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무용수가 치마저고리 위에 입는 길이가 긴 웃옷
조선 시대 궁중정재를 올릴 때 여기(女妓)나 동기(童妓) 등이 착용한 기본복식 중 하나로서, 길이가 긴 옷이다. 단의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여기 복식과 연화대(蓮花臺) 복식에 각각 수록되어 있으며, 홍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앞은 짧고 뒤가 길며, 옷의 몸판인 길의 옆선과 수구에 배색 천이 붙어 있다. 하지만 조선 후기 궁중정재에서 동기(童妓)와 여령(女伶)이 춤을 출 때는 물론 차비여령(差備女伶)ㆍ비자(婢子) 등도 초록단의를 입었다. 순조 이후 『진찬의궤(進饌儀軌)』 등을 살펴보면 동기의 단의는 『악학궤범』의 단의처럼 깃이 둥근 것도 있었지만 곧은 깃의 단의도 착용되었다.
1493년에 간행된 『악학궤범(樂學軌範)』 권9 관복도설(冠服圖說)에는 여기의 복식으로 머리를 장식하는 잠(箴)ㆍ유소(流蘇)ㆍ채(釵)ㆍ대요(臺腰)와 수화(首花)와 단의ㆍ상(裳)ㆍ대(帶)ㆍ흑장삼(黑長衫)ㆍ혜(鞋)ㆍ말군(襪裙)ㆍ남색 저고리 등이 기록되어 있다. 《화성의궤도(華城儀軌圖)》 (1795)에는 단의는 홍색이며 수구에는 초록색과 백색으로 동을 댄 모습이 채색화로 남아 있다. 이후 조선 후기의 『진찬의궤』 등의 기록에도 단의는 계속 등장하나 색상과 형태에서 변화가 있었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공연에 따라 녹색 또는 홍색의 단의가 착용되고 있었다.
○ 쓰임 및 용도
단의는 진찬(進饌), 진연(進宴) 등 궁중 연회에서 춤을 추는 여령(女伶)과 동기(童妓)의 복식일 뿐 아니라 의장(儀仗)을 드는 차비여령(差備女伶)이나 비자(婢子) 등도 입었던 옷이었다.
○ 형태 및 구조
단의의 모양을 『악학궤범』에서 살펴보면, 둥근 깃에 앞보다 뒤가 긴 것이 특징이다. 옆선 무부분과 소매 끝에는 색동과 같이 배색 천을 두 줄 장식하였다. 옷은 홍색인 것은 동일하지만 여기의 단의에는 남색이나 백색 초로 안을 대고 양옆선과 소매부분에는 남색 단과 백색초로 동을 달았다. 이에 비해 연화대에 착용하는 단의는 양 옆선과 소매의 끝에 대는 천을 녹색의 라(羅)와 백색의 초(綃)로 만들었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복식의 도설에는 옷의 치수도 기록되어 있다.
여기(女妓)의 단의 앞면에는 한쪽 화장(몸의 중심에서 소매 끝까지의 길이) 1척(尺) 8촌(寸) 5분(分), 옷 길이 1척 5촌, 허리너비 2척, 소매 끝동은 백초 너비 5촌 길이 6촌, 소매와 끝동 사이에는 남단(藍鍛)을 대며 길이 4촌 너비는 6촌, 소매 웃동은 홍라 길이 8촌 5분, 너비 8촌으로 적혀 있다. 뒷면 그림에는 뒷길이 2척 8촌 5분, 양옆 무 부분은 길에 달린 남단의 너비 8분, 남단 옆에 붙인 백초는 너비 6분이라고 적혀 있다.
연화대복식의 단의도 앞뒷면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앞길이 1척 2촌, 허리너비 2척 1촌, 끝동은 백초 너비 4촌 5분 소매가운데 색동 녹라 7분 앞에서 보이는 옆선의 백초 너비 2촌 5분 뒷면에는 화장 1척 8촌 5분, 뒷길이 2척 1촌, 허리 2척 1촌 뒷자락 양옆 무 녹라 너비 1촌 2분 백초너비 1촌 5분, 뒷자락 아래 라 너비 2척 5촌 5분으로 쓰여 있다.
조선 후기의 궁중정재에서 착용된 단의를 《화성의궤도(華城儀軌圖)》에 채색된 복식도에서 찾아보면, 둥근 깃에 초록색과 흰색으로 끝동을 달아 『악학궤범』 연화대복식의 단의와 비슷하다. 이후 순조(純祖) 때의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1829) 복식도에 실린 단의는 동기복식에만 포함되어 있는데 깃 모양이 이전과 달리 직령(直領)이다.
공령(工伶)에서 확인해 보면, 단의를 입는 것은 각 춤의 정재여령(呈才女伶)은 물론 연화대정재동기, 거휘여령(擧揮女伶), 집박(執拍) 및 정재의장봉지여령(呈才儀仗奉持女伶) 등이었다. 거휘여령은 가리마(加里麻), 연화대무를 추는 동기는 합립(蛤笠), 각 춤의 정재여령과 의장을 드는 여령 등은 화관(花冠)을 쓰는 등 관모도 다르고 치마와 신발 등도 각각 다르지만, 초록단의(草綠丹衣)를 입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만 각 춤의 정재여령의 옷으로 초록단의와 나란히 황초단삼(黃綃單衫)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변화는 《화성의궤도(華城儀軌圖)》나 『악학궤범』의 홍색 단의와는 달리 초록단의를 입은 것이다. 그렇지만 동기가 입은 단의의 깃은 곧은 깃의 그림이 수록된 기축년(1829)을 제외하고는 이후에도 계속 둥근 깃이 복식도에 수록되어 있다.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1848) 권수(卷首)에 동기의 단의는 섶과 고름이 달려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으며 그 외에는 『악학궤범』의 단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고종(高宗) 때인 『정축진찬의궤(丁丑進饌儀軌)』(1877)에 와서는 동기복식으로 둥근 깃의 단의가, 연화대(蓮花臺) 동기복식으로는 곧은 깃의 단의가 그려져 있다.
○ 재질 및 재료 소재에 대해 『악학궤범』에는 여기의 단의는 홍색의 얇고 성글은 비단인 라(羅) 혹은 사(紗)로 만들고 안은 남색이나 백색의 초(綃)로 만들며 소매 끝과 옆선에는 남색 단과 백색 초로 연달아 붙인다고 하였다. 즉 모두 견직물을 사용하되 각기 다른 소재와 색상을 사용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연화대복식은 남색 단 대신 녹색의 라를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단의는 명칭 상 붉은 색 옷으로 여겨지지만, 조선 후기 진연에서 착용한 단의는 초록색으로 나타난다. 순조기축진찬의궤 공령에 각무 정재여령, 거마여령, 집박 및 정재의장 봉지여령이 머리에 쓰는 쓰개가 화관이나 가리마, 신발도 홍단혜나 흑혜 등으로 각기 다를지라도 의복은 남색상, 홍초상 위에 초록단의를 입은 공통점이 있다. 동기 역시 화관에 말군 홍라상 금화홍라대 등으로 여령과 많이 다르지만, 초록단의를 입은 것은 같다. 『순조기축진찬의궤』 동기복식 중 단의 두 건을 만드는 재료로 초록 도류불수문갑사, 안감 홍화주 등이 사용된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헌종무신진찬의궤의 경우 의위에서 내진찬시 시위각차비에서 각차비 여령이 가리마를 쓰고 초록단의를 입었으며 정재의장봉지여령도 가리마에 초록단의 문외 의장봉지비자까지도 가리마에 초록단의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공령부분에 동기에만 단의가 아닌 ‘당의(唐衣)’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복식도의 동기복식에는 단의로 표기되어 있고 둥근 깃 즉 단령 형태의 깃을 한 모양이다. 같은 헌종무신진찬의궤 안에서 명칭이 각기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이에 《헌종 진찬도》의 그림을 보면 가니마를 쓰고 당의를 입은 인물이 보인다. 권3의 악기풍물 동기복식에는 옷감의 소요량이 쓰여 있는데, 안감은 황생초, 겉감은 초록화문갑사, 단령에 홍화문갑사, 좌우 무와 소매수구와 색동에는 홍화문 갑사 백화문갑사가 사용되어 『악학궤범』의 연화대 동기복식과 유사해보이나 색채가 변화된 것을 확인할수 있다.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1902.11) 악기풍물에서도 동기의 단의 겉감으로 초록색 화문갑사, 안감으로 황색 화문갑사를 사용하였음을 볼수 있다.
단의의 명칭은 붉은 옷이란 뜻이지만 조선 후기 궁중행사에 착용한 단의 중에는 초록 단의도 있었다. 즉 색채 때문에 명명된 의복은 아닌 것이다. 조선 전기에는 앞이 짧고 뒤가 길며 둥근 깃의 의복으로 주로 나이 어린 동기의 복식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곧은 깃에 앞뒤 길이의 차이가 없는 단의도 착용되었던 것이 『진찬의궤』 등의 기록에 남아 있다.
강민정, 『朝鮮時代 宮中呈才에 나타난 童妓服飾 硏究』,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宋芳松ㆍ金恩子ㆍ李丁希ㅡ, 『國譯 純祖己丑進饌儀軌』, 민속원 2007. 황지현ㆍ박정혜ㆍ장경희, 『잔치 풍경 - 조선시대 향연과 의례』, 국립중앙박물관 2009.
홍나영(洪那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