅은 생활 도구를 악기처럼 사용한 사례이다.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는 도구를 필요한 대로 악기로 사용한 것이다. 생활 도구로 쓰임이 사라지자 악기로 쓰는 일도 사라졌다. 허벅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도구였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허벅은 테왁과 같았다. 허벅이 놀이판에서 악기처럼 쓰이기도 여성들 중심으로 이루어지곤 하였다. 테왁은 더욱 그러하였다. 테왁은 바닷가 마을에서나 쓰였지만 허벅은 바닷가 마을이나 중산간 마을을 가리지 않고 쓰였으니 좀 더 널리 쓰였던 셈이다.
강정식, 『제주굿 이해의 길잡이』, 민속원, 2015.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1.
강정식(姜晶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