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악(文廟樂), 석전악(釋奠樂), 문선왕묘악(文宣王廟樂), 문묘제향악(文廟祭享樂)
공자(孔子, B.C.551~B.C.479)를 비롯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선현의 신위를 모시고 지내는 제례의식에 사용되는 음악
성균관(成均館) 대성전(大成殿)에서 매 해 봄[2월]・가을[8월] 상정일(上丁日)에 공자와 그의 제자 및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선현1들을 위한 제사에 연주되는 음악이다. 의식 절차에 맞추어 영신악 〈응안지악(凝安之樂)〉ㆍ〈명안지악(明安之樂)〉ㆍ〈성안지악(成安之樂)〉ㆍ〈서안지악(舒安之樂)〉ㆍ〈오안지악(娛安之樂)〉ㆍ송신악 〈응안지악〉이 연주된다. 여섯 곡 중 영신악 〈응안지악〉과 〈명안지악〉 및 〈성안지악〉 세 곡은 노래[가(歌)]・춤[무(舞)]・기악[악(樂)]으로 구성된 종합예술이다. 단,〈서안지악〉은 기악 연주만 있고, 〈오안지악〉과 송신악 〈응안지악〉은 노래와 기악으로 구성된다. 문묘제례악은 아악기로만 구성된 등가(登歌)와 궁가(宮架)2 두 악대가 교대로 연주하는데 이 때 문무(文舞)인 〈열문지무(烈文之舞)〉와 무무(武舞)인 〈소무지무(昭武之舞)〉가 수반된다.
1) 현재 우리나라 문묘에는 공자와 안자ㆍ증자ㆍ자사ㆍ맹자 등 5성(聖), 공문 10철(哲), 송대의 6현(賢), 우리나라의 18현 등 모두 39위(位)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2) 아악의 악현(樂懸)은 당상(堂上)에 진열되는 악대와 당하(堂下)에 진설되는 악대로 구분되는데, 당상악을 등가(登歌), 당하악을 궁가(宮架) 또는 헌가라고 부른다. 궁가는 천자의 악현, 헌가는 제후의 악현으로, 조선시대에는 제후국의 예로서 헌가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다. 이후 대한예전(大韓禮典)』(1898)에 의하면, 우리나라 문묘제례에서 천자의 예에 준하여 팔일무를 추었고, 그 악현 역시 천자의 악현인 궁가를 진설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미 천자의 예로 거행되는 문묘제례의 악현을 등가와 궁가로 표기한다.
아악으로서의 문묘제례악은 1116년(고려 예종 11)에 중국 북송(北宋)의 휘종(徽宗)이 대성아악(大晟雅樂)을 보내줌으로써 처음 연주되기 시작하여 조선 초기까지 지속되었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문묘제례악은 총 6곡으로, 조선조 세종 때 새롭게 제정된 144곡의 제사 아악 중의 일부이다.
○ 역사적 변천 과정
1116년(고려 예종 11)에 중국 북송으로부터 대성아악(大晟雅樂)이 유입된 이후, 고려조에서는 문선왕묘악(文宣王廟樂)으로 고선궁(姑洗宮) 〈응안지곡(凝安之曲)〉, 협종궁(夾鐘宮) 〈명안지곡(明安之曲)〉, 협종궁 〈성안지곡(成安之曲)〉, 무역궁(無射宮) 〈풍안지곡(豐安之曲)〉, 무역궁 〈숭안지곡(崇安之曲)〉, 무역궁 〈무안지곡(武安之曲)〉 등 6곡의 아악을 연주하였다. 그러나 고려조에 행해졌던 문묘제례악은 여러 면에서 성현에게 제사지내던 옛 제도의 원칙에 맞지 않았다.
문묘제례악이 유가(儒家)의 정통적인 제도에 부합하려면 영신과 송서는 황종궁을 연주하되 음악은 각각 9성(황종궁 3성, 중려궁、남려궁、이칙궁 각 2성)과 1성을 연주하여야 한다. 또한 당상(堂上)에 진설되는 등가는 음려(陰呂)인 남려궁을, 당하(堂下)에 진설되는 헌가는 양율(陽律)인 고선궁을 연주하여야 한다. 그러나 고려조에 행해졌던 문묘제례악은 영・송신에 고선궁을 각각 3성과 1성으로 연주하였고, 등가와 헌가는 각각 음려인 협종궁과 양율인 무역궁을 연주하였다. 조선조 세종대(1418-1450)에 이르러, 원나라 임우(林宇)의 「대성악보(大成樂譜)」에 의거하여 144곡의 제사아악이 새롭게 마련됨에 따라 이전까지 연주되어오던 대성아악은 폐기되었다. 문묘제례악 역시 새로운 아악으로 대체되었고, 절차에 따른 음악 역시 성현에게 제사지내던 옛 제도의 원칙에 맞도록 정비되었다.
이후 제사아악은 15곡으로 대폭 축소된 채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 수록되어 전하는데, 그 15곡은 바로 세종대의 제사아악 144곡 가운데 “황종궁1”의 12궁(宮)과 “황종궁2”의 황종궁・협종궁・임종궁 3궁을 취한 것이다. 『세종실록』 악보의 “황종궁1”은 원나라 임우의 「대성악보」 가운데 영신악 황종위궁에서, “황종궁2”는 송신악 황종궁에서 연원하였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문묘제례악은 『악학궤범』 소재 제사아악 15곡 가운데 황종궁・고선궁・중려궁・이칙궁・남려궁・송신황종궁 등 6곡이다. 그 중 송신황종궁은 세종대의 신제 제사아악 가운데 “황종궁2”에 속한 악곡이고, 나머지 5곡은 “황종궁1”에 속한 악곡이다. 그리고 세종대에 제정된 문묘제례악은 당상에만 노래가 있다는 원칙에 따라 당상에서 연주하는 전폐 〈명안지악〉、초헌 〈성안지악〉、철변두 〈오안지악〉에만 악장이 있었으나 숙종 16년(1690)부터 당하에서 연주하는 영신・송신 〈응안지악〉과 아헌・종헌 〈성안지악〉에도 악장이 추가되었다. 이후로 〈서안지악〉을 제외한 나머지 5곡에 모두 악장을 부르게 되었다.
○ 연주 시기 문묘제례는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지내는 제례이기 때문에 문묘정제(文廟丁祭)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매 해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지내는 것을 전통으로 준수하여 왔으나, 일제강점기인 1937년부터 10여년간 양력 4월 15일과 10월 15일로 바꾸어 봉행되기도 하였다. 이후 1949년에 전국 유림대회의 결의로 공자 탄강일인 음력 8월 27일을 기념하는 석전제를 봉행함으로써 춘추 석전의식을 대신하기도 하였으나 1953년부터 다시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로 환원되었다. 2007년부터 공자의 기신일과 탄강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5월 11일과 9월 28일을 각각 춘계・추계 석전대제 봉행일로 삼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문묘제례는 문묘정제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도 성균관 대성전에서는 해마다 봄[기신일]・가을[탄강일] 2회에 걸쳐 석전대제(釋奠大祭)라는 이름으로 문묘제례가 행해지고, 이 때 문묘제례악이 연주되고 있다.
○ 제례 절차에 따른 음악 연주 문묘제례의 절차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迎神), 폐백을 드리는 전폐(奠幣), 첫 잔을 올리는 초헌(初獻), 문무퇴・무무진3,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亞獻), 셋째 잔을 올리는 종헌(終獻), 제사지낸 그릇과 음식을 거두는 철변두(徹邊豆), 신을 보내는 송신(送神), 축문을 불사르는 망료(望燎)로 구성된다. 조선시대에 친행(親行; 왕이 직접 제례에 참여하는 것)할 때는 전폐와 초헌 사이에 진찬(進饌)의 절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생략되고 있다. 각 절차별 음악은 다음과 같다. 영신에서는 궁가가 황종궁 3성ㆍ중려궁 2성ㆍ남려궁 2성ㆍ이칙궁 2성으로 〈응안지악〉을 연주하고, 전폐에서는 등가가 남려궁 〈명안지악〉을, 초헌에서는 등가가 남려궁 〈성안지악〉을, 문무퇴・무무진에서는 궁가가 고선궁 〈서안지악〉을, 아헌ㆍ종헌에서는 헌가가 고선궁 〈성안지악〉을, 철변두에서는 등가가 남려궁 〈오안지악〉을, 송신에서는 궁가가 송신황종궁 〈응안지악〉을 연주한다. 망료에서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3) 조선조의 모든 제사는 초헌례를 마치고 아헌례가 시작되기 전에 문무가 물러가고 무무가 들어오는 “문무퇴・무무진”의 절차가 있다. 이 절차에는 오직 기악의 연주만 있는데, 최근까지 “문무퇴・무무진”의 절차를 “공악(空樂)”이라 칭하여 왔다. 공악은 “의례절차가 없는 음악”이라는 뜻으로 대한예전까지 용례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일제강점기의 변화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문묘제례에서는 무원이 교대하는 동안 〈서안지악〉을 연주함으로써 초헌과 아헌 사이의 여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 악장 문묘제례악에서 부르는 노래[가]인 악장은 한문으로 된 운문으로 4자(字)가 1구(句)를 이루며 8구 32자가 한 악장을 이룬다. 매 1자의 길이가 일정하여 하나의 음・하나의 춤동작과 결합된다. 조선 전기에는 전폐의 〈명안지악〉과 초헌의 〈성안지악〉, 그리고 철변두의 〈오안지악〉에만 악장이 있었으나4, 숙종 16년(1690)에 영신ㆍ송신악과 아헌ㆍ종헌악에도 악장이 추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추가된 네 수의 악장은 임우의 「대성악보」 가운데 영신악 〈응안지곡〉의 “황종위궁”과 송신악 〈영안지곡(寧安之曲)〉 및 아헌ㆍ종헌악 〈문안지곡(文安之曲)>의 악장과 같다.
4) 『세종실록』 권147(악보, “문선왕석전악장(文宣王釋奠樂章”)과 『악학궤범』 권2 “문선왕”에 전폐 〈명안지악〉 악장 1수, 초헌 〈성안지악〉 악장 5수, 철변두 〈오안지악〉 악장 1수가 수록되어 있다.
1. 영신 : <응안지악>
황종궁 3성ㆍ중려궁 2성ㆍ남려궁 2성ㆍ이칙궁 2성 등 9성을 모두 동일한 악장으로 노래한다. 「대성악보」의 영신 “황종위궁”의 악장과 같고, 『세종실록』 악보와 『악학궤범』에는 악장이 없다. 1690년(숙종 16) 부터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대재선성 도덕존숭(大哉先聖 道德尊崇) 크시도다, 글을 펴신 성인이여! 도학이 높으시고 덕업도 높으시어 유지왕화 사민시종(維持王化 斯民是宗) 왕도의 교화를 한 몸에 가지시니 사람들이 종사로 모십니다. 전사유상 정순병륭(典祀有常 精純并隆) 제사 드림에 떳떳함이 있어 깨끗하고 순수하여 융숭하도다. 신기래격 오소성용(神其來格 於昭聖容) 신께옵서 내리어 강림하시매 아! 성하신 의용도 밝으시도다.
2. 전폐 : <명안지악>
남려궁에 맞추어 부른다. 「대성악보」와 『세종실록』 악보 및 『악학궤범』의 전폐 악장과 같다.
자생민래 수저기성(自生民來 誰底其盛) 사람이 생겨난 뒤로 누가 그 성함을 따를손가. 유왕신명 탁월전성(惟王神明 度越前聖) 오직 문선왕만이 신명하시니 이전의 성인들을 뛰어넘으시도다. 자폐구성 예용사칭(粢幣俱成 禮容斯稱) 서직과 폐백이 다 갖추어졌고, 예의와 용모가 절차에 알맞으니 서직비형 유신지청(黍稷非馨 惟神之聽) 서직이 향기롭지 못하오나 신께서는 흠향하시옵소서.3. 진찬 : <풍안지악>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친히 주제하는 친제(親祭) 때만 진찬례를 봉행하였고, 음악은 고선궁 〈풍안지악〉을 연주하였다. 지금은 진찬례를 생략하기 때문에 불리지 않는다.
백왕종사 생민물궤(百王宗師 生民物軌) 백왕의 으뜸가는 스승이요, 모든 민생들의 법칙이 되심이라. 첨지양양 신기녕지(瞻之洋洋 神其寧止) 우러름에 그 덕이 한없이 넓으심이여! 신께서는 편안히 머무시옵소서. 작피금뢰 유청차지(酌彼金罍 惟淸且旨) 저 금잔에 맛난 술을 가득 부어 올리니 맑고도 향기롭도다. 등헌유삼 오희성례(登獻維三 於喜成禮) 세 헌관이 차례대로 하나하나 절하오니 아! 이제 예를 마치옵니다.3. 초헌 : <성안지악>
정위(正位)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孔子)와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 안자(顏子)・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 증자(曾子)・기국술성공(沂國述聖公) 자사(子思)・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 맹자(孟子) 등 4배위5를 기리는 악장을 모두 남려궁에 맞추어 부른다. 「대성악보」와 『세종실록』 악보 및 『악학궤범』의 초헌 악장과 같다.
5) 배위의 호칭은 대한예전에 의거하였다. 정위의 대성지성문선왕이라는 존호가 원대에 추존된 칭호이므로 4배위의 존호도 원대의 것을 쓰는 것이 타당하지만 지금 석전보존회에서 쓰는 호칭은 조선조에 사용하던 명칭과는 차이가 있다. 대한예전에서도 두 가지 호칭을 합성해 썼으므로 그것을 따랐다.
정위대성지성문선왕(正位大成至聖文宣王)
대재성왕 실천생덕(大哉聖王 實天生德) 크시도다 성왕이시어! 실로 하늘이 덕을 내심이로다.
작악이숭 시사무역(作樂以崇 時祀無斁) 중악을 연주하여 숭상하고, 때마다 제사 드림이 그치지 않도다.
청고유형 가생공석(淸酤惟馨 嘉牲孔碩) 맑은 술이 향기롭고, 아름다운 짐승고기 크기도 하여라.
천수신명 서기소격(薦羞神明 庶幾昭格) 영령하신 신명께 제물을 드리오니 밝게 강림하여 흠향하시옵소서.
연국복성공안자(兗國復聖公顏子)
서기누공 연원심의(庶幾屢空 淵源深矣) 단표(簞瓢)가 자주 비었으니 도학의 연원이 깊도다.
아성선유 백세의사(亞聖宣猷 百世宜祀) 아성으로 도를 펴셨으니 백세토록 제사 드림이 마땅하도다.
길견사신 소진준궤(吉蠲斯辰 昭陳樽簋) 길일을 택해 재계하고 준과 궤를 진설하도다.
지주흔흔 신기래지(旨酒欣欣 神其來止) 맛있는 술이 감미로우니 신은 오시옵소서.
성국종성공증자(郕國宗聖公曾子)
심전충서 일이관지(心傳忠恕 一以貫之) 마음으로 전함이 충과 서 하나로써 일관되었도다.
원술대학 만세훈이(爰述大學 萬世訓彛) 대학을 지으셔 만세에 떳떳함을 가르치셨도다.
혜아광명 존문행지(惠我光明 尊聞行知) 우리에게 광명을 주시고 들은 것을 높이고 안 것을 행하시도다.
계성적후 시향시의(繼聖迪後 是享是宜) 전성을 이어 후인을 인도하니 제향함이 마땅하도다.
기국술성공자사(沂國述聖公子思)
공전자증 맹전자공(公傳自曾 孟傳自公) 공은 증자에게 전해 받으시고 맹자는 공에게 전해 받으시도다.
유적서승 윤득기종(有嫡緖承 允得其宗) 적통(嫡統)을 이어받아 종사(宗師)가 되셨도다.
제강개온 내작중용(提鋼開蘊 乃作中庸) 요점을 들어 깊은 뜻을 여시어 중용을 지으셨도다.
유우원성 억재시숭(侑于元聖 億載是崇) 원성에 배향(配享)되어 억만년토록 숭앙받으리로다.
추국아성공맹자(鄒國亞聖公孟子)
도지유흥 오황선성(道之由興 於皇宣聖) 도가 일어남은 아! 위대한 문선왕으로부터이로다.
유공지전 인지추정(唯公之傳 人知趨正) 오직 공이 전하신 것으로 하여, 사람들이 바른 데로 갈 줄을 알도다.
여향재당 정문실칭(與享在堂 情文實稱) 더불어 당에 배향하니, 정(情)과 문이 다 알맞도다.
만년승휴 가재천명(萬年承休 假哉天命) 만년토록 아름다움 이어받으시니, 크도다. 천명이시여.
4. 문무퇴・무무진 : <서안지악>
악장이 없이 고선궁에 맞추어 기악으로만 연주한다. 악보는 아헌과 종헌 〈성안지악〉과 같다.
5. 아헌· 종헌 : <성안지악>
고선궁에 맞추어 부른다. 「대성악보」의 아헌ㆍ종헌 악장과 같다. 『세종실록』 악보와 『악학궤범』에는 악장이 없으나, 숙종 16년(1690)부터 악장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백왕종사 생민물궤(百王宗師 生民物軌) 백왕의 으뜸가는 스승이요, 모든 민생들의 법칙이 되심이라. 첨지양양 신기영지(瞻之洋洋 神其寧止) 우러름에 그 덕이 한없이 넓으심이여! 신께서는 편안히 머무시옵소서. 작피금뢰 유청차지(酌彼金罍 惟淸且旨) 저 금잔에 맛난 술을 가득 부어 올리니 맑고도 향기롭도다. 등헌유삼 오희성례(登獻維三 於喜成禮) 세 헌관이 차례대로 하나하나 절하오니 아! 이제 예를 마치옵니다.6. 철변두 : <오안지악>
남려궁에 맞추어 부른다. 『대성악보』와 『세종실록』 악보 및 『악학궤범』의 철변두 악장과 같다. 희상재전 변두재열(犧象在前 籩豆在列) 희준과 상준은 앞에다 놓고, 변과 두는 좌우로 벌여놓아 이향이천 기분기결(以享以薦 旣芬旣潔) 제향 드리오니 향기롭고 깨끗하도다. 예성악비 인화신열(禮成樂備 人和神悅) 예가 이루어지고 음악이 갖추어져지니 사람은 화하고 신께서도 기쁜지고. 제즉수복 솔준무월(祭則受福 率遵無越) 제사 지내면 복을 받으니 한결같이 예법 따라 어김이 없도다.
7. 송신 : <응안지악>
송신 황종궁에 맞추어 1성만 부른다. 「대성악보」의 송신 악장과 같고, 『세종실록』 악보와 『악학궤범』에는 악장이 없으나, 1690년(숙종 16)부터 악장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유엄학궁 사방래종(有嚴學宮 四方來宗) 엄숙한 학궁에 사방에서 와 높이도다. 각공사사 위의옹용(恪恭祀事 威儀雍容) 제사를 받드오니 위의가 온화하도다. 흠자유형 신어환복(歆玆惟馨 神馭還复) 향기로운 제물 흠향하시고 신께서 돌아가시도다. 명인사필 함응백복(明禋斯畢 咸膺百福) 정결한 제사 마치니 온갖 복을 받으리로다.
8. 망료 망료에는 별도의 음악이 없고, 따라서 악장도 없다. 송신 〈응안지악〉이 끝나기 전에 망료의 절차로 진행하더라도 송신악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연주한다.
번역 출처: 국립국악원 발행, 『국악전집 9』, 《문묘제례악》(1981)
○ 일무 佾舞 문묘제례악이나 종묘제례악에 맞추어 추는 춤을 일무(佾舞)라 한다. 일무에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두 종류가 있고, 무무를 간무(干舞)라고도 한다. 문묘제례의 문무는 〈열문지무(烈文之舞)〉라고 칭하고 무무는 〈소무지무(昭武之舞)〉라고 칭한다. 〈열문지무〉는 영신ㆍ전폐ㆍ초헌에서 추어지고, 〈소무지무〉는 아헌ㆍ종헌에서 추어진다. 고대에는 문묘제례에 오로지 문무만 추었으나, 당태종 정관 연간부터 문무와 무무를 겸용하게 되었고, 이후 송대에는 문무만 추었으나 명대부터 다시 문무와 무무를 겸용하였다. 문무는 왼 손에 약(籥)을, 오른 손에 적(翟)을 잡고 추고, 무무는 왼 손에 간(干)을, 오른 손에 척(戚)을 잡고 춘다. 문무의 무구는 《시경(詩經)》의 “왼 손에 약을 잡고 오른 손에 적을 잡는다[좌수집약, 우수병적(左手執籥, 右手秉翟).”이라고 한 유가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일(佾)은 대오(隊伍)의 행열(行列)을 뜻하며, 천자(天子)ㆍ제후(諸侯)ㆍ경대부(卿大夫)ㆍ사(士) 등 의식 주최자의 신분 지위 고하에 따라 팔일무(八佾舞)ㆍ육일무(六佾舞)ㆍ사일무(四佾舞)ㆍ이일무(二佾舞) 등 규모가 다른 일무를 추었다. 일무의 구성원 수는 역대로 달랐는데, 이는 『주례(周禮)』와 『송사(宋史)』(1345)에 전하는 행열(行列) 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례』의 방식은 가로의 행수만 일무의 수로 간주하고 세로의 열수는 8열로 고정된다. 반면, 『송사』의 방식은 가로의 행과 세로의 열을 모두 일무의 수로 간주한다. 따라서 『주례』의 방식을 따르면 팔일무ㆍ육일무ㆍ사일무ㆍ이일무는 각각 8행8열 64명ㆍ6행8열 48명ㆍ4행8열 32명ㆍ2행8열 16명이 되고, 『송사』의 방식으로는 8행8열 64명ㆍ6행6열 36명ㆍ4행4열 16명ㆍ2행2열 4명이 된다. 현재 일무는 문묘제례 외에 종묘제례에도 추어지고 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는 문묘제례의 일무가 육일무로서 『주례』의 방식을 채용하여 6행8열로 48명이 추어졌고, 종묘제례의 일무는 역시 육일무이지만 『송사』의 방식을 채용하여 6행6열로 36명이 추어진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비록 근거한 사료에 따라 일무 구성원의 수는 달랐지만 제후의 예로서 육일무를 춘 점은 같다.
현재 우리나라 문묘제례에는 가로・세로 8명씩 64명의 무원으로 구성된 팔일무를 춘다. 중국에서 문묘제례에 팔일무를 추기 시작한 것은 당 현종(玄宗, 685~762) 개원(開元) 27년(739)에 공자를 문선왕으로 추존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명대에는 공자를 지성선사(至聖先師)로 칭하면서 육일무를 추었고 그것이 청대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제후의 예에 의하여 육일무를 추어오다가 대한제국 성립 이후로 본래의 육일무를 팔일무로 바꾸어 추게 되었고, 그 전통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무의 매 동작은 악장의 1자를 나타냄으로써 한 악절이 한 조(組)를 이룬다. 한 악장은 4자 1구로 총 32자 8구를 이루므로 일무의 동작 역시 매 악장별로 32동작 8조를 이룬다.
○ 음계와 음역 문묘제례악의 음계는 아악의 기본 음계인 '궁(宮:C4)ㆍ상(商:D4)ㆍ각(角:E4)ㆍ변치(變徵:F#4)ㆍ치(徵:G4)ㆍ우(羽:A4)ㆍ변궁(變宮:D4)'의 7음 음계이다. 아악 음계는 제4음 변치와 제5음 치, 제7음 변궁과 제8음 소궁(小宮) 사이가 단2도로 좁고, 나머지는 장2도의 음 간격을 이룬다. 문묘제례악의 음역은 12율 4청성, 즉 황종[黃]부터 응종[應]까지 12율과 청황종[潢]ㆍ청대려[汏]ㆍ청태주[汰]ㆍ청협종[浹] 등 4개의 청성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최저음은 황종[黃:C4]이고, 최고음은 청협종[浹:D#5]이다. 음역이 12율 4청성 이내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청고선[㴌:E5] 이상의 음은 한 옥타브 내려서 연주한다. ○ 악대와 악기 편성 문묘제례악은 아악기로만 편성된 등가와 궁가의 두 악대가 교대로 연주한다. 당상에 진설되는 등가에는 특종ㆍ특경ㆍ편종ㆍ편경ㆍ축ㆍ어ㆍ절고ㆍ금ㆍ슬ㆍ소ㆍ지ㆍ약ㆍ적ㆍ훈ㆍ박ㆍ도창(導唱)6이 편성되고, 당하에 진설되는 헌가에는 편종ㆍ편경ㆍ축ㆍ어ㆍ진고ㆍ노고ㆍ노도ㆍ부ㆍ지ㆍ약ㆍ적ㆍ훈ㆍ박이 편성된다. 박은 신호용 악기로서 현행 문묘제례악에 편성된 유일한 속악기이다. 조선조와 대한제국 시기까지는 박이 편성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포함되기 시작한 점으로 보아, 조선조부터 전해오던 전통으로 보기는 어렵다. 등가는 전폐ㆍ초헌ㆍ철변두의 절차에서 〈명안지악〉ㆍ〈성안지악〉ㆍ〈오안지악〉을 연주하고, 헌가는 영신ㆍ공악ㆍ아헌ㆍ종헌ㆍ송신의 절차에서 영신〈응안지악〉ㆍ〈서안지악〉ㆍ〈성안지악〉ㆍ송신〈응안지악〉을 연주한다. 두 악대는 각각 집박 악사(執拍樂師)의 지휘 하에 절차에 따라 번갈아 연주하고, 동시에 합주하지 않는다.
6) 등가의 도창은 현재 악장을 부르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조선시대에는 악장을 부르는 사람을 가자(歌者) 또는 가인(歌人)이라 칭하였고, 아악의 등가에는 통상 도창 2인과 함께 2인 이상의 가인이 편성되었다. 도창은 곧 도창악사로서 가인들이 악장을 잘 부르도록 이끌어가는 악인을 말하는데, 현재는 도창만 편성되어 과거 가인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이는 조선조가 몰락하면서 악인들이 흩어지고, 문묘제례에 필요한 가공(歌工)의 수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도창으로 가공의 역할을 담당하게 한 궁여지책의 결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 문묘제례악은 6곡이 모두 궁조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송 휘종 대관(大觀) 4년(1110) 이래로 영신례에서 황종위궁(黃鍾爲宮) 3성ㆍ대려위각(大呂爲角) 2성ㆍ태주위치(太簇爲徵) 2성ㆍ응종위우(應鍾爲羽) 2성을 연주하고 각 악조별로 악장이 갖추어져 영신의 절차에서 총 4수의 악장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명대부터 영신 4조의 전통이 없어지고 영신례에서 1조・1악장을 연주하게 되었고 그것이 민국 초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문묘제례악은 영신례에서 휘종대의 영신 4조 원칙을 따라 황종궁・중려궁・남려궁・이칙궁 등 4궁을 연주한다. 궁조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영신례에서 황종궁 3성・중려궁 2성・남려궁 2성・이칙궁 2성에 맞추어 한 수의 악장만을 반복하여 노래한다, 그 한 수의 악장은 바로 송 휘종 대관 4년에 대성부(大晟府)에서 찬한 석전악장(釋奠樂章) 중 영신 〈응안지악〉의 황종위궁 악장이다. 송신황종궁으로 연주하는 송신악 〈응안지악〉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영신악 〈응안지악〉의 황종궁 선율을 이조하여 이루었기 때문에 모든 곡이 기본적으로 선율이 같고, 궁의 높이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음역이 12율 4청성으로 제한되어있어서 청고선 이상의 음들은 모두 한 음역 내려서 연주함으로써 각 곡이 마치 다른 선율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우리나라 문묘제례악은 중국의 고대 아악에 연원을 둔 아악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조 세종대에 중국 문헌 중의 여러 학설을 재해석하여 독특하게 이루어낸 우리만의 독창성을 지닌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석전제는 문묘(文廟)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사)국가무형문화재 석전대제보존회가 관리하고 있으며, 1986년 11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문묘제례악은 그러한 의례에 필수불가결한 핵심 요소이다. 원래 공자의 사당의 주전(主殿)을 대성전이라 하고 그 사당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대성악(大成樂)이라 한다. “대성”이란 맹자가 공자를 “집대성자(集大成者)”라고 찬양한 데서 연유하였으며 성인의 개념을 지닌 유가의 술어이다. 그러므로 역대로 공자의 존호에는 “대성지성선사(大成至聖先師)”ㆍ“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등 “대성” 두 글자를 붙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성악(大成樂)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을 찬양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명ㆍ청 이래로 공자의 존호에 “왕”이라는 칭호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원대에 명명했던 “대성지성문선왕”이라는 존호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성전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문묘제례악이라 칭할 뿐, 대성악이라는 용어는 비교적 생소하다. 현재의 문묘제례악은 중국 고대 아악에 연원을 두고 있지만 우리 선조가 독창성과 자주성을 발휘하여 제작한 우리의 아악이라는 점에서 한국 대성악이라 칭할 만하다. 따라서 길이 보존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으로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고려사』「악지」 『국조오례서례』 『구당서』 『대한예전』 『명사』 『문종실록』 『세종실록』 『신당서』 『송사』 『악학궤범』 『증보문헌비고』 『조선아악』 『정화오례신의』 『중흥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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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순(鄭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