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색 치마, 남치마, 남상(藍裳)
여자무용수나 차비 등이 입는 남색(藍色)의 치마
조선 시대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남색 치마를 즐겨 입었으며, 특히 경사스런 날에는 더욱 남색치마를 많이 입었다. 남색치마는 조선 후기 궁중정재를 올리는 여령(女伶)의 기본복식이기도 하였다.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1829) 권3 공령(工伶)을 보면 치마를 이중으로 입는 여령들은 모두 안에 남치마를 입고 위에 홍치마를 입은 반면 치마를 이중으로 입지 않은 여령들은 홍치마만 입은 것을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기축년의 궁중잔치》 병풍 그림에서 남치마 위에 홍치마를 입은 정재여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1848) 에서 내진찬(內進饌) 및 의위(儀衛)를 보면 “차비여관(差備女官)은 어우미(於亐味)를 쓰고, 녹색 원삼(圓衫)을 입었다. 그 안에는 남색 치마, 겉에는 홍색사로 만든 치마를 입고 남색 금수대(金繡帶)를 두르고 홍색 온혜(溫鞋)를 신는다”고 되어 있다. 뿐 아니라 각각의 차비들도 머리에 가니마(加里麻)를 쓰고 초록 단의(丹衣)나 황초삼(黃綃衫)을 입는데, 치마는 모두 남치마를 안에 입고 그 위에 홍치마를 입었다. 오직 문밖에 의장봉지비자(儀仗奉持婢子)만 가리마에 초록 단삼ㆍ남색상ㆍ백한삼(白汗衫)ㆍ흑혜(黑鞋) 차림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무신진찬도(戊申進饌圖)》를 비롯하여 『임인진찬의궤(壬寅進饌儀軌)』(1902.11) 등에서 확인된다. 현재의 공연에서도 남색상은 꾸준히 착용되고 있다.
○ 쓰임 및 용도
여령들은 궁중정재에 참여할 때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초록 저고리와 남색 치마[藍色裳]를 입은 다음, 그 위에 남색 치마보다 크기가 작은 홍색 비단 치마[紅綃裳]를 겹쳐 입고, 다시 그 위에 황초삼(黃綃衫)을 입고, 가슴에 수대(繡帶)를 두르고, 손목에 오색한삼(五色汗衫)을 끼며, 초록혜(草綠鞋)를 신었다. 이와 같이 남색상 위에 홍초상(紅綃裳)을 덧입는 것이 보다 격이 있는 옷차림이었다.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에서 부벽루 연회도 부분을 보면 동기들은 모두 홍색치마를 입고 있는 것에 비해 다른 무용수들은 홍색과 남색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구조와 형태
남색상의 구조는 조선 시대 여자치마의 구조와 동일하다.
#5 영상
조선 시대 왕실이나 반가의 대례복을 입을 때도 남색스란치마를 입고 그 위에 홍색스란치마를 겹쳐 입는데, 여자 무용수가 입는 치마의 경우는 스란치마가 아닐뿐더러 겉에 입는 홍색치마가 남색상에 비해 폭과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남색상은 진찬의궤 악기풍물에도 별도의 옷감이나 소요물품을 적지 않을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조선 시대 여성 복식이었다.
『高宗壬寅進饌儀軌)』 『純祖己丑進饌儀軌』 『樂學軌範』 『憲宗戊申進饌儀軌』
이경자ㆍ홍나영ㆍ장숙환, 『우리옷과 장신구』, 열화당, 2003.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개정판 동아시아복식이 역사』, 교문사, 2020. 김남정, 「조선시대 치마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윤은영, 「궁중정재 춘앵전(春鶯囀) 복식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청구논문, 2015.
홍나영(洪那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