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氈笠), 벙거지[翻巨知]
검기무 무용수들이 사용하고 있는 전립은 조선 후기 군관들이 쓰던 군복용 모자에서 비롯되었다. 짐승 털로 만든 이 모자는 시대에 따라 높이와 너비 등의 변화가 있었으며 색상도 본래는 검은 색을 사용하였으나 1848년 무신년 진찬 이후 1902년 11월 임인년 진연까지의 『의궤』에서는 붉은 색[散紅毛] 전립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진찬⋅진연 《도병》에는 검기무 여령들이 모두 검은 색 전립을 쓴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현재도 검정색 전립을 사용하고 있다.
전립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군복용 전립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것이므로 검기무의 전립 역시 조선 후기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립을 쓰고 있는 기생이나 여령의 모습은 정조 대의 〈안능신영도(安陵新迎圖)〉를 비롯하여 신윤복의 〈쌍검대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검무 정재도 등에서 볼 수 있다.
장식물은 간략해졌으나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이나 지역의 검무, 검기무를 추는 무용수들이 전립을 사용하고 있다.
지방에서 공연되던 ‘검무’가 왕실의 정재로 삽입되면서 19세기 『의궤』부터 ‘검기무’로 기록되었다. 검기무를 추는 이들은 치마⋅견마기 또는 황초삼 차림 위에 군관의 주요 복장인 전립과 전복(戰服), 전대(戰帶)를 착용하였다. 전립은 짐승의 털을 축융시켜 만든 모자이기에 ‘전립(氈笠)’이라고 하던 것인데 군사용으로 사용되면서 ‘전립(戰笠)’이라는 명칭이 정착하였다. 군관들은 털전립 외에 대나무 실[竹絲]로 만든 죽전립(竹戰笠)도 사용하였으나 검기무 여령들은 털전립을 사용하였다. 1795년(정조 19) 화성 원행 시의 봉수당 진찬을 그린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와 교토대학종합박물관 소장 〈봉수당진찬도〉에서 봉수당 모퉁이에 놓여 있는 공작털[孔雀羽] 장식의 검은 전립 한 쌍을 볼 수 있다.
검기무의 전립은 시대에 따라 형태나 장식이 변화하였다. 전립은 모자 부분과 차양으로 구성되는데 초기의 전립 모자는 뾰족한 원뿔형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기 이후 둥근 형태로 변하였으며 양태 역시 시대에 따라 너비가 변화하였는데 특히 20세기 이후 아주 좁아졌다.
여령의 전립에는 밀화끈 장식이 없었으나 근래에는 동기가 사용하던 밀화끈[蜜花纓]이 추가되었으며 턱밑에 이르는 길이가 근래에는 길어져서 늘어지는 형태로 변하였다. 전립의 색상도 초기에는 흑색이었으나 19세기 중기 이후 『의궤』 기록에는 홍색 전립[散紅毛戰笠]을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관련 ≪도병≫ 등 회화 자료에서는 검은 전립만 확인되지만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 민속박물관에는 자주색 레이온 벨벳으로 만든 20세기 북한 전립 유물이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19세기 이후 검기무에는 홍색 전립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현재는 흑색 전립을 사용하고 있다.
전립에는 많은 장식물을 사용하였는데 이화여자대학교 담인복식미술관이나 독일 라이프치리그라시 민속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군관용 전립 장식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1829년(순조 29) 『(기축)진찬의궤』에는 여령 전립 네 건과 동기 전립 두 건에 대한 전립과 장식물의 재료와 가격이 적혀있어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전립에 남색 비단[藍漢緞] 안감을 넣고 턱 밑에 묶을 비단끈[宮綃纓子]을 S자형의 은고리[銀纓子]에 달아서 모자 안쪽에 고정시켰다. 모자와 차양의 경계 부분에는 징도리(徵道里)라고 하는 붉은 색 펠트[猩猩氈]로 만든 끈을 둘러 장식하였으며 여령용 전립 네 건 중 두 건에 징도리 좌우 귀 위치에 밀화(蜜花)로 만든 귓돈[耳錢] 장식을 달고 나머지 두 건에는 인조 금패 귓돈[造錦貝耳錢]을 달았다.
또한 정수리 부분에는 은정자(銀頂子)라고 하는 꼭지를 달고 그 꼭지에 달린 고리에는 은통(銀筩)에 꽂은 공작털과 푸른색 털[靑羽]를 달고 붉은 상모(象毛)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동기가 사용한 전립은 여령의 것과 대체로 같으나 여령의 전립에 사용하지 않은 인조 밀화구슬끈[貝纓]을 사용하였으며 은정자 대신 나무꼭지[木頂子]를 사용하였다.
한편 1877년(고종 14) 『(정축)진찬의궤』에는 공연용 전립 외에 연습용 전립이 기록되어 있다. 공연용 전립의 안감에는 남운문단을 사용하고 연습용 전립에는 남릉(藍綾)을 사용하였으며 정자는 도금한 은정자와 조정자(造頂子)를 각기 사용하는 등 재료에 차이를 두었다.
전립은 조선후기 군관이 군복 차림에 썼던 모자이지만 검무, 검기무를 추는 여령들이 군관들의 복장 일부를 차용하여 공연하면서 사용하게 되었다. 다른 정재에서는 볼 수 없는, 검기무만의 독특한 관모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형태와 색상, 장식 등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립대구박물관, 『선비의 멋, 갓』, 2020. 김영희춤연구소 편, 『검무 연구』, 보고사, 2020. 수원화성박물관 편, 『정조대왕의 수원행차도』, 2016. 진덕순⋅이은주, 「『의궤』를 통해 본 궁중 검기무 복식」, 『국악원논문집』 37, 2018.
이은주(李恩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