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초립(黃草笠)
조선후기 취타수가 황철릭과 함께 쓰는 모자.
초립은 누런 빛깔의 가는 대를 결어 만든 모자이다. 초립은 삼국시대부터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착용하였으며, 소재와 색상에 따라 다양하게 착용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선비의 초립은 50죽, 서인의 초립은 30죽으로 제한함으로써 신분에 따라 초립의 곱고 거침을 나타내는 날의 수를 달리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입제변증설’을 보면, 초립은 동자가 관례를 할 때 처음 쓰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조선 말에는 관례를 치른 어린 남자아이가 혼례를 올리기 전까지의 관모로 착용한다고 하여 ‘초립동(草笠童)’이라고 불렸다. 초립은 패랭이와 함께 상민의 쓰개로 착용하였다. 초립의 착용은 이들 외에 별감도 황초립을 착용하는 등 착용범주가 넓었다. 『악학궤범』에는 가동이 융복을 입고 착용하는 것으로 립은 주황초로 만들고 영이 있다고 하였다.
한편 1694년(숙종 20) 『(현종인현후)책례도감의궤』에는 말을 끄는 견마배의 초립을 공조에서 장만하였으나 1834년(헌종 즉위) 『(순조대왕)국장도감의궤』에서는, 견부가 청의(靑衣)에 초립을 쓰고 운혜(雲鞋)를 신는다고 하였으며, 의와 립은 사복시(司僕寺)에서 마련하고 혜는 공조(工曹)에서 장만하였다. 이외에도 궁정의 세악수(細樂手), 창우(倡優), 별감 등이 초립을 착용했다. 1778년(정조 2) 『일성록(日省錄)』에는 액정서 하례의 복식을 정하면서 무예별감은 전좌(殿座)와 거둥ㆍ능행과 교행에서 모두 철릭을 입고 초립을 쓰며 호수를 착용하라는 하교가 내려졌다. 『화성원행의궤도』의 향교알성도에 등장하는 취타수들은 모정에 장식이 없는 초립을 쓰고 황철릭을 입고 있으며, 반차도에 등장하는 취타수는 깃털 장식이 있는 초립에 황철릭을 입고 남전대를 띠고 있다.
립의 기본 형태는 머리를 덮는 대우와 챙 부분인 양태로 구성된다. 초립의 모정은 평평하며 위는 좁고 아래가 넓은 원뿔대형이며, 양태 부분은 흑립과 달리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며, 비교적 좁고 위로 약간 올라간 형태이다. 조선시대 갓의 발달 과정 중 패랭이에서 흑립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 립은 소재나 색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다.
1447년(세종 29) 1품양반 자제는 모두 진초립(眞草笠)을 쓰는데 정수리의 죽수는 30이하이고 평죽(坪竹)의 수는 14이하로 하였으며, 그 외 양천은 모두 상초립(常草笠)을 쓰는데, 정죽의 수는 15이하이고 평죽은 7이하이며 감투를 쓴다고 함으로써 죽수가 신분을 구분하는 단서가 된다. 초립의 구조를 보면 모자 부분이 차양 부분보다 더 정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초립은 가동이 착용하는 초립과는 명칭은 같지만, 형태상으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기본적으로 대우와 양태로 구분된 것은 같다. 다만 모정부분과 수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동의 초립은 둥근 발립(鉢笠)의 형태이며 정수리에는 정자가 달려 있고 조우(鳥羽) 두 개씩을 모정과 양옆에 꽂았으나 초립은 정수리 부분이 평평하고 오히려 살짝 들어가 있으며 양태가 약간 올라가 있으며, 특별한 수식은 없다. 또 가동이 착용하는 초립의 끈은 구슬로 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초립의 경우에는 패영이 아닌 끈을 단다.
초립은 가는 풀의 줄기나 대오리로 엮어 만든 평량자(平凉子)형의 관모로 가동의 경우 모정과 양옆에 삽우를 하고 있으며, 끈도 구슬모양의 패영을 달고 있어 일반적인 초립보다는 장식이 많다.
『세종실록』 『성종실록』 『(순조대왕)국장도감의궤』 『악학궤범』 『오주연문장전산고』 『일성록』 『정조실록』 『(현종인현후)책례도감의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생활』, 2017. 고부자, 「『악학궤범』 복식연구」, 『국악원논문집』 14, 2002. 박가영, 「『악학궤범』 복식의 착용에 관한 연구」, 『국악원논문집』 16, 2004.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http://kyujanggak.snu.ac.kr/dohae/main/index.jsp)
이민주(李民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