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북춤, 통영칼춤, 무고, 검무
경남 통영지방 교방(敎坊)의 기녀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칼춤>과 <북춤>이 결합된 형태의 춤
승전무는 조선 시대 통제영(統制營) 소속 교방의 관기가 추었던 <검무>와 <무고>를 재현하여 합설한 춤으로, <칼춤[통영칼춤]>과 <북춤[통영북춤]>으로 나뉘어 불리기도 한다. <칼춤>은 본래 네 명이 검을 들고 춤추었는데 현재는 여덟 명의 무용수가 서로 대무(對舞)하며 춤춘다. <북춤>은 네 명의 원무가 북을 에워싸고 북을 두드리며 춤추고 열두 명의 협무가 배 모양의 대형을 만들며 ‘지화자’ 노래를 부르고 춤춘다.
<칼춤[검무]>은 신라시대 황창랑의 고사에 연원을 둔 춤이다. 평안도 성천지역의 『읍지』인 『성천지』(1603년)에 그 기록을 처음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전국의 교방에서 연행된 <칼춤>이 궁중으로 유입되어 1795년(정조 19) 봉수당 진찬(進饌)에서 연행되었으며, 이 내용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칼춤>은 1697년(숙종 23) 통영에 교방이 개설된 이래로 연행되었고, 구한말 통영 교방의 기녀였던 김해근-이국희-정순남(鄭順南, 1907~1984)에게로 이어졌다. 정순남을 통해 현재 <칼춤>의 보유자인 엄옥자(嚴玉子, 1943~?)에게 전승되었다. 본래 네 명이 추었던 <칼춤>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현재와 같이 여덟 명으로 확대되었다.
<북춤>인 <무고>는 고려말 시중 이혼(李混, 1252~1312)이 영해(寧海)에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와 『악학궤범(樂學軌範)』(1493), 조선후기의 여러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를 비롯한 문헌과 여러 『읍지』, 문사들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민간에서 만들어진 <무고>는 궁중으로 유입되었고, 전국 지방에서 <무수(舞袖)>·<고무(鼓舞)>·<정자(釘子)>·<고고무(叩鼓舞)> 등의 이름으로 연행되었다. 통영 교방에서 연행되었던 <북춤>은 교방의 기녀였던 김해근-이국희-정순남으로 전승되었고, 정순남을 통해 현재 <북춤>의 보유자인 한정자(韓貞子, 1942~?)에게 이어졌다. 원래는 네 명의 원무만이 <북춤>을 추고, 다른 네 명은 양옆으로 서서 간단한 <입춤>을 추며 ‘지화자’를 노래하던 소리기생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지정과 함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소리기생을 열두 명으로 확대하여 협무라 칭하고 북 주위에서 춤을 추게 하여 지금과 같은 입춤이 되었다.
승전무는 본래 <칼춤>과 <북춤>의 두 작품이 하나의 무형문화재로 묶이면서 ‘승전을 축하한다’ 는 뜻인 승전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현재 승전무는 무형문화재지정 당시의 춤 그대로 전승되어 승전무보존회를 중심으로 공연되고 있다.
〇 내용 <칼춤>은 서로 일진(一進)·일퇴(一退)·대무(對舞)하고, 연풍대(筵風擡)로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면 춤이 끝난다. <북춤>은 네 명의 원무(元舞)가 느린 춤으로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북을 치며 춤추고, 열두 명의 협무는 원무를 에워싸고 ‘지화자’ 노래를 부르며 입춤을 춘다. 〇 구성 <칼춤>은 크게 “입춤-사위춤-앉은춤-칼춤(외칼춤·쌍칼춤)”으로 연결된다. 도입부의 ①입춤은 여덟 명의 무용수가 무대 앞으로 걸어 들어와 한 줄로 서서 인사를 하고 무대 중앙에서 두 줄로 서서 대무하며 춤을 춘다. ②사위춤은 경쾌하고 우아한 한삼춤으로 춘다. 진행부의 ③앉은춤은 한삼을 벗고 앉은 자세에서 여성스러운 손춤으로 이어진다. 이때 어린 기녀가 등장하여 칼을 무용수 앞에 놓아주고 한삼을 걷어 간다. ④칼춤은 오른손, 왼손의 순서로 칼을 잡고 일어나서, 본격적인 칼춤을 춘다. 서로 겨루는 모양을 형상화한 진격태와 역동적인 연풍대로 절정의 춤을 추고 가로 한 줄로 풀어진다. 종결부에서는 마무리 춤을 추고 인사태로 끝을 맺는다.
<북춤>은 “입춤-앉은춤-북춤-창사춤-북춤-입춤”으로 구성된다. 도입부는 ①입춤은 청·홍·백·흑의 의상을 입은 네 명의 원무(元舞)가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한 줄로 서서 인사하고 앉아서 앉은춤을 춘다. ②끝나면 한삼을 걷어 북채를 잡고 일어서 북 앞으로 걸어가 사방(청색-동, 백색-서, 홍색-남, 흑색-북)으로 선다. 이때 협무가 양옆으로 등장한다. 진행부는 ③북춤은 북을 치지 않고 북을 중심으로 대무·배무하며 북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춤춘다. ④한 바퀴 돌아 원래의 자리로 오면 도드리장단의 ‘지화자’ 노래를 부르며 창사춤을 춘다. ⑤창사춤이 끝나면 타령장단으로 속도가 빨라지면서 본격적으로 북춤을 추는데, 역동적인 동작과 활달한 한삼의 움직임으로 신명이 최고조에 달한다. 종결부에는 음악이 굿거리장단으로 바뀌고 앞으로 걸어 나와 한 줄로 서서 인사태 동작을 하고 끝을 맺는다.
〇 구조 통영 <칼춤>과 <북춤>의 진행구조를 기·승·전·결로 소개하면, ①기(起) 부분은 <칼춤>과 <북춤> 모두 무대 하수쪽에서 한 줄로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가로로 서서 인사하고 입춤을 춘다. ②승(承)의 <칼춤>은 무대 중앙으로 두 줄로 서서 한삼춤과 손춤을 추고, <북춤>은 북 앞으로 걸어가서 북은 울리지 않고 춤만 추는 과정이다. ③전(轉)의 <칼춤>은 양손에 칼을 잡고 밀고 당기듯 대무하고 연풍대를 추어 역동적인 절정의 칼춤을 춘다. <북춤>은 북을 중심으로 회무과 격고로 북춤의 최고조에 이르는 춤을 춘다. ④결(結)은 <칼춤>과 <북춤> 모두 처음과 같이 무대 앞으로 나아가 가로로 서서 마무리 춤과 인사로 끝을 맺는다. 〇 주요춤사위
구분 | 춤사위 | 음악 |
입춤 | 걸음발, 인사태, 입춤, 쌍오리 | 염불도드리 |
손춤, 메김사위, 손춤, 평사위 | 염불도드리 | |
사위춤 (한삼) |
돌며잦은사위, 모둠겨드랑사위, 잦은겨드랑사위, 돌림사위, 모둠사위, 엇사위, 머릿사위, 좌우돌림사위 | 타령 |
앉은춤 | 손춤, 배김사위, 어깨어름사위, 칼어름사위 | 느린타령 |
칼춤 (외칼춤) |
외칼사위, 돌림사위, 잦은사위, 모둠겨드랑사위, 엇사위, 머릿사위 | 빠른타령 |
칼춤 (쌍칼춤) |
머리어름사위, 겨드랑어름사위, 진격태, 연풍대 | 빠른타령 |
입춤 | 인사태 | 염불도드리 |
구분 | 춤사위 | 음악 |
입춤 | 걸음발, 인사태, 평사위 | 염불도드리 |
앉은춤 | 손춤동작 1·2·3 | 염불도드리 |
북춤 | 북어름사위, 어깨울러맨사위, 머리위돌림사위, 돌려치기 | 염불도드리 |
창사춤 | 달아 높이 고이 돋을사 - 어기야 어기 어기여차 - 우리 우리 충무장군 덕택이요 - 낙지자 오날이야 | 창사 |
머리돌림사위, 삼진삼퇴, 머리위돌림사위, 돌려치기 | 타령 | |
입춤 | 중걸음, 평걸음, 인사태 | 굿거리 |
<북춤>에서는 승전(勝戰)의 의미를 담은 노래를 부른다. 도드리장단에 맞추어 느리게 부르는 “지화자”, 반주 없이 부르는 “달아 높이~”, “어기야 어기~”, “우리 우리 충무장군~”, “낙지자~” 등 네 구절의 창사와 타령장단의 ‘겹지화자’ 창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무반주의 첫 번째 창사 “달아 높이 고이 돋을사”는 『고려사』「악지」와 『악학궤범』의 <무고> 항목에 기록된 「정읍사(井邑詞)」를 노래한다. 이는 <북춤>이 고려조의 <무고>에 연원을 두고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전승된 역사성 깊은 춤임을 입증해주는 부분이다.
<칼춤>의 복식은 붉은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고, 검정 쾌자를 걸치고 가슴에 홍띠를 두른다. 전립(戰笠)을 쓰고 아홉 색깔의 색동 한삼을 낀다. 무구로는 목이 꺾어지면서 돌아가는 검을 든다.
<북춤>의 복식은 원무와 협무가 다르다. 원무 네 명은 각각 두 사람으로 나누어 남색과 홍색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는다. 색동소매를 댄 청·홍·백·흑색의 두루마기에 홍색 띠를 두르고 색동 한삼 을 끼고 한삼 속에는 붉은색의 북채를 든다. 협무는 붉은 치마와 흰 저고리에 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색동 한삼을 낀다.
무구로는 청색과 홍색 북치마를 씌워 북 틀 위에 얹은 북을 사용한다.
승전무의 <칼춤>과 <북춤>은 궁중과 전국 교방에서 함께 전승된 춤으로, 조선 후기 통영 교방청이 해산된 이후 권번의 기녀들에 의해 20세기 초반까지 연행되었다. 승전무는 기록에 의한 실연이 아니라 기녀들의 기억으로 복원·재현되어 전승된 춤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하고 독특한 춤사위와 고려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읍사」 창사 등이 현재까지 잘 전승되어 공연되고 있는 역사성과 정통성 깊은 춤이다.
북춤: 국가무형문화재(1968) 칼춤: 국가무형문화재(1987)
엄옥자, 『승전무: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엄옥자, 『승전무의 실상』, 한컴디, 2008. 이종숙, 「승전무 원류에 관한 재고찰: 북춤을 중심으로」,『무용사학』, 3, 2004. 차명희, 『統營북춤의 易學的 原理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디지털아카이브, 승전무(2004), 영상 No 9940, 勝戰舞(1967), 영상 No 5258.(https://www.iha.go.kr/konan/getKonanSearch.nihc)
최경자(崔慶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