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 살장귀, 삼동막살장귀, 삼동막이
제주 무악 연주에서 홀로 혹은 북과 함께 쓰이는 장구[杖鼓]
그냥 장구라고 하는 경우도 흔하다. 살장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설장구에서 비롯된 말이겠다. 삼동막살장귀 혹은 삼동막이라고도 한다. 운반하기 쉽게 몸통을 세 토막으로 분리할 수 있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주요 무악기 조합인 구덕북, 설쇠, 대양과 함께 쓰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비중이 적지 않다. 홀로 쓰이기도 하고 북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홀로 쓰일 때는 심방이 스스로 연주하고, 북과 함께 쓰일 때는 심방이 노래하는 동안 큰심방을 돕는 작은심방 소미가 반주하는 경우가 많다. 심방이 홀로 치면서 음영(吟詠)조 사설을 길게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앚인굿으로 이루어지는 교술무가나 서사무가 연행은 대개 장귀 반주와 함께 이루어진다. 이때 서사무가를 흔히 본풀이라고 한다.
제주도 무속에서 장귀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는 늦은 시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장귀는 제주굿에 가장 늦게 도입된 악기로 보인다. 그 근거는 다각도로 찾을 수 있다. 첫째, 장귀는 주요 악기인 구덕북, 설쇠, 대양과 함께 연주하는 일이 없다. 굿춤을 출 때 장귀는 흔히 제외되곤 한다. 둘째, 의례 속에서 무악기와 관련한 절차를 진행할 때도 장귀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다. 〈젯북제맞이〉 대목에서 심방은 각 무악기에 대하여 의례적인 행위를 한다. 그러나 장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 셋째, 장귀가 늦은 시기에 제주굿에 도입되었다는 구전도 들을 수 있다. 본토와 교류하던 심방이 들여왔다고 하는 구체적인 증언도 있다. 장귀 반주가 다른 악기에 비하여 음악적 통일성이 현저히 결여된 사정도 늦은 시기에 도입되었음을 입증하는 근거일 수 있다. 굿춤을 출 때 장귀는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하지 않는다. 심방 혼자 앉아서 사설을 풀어갈 때, 본풀이를 구연할 때 장귀를 쓴다. 이를 ‘말미장귀’라고 한다.(일부 지역에서는 본풀이도 북으로 반주하면서 구연한다.) 심방이 서서 노래할 때 소미들이 북과 함께 장귀로 반주하는 경우도 있다. 장귀는 제주굿에서 음악적인 통일성이 결여되는 특징이 있다. 다른 악기와 합주할 때는 음악적 통일성이 뚜렷하지만 독립적으로 연주할 때는 연주자마다 제각각이다. 즉 말미장귀의 경우에는 통일성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본풀이의 경우 구연하는 심방마다 장귀 장단이 제각각이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한 마디 사설 끝에 장구를 몰아치는 경우와 사설을 풀어가는 동안 끊임없이 잘게 치는 경우이다. 실제로는 이 두 가지 유형 어느 쪽에도 넣기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사회에서 문제 없이 수용되곤 한다. 장귀의 재료는 여러 가지이다. 몸통은 벚나무로 만든다. 궁편과 채편은 말가죽, 소가죽, 노루가죽 등을 쓴다. ‘ᄌᆞ메’(암말) 가죽을 제일 선호한다. 어린 말의 가죽이 좋다고 한다. 늦은 시기에는 몸통은 오동나무, 궁편과 채편은 소가죽으로 만들었다. 소가죽도 갓난 송아지의 가죽을 써야 좋다고 한다. 노루 가죽을 쓸 때는 암컷의 가죽을 썼다. 양쪽 가죽의 테두리 쪽에 각각 여섯 개의 구멍을 내고 거기에 ‘가막쉐(가막쇠)’라는 쇠고리를 끼운 다음 양쪽을 줄로 연결하여 조인다. 줄은 베실로 만들었다. 채는 왕대를 쪼개어 얇게 깎아 만든다. 장귀는 기본적인 무악기 가운데 하나다. 주로 큰굿에서 본풀이를 창할 때나 추물공연(신에게 제물을 권하며 축원하는 의례)을 할 때, 그리고 탁상굿에서 심방이 앉아서 노래하며 친다. 서우젯소리를 하면서 모두 함께 춤을 출 때는 소미가 메고 연주하기도 한다. 북과 함께 써야 할 경우에도 장귀만을 가지고 해도 된다고 하니, 가장 기본적인 악기가 된다. 그러나 심방이 의례적인 춤을 출 때는 구덕북, 설쇠, 대양 셋을 함께 치고, 장귀는 치지 않는다. 초감제에서는 악기의 신인 너사무 너도령을 상징하는 무구인만큼 심방이 북, 대양, 설쒜(설쇠) 순서로 악기에 대하여 절을 하지만, 장귀는 예외이다. 장귀가 가장 늦은 시기에 제주굿에 수용된 탓이 아닌가 한다. 장귀 연주 방식에 대해서는 제주 서사무가 〈초공본풀이〉에서 언급하고 있다. 〈초공본풀이〉에서는 “단(오른) 손 차(채)를 들고 웬손엔 궁을 받앙, 삼동막이 여섯 부전 열두 가막새 든변 난변 제와놓고.”라고 한다. 이는 왼쪽은 손으로 치고 오른쪽은 채로 치면서 연주하고, 양쪽을 줄로 잇되 가까운 두 줄을 한데 모아 가죽 조각을 끼워 조임의 정도를 조절하면서 이용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장귀는 운반이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다. 운반할 때는 세 도막으로 분리하기도 한다. 세 도막으로 분리할 수 있어 삼동막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분리하지 않은 채 운반한다. 등짐으로 운반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차량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굳이 분리할 까닭이 없어졌다.
본풀이의 발달과 관련 있으며 주요 무악기에서는 배제된다.
강정식, 『제주굿 이해의 길잡이』, 민속원, 2015.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1.
강정식(姜晶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