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홍라대(金花紅羅帶)
여자무용수가 가슴의 앞에서 뒤로 둘러서 묶는 금박 장식이 있는 홍색 비단 허리띠
조선 시대 궁중연회에서 동기(童妓)가 착용하는 가슴의 앞에서 뒤로 둘러 묶는 금박 장식이 있는 홍색 비단 허리띠이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정재여령(呈才女伶)이나 동기(童妓)가 두르는 띠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인화문(印花紋)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금박 장식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진찬의궤(進饌儀軌)』 등에서 수대(繡帶), 금루수대(金縷繡帶), 금화홍라대(金花紅羅帶) 등도 궁중정재(宮中呈才)에서 착용되는 허리띠이지만, 금화라대는 동기의 허리띠로만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나름 고유한 특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궤에 수록된 복식도에서 금화라대는 반드시 묶인 상태로 그려진 것으로 볼 때 미리 허리 뒤에 나비모양의 매듭을 묶은 상태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15세기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 에는 동기(童妓)의 대(帶)와 여기(女妓)가 착용하는 대의 그림이 실려 있다. 『악학궤범』에 수록된 동기의 대는 조선 후기 『진찬의궤(進饌儀軌)』 등에 기록된 금화라대(金花羅帶)와는 같은 것으로 보인다.
《화성원행의궤도(華城園幸儀軌圖)》(1795)에 홍색으로 채색된 금화라대의 그림이 실려 있으며, 이후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丑進饌儀軌)』(1848년)를 비롯해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금화라대는 복식도(服飾圖)에 동기의 복식으로 거의 같은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반면 여령(女伶)은 수대(繡帶), 춘앵무의 여령은 홍수대(紅繡帶)를 두르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순조기축진찬의궤』 권3 공령(工伶) 부분에 각무(各舞) 정재여령과 춘앵전(春鶯囀) 정재여령ㆍ무고(舞鼓) 정재여령ㆍ집박(執拍) 및 정재의장(呈才儀仗)을 드는 여령까지도 의복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홍단금루수대를 드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비해 연화대무(蓮花臺舞)를 추는 동기의 띠는 금화홍라대(金花紅羅帶)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국립국악원에 공연되는 학무 처용무와 함께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한 학연화대처용무합설 공연 중 동기의 금화라대 착용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쓰임 및 용도 『악학궤범』 연화대(蓮花臺)의 도설을 보면, 황색과 홍색의 장미(薔薇)를 꽂은 합립(蛤笠)을 쓰고, 홍색의 단의(丹衣)와 홍라상(紅羅裳), 홍초말군(紅綃襪裙)을 입으며 허리에는 홍색의 얇은 비단인 라(羅)로 만든 대를 드리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구조와 착용방식 『악학궤범』에 여기 대의 길이가 6척(尺) 8촌(寸) 5분(分), 너비가 1촌 5분으로 적혀있다. 이에 비해 연화대 동기의 대는 크기가 조금 작아 길이가 4척 6척 5분이고 너비는 1촌 3분이다. 뿐만 아니라 동기의 대에는 띠 안쪽에 작은 고름이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진찬의궤』에서 금화라대를 동기가 착용한 것으로 복식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여기가 착용한 수대(繡帶)와 홍수대(紅繡帶) 등은 긴 끈의 형태인 것에 비해 금화라대는 몸에 둘러 묶은 후 뒤에서 매듭지어 늘어뜨린 모습대로 그려져 있다. 띠 바탕에는 작은 원형의 무늬를 금박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문양의 종류는 알 수 없다. 그림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금화라대도 여령의 수대(繡帶)나 원삼이나 활옷의 대대(大帶)처럼 안쪽에는 몸에 맞도록 묶는 작은 끈과는 다르지만 안쪽에 작은 고름이 계속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악학궤범』에서 여기의 대에는 홍초(紅綃), 동기의 대에는 홍라(紅羅)가 사용된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 후기 금화라대의 재료를 알 수 있는 것은 『진찬의궤』의 악기풍물(樂器風物)의 동기복식부분인데, 복식도와 공령(工伶) 부분에서 동기복식과 연화대무복식에 금화라대로 기록된 것과 달리 악기풍물에는 수대(繡帶)로 기록이 나타난다. 재료로는 홍공단이 사용되고 금화문(金花紋)을 찍는데 금박 3첩(貼)이 사용되었다.
궁중과 반가 여성들의 예복에 두르는 띠는 봉대(鳳帶) 혹은 대대(大帶)라고 하는데 앞에서 뒤로 묶어 두 번을 묶어 늘어뜨리는 것에 비해 무용수의 대ㆍ금화라대ㆍ금루수대ㆍ수대 등 모두 뒤에서 나비모양으로 묶은 것이 일반 예복과 다르다. 금화라대는 다른 무용수의 띠인 수대(繡帶) 등과 형태나 착용법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며, 금화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금박장식이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연화대무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학무 처용무와 함께 하나의 작품인 학연화대처용으로 구성되어 그 중 연화대무를 공연하는 무용수는 홍색바탕에 금박을 화려하게 장식한 금화라대를 착용하여 전통을 잇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강민정, 『朝鮮時代 宮中呈才에 나타난 童妓服飾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김경실, 「조선시대 연화대무 동기복식 고증 및 재현」, 『服飾』, Vol.52 No.6, 2002 『韓國音樂學資料叢書, 제26집 : 영조판 악학궤범』, 국립국악원,1988
홍나영(洪那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