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잡기 전, 혹은 공을 잡고 공을 던지기 전에 어르는 춤사위
농구는 <보상무>ㆍ<포구락>재에서 추는 춤동작이다.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전승되어 왔고,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ㆍ『악학궤범(樂學軌範)』ㆍ『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농구는 한국전쟁 후 국립국악원 주도하에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이 보상무와 포구락을 재현할 때 무대 공연으로 안무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농구는 ‘공을 희롱한다’ 혹은 ‘공을 어른다’는 뜻이다.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농구는 정재 내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춘다. 보상무는 바닥에 놓인 공을 잡기 전에 앉은 자세에서 농구를 추고, 포구락은 공을 잡고 풍류안(風流眼; 공을 던져 넣는 구멍)에 공을 던지기 전 포구문(抛毬門)을 바라보고 선 상태에서 농구를 춘다. 현재, 농구는 공연의 성격에 따라 정재마다 장단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여러 형태의 동작들로 구성하여 춘다.
보상무에서 농구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바닥에 놓인 공을 잡기 위해 앉아서 추는 농구 ①은 도드리장단에 맞춰 양손을 밖으로 둥글게 들어 올려 어깨로 메었다가 위로 떨쳐 뿌려 앞과 뒤로 차례로 여미는 팔수이무②로 춘다. 둘째, 보상반 앞에 서서 항아리에 공을 던지기 전에 추는 농구②는 도드리장단에 맞춰 이수고저(以袖高低)를 춘 다음, 양손을 위로 둥글게 뿌려 오른손을 보상반 앞으로 내밀고 어르며 춘다.
포구락에서 추어지는 농구도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바닥에 놓여 진 공을 잡기 위해 앉아서 추는 농구①은 북향하고 염수로 궤하여 양손을 밖으로 둥글게 들어 올려 어깨로 메었다가 위로 떨쳐 뿌려 앞과 뒤로 차례로 여미는 팔수이무②를 춘다. 다음 공을 던지기 전에 추는 농구②는 공을 잡고 포구문 앞에서 풍류안에 공을 던지기 전 포구문을 향해 서서 추는데, 도드리장단에 맞춰 이수고저를 춘 다음 양손을 위로 둥글게 뿌려 왼손은 머리에 대고[좌수대두(左手擡頭)], 오른손은 포구문 앞으로 내밀고 어른다.
현재 농구는 공연의 성격에 따라 장단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도드리ㆍ타령장단에 맞춰 춘다.
<포구락〉에서는 포구문, 보상무에서는 보상반을 놓고, 두 정재 모두 공[채구]을 무구로 사용한다.
현재는 농구를 문헌 기록과는 상관없이 정재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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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숙(孫善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