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1. 조선 세종(世宗) 때 창작되어 현재까지 전승되는 궁중음악
2. 궁중음악 〈여민락(與民樂)〉에서 유래한 민간 풍류곡
3. 조선 세종대에 창작된 궁중음악〈여민락(與民樂)〉 관련 악곡의 총칭
여민락은 15세기 전반 세종(世宗) 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한문 가사를 부르는 노래로 창제되어 궁중에서 조회악(朝會樂), 회례악(會禮樂), 연례악(宴禮樂) 등으로 채택된 이래 지속적으로 연주되어 현재까지 전승되는 궁중음악이다. 조선후기에 기악곡화되었고, 리듬과 선율도 변하였으며, 16세기 무렵부터 민간의 풍류로도 수용되었다. 현재 연주되는 여민락 관련 음악으로는 〈여민락만(與民樂慢)〉, 〈여민락령(與民樂令, 본령[本令])〉, 〈해령(解令)〉, 관현합주 여민락이 있다.
○ 역사 변천과정
여민락은 세종 29년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던 치화평, 취풍형과 함께 창작되었다. 여민락은 용비어천가 전체 125장 중 1,2,3,4장과 제일 끝 125장을 노래하고, 치화평과 취풍형은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 125장 전체를 노래한다. 치화평과 취풍형은 전승이 단절되고 현재 여민락만 전승되고 있다.
여민락은 궁중 연례에 쓰기 위해 만들어진 정재 봉래의의 반주음악 중 한 곡이다. 봉래의는 전인자· 진구호·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후인자· 퇴구호로 구성되었는데, 여민락을 비롯한 치화평, 취풍형의 악보가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 권140∼145에 전한다.
『세종실록』에는 여민락 악보가 한 종류만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세종대에 여민락만과 여민락령 두 가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여민락은 조선조 내내 궁중의례에 지속적으로 쓰였다. 여민락만과 여민락령은 주로 국왕의 출궁과 환궁 때에 연주되었고, 여민락은 정재를 연행할 때에 연주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처용무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기도 하였다.
본래 성악곡이었던 여민락이 조선후기에 기악곡으로 변하면서, 선율과 리듬에도 변화가 생겼다. 잔가락이 늘면서 선율이 확대되었고, 여민락만과 여민락령은 조선 말엽에는 규칙적인 리듬으로 변하였다.
여민락은 다른 한편으로 민간에 수용되어 선비들의 인격도야를 위한 풍류악으로 연주되었는데, 오늘날 여민락이라고 하면 이 민간의 여민락(일명 풍류 여민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초에는 여민락령을 변주한 해령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현재 여민락 관련 음악으로 여민락, 여민락만, 여민락령, 해령 네 가지 악곡이 있는데 그 중 여민락만이 『세종실록』의 여민락과 가장 가깝다.
여민락은 전기에는 관현악 반주를 수반하는 성악곡이었으나, 조선후기에 기악곡으로 변하였다. 민간에서는 대편성의 관현악 합주 대신에 거문고의 독주나 소규모 편성의 합주로 연주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전통의 상당 부분이 단절되는 과정에서 여민락의 연주 방식도 변화를 겪게 되어,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무대 공연용 음악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여민락은 본래 10장으로 되어 있었으나, 용비어천가 125장을 노래하던 부분의 제8∼10장은 탈락되고 현재는 7장까지만 연주된다.
여민락만은 총 10장 구성이고, 각 장은 11마루(악절) 혹은 12마루로 되어있다.
여민락령은 장 구분 없이 총 32마루(악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마루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해령은 마루 하나가 끝날 때 주선율인 피리가 쉬는 동안 대금, 당적, 해금, 아쟁 등이 가락을 이어 주는 연음 기법을 사용한다.
여민락은 황(E♭), 태(F), 중(A♭), 임(B♭), 남(c)의 5음 음계의 황종 평조로 되어 있다.
여민락만은 황(C), 태(D), 중(F), 임(G), 남(A), 무(A#)의 6음 음계로 구성되어 있고, 여민락령과 해령은 황(C), 태(D), 중(F), 임(G), 남(A)의 5음 음계의 황종 평조로 되어 있다.
여민락은 제1∼3장까지는 1장단이 20박이고, 제4∼7장까지는 10박으로 되어 있다. 1·3·5·7장과 2·4·6장, 즉 홀수 장과 짝수 장끼리는 서로 동일한 가락이 많이 되풀이된다. 해령은 불규칙한 리듬으로 되어 있다.
《용비어천가》 125장 중 제1, 2장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순한문체 | 국한문 혼용체 | 해석 | |
1장 | 海東六龍飛 莫非天所符 古聖同符 | 海東六龍이 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시니 | 해동에 여섯 용이 나시니 모두 하늘이 도운 바로 옛성인의 일과 일치하셨도다 |
2장 | 根深之木 風亦不抗 有灼其花 有蕡其實 源遠之水 旱亦不竭 流斯爲川 于海必達 | 불휘기픈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뮐ᄊᆞ곶됴코 여름ᄒᆞᄂᆞ니ᄉᆞㅣ미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그츨ᄊᆞ내히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좋고 열매가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으니 시내를 이루고 바다로 가나니 |
용비어천가 장별 |
여민락 장별 |
노랫말 |
수장(1장) | 1장 해동장 | 해동육룡비(海東六龍飛). 막비천소부(莫非天所符). 고성동부(古聖同符). |
2장 | 2장 근심장 | 근심지목, 풍역불올(根深之木, 風亦不扤). 유작기화, 유분기실(有灼其花, 有蕡其實) |
3장 원원장 | 원원지수, 한역불갈(源遠之水, 旱亦不竭). 유사위천, 우해필달(流斯爲川, 于海必達). |
|
3장 | 4장 석주장 | 석주대왕, 우빈사의(昔周大王, 于豳斯依). 우빈사의, 조조비기(于豳斯依, 肇造丕基). |
5장 금아장 | 금아시조, 경흥시택(今我始祖, 慶興是宅). 경흥시택, 조개홍업(慶興是宅 肇開鴻業). |
|
4장 | 6장 적인장 | 적인여처, 적인우침(狄人與處, 狄人于侵). 기산지천, 실유천심(岐山之遷, 實維天心). |
7장 야인장 | 야인여처, 야인불례(野人與處, 野人不禮). 덕원지사, 실시천계(德源之徙, 實是天啓). |
|
졸장(125장) | 8장 천세장 | 천세묵정한수양(千世默定漢水陽). 누인개국, 복년무강(累仁開國, 卜年無彊). |
9장 자자장 | 자자손손, 성신수계(子子孫孫, 聖神雖繼). 경천근민, 내익영세(敬天勤民 迺益永世). |
|
10장 오호장 | 오호! 사왕감차(嗚呼! 嗣王監此). 낙표유전, 황조기시(洛表游畋, 皇祖其恃). |
|
여민락은 세종대에 창작된 향악으로 현재까지 전승되는 대표적인 궁중음악이다. 여민락과 더불어 새로운 향악곡을 제작함으로써 궁중음악이 아악에서 향악 중심으로 바뀌는 전환점을 이루었다. 특히 풍류 여민락은 궁중 악곡이 민간 악곡으로 정착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드문 사례 중 하나이다. 비록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던 성악곡에서 기악곡으로 변하였지만, 500년 이상 전승되어 온 자랑스러운 음악유산이다.
『세종실록』 『악학궤범』 『속악원보』 『금합자보』 『삼죽금보』
송방송, 「조선후기 여민락계 악곡의 전승 양상」, 『한국음악연구』 41, 2007. 이혜구, 「여민락고」,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이혜구, 「용비어천가의 형식」,『한국음악서설』, 서울대학교출판부, 1975. 임미선, 「여민락계 음악의 연주전통, 그 단절과 전승」, 『한국음악사학보』 49, 2012. Jonathan Condit, 「The Evolution of Yomllak from the Fifteenn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장사훈박사회갑기념음악학논총』, 한국국악학회, 1976.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