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무(垂手舞)ㆍ수수(垂手)ㆍ수신요합절이무(隨身腰合節而舞)ㆍ염수족도이무(斂手足蹈而舞)ㆍ절요이요(折腰理腰)ㆍ척요(尺腰)
양손을 앞에 모으고 허리를 숙여 상체를 앞으로 밀었다가 다시 뒤로 제치며 무릎을 굽혔다 펴는 춤사위
수수이무는 ‘손을 아래로 드리우고 춤춘다’는 뜻이다.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수수이무는 정재마다 다양하게 구성된 대형에서 추어지는데, 〈장생보연지무〉에서는 두 대 좌우대형, 〈봉래의〉ㆍ〈수연장〉ㆍ〈오양선〉에서는 사방대형, 〈영지무〉에서는 영지[연못]을 중심으로 한 두 대 좌우대형, 〈춘광호〉에서는 전후좌우 복합대형, 〈향령무〉는 품자(品字)대형에서 각각 춘다. 근대 이후에는 1930년대 당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아악사장을 지냈던 김영제(金寧濟, 1883~1954)가 『정재무도홀기』에 나오는〈춘앵전〉의 수수이무에 대한 설명을 풀이하였는데, “절요이요(折腰而腰)”는 “두 팔을 앞으로 지어 족도한다. 실제로는 수수무(垂手舞)와 같다”라고 하였고, “풍류지(風流枝)”는 “두 팔을 여미고 수수무를 춘다”라고 하였다. 이때의 내용은 『궁중무용무보』제2집에 전한다. 수수이무는 양손을 앞에 모으고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중심을 주면서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가 무릎을 굽혔다 펴고, 다시 뒤로 중심을 옮기며 상체를 펴면서 무릎을 굽혔다 폈다하며 춘다. 수수이무는 정재 작품마다 춤동작으로서 추기도 하고, 특정 창사를 부르며 추기도 한다.
현재 수수이무는 작품에 따라 〈세령산〉ㆍ〈도드리〉ㆍ〈타령〉ㆍ〈자진도드리〉 등 다양한 장단에 맞춰 춘다.
현재 〈영지무〉에서는 연못을 상징한 영지(影池: 연못), 〈춘앵전〉에서는 화문석[돗자리]를 무구로 사용한다.
수수이무는 궁중정재의 기본법례에 의하여 정재대형의 형태 및 무용수가 선 위치에 따라 손을 모으는 위치와 앞으로 내딛는 발 위치가 서로 다르다. 창사 부를 때 추는 수수이무는 6:4:4:6 박자에 맞춰 몸을 앞과 뒤로 움직이며 춘다.
현재는 문헌 기록과는 상관없이 여러 정재에서 수수이무를 추고,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춘다.
『시용무보 정재무도홀기 (時用舞譜(全)呈才舞圖笏記)』, 국립국악원, 1989. 『건원1400년 개원50년 국립국악원사』, 국립국악원, 2001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손선숙, 『궁중정재용어연구』, 민속원, 2008. 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송방송ㆍ손선숙, 『정재홀기 속의 우리 춤과 음악찾기』, 보고사, 2009. 이혜구 역주,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9. 김영희, 「이왕직아악부의 궁중무 전승」, 무용역사기록학 42, 2016. 국립국악원 아카이브(https://streaming.gugak.go.kr:1935/ArchivePortal/)
손선숙(孫善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