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업(定大業), 무무(武舞), 일무(佾舞)
종묘 제사 때 추는 일무(佾舞)의 하나로, 조선을 건국하여 백성을 안정시킨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춤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종묘의 큰 제사[대제(大祭)] 때에 일무로 추는 무무이다. 고려 말엽, 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야인들이 침범하여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고 괴롭히므로, 그들을 용감하게 물리쳐서 나라를 안정시켰고, 또 그로써 조선을 건국했다는 이야기의 춤이다. 검ㆍ창ㆍ활과 화살 등 무기를 들고 추는 정대업지무는 문무인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와 짝을 이룬다.
정대업지무는 〈보태평지무〉와 함께 1447년 처음 제작・발표되었다. 종묘 제향에 《보태평》・《정대업》이 처음 사용된 것은 1464년(세조 10) 음력 1월 춘향대제(春享大祭)부터이다. 종묘에서는 1월, 4월, 7월, 10월, 12월에 길일을 택하여 큰 제사를 올렸다. 이때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아헌(亞獻)과 종헌(終獻) 의식에서 정대업지무를 춤추었다. 아헌은 제사 순서 중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이고, 종헌은 마지막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이다. 정대업지무는 1464년부터 조선 종묘의 큰 제사 때에 육일무(六佾舞)로 연행되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됨에 따라 정대업지무는 팔일무로 격을 높였다. 그러나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겼으므로 1945년 해방되기까지 정대업지무는 다시 6일무로 강등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종묘에서의 제사가 단절되었다가 1969부터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지내게 되었다. 제례 음악은 종묘제례악보존회에서 연주하고, 일무는 (사)일무보존회에서 담당하여 팔일무로 연행하고 있다.
정대업지무는 고려 말 장군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무력(武力)으로 전공(戰功)을 세워 백성을 안정시켰고, 그로 인해 조선을 건국하게 된 업적을 찬양한 춤이다. 전체 열한 곡인데, 첫째는 헌관(獻官; 제사를 지낼 때 임시로 임명되는 제관)을 인도하여 들이는 인입(引入) 곡 〈소무(昭武)〉이고, 본곡으로 〈독경(篤慶)〉・〈탁정(濯征)〉・〈선위(宣威)〉・〈신정(神定)〉・〈분웅(奮雄)〉・〈순응(順應)〉・〈총수(寵綏)〉・〈정세(靖世)〉・〈혁정(赫整)〉 아홉 곡이 있으며, 마지막은 헌관을 인도하여 나가는 인출(引出) 곡 〈영관(永觀)〉으로 구성되었다. 〈독경〉과 〈탁정〉 악장은 추존왕(追尊王)인 목조(이성계의 고조부)와 환조(이성계의 부친)가 조선의 기초를 무력으로 다진 내용이다. 〈선위〉부터 〈총수〉까지는 태조(太祖) 이성계가 막강하고 신령한 위엄으로 왜구와 오랑캐들을 제압하고 몰아냈으며, 혼란한 고려로부터 백성을 안정시킨 공로가 커서 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이다. 〈정세〉는 태종이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을 제압하여 조선의 왕권을 안정시킨 내용이며, 〈혁정〉은 대마도를 본거지로 한 왜구를 소탕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 〈영관〉은 조선 열성조(列聖朝)의 무공을 찬양하며, 그 공업을 오래도록 귀감으로 삼자는 내용이다.
조선 전기 정대업지무는 서른여섯 명의 육일무 무용수와 그 좌・우・뒤편에서 군사용 깃발과 악기를 연주하는 서른다섯 명의 의물 잡이와 북 .징.각 등의 악기 잡이가 있어서 총 일흔한 명의 악공(樂工)이 춤과 의물 및 악기 연주를 담당했다. 마치 옛 군대의 진법(陣法)을 표현한 모습이었다.
조선 후기 『종묘의궤(宗廟儀軌)』(1667)의 정대업지무와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종묘 〈오향친제반차도(五享親祭班次圖)〉에는 서른다섯 명의 의물 잡이가 생략되고 육일무만 구성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 10월 이후부터는 황제의 격식을 갖추어 예순네 명의 팔일무와 그 주변을 둘러싼 서른다섯 명의 의물 잡이가 함께 『대한예전(大韓禮典)』에 기록되었다.
『시용무보(時用舞譜)』 정대업지무의 춤사위는 신체 중심선을 중앙으로 볼 때, 양팔의 움직임이 좌우․상하의 대칭을 이루어 동작하는 특징이 있다. 동작을 지시하는 명칭은 자공(刺空; 빈곳을 찌르기)・발검(拔劍; 칼을 빼들기)・번검(翻劍; 검을 날리기)・할검(割劍; 검으로 쪼개기)・복검(覆劍; 다시 검을 쓰기)・번권(飜拳; 주먹을 날리기)・복권(覆拳; 다시 주먹쓰기)・할권(割拳; 주먹으로 가르기)과 같이 검이나 창, 주먹을 사용하여 찌르고 휘두르는 공격적 용어가 사용되었다. 또 궤좌슬(跪左膝; 왼쪽 무릎으로 꿇어앉기), 기립(起立; 일어서기)과 같이 앉고 서는 방법을 지시하는 술어가 있으며, 슬파(膝把; 무릎에서 긁기)・슬상(내・외)・휘(膝上內外揮; 무릎 위에서 안으로 혹은 밖으로 휘두르기)ㆍ점슬(點膝; 무릎 가리키기)・하슬(下膝; 무릎으로 내리기)・추비(推臂; 팔을 밀다)・신비(伸臂; 팔을 펴다)・환비(還臂; 다시 팔동작)・환치(還置; 다시 놓는다) 등의 신체 부위 동작 지시어가 하나~다섯 개가 조합되어 짝을 이루어 구성되었다.
현행 정대업지무의 춤사위 발검은 허리를 굽히고 오른쪽 칼 든 손을 내리되, 몸에서 약 40도 가량 앞 쪽 옆으로 향하는 동작이다. 추비(推臂)는 팔을 상부 사선 쪽으로 꼿꼿이 뻗는 동작이다. 번검은 칼을 잡은 손으로 곡선을 그리며 어깨 부위까지 올리되, 칼이 뒤를 향하도록 하는 동작이며, 번권은 칼을 잡지 않은 손으로 곡선을 그리며 어깨까지 올리되 주먹이 뒤를 향하는 동작이다. 점슬은 허리를 굽히고 손을 무릎에 분이되, 붙인 다리를 지상에서 약 5촌가량 든 모습이다. 이상과 같이 현행의 정대업지무의 춤사위는 『시용무보』의 동작 지시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실행하는 특징이 있다.
〈정대업〉 참고
정대업지무의 반주음악은 《정대업지악》이다.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은 역대 조상들이 생전에 듣던 향악과 고취악을 기초로 새로운 종묘제례악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세종대에 만든 신악(新樂) 중 《정대업지악》과 《보태평지악》을 세조대에 개작하여 종묘제례악에 쓰기 시작하였다. 《정대업지악》은 열한 곡 각 악장의 자구(字句) 수에 따라서 선율과 리듬이 붙여져 작곡되었다. 정대업지무의 선율은 황종(黃鍾)・협종(夾鍾)・중려(仲呂)・임종(林鍾)・무역(無射) 다섯 음을 두 옥타브에 걸쳐 사용하였다. 황종(黃鍾) 계면조(界面調)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에서 관장했고, 20세기 초반에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전승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종묘에서의 제사가 단절되었을 때, 종묘제례악은 이왕직아악부의 후신인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에서 전승하였다. 현재는 국립국악원과 (사)종묘제례악보존회에서 계승하고 있다.
조선 시대 종묘제례의 정대업지무의 복식은 피변(皮弁)을 머리에 쓰고, 남주의(藍紬衣), 적상조연(赤裳皂緣)을 입고, 적말대(赤抹帶)로 허리를 묶었다. 흰색 버선[ 백포말(白布襪)]에 오피리(烏皮履)를 신었다. 무용수 열두 명은 검(劒)을 잡고, 다음 열두 명은 창(槍), 다음 열두 명은 궁시(弓矢: 활과 화살)를 잡고, 무술의 위엄과 기세를 표현하는 춤을 추었다. 한편, 조선 전기 연향 때의 〈정대업〉 정재 복식은 오색단의 갑옷[五色段甲]을 입고, 청색단의 투구[靑段冑]를 쓴다고 했다. 현재의 복식은 20세기 초반부터 머리에 복두(幞頭)를 썼는데 근래 진현관을 쓰며, 홍주의(紅紬衣)를 입고, 남사대(藍紗帶)로 가슴 부위를 묶는다. 신발은 목화(木靴)를 신는다. 팔일무의 육십사 명 중 앞에 선 네 줄은 검을 잡고 뒤쪽 네 줄은 창을 잡고 춤춘다.
정대업지무는 조선 종묘에서 중국식 제사 음악의 관습을 버리고, 자주적인 《종묘제례악》을 만들어 사용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종묘제례악 : 국가무형문화재(1964) 종묘제례악 :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2001) (2008년부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변경)
조선 전기의 정대업지무는 임금과 신하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회례연(會禮宴)이나, 사신을 접대하고 위로하는 사신연(使臣宴), 제사 후에 조상의 음덕을 바라는 음복연(飮福宴) 등, 연향 때에 연행되었다. 연향에서 추는 〈정대업〉은 '정대업정재'라고 이름하였고, 이 때의 〈선위〉는 5진법으로 변하는 군진(軍陣)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종묘 제사에서는 진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악후보』 『세조실록』 『세종실록』 『속악원보』 『시용무보』
『대악후보』 『세조실록』 『세종실록』 『속악원보』 『시용무보』 국립국악원 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집: 시용무보ㆍ정재무도홀기』 , 국립국악원, 1981. 송지원ㆍ이숙희ㆍ김영숙,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이종숙, 『종묘제례악 일무의 왜곡과 실제』, 민속원, 2012.
이종숙(李鍾淑)