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삼(紅紬衫), 홍주단령(紅紬團領), 홍단령(紅團領), 홍의(紅衣)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제례와 연례에서 악공이 연주복으로 입는 홍색 비단[紅紬]으로 만든 겉옷 또는 현행 종묘대제에서 일무악공이 무용복으로 입는 홍색 비단[紅紬]으로 만든 겉옷
홍주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제례와 연례에서 악공이 연주할 때 입는 흉배가 없는 홍주의이다. 흉배가 없는 홍주의는 조선 전기 악공의 연주복인 비란삼을 대신하여 조선 후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현행 종묘대제에서 일무악공의 무용복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흉배가 없는 홍주의는 옷깃이 둥글고 소매통이 넓으며 사각형의 무가 뒤로 젖혀져 뒷길에서 고정된 형태로서 조선 후기의 단령과 동일한데, 그 형태가 조선 후기부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문소전ㆍ영은전ㆍ소경전에서 제사지낼 때 악공이 입었던 흉배가 있는 홍주의이다. 흉배가 있는 홍주의는 옷깃이 둥근 점은 단령과 동일하지만 단령과 달리 삼각형의 무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 단령과 다른 의복이다. 흉배가 있는 홍주의는 조선전기의 『악학궤범』에서만 보이고 조선 후기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는 악공은 연주복으로 홍주의를 입고 일무악공은 무용복으로 남주의를 입어 겉옷의 색상이 서로 달랐는데, 현행 종묘대제에서는 악공과 일무악공이 모두 홍주의를 입어 겉옷의 색상이 동일하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종묘제례악으로 아악을 사용하였으나 세조 9년(1493) 이후에는 보태평과 정대업을 사용하였다. 조선 전기 종묘제례에서 악공의 연주복은 개책(介幘)ㆍ비란삼(緋鸞衫)ㆍ백주중단(白紬中單)ㆍ백주말대[白紬抹帶ㆍ白綃帶]ㆍ백포말(白布襪)ㆍ오피리(烏皮履)로 구성되었다. 『악학궤범』의 비란삼 도식화를 보면 옷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은 공복 형태로서 홍색 비단[紅紬]으로 만들고 가슴과 등, 좌우 어깨에 흉배 모양처럼 난봉(鸞鳳)이 그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악공의 연주복은 개책ㆍ홍주의(흉배 없음)ㆍ백포말ㆍ색조대(또는 백주대ㆍ백초대ㆍ흑사대)ㆍ오피리로 변화되었는데 비란삼 대신 홍주의(흉배 없음)로 변경되면서 난봉 그림도 그리지 않게 되었다. 조선 후기 악공이 입은 홍주의에 관한 기록은 인조 2년(1624) 3월 23일자 『인조실록』기사에서 볼 수 있는데, “악공이 입는 홍주의에 드는 명주가 무려 340필이나 되고 다른 물건도 그와 맞먹는데 지금의 물력으로는 결코 장만할 수 없습니다. 종묘대제가 9일 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더욱 그때까지 장만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주의는 『종묘의궤』ㆍ『경모궁의궤』ㆍ『춘관통고』ㆍ『육전조례』에 기록되어 있다. 『종묘의궤』와 『경모궁의궤』의 남주의 도식화 설명에 “홍주의 제도도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홍주의의 형태가 남주의와 동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기의 홍주의는 『대한예전』ㆍ『증보문헌비고』ㆍ『조선악개요』에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종묘제례 악공의 연주복은 『조선아악요람』에 개책ㆍ홍단령ㆍ남사대ㆍ목화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형태는 『조선아악기사진첩 건』에 수록된 아악수의 홍단령 사진을 참고할 수 있다. 광복 이후에도 홍주의는 종묘대제의 악공의 연주복으로 사용되었는데 자주색 단령이 사용되다가 현재에는 홍색 단령이 사용되고 있다. 홍주의는 현행 종묘대제에서 일무악공의 무용복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 쓰임 및 용도
흉배가 없는 홍주의는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제례와 연례에서 악공이 연주할 때 입는 겉옷이다. 조선 후기에 악공은 머리에 개책을 쓰고 홍색 비단으로 만든 겉옷[홍주의]을 입은 다음 허리에 흰색 천으로 만든 대[백주대ㆍ백초대]를 두르고 흰색 버선[백포말]과 신목이 없는 검은색 신발[오피리]을 신는 차림을 하였다. 이러한 악공의 연주복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홍주의는 현행 종묘대제에서 일무악공의 무용복으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악공은 개책을 쓰고 홍주의를 입고 일무악공은 복두를 쓰고 홍주의를 입는 점이 다르다.
○ 형태 및 구조
흉배가 없는 홍주의는 『종묘의궤』의 남주의 도식화와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홍주의 도식화에서 볼 수 있다.
『종묘의궤』의 남주의 도식화 설명에 “홍주의 제도도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남주의 도식화를 통해 홍주의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옷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은 형태이다. 양 옆에 삼각형 무가 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각형 무가 뒤로 젖혀져 뒷길에서 고정된 형태를 묘사한 것으로 조선후기의 관복 단령과 동일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에 수록된 홍주의는 옷깃이 둥글고 소매통이 넓으며 어깨에 매듭단추가 달려 있고 가슴 부분에 넓고 긴 고름이 달려 있는 형태로서 조선 후기의 단령과 동일한 형태이다. 사각형 무는 뒤로 젖혀져 뒷길에서 고정된 것으로 보인다. 흉배가 없는 홍주의 착용 모습은 『기사진표리진찬의궤』에 그려진 악공과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오향친제반차도〉에 그려진 악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제례와 연례에 모두 흉배가 없는 홍주의를 입고 있는데, 제례에는 개책을, 연례에는 꽃을 꽂은 복두 또는 꽃을 그린 복두[畵花幞頭]를 쓰고 있는 점이 다르다.
대한제국기 홍주의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도식화나 회화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악개요』에 홍주의 도식화가 수록되어 있으나, 화화복두와 함께 수록되어 있고 형태도 『악학궤범』의 녹초삼 도식화와 동일하므로 대한제국기 종묘제례에 사용된 홍주의 도식화로 보기는 어렵다. 일제강점기 종묘제례에 사용된 악공의 연주복은 『조선아악요람』과 『조선아악기사진첩 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아악요람』에는 종묘제례악 연주복⋅문묘제례악 연주복⋅보태평과 정대업 일무악공 무용복⋅아악 문무와 무무의 무용복이 모두 홍단령으로 기록되어 있고, 『조선악기사진첩 건』에는 아악수의 홍단령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흉배가 없는 홍주의는 종묘대제에서 악공의 연주복과 일무악공의 무용복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옷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고 무가 뒷길에서 고정된 형태로서 조선후기의 관복 단령과 동일하다.
한편, 흉배가 있는 홍주의는 조선 전기에는 문소전ㆍ영은전ㆍ소경전에서 제사지낼 때 악공이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조선 후기에는 기록이 없다.
제례와 연례에서 악공이 입은 겉옷에는 홍색이 사용되었다. 악공의 겉옷은 조선 전기의 비란삼에서 조선 후기의 홍주의로 변화되었으나 색상은 조선 전기부터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홍색이 계승되고 있다. 조선 전기의 비란삼은 홍색 바탕에 흉배의 형상과 같이 난봉(鸞鳳)이 그려져 있어 복색의 화려함이 돋보였다. 조선 후기에 비란삼이 홍주의로 변경되면서 난봉은 사라졌지만 홍색에 담긴 공연복으로서의 화려함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악공의 옷차림에는 오방색이 조화롭게 사용되었다. 악공의 연주복은 개책ㆍ홍주의ㆍ백주대ㆍ백포말ㆍ오피리로 구성되었는데, 홍주의에 홍색이, 개책의 끈에 청색이, 백주대와 버선에 백색이, 개책과 오피리에 흑색이 사용되었으며, 황색은 개책의 가장자리에 사용된 자황색에서 볼 수 있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무렵에 백주대가 남사대로 변경되면서 청색이 보완되어 오방색이 더 조화롭게 갖추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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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李珠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