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칠머리당굿, 건입동 본향당굿, 건입동 칠머리당굿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인 칠머리당에서 음력 2월 14일에 어촌계의 해녀와 선주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는 마을 당굿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 본향당인 칠머리당의 당굿이다. 영등달인 음력 2월 14일 제일에 〈영등송별제〉라고 하여 해녀와 선주들이 중심이 되어 종일 벌인다. 본향당신, 용왕, 선왕, 영등신 등을 대상으로 마을의 무사안녕과 생업풍요를 기원한다. 굿의 핵심적인 절차는 〈초감제〉, 〈요왕맞이〉, 〈씨드림〉ㆍ〈씨점〉, 〈선왕풀이〉ㆍ〈배방선〉 등이다. 제주도 영등굿의 대표 사례로 삼아 1980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었다.
제주도 영등굿은 16세기 문헌에도 기록될 만큼 역사가 깊다. 영등굿은 본향당의 음력 2월 제일과 밀접하다. 즉 제주도 전역에서 해마다 영등달에 제주도로 찾아오는 영등신을 맞아 본격적인 봄철을 앞두고 생업풍요를 위해 벌인 당굿이다. 건입동의 영등굿은 곧 건입동 본향당굿 혹은 건입동 칠머리당굿인 것이다. 이 굿을 처음 문화재로 지정할 때 명칭은 ‘제주칠머리당굿’이었다. 그러다가 굿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2006년에 ‘제주칠머리당영등굿’으로 변경하였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초대 예능보유자인 안사인(安士仁, 1928~1990) 심방 이후 2대 보유자 김윤수(金允洙, 1946~2022) 심방 및 보존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제주도 영등굿과 관련한 문헌을 통해 그 역사와 실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6세기 초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타난 ‘연등’(然燈)은 제주도 영등굿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영등굿을 하는 마을로 귀덕과 김녕 등지를 적고 있는데, 이는 제주의 서북부와 동북부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17세기 초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에도 영등굿의 모습이나 영등신의 행적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영등신의 두골(頭骨)은 제주 동쪽의 어등포(현재 구좌읍 행원리)에 들어가고 수족(手足)은 고내, 애월, 명월 등의 포구에 들어갔다고 한다. 따라서 그곳 주민들은 마을에서 쌀을 모아 영등신을 제사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록에서도 제주 동부만이 아니라 고내와 애월, 명월 등 현재의 애월읍과 한림읍 일대 등 제주 서부에서도 영등굿이 활발하게 행해졌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제주도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과정에서 벌이는 굿이다. 영등신은 풍신(風神)이며, 보통 ‘영등할망’으로 인식된다. 겨울 북서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 찾아와 땅과 바다에 풍요를 가져다준다. 이에 영등신이 들어올 때 〈영등환영제〉를 지내고, 보름 뒤 영등신이 나갈 때에 맞춰 〈영등송별제〉를 지냈다. 현재 전승되는 양상을 보면 〈영등환영제〉에 견주어 〈영등송별제〉를 더 비중 있게 치르는 편이다. 제주도내에서 대개 음력 2월 12일경부터 시작해서 15일까지 기간에 영등굿이 집중되어 있다. 건입동의 경우 제주시 동북쪽에 있는 해안마을로, 해녀의 물질과 어업활동이 활발하였다. 칠머리당은 원래 건입동의 속칭 ‘칠머리’라는 지경(地頸)의 바닷가 언덕에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의 평평한 곳에 제장을 마련하고 주위에는 담을 두른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제주항의 확장공사와 주변 지역 개발 과정에서 현재의 사라봉 동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곳 제장은 평평하고 비교적 넓은 편이며, 위패로 삼은 세 개의 바위를 세워 놓았다. 2013년에 옛 당의 모습을 살리는 의미에서 제단 주위로 돌담을 두른 것 외에 특별한 시설이 없는 노천형의 신당이다. 당신은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용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이다. 당신본풀이에 의하면 도원수감찰지방관은 강남천자국에서 솟아난 천하명장으로 나라의 병난을 해결하는 공을 세운다. 나중에 용왕국에 들어가 용왕해신부인과 혼인하고 제주로 들어와 칠머리당의 신으로 좌정하였다고 한다. 도원수감찰지방관은 마을 주민들의 삶과 생업 등 모든 사항을 관장한다. 용왕해신부인은 해녀와 어부, 타지에 나가 사는 자손들을 맡아 수호한다. 한편 여기에 더하여 바다와 관련한 신인 영등대왕(靈登大王)과 해신선왕(海神船王), 남당하르방과 남당할망을 모신다. 세 개의 바위에 신명(神名)을 각각 둘씩 새겨 넣어 위패로 삼았다. 당의 제일(祭日)은 음력 2월 초하루와 14일이다. 초하루에는 〈영등환영제〉를 하고, 14일에는 〈영등송별제〉를 한다. 현재 〈영등환영제〉는 제주시 수협어판장에서 작은 규모로 하며 반나절 정도 시간에 마친다. 무속식 〈영등환영제〉를 하는 중간에 유교식 풍어제도 함께 치른다. 이에 견주어 〈영등송별제〉는 당에서 큰 규모로 한다. 영등굿의 여러 제차를 하루 종일에 걸쳐 진행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도 마을 당굿이면서 해녀 관련 굿이라는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80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관련 단체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의 심방(제주의 무당 명칭)들이 굿을 진행한다. 보유자는 칠머리당을 전속으로 맡은 ‘당멘심방’이기도 하다. 전승교육사를 비롯한 여러 회원들은 일부 제차를 분담하거나 악기 반주와 굿의 진행을 돕는다. 당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나,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전수관(제주시 사라봉동길 58, 건입동 407-3)에서 한다. 굿의 절차는 크게 〈삼석울림〉ㆍ〈궷문열림〉→〈초감제〉→〈추물공연〉→〈나까시리놀림〉→〈요왕맞이〉→〈씨드림〉ㆍ〈씨점〉→〈액맥이〉ㆍ〈산받음〉→〈선왕풀이〉ㆍ〈배방선〉→〈궷문더끔〉ㆍ〈도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삼석울림〉에서는 소미(小巫)들이 북, 설쒜, 대양 등 연물(무속 악기) 반주를 하여 굿의 시작을 알린다. 굿하는 심방이 당신이 머문다고 인식하는 구멍인 궤의 문을 여는 〈궷문열림〉 사설을 간단히 한다. 이어 굿 전반부의 가장 핵심 절차인 〈초감제〉를 진행한다. 〈초감제〉에서는 굿하는 날짜, 장소, 연유 등을 말하고 신역의 문을 연 뒤 본향신을 포함한 여러 신들을 차례로 청하여 즐겁게 놀린다. 신역의 문을 여는 순서부터 본격적인 무악과 춤이 시작된다. 〈초감제〉가 끝나면 소미가 앉아서 장구를 치며 신들에게 차려놓은 갖은 제물을 권하는 〈추물공연〉을 한다. 〈나까시리놀림〉은 무악이 진행되는 중에 소미가 시루떡을 힘차고 높게 던져 올리기를 거듭하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절차이다.
〈요왕맞이〉는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 배의 선왕, 영등신 등을 맞이하여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순서로 굿 후반부의 핵심 절차이다. 〈요왕맞이〉 내에 다시 신을 청하는 초감제, 수중고혼을 위로하는 방광, 신의 길을 치워 닦는 요왕질침 등이 있다. 초감제와 요왕질침은 무악에 맞춰 서서 춤을 추며 연행하는 굿이다. 특히 푸른 잎이 달린 댓가지를 양쪽으로 여러 개 세운 뒤 심방이 그 사이를 오가며 길을 치워 닦는다는 질침 대목에서는 다양한 춤동작이 펼쳐진다. 방광에서는 간간이 대양을 두드리면서 무가를 부른다. 〈씨드림〉과 〈씨점〉에서는 초석에 좁쌀을 뿌리면서 각 해산물의 풍흉을 점친다. 생업공동체의 풍요를 위한 영등굿의 면모가 드러나는 제차이다. 춤추며 〈씨드림〉을 한 뒤, 모두 주목하는 가운데 〈씨점〉을 본다. 〈액맥이〉에서 마을과 단골들의 액(厄)을 막고, 점을 치는 〈산받음〉을 하여 운수를 확인한다. 〈액맥이〉와 〈산받음〉은 무악 없이 진행된다.
〈선왕풀이〉에서 심방은 앉아서 북을 치며 선왕인 영감신의 내력을 풀고 잘 대접한다. 이 대목에서 영감신으로 분장한 소미 7명이 횃불을 들고 등장하여 영감놀이를 하는데, 무악 반주와 함께 〈서우제소리〉라는 민요도 부른다. 이어 소미들이 짚배에 제물을 실어 바다로 가서 배를 띄워 보내는 〈배방선〉을 한다. 이때 해녀들은 용왕과 수중고혼에게 대접하는 의미로 한지에 제물을 조금씩 뜯어 모아 싸서 바다에 던지는 지드림을 한다. 심방은 궤의 문을 다시 닫는다는 〈궷문더끔〉 사설을 말하고, 북과 장구 반주 속에서 신들을 모두 돌려보내는 〈도진〉을 하여 굿을 끝낸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서서 춤을 추는 ‘산굿’(선굿)으로 진행되므로 무가뿐만 아니라 춤 장단으로 무악 반주가 연주된다. 제주도 무속 악기는 연물이라고 하며 북, 설쇠, 대양, 장구를 말한다. 설쒜는 꽹과리와 비슷하며, 대양은 징이다. 한 제차를 맡은 심방이 나서서 춤을 출 때는 소미들이 북, 설쒜, 대양을 두드리며 연물 반주를 한다. 연물 반주는 빠르기의 양상에 따라 늦인석, 중판, ᄌᆞᆽ인석으로 구분한다. ᄌᆞᆽ인석이 가장 빠르다. 심방이 제자리에서 좌우로 번갈아 돌면서 춤출 때는 감장이라는 장단이 쓰인다. 장구는 주로 앉아서 하는 제차에서 사용한다. 제주도 심방은 누구나 연물 반주를 익혀야 한다. 굿을 하는 이와 악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에서 무악기인 북, 설쒜, 대양의 연물 편성은 대개 ‘안팟연물’로 구성한다. 즉 ‘안팎’ 연물인데 안연물과 밧연물을 이른다. 안연물은 제장 안쪽에 배치하고, 밧연물은 당의 입구 쪽에 배치한다. 안연물은 연물 반주에 능숙한 회원들이 맡는 편인데, 안연물 쪽에서 춤이 보다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당굿에서는 안팟연물을 구성하지 않는다. 안팟연물은 심방의 참여가 많은 신굿에서나 가능하다. 칠머리당의 경우는 보존회 회원들이 많기 때문에 안팟연물로 구성한 것이다. 회원들의 굿 참여를 독려하고 배우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현재 제주의 영등굿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이다. 영등굿은 사실 제주도 전역에서 생업의 풍요를 위해 벌이던 것으로, 신당의 제일과도 밀접한 굿이었다. 그러다가 시대 변화에 따라 오늘날에는 영등굿이 공간적으로는 주로 해안마을에 남아 있고, 내용은 해녀와 어부들을 위한 굿으로 변화되었다. 영등굿은 근래에는 당굿과도 별개로 독자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지난날의 공동체 의례가 많이 사라지다 보니 점점 마을굿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본향당굿이면서 〈영등환영제〉와 〈영등송별제〉를 통해 영등굿의 의미를 잘 간직하고 있는 의례다. 도시 풍경의 건입동에서 해녀와 어부의 생업공동체가 전통적인 방식의 무속의례를 지속적으로 전승하고 있는 점도 소중하다. 문화재로 지정되다 보니 다른 영등굿에는 없는 안팟연물 구성도 가능하였고, 〈선왕풀이〉와 〈배방선〉을 하면서 본래에 없던 영감놀이까지 연행하는 곡절도 생겼다. 제주도내 여러 심방들이 무업을 접하고 익힐 수 있는 전승 현장 역할도 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1980)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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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전(姜昭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